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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오페라단
새로움에 대한 목마름으로
글 김선영 기자 8/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8월호 - 전체 보기 )



우리나라 오페라 기점(起點)을 이야기할 때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대부분 해방 후인 1948년 1월 16일 이인선이 조직한 조선오페라협회(국제오페라단)가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를 명동 시공관에 올린 것을 우리 성악가들이 만든 최초의 오페라로 보고 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1960년대 전후로 서울오페라단(1957), 김자경오페라단(1968)이 등장하면서 민간 오페라단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던 1980년대 민간 오페라단은 급속도로 늘어났다. 1980년 부산나토야오페라단, 1982년 수도오페라단(단장 김종수), 1983년 중앙오페라단·오페라상설무대(단장 김일규)·광주오페라단, 1984년 국제오페라단(단장 김진수)·영남오페라단, 1986년 호남오페라단(단장 조장남), 1987년 아시아오페라단(단장 신인철)·한국오페라소극장(단장 원지수)·충북오페라단·한미오페라단(단장 우태호), 1989년 한국오페라단(박기현) 등이 잇따라 간판을 내걸었다.

당시 국공립 단체들이 연간 2편, 민간 오페라단은 연간 1편의 오페라를 상연했다. 오페라단 숫자는 많아졌지만 연간 상연 편수는 줄잡아 10편 내외에 불과했다. 이후 86아시안게임·88서울올림픽 등 국제적인 행사를 계기로 성사된 대형 공연 덕분에 국내 관객의 안목이 높아졌고, 1980년대 말 외국 유학에서 돌아온 국내 성악가들이 민간 오페라단이 올리는 무대를 통해 소개되며 활약하기 시작했고, 국내 오페라계는 국제 수준에 버금가는 단계로까지 발전한다.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든 오페라가 오른 지 100년도 채 안 되는 사이, 국내 오페라계는 국공립 오페라단과 민간 오페라단이 균형을 이루며 다양한 공연이 올려졌다. 이러한 ‘생태계’가 꾸려질 수 있던 데에는 오페라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으로 고군분투한 민간 오페라단의 공이 크다. 이땅에 민간 오페라단이 태동한지 70여년,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을 비롯한 주요 무대에 최근 5년간 작품을 활발하게 올려온 민간 오페라단들을 만나 이들의 지난 발자취와 현주소,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살펴본다.

“한국에는 한국오페라단이 있습니다”
올해 창단 27주년을 맞이한 한국오페라단(단장 박기현)의 초창기 슬로건이다. 1980년대 후반, 국내 성악계는 보수적이고 완고했다. 학연과 인맥 위주로 캐스팅되던 상황에서 해외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활동하던 성악가들이 국내에 설 기회는 거의 없었다.

“한국오페라단은 젊은 성악학도들의 등용문이 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창단됐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문화부에 문의했더니 당시 활동하던 오페라단 중 ‘한국’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곳은 없더군요.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큰 뜻을 품고 결정한 것이 아닌데,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죠.”

한국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에서 광고학을 전공한 박기현은 1989년 한국오페라단 창단 당시, 스물아홉 살의 나이로 국내 최연소 오페라 단장이 됐다. 1990년 3월 창단 기념 공연으로 호암아트홀에 ‘라보엠’ ‘돈 조반니’ ‘토스카’ ‘춘희’를 옴니버스 오페라 형식으로 올리면서 남다른 기획력을 인정받았고 전석 매진과 함께 오페라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과감하게 해외파 신인들을 발굴해 무대에 세우면서, 당시 해외 유학생들 사이에서 한국오페라단 공연은 ‘꿈의 무대’로 통했다. 현재 중견 성악가로 손꼽히는 고성현·김동규·김영환 등 많은 이가 한국오페라단을 통해 국내 무대에 데뷔했다. 실력 위주의 인재 등용은 당시 오페라계의 세대교체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계기로 이어졌다.

1980년대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기업들의 문화예술 후원도 과거에 비해 늘어났다. 하지만 이들 중 ‘오페라’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서 지갑을 여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어떤 기업의 수장은 한국오페라단의 푸치니 ‘나비부인’ 기획안을 보고, “이번 공연 때 푸치니 씨도 오시나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오페라는 잘 모르지만 고급예술을 ‘좀 안다’ 하는 이들 사이에서 그녀는 ‘발레단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에게 오페라는 저 멀리, 높은 선반에 놓인 장르였어요. 대중화가 필요했고, 교육도 필요했습니다. 무엇보다 대중이 감탄하고 싫증내지 않으려면 대중적인 레퍼토리 선정보단 노래를 잘하고, 볼거리가 많은 무대를 만들고,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하죠. 그러기 위해선 매 작품마다 예술성과 완성도를 높여야 합니다.”

오페라 제작자로서 그녀는 학교 운동회에서 하는 ‘과자 따먹기 게임’을 떠올리곤 한다. 과자가 너무 높아 사람들이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해선 되지만, 반면 너무 쉽게 먹어서 식상하게 느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장인이 만든 명품에는 불황이 없거니와, 많은 사람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예술적으로 질 높은 명품 공연이야말로 대중에게 외면받지 않는, 가장 대중성 있는 공연”이라는 것. 대중에게 쉬운 오페라는 영원히 존재할 수 없기에 잘 만든 오페라를 통해 안목을 키우고 오페라 마니아로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한국오페라단의 27년 발자취
1989년 창단, 올해 27주년을 맞이한 한국오페라단이 그동안 건너온 시간에는 다양한 기록을 지닌 작품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간의 역사를 약 10년 단위로 나눠 살피면서 박기현 단장과 함께 한국오페라단의 주요 작품을 꼽아봤다.


▲ 신영옥이 주연을 맡은 도니체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1993)

1993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개관 기념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당시 메트로폴리탄의 주역으로 해외에서 활동하던 소프라노 신영옥의 국내 데뷔 무대로 화제를 모았다. 당시 공연을 관람했던 이들은 신영옥의 ‘광란의 아리아’에 놀랐고, 엔릭코 역을 맡은 고성현의 뛰어난 기량을 보면서 “못 알아듣는 남의 나라 노래도 잘 부르면 저렇게 좋구나” 감탄했다. 연극적인 무대 장치와 의상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그간의 한국오페라단 프로덕션 가운데 많은 오페라 애호가가 첫 손가락으로 꼽는 작품이다.


▲ 창작오페라 이영조 ‘황진이’(1999)

1999년 창작오페라 이영조 ‘황진이’ 원로 시인 구상의 대본에 작곡가 이영조가 곡을 붙인 한국오페라단의 첫 창작 오페라. 당시 영화감독 이장호가 연출을 맡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시인 구상에게 박기현 단장이 대본을 처음 받은 후 오페라 공연이 완성되기까진 8년의 시간이 걸렸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초연 후 1999년 중국 베이징 북경세기극원(2000), 일본 도쿄 신국립극장(2001), 미국 LA 코닥 극장(2002), 베트남 하노이 오페라하우스(2004) 등지에 올랐다. 당시 오페라 해설가 박종호는 “창작에 대한 시도가 열악하고 희귀한 상황에서 한국을 소재로 한 창작 오페라를 해외에 소개하는 한국오페라단의 꾸준한 시도는 한국 오페라사에 기록할 만한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 평했다.


▲ 피치페스티벌 라 스칼라 프로덕션 헨델 ‘리날도’ 한국초연(2007)

2007년 피치페스티벌 라 스칼라 프로덕션, 헨델 ‘리날도’ 한국 초연 이전까지 베르디·푸치니·로시니 같은 작곡가들의 유명 작품들이 주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국내 오페라계에 바로크 오페라를 처음 소개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도전이었다. 제작자로선 관객 반응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공연이 오르자 우려와 달리 관객들은 피에르 루이지 피치의 획기적인 연출과 새롭게 접하는 바로크 음악에 오히려 뜨거운 호응을 보냈다. 한국오페라단은 이를 계기로 2010년 비발디 ‘유디트의 승리’, 로시니 ‘세미라미데’ 한국 초연을 이어갈 수 있었다.


▲ R. 슈트라우스 ‘살로메’(2014)

2014년 제5회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R. 슈트라우스 ‘살로메’ 박기현 단장은 2007년 피에르 루이지 피치 연출의 이탈리아 라 페니체극장 프로덕션 ‘살로메’ 초청 공연을 기획했지만 마지막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 예산 없이 티켓 판매 수입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민간단체이기에, 제작자로서 관객 호응에 대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던 것이 큰 이유였다. “2014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탄생 150주년을 맞이해 다시 용기를 냈지만 솔직히 확신 없는 상황이었죠.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되면서 슈트라우스의 불협화음과 생전 경험하지 못한 박자에 추연진 중 여러 명의 포기자가 속출했어요. 가수뿐 아니라 오케스트라 단원 모두 3개월 간의 연습 기간 내내 피 말리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막이 오르고 호평과 혹평이 엇갈렸지만, 그 사이에서 얻은 것이 더 많습니다. ‘살로메’ 한국 프로덕션을 마련한 것과 그 중심에 우리 성악가들이 있다는 데 큰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정책과 인식의 중요성
2014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해외 곳곳에서 이어졌지만, 국내 오페라계에서 R. 슈트라우스의 작품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한국오페라단의 ‘살로메’가 유일했다. 마우리치오 콜라산티 지휘에 서울필하모닉이 음악을, 연출은 마우리치오 디 마티아가 맡았다. 이 외에 유럽의 무대 디자인을 토대로 한국에서 무대와 의상을 제작하고, 살로메 배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출연자 역시 한국인 성악가와 무용수, 연기자들로 구성됐다. 당시 예산 규모를 묻는 질문에 박기현 단장은 적게는 5억원에서 8억원 정도, 많게는 십수억원 이상이 소요된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리허설과 공연을 포함해 10여 일가량 연주할 극장을 대관하고, 지휘자·연출가·성악가 및 오케스트라·합창단·무용단과 무대제작·조명·의상·소품·분장과 홍보 등 1개 공연에 적어도 200명 이상 투입되는데, 여기에 새로운 무대를 제작하는 등 여러 변수가 생기게 되면 비용은 더 올라간다는 것.

“오페라는 다양한 부문의 스태프가 참여하는 종합예술이죠. 수개월이 소요되는 제작 기간에, 예산의 상당수는 인건비로 소요되는데 한국에서 일부 음악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스태프가 받는 개런티는 일반 임금의 최소 비용도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열정페이’가 아닌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해 늘 논의하지만 매번 쉽지 않아요.”

과거에 비해 양적으로 공연 개수가 늘어난 현 상황에서 정부나 기업의 지원을 받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2000년대 들어 후원이나 재정 시스템을 정비하고 개선했으나, 2010년대에 들어서서 무분별하게 넘쳐나는 공연과 해외의 내한 공연 등으로 인해 지원체계가 오히려 축소된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지원 못지않게 정책과 인식이 더 중요합니다. 초창기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지만, 인식과 관심이 재정과 직결되는 것이 아니기에 민간단체로서 겪는 어려움이 큽니다. 차후에 계획한 공연을 제작할 수 있을 만큼의 이익만 거둬도 좋은데, 그마저 쉽지 않은 현실이에요.”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 오페라계에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점으로 박기현 단장은 무대 세트와 의상 창고의 문제를 꼽았다. 최근에는 2010년부터 그간 올렸던 작품 중 5개 프로덕션을 지금까지 비용을 들여 보관했다가, 지난봄 수백만원의 비용을 들여 폐기했다는 것. 제작 당시 수천만원에서 1억원 이상 들여 만들었지만, 계속 같은 레퍼토리로 공연할 수 없기에 결국엔 돈을 들여 폐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무대 제작소마다 제작한 무대를 회수 후 보관하되 재사용 시 적정 비용을 받는 방침을 정부에 건의했지만, 현재로선 국공립 단체 작품들만 일정기간 보관했다가 폐기하는 실정이다. 또한 매년 민간 오페라단 몇몇을 선정해 한 달여 간 릴레이 방식으로 예술의전당에 공연을 올리는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몇 년을 주기로 특정 단체들만 참여하는 것이나, 각 단체가 한 작품씩 맡아 개별 공연을 올리는 것이 페스티벌의 목적과 의미에 얼마나 부합할까요? 오히려 서너 단체가 함께 기획하고 제작해 한 작품을 올리는 등 더욱 창조적인 페스티벌로 바뀌면 어떨까요. 훨씬 많은 단체가 참여하고 그간 쌓아온 각각의 노하우를 녹여낸 작품을 올리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오페라 페스티벌이라 생각합니다.”

늘 새롭다 하도록


▲ 한국오페라단장 박기현

올해 27년을 맞이한 한국오페라단의 가장 큰 자산은 무엇일까. 박기현 단장은 “단연코 인적 자산”이라고 외친다.

“수년 전 사용하던 악보와 소품들, 프로그램북도 소중하지만, 다양한 직업군에서 한국오페라단 공연을 찾는 오페라 마니아들과 후원 회원들은 제 인생을 걸고 오페라를 제작하면서 구축한 가장 큰 황금이자 적금통장과도 같아요. 당장 꺼내 쓸 수는 없지만 늘 든든하죠. 한국오페라단이 연식이 있다 보니 현재 후원회원 중에는 부모님과 오페라를 보러왔던 자녀들이 이제 중추적인 구성원이 되고 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다양한 분야와 연령대의 사람들이 매달 정기적으로 모이고 있어요. 함께 모여 공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타 장르 공연까지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이러한 분들이 곧 우리나라 공연계의 자산이라 생각합니다.”

짧지 않은 세월, 많고도 다양한 공연을 손수 올렸지만, 그녀는 하나의 공연이 끝나고 나면 다시는 들춰보지 않는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공연의 잘못된 부분을 확인하고 고쳐야 더 나은 작품이 나오지 않겠느냐 반문하지만, 지나간 작품에 연연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다.

“하나의 작품이 끝나면 다 비워내고,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훨씬 신선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때론 무모하더라도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위해 초심으로 돌아와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새롭다 하도록’이라는 제 신념처럼 말이죠.”

‘새로움’에 대한 목마름으로, 박기현 단장이 올 가을 관객에게 펼쳐놓을 작품은 ‘라 트라비아타’이다. ‘The New Way’라는 테마 아래 오는 11월 8~13일 한국오페라단과 세종문화회관 공동주최로 이탈리아 마체라타극장 프로덕션을 선보이는 것. 첫 내한하는 헤닝 브록하우스의 연출로 마체라타극장의 무대, 의상, 소품 등 전체가 그대로 공수되며, 브룩하우스의 놀라운 창의력과 독특한 연출기법으로 작은 소품 하나부터 마지막 커튼콜까지 치밀하게 계산된 작품이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재현되어 시선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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