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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 서희
꿈을 이룬 자의 꿈
글 김호경 기자, 장광열(춤 비평가) 8/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8월호 - 전체 보기 )




서희는 매일매일 꿈을 꾸고, 뾰족한 발끝으로 한 발 한 발 그 꿈을 실현하고 있다. 꿈이란 어쩌면 진부하지만, 그것을 이루고 난 자의 삶은 완전히 특별하다. 자신이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 “날개를 꺾지 않고 함께 꿈속을 여행할 낭만적인 배우자를 찾는다”며 싱그럽게 웃는 그녀와 어느 여름날을 함께 보냈다

발레리나 서희는 꿈속에 산다. 서희의 꿈은 무대다. 수천 명이 모인 콩쿠르에서 이름이 불리길 꿈꾸고, 세계적인 무용수들과 한 무대에 서는 것을 꿈꾸고, 또 전막 발레의 주인공을 꿈꾸던 소녀는 모든 것을 이루고 난 지금 관객을 아름다움의 무아지경으로 이끄는 ‘더 나은 무용수’가 되기를 꿈꾼다.

서희는 2004년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이하 ABT)의 산하 기관인 ABT 스튜디오 컴퍼니의 수습 무용수로 출발해 이듬해 코르 드 발레(군무)로 정식 입단했다. 차곡차곡 입지를 다진 그녀는 2010년, 솔리스트로 임명되었고 당시 ‘뉴욕 타임스’지와의 인터뷰에서 “내 꿈은 ABT의 솔리스트가 되는 것이었다”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2년 후, 동료 무용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예술감독 케빈 매켄지로부터 수석 무용수 자격을 인정받은 그녀는 “ABT 안에서 모든 역할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며 또 한 번 웃었다.

2016년, 전 세계 5000명 이상의 무용수(9~19세)가 실력을 겨루는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이하 YAGP)의 한국 예선 유치를 성사시킨 서희는 “서른이 되기 전, 발레계의 최전선에 있을 때 후배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YAGP는 최종 결선에 진출하는 무용수만도 1000명이 넘으며, 전 세계 30개 유수의 발레단 대표들이 장학금과 발레단 입단 특전을 준비한 채 지켜보는 꿈의 무대다. 서희는 2003년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현재 마린스키 발레의 수석 무용수인 김기민도 이 대회에서 우승(2012)을 하며 마린스키 발레에 입단할 기회를 얻었다. 그동안은 호주(3개 지역), 프랑스, 브라질, 일본과 미국 내 18개 지역에서만 세미파이널이 열렸고, 그 외 국가의 참가자들은 비디오 심사를 통해서만 뉴욕 파이널 무대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이번 YAGP 코리아를 통해 가능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한국의 젊은 무용수들에게 한층 가까워진 것이다. 서희는 많은 이들이 더 큰 꿈을 꿀 수 있도록 새로운 통로를 마련하고 있다.

날개를 달아준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서희는 지난 7월 2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잠자는 숲속의 미녀’ 공연을 끝으로, 올해 정규 봄 시즌을 마무리했다. ABT는 봄 시즌과 가을 시즌으로 운영되며 봄 시즌에는 클래식 발레, 가을 시즌에는 모던 발레를 위주로 공연한다. 시즌이 아닐 때에는 주로 투어 공연을 갖는데, 서희는 7월 둘째 주와 셋째 주에 로스앤젤레스와 버지니아 주 비엔나에서 각각 공연을 가졌고, 일정이 끝나마자 2017 YAGP의 한국 예선을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여기서 잠깐, 서희에게 날개를 달아준 ABT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ABT는 클래식 발레와 모던 발레를 아우르는 방대한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1939년 가을, 발레단 설립에 착수했을 때부터 역사적 가치를 지닌 레퍼토리들을 개발하고 재능 있는 안무가들의 창작을 장려하겠다는 공동의 목적을 띠었다. 1940년, 정식 창단 이후 40년간 ABT를 주도한 루이사 체이스와 올리버 스미스는 ‘백조의 호수’ ‘지젤’ 등의 클래식 발레에 충실하면서도 조지 발란신·앤터니 튜더·제롬 로빈스와 같은 거장 안무가들과 관계를 맺으며 레퍼토리의 폭을 넓혔다.

1980년, 새로운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고전에 에너지를 불어넣으며 대중성을 확보했고, 1992년 ABT의 수석 무용수 출신 케빈 매켄지가 바리시니코프의 뒤를 이어 ABT의 저력을 세계에 뻗쳤다. 뉴욕뿐 아니라 미국 전체를 대표하는 발레단으로서 대내외적으로 공을 세운 ABT는 2006년 4월, 미국연방의회로부터 공식적으로 미국 국립 발레단(America’s National Ballet Company)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서희 역시 ABT에서 다양한 작품의 주역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올해에도 ‘해적’ ‘로미오와 줄리엣’ ‘황금닭’과 알렉세이 라트만스키가 안무한 ‘쇼스타코비치 3부작-실내악’ ‘라트만스키 트리플 빌-7개의 소나타’ 등을 소화해 만족스러운 호응을 얻었다.

“이번 봄 시즌 공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5월에 공연했던 프레더릭 애슈턴 안무의 ‘실비아’입니다. 초연이라 긴장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급작스레 들었던 터라 서울에 가보지 못한 죄송한 마음을 하늘에 전하기 위해 외할아버지에게 헌정하는 공연을 가졌습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은 ‘백조의 호수’예요. 무용수에게 결코 쉽지 않은 작품이라 공부를 많이 해서인지 무대를 마칠 때마다 희열을 느끼죠. 제 발레 인생에 많은 부분을 차지할 만큼 연습에 공을 들였기에 매 스텝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정도로 제겐 특별한 작품입니다.”

서희는 ABT의 수석 무용수 다닐 심킨을 중심으로,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솔리스트 8명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 인텐시오의 멤버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번 시즌에는 4명의 신진 안무가 요르마 엘로, 그레고리 돌바시안, 알렉산데르 에크만, 아나벨러 로페즈 오초아와 함께 4개의 신작을 완성해 투어 공연을 가졌다. 서희는 “모든 게 준비되어 있는 발레단 시스템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뚜렷한 체계 없이 만들어내는 과정은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꽤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고 배운 것도 많았다”고 회상한다.

ABT, 그녀의 완벽한 보금자리


ABT는 예술적 기량이 꽉 찬, 개성 넘치는 무용수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딱히 ‘ABT스타일’이랄 것이 없는 게 특징이다. 발레단에서 무용수에게 지시하는 특정한 훈련 방식도 없다고 한다. ABT는 무언가를 요구하기보단 무용수가 발레단에 필요한 최적의 요건을 갖추기 위해 스스로 갈고닦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편이다. 실제로 신입단원이 입단하면 6년 이상 경력의 선배 무용수와 멘토를 맺을 수 있도록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이는 발레단에서 어떻게 적응하며 성장할 것인지 스스로 고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체계적인 보험 및 치료 혜택은 물론 훈련·휴식 시간의 규율을 철저히 지키고, 높은 봉급 수준을 유지하며, 외부 활동을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다는 점은 ABT 무용수들이 10년, 20년 간 발레단에 머물며 마음껏 기량을 펼치는 데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

ABT는 단원을 선발하기 위한 정규 오디션이 없고, 아카데미나 콩쿠르, 다른 발레단에서의 활동을 꾸준히 지켜보다 입단 기회를 제공한다. 발레단 입단 후에도 정기적인 승급 심사가 따로 없어 무대 위에서나 아래에서 끊임없이 평가를 받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ABT가 무용수들의 엄격한 자기관리와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ABT 소속 무용수들은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고 의욕이 넘칩니다. 상상을 제한하는 한계도 없죠.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만큼 새롭게 생각하는지, 또한 그것을 얼마만큼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에 따라 평가받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예술은 머리에서 시작해 몸으로 표현되기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자신의 미래를 주체적으로 계획할 수 있다는 점에서 ABT는 제게 완벽한 울타리입니다.”

ABT 최초의 한국인 무용수는 1998년 입단해 6년 간 활동했던 강예나다. 2005년에 정식 입단한 서희는 2012년, 동양인 최초 수석 무용수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현재 ABT에는 서희 외에 한국인 무용수가 두 명 더 있는데, 코르 드 발레로 활동 중인 남성 무용수 안주원과 한성우다. 서희는 후배들이 홀로 외로운 시간을 보낸 자신과는 달리 행복한 경쟁을 이어나가길 바라며 도움을 아끼지 않고 있다.

“주원이, 성우 둘 다 제 남동생 또래라 꼭 친동생들 같아요. 그들이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면 무대 뒤에서 지켜보며 함께 긴장해요. 열렬한 응원을 보내죠. 동생들이 발레단에서 편안하게 즐기면서 생활하면 좋겠습니다. 발레에 대한 조언은 잘 안 하고요, 집에 늦게 다니지 말라는 잔소리를 자주 하고 있어요.(웃음) 술 한 잔씩 사주면서 고충을 들어주곤 하죠.”

ABT와 관련된 마지막 질문이라며 동료 무용수들이 ‘희’라는 이름을 어떻게 부르냐고 물으니 “퀸 흴리자베스 더 퍼스트”라는 긴대답이 돌아왔다.

“제 이름이 ‘서씨 집안의 여왕’이라는 뜻이라고 한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는데, 친한 동료 몇몇이 그걸 보고는 이렇게 길게 불러요. 매번 풀 네임을 다 부른다니까요.”(웃음)

더 높이 날기 위한 성장통


서희가 늘 성장궤도에만 있던 것은 아니다. 2010년, 솔리스트로 승급된 직후 리허설 도중 넘어져 발목 바깥쪽 인대가 찢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중심을 잡을 때 힘의 주축이 되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당시 치료를 담당하던 의사로부터 무용수로서의 미래를 의심받을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다. 두 달 간 깁스를 해야 했기에 서희는 훈련을 멈추고 부모님이 계신 한국을 방문했다.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는 마라톤 같은 삶이었기에 뉴욕을 떠날 때는 너무나 불안했지만, 서울 집에 도착하자마자 거짓말처럼 안정을 되찾았다. 경쟁에서 잠시 벗어나 평온한 일상을 마주하며 서희는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일 년 이상의 휴식기를 예상했지만, 5~6개월 만에 훌훌 털고 일어났다.

“부모님은 발레를 전공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제가 일을 하면서 직면하는 모든 문제는, 부모님에게는 오히려 별것 아닌 문제였어요. 힘들어하는 제게 어머니는 ‘됐으니 넘어가라’는 식으로 말씀하셨죠. 그런 얘기를 듣고 나니 ‘아,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웃을 수 있었어요.”

서희가 뉴욕에서 확신 없는 길을 용감하게 걸어보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녀의 나이는 열여덟 살이었다. 그녀가 ABT의 수석 무용수가 되었을 때 동료 무용수들이 유독 뜨거운 반응을 보였던 이유도, 외부에서 스타급 무용수를 영입하는 것이 더 이상 새롭지 않은 ABT에서 수습 단원부터 차근차근 성장해 7년 만에 주역 자리를 거머쥔 그녀에 대한 축하와 격려의 마음이 담겼기 때문이었다. 최근에는 국내 발레단에서 활동하던 무용수가 해외 발레단에 솔리스트나 수석 무용수로 캐스팅되는 일도 드물지만 존재한다. 그만큼 한국의 발레가 세계무대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셈이다. 서희는 “다른 상황은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다시 발레를 시작한다 해도 나는 내가 거쳐온 과정을 망설임 없이 선택할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에는 참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무용수로서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게 그 7년이라는 시간이 없었다면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답을 찾지 못했을 거예요. 이 시기를 통해 제가 이 일을 얼마나 신성하게 여기는지도 알았고, 힘들다는 이유로 작품을 함부로 대했을 때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때때로 마음이 지칠 때가 있는데 이때에 얻은 해답으로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뉴욕 무대를 마음껏 날다


ABT의 예술감독 케빈 매켄지는 서희에 대해 ‘혹독한 훈련과 뜨거운 환호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고, 더 건설적인 방향을 유지한다면 서희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는 완벽한 무용수가 될 것’이라 평가했다. ‘뉴욕 타임스’지의 기자 지아 쿠를라스는 “서희의 춤, 유려한 선은 결정적이면서도 서두르지 않는 순수함을 발산한다. 극적인 순간에도 결코 감정이 과해지는 법이 없다. 서희는 섬세한 등과 팔로 차분하게 무대를 채운다. 덕분에 관객은 그녀를 무용수만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마주할 수 있다”고 서희의 무대를 평했다. 지난해 평창대관령음악제에 출연하기 위해 서희와 함께 내한한 ABT 솔리스트 알렉상드르 아무디는 “서희는 무대에서 자신의 100%를 내보이는 멋진 무용수다. 모든 단원이 그녀를 좋아한다. 그녀와 함께 춤을 출 수 있다는 건 무척이나 행복한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서희는 뉴욕에서의 삶을 만끽하고 있다. 실제로 뉴욕은 무용수들이 성장하기에 매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특히 ABT와 역사의 궤를 같이하는 뉴욕 공연예술 공공도서관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무용 아카이브를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작품에 대한 학구적 태도를 유지하는 서희 역시 “ABT의 가장 큰 장점은 뉴욕에 있다는 것”이라 말하며 예술적 안목을 확장하기 위해 훌륭한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챙겨 보고 그 외에 다른 분야의 예술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뉴요커 서희의 일상이 궁금하다고 물으니 그녀는 자신의 하루를 들려주는 것으로 응대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집 앞에 있는 ‘렉스(Rex)’라는 이름의 카페로 갑니다. 그곳에서 블랙커피와 초코 크루아상을 하나 먹은 후 5분 거리에 있는 극장까지 걷죠. 극장에 도착하면 레오타드를 고르고, 분장실에서 메이크업을 받은 후 클래스를 시작합니다. 1시간 30분의 클래스가 끝난 후 리허설이 시작되기 전까지 쉬는 시간이 생기면 극장 내 식당에 가서 바나나 피넛버터 샌드위치와 꿀을 듬뿍 넣은 레몬티를 한 잔 마셔요. 리허설이 끝나고 나면 치료를 위한 스튜디오에 가서 마사지를 받거나 운동을 하고, 극장 안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랩톱컴퓨터를 켜서 사단법인 관련 업무를 한두 시간 보죠. 공연이 있는 날은 무대를 준비하고, 그렇지 않은 날은 저녁을 먹으러 갑니다. 샤도네이나 말벡, 피노 누아 품종의 와인을 곁들여 마시곤 하는데, 다음 날 공연이 없을 때는 저와 친한 바텐더가 제 취향에 맞게 만들어준 더티 마티니를 마시기도 해요. 집에 돌아오면 모든 긴장을 풀고 사적인 일만 합니다. 요즘에는 빈티지 소잉머신을 하나 사서 잠옷을 만들고 있어요.”

그녀의 긍정, 그리고 행복

열두 살이란 다소 늦은 나이에 발레를 시작한 서희는 한 TV 쇼에 나와 “배드민턴부에 지원했는데 수강 인원이 다 차서 발레부에 들어갔다”며 자신의 운명을 소탈하게 고백했다. 선화예술중·고등학교가 주최하는 콩쿠르에 참가해 장려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선화예중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무용을 배우기 시작했고, 같은 재단인 유니버설발레단이 당시 키로프 발레 아카데미와 밀접한 교류를 맺고 있었기에 오디션을 통해 워싱턴 D.C의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 전교회장을 할 만큼 활동적인 성격을 지니고, 발레를 뒤늦게 시작했음에도 친구들 사이에서 결코 주눅이 들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그녀는 “지금도 별로 다르지 않다”며 웃는다.

“우선 일을 벌이고 나서 수습하는 대범한 아이였던 것 같아요. 눈물도 많고 솔직해서 아마 마음의 병이 없나 봐요. 주변에서 저한테 오래 살 거래요.”(웃음)

서희는 2003년, 스위스에서 열린 로잔 콩쿠르 파이널 무대에 12명 중 한 명으로 오르고, 네 번째로 이름이 불리며 많은 기회를 얻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 산하의 존 크랑코 스쿨에서 일 년간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할 기회를 얻었고, 이듬해 18~22세 사이의 남녀 각 6명씩 12명만을 단원으로 두는 ABT 스튜디오 컴퍼니에 입단 제의를 받았다. 서희는 슈투트가르트에서 뉴욕으로 적을 옮긴 직후 ‘객석’과 가진 인터뷰에서 “슈투트가르트에서 중심을 잡고 춤추는 법을 배웠다. 그전까지는 손과 발 쓰는 법만 익혔을 뿐 중심을 잡는 법을 모른 채 무대에 올랐다. 몸이 길고 유연해서 전환이 빠른 모던 작품에선 쉽게 다칠 거라는 편견을 떨친 것도 슈투트가르트에서의 소득”이라고 말했다.

“한국 발레단의 무용수들은 모두 같은 곳에서 배웠다는 느낌이 강하고, ABT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무용수들이 모여 있으니 스타일이 들쑥날쑥해요. 유럽에서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는데, 미국에서는 그보다 더 자유로웠죠. 도시의 분위기를 배우기 위해 뉴욕에 갔고, 결과적으로 목적을 달성했어요.”

사단법인 서희, 새로운 도약을 꿈꾸다

ABT는 현재 수많은 기업 및 개인이 보내오는 엄청난 액수의 후원금으로 견고히 지탱되고 있다. 수표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발레단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보내는 후원 문화에 익숙한 서희는 2011년, 한국에 장학 재단을 설립해 재능 있는 학생들을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같은 뜻을 품은 사람들을 모아 사단법인 서희(www.heeseofoundation.org)를 창립했고, 2017 YAGP의 한국 경연 유치를 사단법인 서희의 첫 프로젝트로 결정했다.

YAGP는 한국을 비롯한 브라질, 호주(3개 지역), 프랑스, 일본 등 7개 지역과 미국 내 18개 지역에서 열리는 세미파이널에 지원한 참가자들, 그리고 비디오 심사에 지원한 참가자 중 재능 있는 학생들을 선발해 뉴욕에서 최종 경연을 치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난 7월 22~24일 열린 첫 한국 세미파이널 무대는 ‘경연’이 아닌 ‘마스터클래스’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는 첫 회가 지니는 시행착오의 가능성을 줄이고 학생들에게 보다 집중적으로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할 3명의 교사와 뉴욕에서 건너온 4명의 YAGP 심사위원이 수업을 지켜보며 해외 발레학교, 발레단의 입학 및 입단 기회와 뉴욕 파이널에 진출할 이들을 가렸다.

“펀딩은 100% 미국에서 진행했습니다. 한국은 아직 기부 문화가 정착되어 있지 않고, 사단법인도 시작 단계라 한국에서 지원을 받기가 어려웠어요. YAGP를 통해 한국의 학생들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제가 지닌 네트워크를 활용해 세계의 발레단 및 발레학교에 많이 진출하면 좋겠고, 실제로 발레단에 입단했을 때 자립성이 부족한 친구들이 좀 더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도 주고 싶어요. 제가 경험했던 것들을 한국의 많은 이에게 돌려주겠다는 것이 사단법인 서희의 설립 목적입니다.”
사단법인 서희는 YAGP에 이어 “깜짝 놀랄 만한 재미있는 프로젝트도 선보일 예정”이다. 서희는 해외 곳곳에서 만난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과 컬래버레이션을 기획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무용의 새로운 재미를 한국 관객과 나누려 한다.

“한국에는 여전히 무용은 튀튀를 입고 추는 어려운 클래식 발레와 감상이 난해한 컨템퍼러리 댄스, 단 두 가지만 있다고 알고 계시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그렇지만은 않거든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보고 들은 아름다운 것들을 제가 나고 자란 한국에서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요. 아직 젊으니 더 많은 새로운 시도가 가능할 거라 생각해요. 이것이 저의 또 다른 꿈입니다.”

사진 촬영 내내 서희의 흰 피부와 여성스러운 손가락, 이와는 대조되는 근육질의 다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완벽한 ‘기술’을 위한 연마, 창조적 ‘예술’을 위한 몰입, 두 요소의 결합과 조화가 새삼 경이로웠다. ABT에 입단했을 때 비로소 발레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서희에게 발레가 무엇이냐 되물었다.
“무대에 서 있는 사람이 몇 바퀴를 도는지, 어느 정도 높이로 뛰는지 인지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움 그 자체의 경지를 관객에게 선사하는 것. 그 순간의 만족감을 알기에 아침이 오면 다시 토슈즈를 신게 되는 것 같아요.”

서희는 이룬 순간의 희열을 알기에 또다시 꿈을 꾼다. 그녀의 멍든 발이 아름답고, 그녀의 고단한 하루가 행복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글 김호경 기자 사진 김용호(도프 스튜디오)

서희의 마스터클래스 현장에 가다


‘객석’은 미래를 책임질 예비 예술가들에게 선배와의 만남을 제공함으로써 예술학도들의 예술적 자긍심을 고취하고,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마스터클래스를 기획했다. ABT 수석 무용수 서희가 2015년 8월 6일 선화예술고등학교 델라스홀에서 첫 번째 시간을 가졌고, 올해 7월 19일 같은 장소에서 다시 한 번 후배들을 만났다. 이번 마스터클래스는 ‘객석’, 선화예술중·고등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가 공동 주최했다.

이날 마스터클래스는 기본 발레 클래스(30분), 조지 발란신 안무의 ‘차이콥스키 파드되’ 중 일부분(60분)으로 구성됐다. 10명의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과 11명의 선화예술고등학교 학생이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했으며, 80여 명의 선화예술중·고등학교 학생이 이를 참관했다. 모든 순서가 끝난 뒤 학생들이 사전에 작성한 질문지를 바탕 삼아 공개 인터뷰를 진행했다.

서희는 “조지 발란신의 발레는 한국 학생들이 쉽게 배울 수 없는 작품이라 특별히 이 시간을 마련했다”며 “학교에서 배운 ‘정직한’ 스타일을 짧은 시간 안에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자기도취가 특징인 이 작품을 최대한 자유롭게 표현해보라”고 조언했다.

그녀는 ‘어떤 토슈즈를 쓰나요?’ ‘그랑 롱 드 장브(다리로 원을 크게 그리는 동작)를 깔끔하게 소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등 발레에 관한 궁금증부터 ‘연애하면 발레에 도움이 되나요?’ ‘힘든 순간은 어떻게 이겨냈나요?’ 등 학생들이 성장기에 겪을 만한 크고 작은 고민을 들으며 자신의 경험을 담은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스스로를 믿고 용기 있게 나아갈 것을 북돋우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다.

글 김호경 기자 사진 이규열(라이트하우스 픽처스)

특별기고
한국 무용수들의 해외 발레단 입단과 의미

최근 국내 무용수들이 해외 유수의 발레단에 입단했다는 낭보가 이어지고 있다. 그 역사의 시작과 변화 양상을 살펴본다

2016년 7월 22일은 한국 발레사에 의미 있는 하루로 기록될 것이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의 수석 무용수 강수진이 30년간 몸담은 발레단을 떠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오네긴’ 공연은 19세에 입단, 30년 간 재직하고 은퇴하는 무용수를 위해 동료 무용수들과 지도자들, 행정·기술 스태프들이 특별히 헌정한 무대로, 해외로 진출한 한국인 무용수가 군무에서부터 솔리스트, 수석 무용수를 거치면서 30년 동안 프로 무용수로서 치열한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순간이었다. 이는 한국의 무용수들이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고 있는 것을 입증하고, 앞으로도 세계의 중심에서 월드스타로 활약하는 무용수들이 등장할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에 큰 의미가 있었다.

최근 들어 한국 무용수들의 해외 진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 해외 진출의 경로가 다양해지며 세계 정상급 메이저 발레단으로의 진출이 늘어나고 있으며, 그 지역적으로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현재 외국의 직업 무용단에서 활약하고 있는 우리나라 무용수의 숫자는 2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에는 메이저 무용단에서 차근차근 성장한 사람도 있고, 비록 컴퍼니의 규모는 작다고 하더라도 주역급 무용수로서 컴퍼니를 이끄는 주인공도 있다. 주로 클래식 발레 쪽에 집중되어 있던 흐름이 컨템퍼러리 댄스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도 새로운 추세다.

한국 발레사, 변화의 흐름

한국 무용수들의 해외 무대 진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1980년대 중반부터라고 볼 수 있다. 허용순·김인희·문훈숙 등 해외 발레 학교로 유학 간 1세대들이 외국의 발레단에 입단하거나 모국으로 돌아왔고, 모나코 왕립 발레학교에 재학 중이던 강수진이 1985년 로잔 콩쿠르 1위 수상 이후 이듬해 슈투트가르트 발레에 입단하는 등 한국 무용수들의 해외 발레단 진출사는 해마다 새로운 역사를 기록해왔다.

주로 국제 콩쿠르 입상을 계기로 해외 발레단에 진출하던 유형이 수년 전부터는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해외 발레단의 정기 오디션이나 개인 오디션, 한국의 발레 지도자들이나 한국에 발레를 가르치기 위해 내한한 외국인 지도자들의 추천, 외국의 발레단에서 운영하는 부설 발레학교 졸업에 따른 입단, 그리고 발레 클래스나 워크숍 등에서 픽업되어 입단하는 것 등이 그 예다. 이는 한국의 발레 수준이 높아지면서 발레 지도자들과 무용수들의 국제 교류가 활발해진 데 힘입은 바가 크다.

최근 들어서는 처음 입단한 발레단 생활을 접고 다른 컴퍼니로 이동하는 사례도 조금씩 늘고 있다. 이는 더 규모가 큰 발레단으로 가거나, 근무 여건이 좋은 곳을 택하거나,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작업을 더 많이 경험할 수 있다는 이유에 따른 선택이다.

외국의 직업 발레단 내에서 한국 무용수들의 인기는 대체로 높다. 예술감독들이 한국 출신 무용수들을 선호하는 것은 클래식과 컨템퍼러리 발레 양쪽 작품을 모두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평소 성실한 자세, 따뜻한 인성도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외국 발레단의 지도자들은 한국 무용수들에 대해 많은 양의 공연을 위한 빽빽한 연습 스케줄을 무리 없이 소화하고 단원들과의 친화력도 강하다고 이구동성으로 칭찬한다.

한국에서 만나는 세계 무용계의 미래

매년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무용수를 초청해 고국에서의 무대를 마련해주는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 공연’이 2001년부터 올해까지 꾸준히 열리고 있다. 이 공연을 통해 초청된 무용수들의 숫자는 80여 명이 이르며, 해외 무대로 진출이 예상되는 ‘영 스타’로서 무대에 오른 무용수들이 실제로 해외의 유명 발레단에 입단한 사례도 많다.

2005년 영 스타로 출연한 이상은은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의 수석 무용수로, 2008년에 출연한 김기민·최영규는 마린스키 발레와 네덜란드 내셔널 발레에서 각각 수석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다. 2007년에 출연한 박세은과 채지영은 파리 오페라 발레와 보스턴 발레에서, 2010년 출연한 김민정은 헝가리 내셔널 발레에서 활약하고 있다.

초청 당시에는 군무나 솔리스트였던 무용수들이 수석 무용수로 성장한 경우도 적지 않다. 김세연은 스페인 내셔널 발레에서, 강효정은 슈투트가르트 발레에서, 서희는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에서, 한서혜는 보스턴 발레에서 수석 무용수로 활동 중이다.

올해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7월 29·30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 초대된 무용수 중 캐나다 내셔널 발레를 거쳐 덴마크 로열 발레에서 활동하는 홍지민은 14년 만에 고국에서 자신의 춤을 선보인다. 또한 거장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가 40년 넘게 예술감독으로 있는 함부르크 발레에서 활약하고 있는 박윤수 역시 10년 만에 고국 무대에 오르며, 세계적인 무용단인 벨기에의 피핑 톰 무용단에서 8년째 활동 중인 정훈목도 무대를 갖는다. 해외 무대로의 진출이 유력한 영 스타 무용수로는 2016 YAGP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전준혁(로열 발레학교)과 캐나다 발레학교에 재학 중인 송현정 등이 오른다.
우리나라 무용수들의 해외 진출은, 한국이 세계 여러 나라와 춤 교류 채널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공연 교류부터 무용수·안무가들의 교류, 나아가 교육적인 프로그램의 교환과 공동 프로덕션까지도 가능해질 수 있다.

차세대 이끌 무용수들을 위한 투자

세계 여러 나라의 컴퍼니에서 활약하는 한국 출신 무용수가 많아질수록 한국 무용계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들이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것 자체로 대한민국을 알리는 일이 되고, 결국에는 문화예술을 통한 국가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해외에 진출한 무용수를 지원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무용수 개인에 대한 후원이 아닌, 국내 무용계 발전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해외 무용단에서의 활동을 통해 안무가로 성장하거나(허용순·주재만), 국내로 돌아와 직업 무용단에서 활약하거나(김지영·한상이·박나리), 전문 무용단을 결성해 운영하거나(전은선·김남진·이용인·예효승·차진엽), 뛰어난 발레 교육자나 지도자로 변신한 사례(김용걸·조주현·유지연·강예나·조주환·서동현)는 이들의 행보가 그대로 국내 무용계 발전과 연계된다는 것을 입증한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한국의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방안으로는 그들에게 예술 장려금을 지원해주는 것부터 그들의 활동을 해당 지역에 활발히 알리는 일, 그들이 소속된 예술단체를 국내에 초청하는 일 등 다양하다. 더 나아가면 무용수와 안무가의 교류, 공동 제작 추진 등 더욱 전략적인 방안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들의 작업을 존중하고, 그들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중요성은 강수진이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부임 이후, 지난 30년 동안 메이저 발레단에서의 경험과 네트워킹을 토대로 단원들의 기량과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의 향상, 다양한 레퍼토리 확충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줌으로써 메이저 발레단으로 도약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에서 입증할 수 있다.

글 장광열(춤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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