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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신, 아폴론
유형종의 MYTH+MUSIC
글 유형종(음악 칼럼니스트) 8/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8월호 - 전체 보기 )




▲ 폼페오 바토니 ‘아폴로와 두 명의 뮤즈’(1741)

스트라빈스키·리하르트 슈트라우스·베를리오즈의 작품에 담긴 아폴론의 사랑 이야기

아폴론(로마신화의 아폴로)은 이상화된 신이다.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미술학도들이 가장 많이 그리는 흉상이 무엇인지는 쉽게 떠오를 것이다. 얼핏 여성처럼 보이는 우아한 조각상이 바로 아름다운 남성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아폴론이다.

예술사에서는 고전주의를 설명할 때 종종 ‘아폴론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고전주의의 이상은 객관성, 과도한 감성의 억제, 형식적 균형, 명료성 등인데 이런 요소들이 아폴론의 성향과 부합한다는 것이다. 특히 아폴론은 시와 음악, 춤을 나누어 담당하는 아홉 명의 뮤즈를 거느리고 다니는 신이었기에 문학과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익숙한 이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살펴보면 미국의 달 탐사 계획의 이름도 ‘아폴로 프로젝트’였고, 탐사선이었던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한 사건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 중 하나였으니, 예술에 관심을 둔 이들 외에도 아폴론의 이름은 누구에게나 익숙하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아폴론에게 붙은 다양한 호칭

아폴론은 지난 6월호에서 다룬 숲과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와 쌍둥이 남매지간이다. 부친은 제우스요, 모친은 티탄족의 딸 레토다. 레토는 헤라의 극심한 질투로 해산할 곳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포세이돈의 도움으로 바다를 떠돌던 델로스 섬에 도착해 쌍둥이를 낳았다. 델로스 섬은 레토를 도운 공적으로 떠돌이 섬에서 벗어나 한곳에 정착할 수 있었다.

아폴론은 아르테미스와 마찬가지로 활의 명수였다. 신화를 들여다보면 아폴론이 포악한 괴물을 벌하거나 모친인 레토를 보호하고자 화살을 사용한 에피소드가 여럿 있다. 최고의 궁술을 지닌 그는, 동시에 태양의 신이었다. 티탄족인 헬리오스가 담당하던 태양의 자리를 차지해 매일 아침 동쪽 하늘에서 황금마차를 타고 나타나 지상을 밝힌 뒤, 저녁이면 서쪽 하늘로 사라진다. 아폴론은 곧 태양인 것이다. 무용을 사랑해 직접 태양의 춤을 추기도 했다고 알려진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는 아마 아폴론처럼 여겨지고 싶은 욕망을 표출한 것이었으리라.

아폴론은 치료와 정화의 신으로 모셔지기도 했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는 아폴론의 아들이며, 부친 아가멤논의 원수를 갚고자 모친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살해해 모든 신의 저주를 받은 오레스테스의 영혼을 정화한 이도 아폴론이다.

예술의 신 아폴론과 9명의 뮤즈


▲ 볼쇼이 발레 ‘뮤즈를 이끄는 아폴로’ 중 아폴론과 세 뮤즈의 춤 ⓒAndrea Mohin

그러나 아폴론은 역시 예술의 신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음악과 시의 수호자로서 파르나소스 산에서 아홉 뮤즈들의 놀이를 주재하곤 했다. 뮤즈는 제우스와 기억을 의인화한 여신 므네모시네 사이에서 태어난 딸들이다. 자매들 모두 신이지만, 권력은 없고 단순히 노래하고 춤추는 역할로만 묘사되어 있다.

뮤즈가 9명이 된 것은 비교적 나중 일인데, 그 역할은 다음과 같다. 뮤즈의 우두머리인 칼리오페는 서사시를, 클리오는 영웅시, 폴리힘니아는 무용과 무언극을 담당하고 에우테르페는 피리와 유행가, 테르프시코레는 춤과 합창, 에라토는 연애시를, 탈레이아는 희극, 멜포메네는 비극, 클레이오는 역사, 우라니아는 하늘에 대한 찬가를 각각 관장한다. 여기서 칼리오페와 에라토는 클래식 음반 레이블 이름으로 사용돼 우리에게는 친숙한 이름이다. 특히 아폴론은 뮤즈 중 칼리오페와의 사이에서 그 유명한 오르페우스를 낳았고, 탈레이아와 사랑하여 코리반테스를 얻었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공산당 혁명 이후 미국으로 망명한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는 안무가 조지 발란신과 불후의 명작 ‘뮤즈를 이끄는 아폴로’를 만들었다. 스트라빈스키는 바로크 발레의 형식을 재현한다는 취지로 1928년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발레 음악 ‘뮤즈를 이끄는 아폴로’을 작곡했다. 여기에 당시 24세의 조지 발란신이 안무를 붙였다. 스트라빈스키와 발란신의 40여년에 걸친 협력 관계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발레의 주인공은 아폴론이다. 1장은 아폴론의 탄생이다. 장소는 앞서 언급한 델로스 섬인데, 한밤중을 배경으로 레토가 바위틈에서 아폴론을 낳는다. 시녀들은 아폴론에게 류트를 주며 연주하는 법을 가르친다. 2악장에선 뮤즈가 등장한다. 그러나 9명 중 셋만 무대에 오른다. 칼리오페, 폴리힘니아 그리고 테르프시코레다.

아폴론은 신의 위엄을 갖추고 세 뮤즈를 맞이해 각자 본분에 맞는 상징물을 건넨다. 먼저 서사시를 담당하는 칼리오페에게는 책을 선물한다. 이를 받아든 칼리오페는 서사시에 어울리는 춤을 마치고 아폴론 앞에 서지만 그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무언극으로 담당하는 폴리힘니아는 가면을 받는다. 그녀는 입을 손으로 가린 채 무언극을 추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실수로 소리를 내고 만다. 이를 들은 아폴론은 못마땅한 태도를 취한다. 마지막으로 아폴론은 노래와 춤을 관장하는 테르프시코레에게 하프를 준다. 그녀는 하프를 높이 들어 올려 대지를 울리기라도 하는 듯한 춤사위를 보인다. 그 모습에 만족한 아폴론은 자신의 위상을 과시하듯 춤을 추다가 가장 마음에 든 테르프시코레의 손을 잡고 파드되에 돌입한다. 여기에 칼리오페와 폴리힘니아도 가세하다가 저 멀리서 아버지 제우스가 찾는 소리에 아폴론은 여흥을 멈추고 무대를 가로질러 올림포스 산으로 향하는 포즈를 취한다. 세 뮤즈도 그 뒤를 따른다.

미남 아폴론의 짝은 어디에?


▲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트로이 사람들’ ⓒCory Weaver

아폴론은 가장 잘생긴 신일 뿐 아니라 능력도 출중해 아테나 여신과 더불어 제우스가 가장 신임하는 자식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랑에는 그에 걸맞은 운이 따르지 않았다. 아폴론의 사랑에 관한 가장 유명한 일화는 강의 신 페네이오스의 딸 다프네와의 이야기다. 아폴론과 에로스는 활을 지니고 다닌다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아폴론은 때때로 에로스를 하찮은 존재라며 업신여겼다. 이에 앙심을 품은 에로스는 아폴론에게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황금 화살을, 다프네에게는 증오를 환기시키는 납 화살을 쏘았다. 다프네에게 반한 아폴론은 그녀에게 간절히 사랑을 구걸하지만, 반대로 다프네는 도망치기 바빴다. 그러나 사랑에 눈이 먼 아폴론에게 이내 붙잡혔고, 다급해진 다프네는 부친에게 자신을 모습을 바꿔달라며 소리쳤다. 이를 들은 페네이오스는 비탄에 빠진 채 그녀를 월계수 나무로 만들어주었다. 아폴론은 딱딱하게 굳은 다프네 앞에서 눈물 흘리며 월계수 나무를 자신의 신목(神木)으로 삼았다. 고대 올림픽 우승자에게 월계수 잎으로 만든 관을 씌우는 전통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20세기 작곡가 중 그리스 로마신화를 바탕으로 한 오페라를 즐겨 만들었던 R. 슈트라우스는 1938년 ‘다프네’를 작곡했다. 요제프 그레고르가 쓴 대본이 지리멸렬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다프네가 나무로 변해가는 장면만큼은 무척 흥미롭다. 오페라에서는 아폴론과 다프네의 관계를 삼각관계로 설정하고 있다. 아폴론은 사랑에 눈이 멀어 연적이던 양치기를 활로 쏘아 죽인다. 그 죄책감 때문에 다프네를 취하지 못하고, 제우스를 찾아가 그녀를 월계수로 만들어 영원한 염원의 대상이 되게 해달라고 빈다. 슬픔에 젖어 있던 다프네는 아폴론의 요청으로 인해 발이 땅에 붙고 몸이 월계수로 변해가자, 이전에 느낀 적이 없던 쾌감을 느낀다.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의 딸 카산드라도 아폴론의 사랑을 받았다. 카산드라는 사랑을 받아주는 조건으로 예언의 능력을 요구했고, 인간에게 그런 능력을 주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아폴론은 마지못해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카산드라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예언자가 되었음에도 아폴론의 입맞춤조차 허용하려 하지 않은 것이다. 아폴론은 분노했지만 이미 부여한 능력을 뺏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신 그녀의 예언을 아무도 믿지 않게 함으로써 보복한다. 이후 사람들은 카산드라가 앞날에 대해 이야기해도 믿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정신 나간 공주로 취급받았다.

베를리오즈가 바그너 오페라처럼 장대한 규모로 작곡한 오페라 ‘트로이 사람들’의 1부에는 이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다.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거대한 목마만 남은 채 그리스 군대가 사라지자, 트로이 사람들은 환호하며 목마를 성 안으로 들이려 한다. 이때 카산드라의 환상 속에는 불타는 트로이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자신이 본 환상을 사람들에게 말하며 트로이 목마의 입성을 막으려 하지만, 아폴론의 보복으로 약혼자인 코로이보스조차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한다. 이후 예언이 현실로 일어나자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귀족 여인들을 모아 집단 자결을 주도한다.

아폴론의 쓰린 사랑 실패담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또 다른 강의 신의 딸 마르페사는 인간인 이다스와 아폴론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받자, 결국 이다스를 택한다. 이보다 심한 경우도 있다. 코로니스 공주는 아폴론의 아이를 임신했음에도 그에게 버림받을 것이 두려워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이 소식을 까마귀로부터 전해들은 아폴론은 분노에 차올라 원래 하얗던 새를 까맣게 만들어버리고 코로니스를 활로 쏘아 죽인다. 그러나 화장 직전, 그녀의 뱃속에 있던 자신의 아이를 꺼냈고, 이 아이가 자라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된다.

아폴론이 사랑에 실패한 대상은 비단 여성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소년 히아킨토스는 원반던지기 놀이를 하던 중 아폴론이 던진 원반에 맞아 죽었다. 그 자리에서 꽃이 피어났는데, 아폴론은 히아신스를 그리워하며 꽃에 그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아폴론은 또 다른 미소년 키파리소스를 사랑했는데, 그는 실수로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사슴을 죽이고 만다. 아폴론은 슬픔에 빠져 사슴을 따라 죽으려는 키파리소스를 삼나무로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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