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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래틀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
또 하나의 새로운 이정표 될까?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7/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7월호 - 전체 보기 )




▲ ⓒPriska Ketterer

2002년 사이먼 래틀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취임 후, 베를린 필과는 처음으로 베토벤 교향곡 전곡(9곡)을 담은 전집이 자체 레이블을 통해 출반되었다. 래틀/베를린 필은 2015년 파리 필하모니, 빈 무지크페라인, 카네기홀, 산토리홀을 순회하며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회를 가진 바 있다. 이 음반은 그해 10월 베를린에서 11일 동안 선보인 실황을 담았다.

베토벤의 무게, 래틀의 경량화

카라얀(DG 453 701-2)과 아바도(DG 469 000-2)가 남긴 베토벤 교향곡 전집물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래틀의 전집이 음악적 이정표 역할을 할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사실 카라얀의 전집의 영향력과 비중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카라얀/베를린 필의 거대한 4관 편성이 주는 웅장함을 기억하는 이라면 래틀의 연주는 상대적으로 경량화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래틀도 베를린 필이 고수하던 ‘베토벤 체질’을 바꾸어놓았을 정도로 단원들의 뿌리까지 장악했다는 반증의 결과물이기도 한 셈이고.

하이든의 영향을 받은 교향곡 1번은 관악기를 많이 쓴 탓에 초연 당시 ‘교향곡’이 아니라 ‘취주악곡’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래틀은 베토벤 특유의 웅장함보다는 관악기들의 대화를 섬세히 직조하고 풀어나간다. 교향곡 1번의 1악장부터 래틀과 카라얀의 선택은 완전히 다르다. 1악장에서 래틀이 8분 36초로 ‘끊는’ 반면, 카라얀은 9분 34초까지 ‘끌고’ 나간다. 하지만 2악장에선 래틀이 7분 17초로 여유를 심어 넣는다면, 카라얀은 5분 54초로 템포를 앞당겨 압축미를 보여준다. 래틀의 베토벤은 카라얀의 무거운 베토벤과 파보 예르비가 신선하게 조명한 베토벤, 그 ‘중간’ 즈음에 자리한 베토벤으로 나머지 2번부터 9번까지 다른 자세로 경청하게끔 한다.

이미 교향곡 1번부터 감지되는데, 래틀의 베토벤이 울려 나올 때 단원들은 다닥다닥 모여 연주하고 있는 것 같다면, 카라얀은 다리를 쩍 벌린 단원들이 넓게 퍼져 사운드를 던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는 역시 교향곡 2번도 마찬가지다. 이 곡은 베토벤이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쓰던 무렵 작곡되었다. 1악장에서 래틀은 서정적인 윤기를 불어넣는다(3악장은 3분 18초인데 이 고급 에디션의 부클릿에 13분 18초로 표기된 것은 큰 오타임을 지적한다).

교향곡 3번 ‘영웅’은 축소 편성과 강한 기동성을 바탕으로 빠른 템포와 에너지 넘치는 긴장이 돋보인다. 각각의 솔로 파트를 명료하게 하면서도, 오케스트라가 만드는 다이내믹한 흐름. 래틀은 속도에 있어 카라얀과 비슷한 해석을 하고 있는 듯하나, 전체 흐름을 조망한다면 래틀은 빠른 접영을, 카라얀은 우아한 배영을 하는 듯하다. 래틀은 1·2·4악장에서 악기들의 간극을 최대한 밀착시켜 촘촘히 진행한다.

악기들의 제 목소리를 살린 연주

베토벤은 교향곡 4번을 거듭해서 신중히 작곡했다기보다는 신이 나서 그대로 써내려갔다. 래틀은 교향곡 4번을 교향곡 1~3번과 전개될 교향곡 5~9번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교향곡으로 해석하고 있다. 입체적으로 해석하면서 곡에 내재된 작곡가의 흥을 최대한 끌어낸다. 카라얀과 아바도에 비하면 현악기 뒤로 관악기가 배치된 게 아니라 마치 현악과 관악이 나란히 일렬로 서서 연주하듯이 관악 소리를 명징하게 했다. 관악의 소리를 올올이 살리는 맛은 후기로 갈수록 관악의 솔로가 두드러지는 교향곡 6번과 7번에서도 도드라진다. 교향곡 6번에서 오보에·클라리넷 솔로를 현악기 사이에 끼어 있는 사운드가 아니라, 현악을 견인하는 듯한 사운드로 연출한다.

교향곡 5번 ‘운명’은 규모를 표가 나게 줄이거나 큰 변화를 준 것 같지는 않은데, 소리가 유독 담백하다. 다소 빠른 템포는 역동적인 느낌을 배가시킨다. 연주자들의 밀도 있는 촘촘함과 지휘에 바로 응하는 깔끔한 기동력, 빠른 템포와 절제의 균형은 팽팽한 긴장감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유지한다.

교향곡 7번의 1·3·4악장에서 곡이 지닌 당당함을 래틀은 확실히 보여주되 카라얀, 아바도와 비교할 때 가장 여유 있는 템포의 해석을 가한다. 그는 카라얀처럼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지도 않으며, 아바도처럼 다이내믹한 전개를 연출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4악장은 1~3악장에서 모은 에너지를 발산하듯 몰아치며, 특히 트럼펫의 명징한 아티큘레이션이 인상적이다.

1·2·4악장 모두 밝은 분위기로 진행되며, 3악장에서 스케르초가 아닌 미뉴에트를 사용한 교향곡 8번은 래틀 특유의 경쾌함과 아기자기한 연출력이 잘 녹아 있다. 카라얀이 강약의 맛을 살려 부담스러운 면이 바다의 파도를 연상케 한다면, 래틀의 지휘는 강의 물결을 연상케 한다.

교향곡 9번 ‘합창’은 래틀과 가장 친숙한 곡이다. 래틀/베를린 필과 다양한 레퍼토리를 통하여 호흡을 맞춰온 소프라노 아네테 다슈, 메조소프라노 에바 포겔, 테너 크리스티안 욀스너, 베이스 디미트리 이바첸코가 함께한다. 래틀이 교향곡 1번부터 쌓아온 힘이 녹아 있는 9번은 5악장에서 성악진과 합창의 부분을 살리며 오케스트라를 낮춘 자세는 교향곡이 아닌 한 편의 오페라를 보는듯 하다.

에디션은 다섯 장의 CD, 1080/60i의 Full HD 비디오 실황을 담은 두 장의 블루레이, CD 이상의 음질을 경험할 수 있는 하이 레졸루션 오디오를 담은 한 장의 블루레이로 구성되었다. 사이클 연주에서 판본으로 사용한 베렌라이터 출판사의 편집자 조너선 델 마르가 쓴 해설이 수록되었다.

곡 전체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보여주다가 때로는 순간의 재치 있는 음악적 효과를 주지만, 래틀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베토벤이 악보 뒤에 숨겨놓은 보물을 무조건 찾아내야 한다는 듯 때로는 조금 과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베를린 필이 상임 지휘자와 함께 작업한 베토벤 교향곡 전집은 역사적으로 시대를 규정짓는 음악적 이정표 구실을 해왔다. 빈 필과 전집 완성 후 베를린 필과는 처음으로 완성한 전집이다. 과연 이것이 어떤 시대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적어도 래틀/베를린 필이 남긴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기념비로 남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사진 아울로스미디어


사이먼 래틀(지휘)/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베를린 라디오 합창단/ 아네테 다슈(소프라노)/에바 포겔(메조소프라노)/크리스티안 욀스너(테너)/ 디미트리 이바첸코(베이스) Berliner Philharmoniker BPHR160091 (5CD+3Blu-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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