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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영상화 10년 국내외 현황과 과제
글 한정호(음악 칼럼니스트) 8/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8월호 - 전체 보기 )




PART 1 공연 영상화의 국내 현황
마니아가 스크린을 찾는 이유

현재 세계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공연 영상화, 즉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Live Cinema Event)는 장르를 불문하고 변모 중이다. 국내에선 가능한 경제적 범위 안에서 자족하는 이들이 주요 계층으로, 새로운 파생 상품의 타깃이 되고 있다

연초에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를 보는 방법은 세대를 거듭하며 변화했다. KBS에서 1978년 빌리 보스코프스키(Willi Boskovsky) 지휘의 공연이 방영된 이래, KBS TV는 지금까지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감상의 주요한 통로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MBC FM이 오디오 음원을 확보해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통해 내보냈고, 지역에 따라 케이블 채널로 수신되는 NHK BS로 방송을 즐긴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대중화하면서 라디오 어플리케이션만 있으면 오스트리아 방송협회(ORF)의 라디오 중계로 실시간 청취가 가능하다.

2013년 1월 1일 오후 7시 15분.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위성 생중계를 보기 위해 필자는 3만원을 지불하고 메가박스 목동점에 들어갔다. 영화 상영관에서 생중계로 빈 필 신년음악회를 상영하는 건 역사상 처음이라고 당시 극장 측은 밝혔다. 영상과 음성 사이에 감지할 만큼 시차가 발생하고 버퍼링이 잠시 일어났지만, 개인적으론 TV를 볼 때와는 또 다른 실시간 참여의 느낌을 체험했다. 곡이 끝나면 영화관 관람석에 앉은 관객들이 박수를 보내고, 상영 중엔 침묵을 유지하는 행태가 공연장의 관람 에티켓과 다르지 않았다. 극장 안에서 방영 간에 식음료를 즐길 수 있지만 주변에 방해를 주지 않으려는 서로의 태도를 볼 때,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Live Cinema Event)’는 단순히 영상 관람으로 한정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클래식 음악 이벤트로 볼 만했다.

클래식 음악만이 아니다. 연극 장르에선 영국 국립극장(National Theater)의 주요 공연을 영상물 형태로 판매하는 ‘NT Live’가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선 국립극장이 2014년부터 수입하고 있는데, 관객들은 생중계가 아닌 걸 알면서도 ‘햄릿’ ‘프랑켄슈타인’에서 열연하는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대사 하나하나에 탄성을 터뜨린다. 이 대목에서 무용평론가 장인주의 견해―수정과 재생, 반복이 가능한 영상물 시청을 ‘공연 관람’이란 범주에 넣어야 할지―를 참고해볼 필요가 있다. 공연의 핵심 가치인 ‘일회성의 미학’ 측면에서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에 대한 국내의 학문적 논의는 아직 미흡하다.

한국의 국립극장은 ‘NT Live’의 높은 판매율에 고무됐고, 2016/2017 시즌 공식 레퍼토리에도 새로운 ‘NT Live’ 영상물을 올렸다.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는 해외의 주요 오페라·발레·페스티벌 영상물을 내놓고 있다. 각각의 영상물이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와 같은 생중계가 아닌 걸 알고 있음에도 일부 마니아들은 스크린으로 향한다. 작품별로 집객에 차이가 있지만, 지난해 중앙일보 2015년 8월 18일자에 따르면 메가박스의 경우 영화보다 비싼 티켓 가격(3만~4만원)에도 불구하고 60~90%의 관객 점유율을 나타냈다(2015년 8월 기준).

또 하나의 클래식 음악 이벤트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는 한국에서 부가상품도 파생시켰다.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은 2016년 1월 1일 오후 5시부터 9시 40분까지 약 5시간에 걸쳐 음악평론가의 해설, 여러 코스의 메뉴와 와인을 곁들인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생중계 관람권을 25만원에 시판했다. 숙박권까지 포함되면 가격이 더 비싸지만 판매율은 더 높다. 소비자가 시간에 맞춰 호텔이라는 특정 장소에 와서 상당한 금액을 지불하면서 공연 실황을 감상할 때, 집 안 거실이나 일반 상영관에서 느끼기 어려운 공연장 특유의 오라가 제공되리라는 기대가 수요와 맞아떨어졌다. 서울에선 빈 필하모닉 수준의 정기연주회를 자주 보기 어렵고, 메트 오페라·파리 오페라 발레 전막 공연을 유치하기 쉽지 않은 한국의 경제적 환경을 감안할 때 호텔에서 맛보는 유사 체험이 국내에서 누리는 공연 만족의 최대치인 셈이다.

해외 오페라와 발레 동향에 민감한 마니아들도 유럽과 미주 현지에서 종료된 공연을 큰 시차 없이 관람하기 위해 상영관을 찾는다. 현장성을 만끽하기 위해 유럽으로 가거나, 일본·중국으로 투어를 온 오페라·발레단을 보려고 여행을 떠나는 경우도 늘었지만, 산업적으로는 아직 미미한 수효다. 비행기를 타는 대신, 가능한 경제적 범위에서 자족하는 사람들이 외국 공연물을 상영관에서 보는 주요 계층이다. 실제 공연장에선 좌석마다 가격차가 있지만, 상영관에선 모두 같은 입장료를 지불하는 것은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의 장(場)을 일종의 평등 공간으로 인식시키는 요소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유럽에서 열리는 월드컵 경기나 올림픽 생중계가 종종 영화관에서 중계됐다. 하지만 시네마 라이브 이벤트가 한국에 급속도로 번진 건 멀티플렉스가 갖춘 선진 디지털 기술에 힘입은 바 크다. 해외 공연 단체가 디지털 방식으로 영상물을 제작하면, 국내 배급사는 전송받은 파일에 한글 자막을 입혀 국내 상영관에서 튼다. 필름이 아닌 디지털 소스이기에 이것을 중앙서버에 올려 광케이블로 전송하면 지방 상영관은 과거처럼 필름을 추가로 찍을 필요 없이 바로 스크린에 띄울 수 있다.

데이터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전달되는 배급 시스템은 일반 영화뿐 아니라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디지털화에 따른 고화질과 실감 음질은 과거 필름 방식으로 제작된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오델로’(1986년 국내 개봉)에서 도밍고를 볼 때와는 다른 수준의 시청각적 자극을 전달한다. 여기에 각각의 영화관마다 오디오 시스템에 편차가 있어 SNS 상에서는 음향 효과가 더 좋은 상영관 정보가 공유되고 있다.

2009년 메트 오페라 실황을 상영한 메가박스는 잘츠부르크, 브레겐츠 페스티벌 생중계로 국내에 본격적인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의 장을 열었다. 2016년에는 메트 오페라 최신작과 유니텔클라시카 제작의 4K(Full HD 대비 4배 화질) 영상물을 코엑스, 센트럴 등 6개 지점에서 상영 중이다. 가끔씩 유명 평론가의 해설도 함께한다.

2016년 롯데시네마는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과 파리 국립 오페라의 주요 오페라와 발레를 상영 중이다. 매주 화·토요일 월드타워, 건대입구 등 13개 지점에서 최신작을 볼 수 있다. 지난 7월에는 향후 방한 계획을 종잡기 어려운 카우프만 주연의 파리 오페라 ‘파우스트의 겁벌’이 개봉됐다.

국립극장은 오는 2017년 2월,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으로 화제를 모은 ‘프랑켄슈타인’(19·24·25일)과, 여류 연출가 샐리 쿡슨의 ‘제인 에어’(21·22·23·26일)를 해오름극장에 올린다. 같은 작품의 1회 관람료(1만5000원)는 일본 토호 영화관(특석 4000엔, 우리 돈 약 4만4000원)에 비해 저렴한 수준이다.

PART 2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의 해외 현황
글로벌 리더들의 빛과 그림자

뉴욕의 메트 오페라가 ‘HD Live’로 혁신을 이룬 지 10년이 지났다. 서비스는 수익을 내고 있지만 조직은 황폐해진 상황에서 현 글로벌 리더는 영국이다


▲ 메트 오페라 ‘Live HD’ 방송 장면 ⓒKen Howard/Metropolitan Opera

클래식 음악·오페라·발레·연극 장르를 스크린에 상영하는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Live Cinema Event)’ 또는 ‘라이브 스크리닝(Live screening)’의 원조는 2006년 12월 30일 미국 전역의 극장에서 2006/2007 시즌 개막작 ‘마술 피리’를 상영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HD Live’다. 이미 오래전부터 메트 오페라는 테크놀로지의 활용에 적극적이었다. 1930년대 전국 단위 라디오 방송의 선두 주자였고, 1980년대 PBS 채널을 통해 오페라 시리즈를 내보내는 것도 히트를 쳤다.

소니 클래식스 CEO를 거쳐 2006년 메트 오페라 운영감독으로 부임한 피터 겔브(Peter Gelb)의 눈에 들어온 신기술은 인공위성을 통한 데이터 전송과 브로드밴드였다. 이를 매개로 그간 오페라를 보지 못한 대중, 거리적 문제로 메트 오페라에 접근하지 못한 애호층을 타깃으로 서비스를 개시했다. 공연 중간중간 지미집 카메라가 동원되고 주역 가수 인터뷰를 위해 백스테이지로 카메라가 들어가는 광경 자체가 역동적이었다. 미국 드라마 ‘프렌즈’의 감독 출신 게리 핼버슨(Gary Halvorson)의 감각적인 카메라 워킹이 마치 올림픽 중계를 보는 듯한 느낌을 전했다.

서비스 초기부터 ‘월 스트리트 저널’을 중심으로 여러 정론지가 경제적 효과를 조명했고, 2008년부터 메트 오페라를 직접 찾는 관객보다 ‘HD Live’를 관람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2013/2014 시즌 기준, 66개국 2000여 개 극장이 10여 개의 작품을 상영했고 평균 23달러를 받는 입장료는 세계적으로 5000만 달러(2014년 6월 환율 기준, 한화 약 505억원)를 넘겼다. 2014년 말 메트 오페라는 350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한화 약 354억원)을 ‘HD Live’로 벌어들였다.


▲ 베를린 필의 디지털 콘서트홀 이용 모습

베를린 필하모닉의 경우, 소니의 적극적인 참여로 2009년 상영관 송출 방식 대신 개인용 컴퓨터 및 가정용 AV기기와 연동하기 쉬운 스트리밍을 적용한 ‘디지털 콘서트홀(Digital Concert Hall)’을 시작했다. ‘디지털 콘서트홀’은 2010년대 이후 빠르게 확산된 스마트폰과 태블릿, 인터넷과 연동된 스마트 TV의 도입에 주목했고, 현재 IT 기반의 개인 디바이스에 최적화한 서비스를 지향하고 있다. 베를린 필의 현 서비스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라이브 중계뿐 아니라 아카이브, 희귀 다큐멘터리 영상을 연회비를 결제한 고객에게 제공해 메트 오페라 방식의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와는 차이가 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영국 로열 오페라·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글라인본 페스티벌, 라 스칼라·빈 슈타츠오퍼·바이에른 슈타츠오퍼가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을 고민했고, 뒤늦게 샌프란시스코 오페라·LA 오페라가 대열에 합류했다. 대체로 이들은 개인용 IT 기반보다 상영관이나 공공장소에 송출되는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로 방향을 잡았다. 상영되는 장소의 공간감, 오케스트라와 오페라극장이 체감하는 재정 위기에 대한 압박의 정도가 플랫폼의 차이로 이어진 것이다.


▲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상연되는 ‘BP Big Screen’

로열 오페라하우스는 상영을 통한 수익 증대보다는, 기업 스폰서십을 유지·확장하는 방식으로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했다. 영국의 정유회사 BP와 장기간 스폰서십을 이어온 로열 오페라하우스는 지난 2014년 후원 25주년을 맞이해, 런던 트라팔가 광장 등 영국 내 공공장소에서 상연하던 ‘BP Big Screen’을 확대해 무료 온라인 서비스를 오픈했다. 로열 오페라하우스가 타이틀 스폰서십에 ‘BP’ 이름을 올리자, 긴장한 곳은 역시 BP 후원을 받아온 대영박물관·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테이트 모던 갤러리였다. 영국의 기업 후원 역시 한정된 예산 안에서 여러 곳이 나눠 갖는 구조이기에 대중 참여가 확연하게 눈에 띄는 ‘BP Big Screen’의 효과는 스폰서십을 유지하는 명분 축적용으로 최고였다.

수익 창출 vs 객석 점유율 하락
2010년대 중반,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의 글로벌 리더는 영국이다. 이벤트 시네마 협회(Event Cinema Association)에 35개 예술 조직과 관련 기술 단체가 가입되어 있고, 2014년 기준 3500만 파운드(당시 환율 기준, 한화 380억원)의 수입이 여기에서 발생했다. 그중에서도 선구자는 영국 국립극장(National Theatre)의 ‘NT Live’였다. 2009년 시작해 영국 전역을 아우르는 첫 상용 서비스로 지금까지 세계 2000여 개 상영관에서 약 550만 관람객이 ‘NT Live’를 즐겼다. 헬렌 미렌·베네딕트 컴버배치 같은 세계가 사랑하는 영국 배우들이 출연하는 연극에 대한 대중의 갈증을 ‘NT Live’가 영화관에서 해소시켰다. 2011년 영국 국립과학기술예술재단(NESTA)은 ‘NT Live’가 역으로 영국 국립극장의 브랜드 가치 강화에 도움을 준다는 보고서를 냈다.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의 효용과 예술단체의 지속 가능에 관한 실증 연구는 영미 학계에서 함께 이뤄졌다. 루스 타우스 본머스대 교수(창조경제)는 “다수의 고급 인력이 참여하는 오페라 제작비에 상응하는 수익을 위해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는 필수”라는 입장이다. 반면 윌리엄 보멀 뉴욕대 교수(경제학)는 “전자기기로 오페라를 보는 시청자 층의 증가가 실질적으로 오페라 제작의 생산성에 기여할 것인가?”라는 의문을 표한다.

‘텔레그래프’지의 오페라평론가 루퍼트 크리스티안센은 영국에서의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를 ‘끔찍할 정도로 비싼 사업’으로 규정하고, 마지못해 시행하는 세태를 꼬집었다. ‘NT Live’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전 NT Live 제작총괄 데이비드 사벨은 “‘NT Live’는 기금 모금 조직의 도움 없이 자립할 수 있었던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며 사례의 특수성을 강조했다.

오페라단이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에 참여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오페라 운영감독의 경우 향후 시즌의 프로그래밍을 준비하면서 스트리밍하기 용이한 버전의 전막 오페라가 무엇인지, 예술적 안목과 상업적 계산을 동시에 요구받고 있다.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의 성공 사례로 손꼽히는 뉴욕 메트 오페라는 2014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다. 메트 오페라 ‘HD Live’는 최근 연간 1700만~1800만 달러(한화 약 19억~20억원)을 벌어들이며 메트 오페라 전체 수입의 12%를 차지할 만큼 성장했지만, 오페라극장 박스오피스의 수치는 여전히 정체를 나타내고 있다. 2015/2016 시즌, 60% 중반대로 떨어진 객석 점유율에 대한 비판의 책임은 피터 겔브가 져야 했고, ‘HD Live’를 즐기는 젊은 관객들이 메트 오페라 객석으로 흡수됐다는 수치상의 증거가 없다는 비판도 덩달아 거세졌다. 메트 오페라가 ‘HD Live’로 일종의 디지털 기술 혁신을 이룬 지 이제 10년이 지났고, 서비스는 수익을 내고 있지만 조직은 황폐해진 상황이다. 공연예술 단체에 이러한 서비스가 합당한지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하는 시점이다.

PART 3 공연 영상화의 미학적 측면과 과제
예술적 안목과 상업적 계산, 관객 개발에 대한 고찰

미래의 관객에게 오페라극장에서의 관람을 권할 것인가, 영화관으로 유인할 것인가의 기로에서 로열 오페라와 메트 오페라의 선택은 갈렸다


오페라단들이 돈은 영화관에서 벌고, 극장에서는 손실을 보는 상황을 두고 ‘신피니 뮤직’ 편집장 알렉산드라 코플런은 “오페라는 누구를 위해 만들어지나?”라고 반문한다. 공연예술 단체들이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의 경제 효과에 집중한 사이, 놓친 것은 무엇일까.

메트 오페라의 경우, 극장을 찾던 오페라 애호가들이 스크린으로 옮겨가면서 발생한 손실에 대해 상당 기간 무관심했다. 저렴한 가격으로 오페라극장을 찾던 충성적인 고객들이 비슷한 가격의 스크린으로 건너간 이후 좀처럼 극장으로 돌아오지 않는 역효과는 최근의 좌석 점유율 급락에서 드러난다. 새로운 시장의 창출이 아니라 ‘부품 돌려막기’ 같은 상황이다.

반면 영국은 ‘NT Live’로 인해 극장 관람객이 감소하는 악순환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 티켓과 베를린 필 디지털콘서트홀 사용권의 관계가 그렇듯, 런던 현지에서 ‘NT Live’와 국립극장 또는 바비컨센터에서의 공연 관람은 경쟁관계가 아닌 상호 보완 기능을 수행한다.


▲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상영된 메트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영국 로열 오페라는 미래 관객을 위한 투자를 위해, 야외에선 ‘BP Big Screen’을 방영하는 동시에, 학생 관객을 위해 10파운드(한화 약 1만5000원) 극장 티켓도 상당수 발매한다. 어려서부터 공연예술에 대한 만족감을 현장에서 경험하고, 나중에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비싼 티켓을 사서 다시 찾으라는 일종의 권유다. 미래의 고객에게 오페라극장에서의 관람을 권할 것인가, 영화관으로 유인할 것인가란 기로에서 로열 오페라와 메트 오페라의 선택은 갈렸다.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처럼 디지털 기술혁신이 오페라 관람 형태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낙관론도 다소 무책임했다. 지난 2010년, 맥쿼리 대학의 데이비드 소스비(David Throsby)와 퀸즐랜드 공대의 하산 바흐시(Hasan Bakhshi)는 3D 기술을 접목을 통한 시네마 오페라의 번성을 예견했다.

지난 2014년 7월, 이탈리아 샤르데나의 칼리아리 오페라는 구글 글라스(Google Glass)를 이용한 ‘투란도트’를 상연했다. 구글이 만든 ‘스마트 안경’인 구글 글라스는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한 웨어러블 컴퓨터로, 음성 명령으로 작동된다. 구글 글라스에 내장된 소형 마이크를 통해 음성 명령을 내리면 실시간 촬영이나 SNS 공유, 문자 전송, 네비게이션 등을 즐길 수 있다. 칼리아리 오페라는 가수와 오케스트라 단원, 무대의 테크니컬 스태프들에게 구글 글라스를 착용시켰고, 이들의 관점에서 본 여러 장면을 후편집해 극장 홈페이지와 SNS에 노출시켰다.


▲ 구글 글라스를 착용한 칼리아리 오페라 ‘투란도트’ 공연 모습

칼리아리 극장 운영감독 마우로 멜리는 “축구공이 선수에게 날아가는 느낌처럼 관객들이 가수의 시선을 느낄 것”이라고 기술력을 자랑했지만, SNS에서의 일정 반응을 제외하곤 결국 오페라 흥행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미국의 군소 오페라단들이 오페라의 자막 번역을 구글 글라스를 통해 전달하는 오페라를 제작했지만 “글라스, 이 아리아를 번역해”라고 구두 명령을 내리며 오페라를 보는 관객은 앞으로도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별도의 관람기기를 착용한 채 3시간가량 상연되는 오페라를 관람하는 어린이와 노인에겐 어지럼증만 남을 뿐이다. 향후 360도 가상현실(VR) 관람기기가 보급되더라도, 오페라와 발레를 다루는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에 접목시켜 극장 관람의 대체재로 자리 잡기는 어려워 보인다.

출범 초기부터 시행하는 단체마다 정리하지 못한 대표적인 문제는 영상 서비스에 대한 아티스트의 로열티였다. 메트 오페라는 ‘HD Live’ 출연자에게 서비스에 대한 일정 개런티를 지급하고 온라인부터 DVD·TV·라이브 시네마 이벤트의 모든 권리를 갖는다. 반면, 영국의 국립극장은 녹화된 영상을 두고, 배우와 협상을 통해 재사용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 경우에만 이를 출시하고 수익을 배분한다. 국내에선 예술의전당이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을 시행하면서 출연 아티스트에게 소정의 개런티를 지급하고 있다.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 시장이 점차 확대되는 것을 감안할 때, 아티스트에 돌아갈 금전적 혜택을 세분화할 필요성이 있다.

미학적 관점에서, 공연 예술을 영상으로 옮겨놓은 결과물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기본적으로 영상물이 공연과는 다른 경험을 주거니와, 특히 연극에서 클로즈업과 커팅, 사운드 엔지니어링의 효과적인 사용으로 인해 몇몇 경우는 실제 공연보다 낫다는 반응도 나온다. 2009년 헬렌 미렌의 ‘페드르’가 NT Live로 상영됐을 때, 초연 이튿날 ‘가디언’의 연극평론가 마이클 빌링턴은 “질적 측면에서 무대 연출 버전보다 영상 버전이 더 낫다”고 리뷰하면서, 스크린으로 연극을 보는 것에 주저하던 골수 관객들이 영화관으로 걸음하기 시작했다.

공연 예술을 영상물로 옮길 때 제작 측면에 가장 큰 고민은 ‘친밀감’의 증대다. 출연 가수에 대한 애정이 클수록, 그의 특성을 잘 잡아내는 카메라 워킹 앞에 이질감이 무너진다.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가 높은 품질의 친밀감을 구현하기 위해선 구글 컬추럴 인스티튜트(이하 GCI)의 기존 서비스를 돌아볼 만하다. GCI의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카테고리에선 헨리 5세를 연기하는 알렉스 해슬의 시야가 카메라로 펼쳐지고 배우의 생생한 육성이 이어진다. 신기술을 통해 평소 객석에서 체험한 감동과는 또 다른 위치에서 작품을 조망할 수 있게 된다.

주관적 시점 장면(point of view shots)으로 오페라를 촬영하면, 오페라의 전체 배역에서 가수가 어떤 위치에 놓이는지, 실연의 객석에서 체감하기 어려운 위계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카메라가 인물 외에 무대를 비추는 장면을 통해 캐릭터가 잠시 사색에 잠겨 있음을 표현하는 것은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에서 더욱 선명하게 부각된다. 클로즈업의 빈번한 사용을 반기는 영상 관람객들의 경향도 있지만, 동시에 작품의 큰 그림을 전달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도 감독들이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발레에선 DVD 시절부터 동작의 특수성을 이해한 숙련된 영상감독의 참여가 절실히 요구되어왔다.

실제 극장 객석에서 보이는 웃음이나 울음, 박수 같은 반응이 영상물 관람석의 그것과 일치하지 않을 때,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의 한계는 그대로 드러난다. 상영관에 앉아 오페라를 보는 것이 그저 유사 체험에 머무는 행위임을 자각하는 순간이다. 오페라극장에서 경험하는 음악보다 더 좋은 품질의 오디오가 상영관에서 나온다 해도 마찬가지다.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가 지난 10년간 성장을 거듭해 예술단체의 주요한 자금원이 됐지만, 결국 공연의 수준과 질을 현장에서 판정하려는 관객의 본연적 욕구를 충족시킬 순 없다.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는 세계 주요 극장에 오르는 오페라와 발레, 연극을 현장에서 볼 수 없는 관객들과 아티스트를 직접 볼 수 없는 관객들의 불만을 어느 정도 해소시키는 해방구다. 또한 세계 공연의 주류 질서에서 어디가 중심이고, 주변인지 가르는 기준이다.

해외 유명 오페라단과 발레단, 주요 연극단 단체들의 내한 공연이 상업적 이유에서 쉽지 않은 것이 한국의 실정이다.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의 활황은 단지 영상으로나마 기초 예술의 정수를 확인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문화경제적 자본의 수준을 노정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기술이 진보하더라도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를 무지크페라인홀에서 보는 것과 그 외의 관람 행태를 동일 선상에 나란히 놓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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