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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김선욱
성장과 고뇌, 12년의 기록
글 한정호(런던 통신원) 7/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7월호 - 전체 보기 )




7월, 김선욱의 독주회는 새삼스럽지 않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던 공연이고, 모차르트-슈베르트-베토벤으로 이어지는 프로그램은 그가 오랫동안 이어온 레퍼토리 범주에 있다. 기획사에 근무하던 시절 나는 김선욱의 독주회 콘셉트를 글로 푸는 일을 했고, ‘독일 피아니즘을 향한 끝없는 열정’ 같은 카피로 소비자의 주머니를 탐했다. 공연이 끝나면 기자들은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라는 수식어로 리뷰를 적었고, 그 문구는 독자를 거쳐 그다음 연주회 홍보 문구로 쓰였다.

이렇게 말이 말을 낳는 쳇바퀴에서, 김선욱의 리사이틀을 흥행시키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말들의 잔치가 벌어질 때 김선욱은 무슨 고민을 했던가. 티켓 판매용 원고와 신문의 리뷰대로 김선욱을 일정한 ‘관’에서 바라볼 때, 객석은 들어차지만 아티스트는 고립감을 맛본다. 불과 1년 반 전만 해도 김선욱은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콥스키 협주곡이 자신과 맞지 않을 거라며 러시안 낭만주의와 ‘합’을 맞추는 시도조차 망설였다.

그러나 레퍼토리를 넓히고 중심에 깊이를 주는 작업이 전문 연주자에겐 평생의 과제다. 교편을 잡는 대신 연주로 수입을 이어가야 하는 숙명을 받아들인 이상, 김선욱은 새로운 관점에서 자신을 조망할 필요를 요즘 들어 절감한다. 밖에선 독일 전문 피아니스트로 불리지만 정작 김선욱은 독일어를 할 줄 모른다. 본에 가면 베토벤의 악보를 원본으로 볼 수 있지만, 문헌을 볼 땐 영어의 힘을 빌려야 한다.

지금, 김선욱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어느 때보다 분투하는 중이다. 무엇보다 독일어를 배우고 싶어서 베를린 거주도 모색하고 있다. 궁극적으론 독일 문화를 익히기 위함이 분명하고, 그 효과는 극적일 것이다. 독일어를 배우면 리트도 제대로 반주할 수 있고, 지휘자가 된다면 모차르트 오페라의 언어적 뉘앙스도 잡아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영국에 정착한 가족의 고민도 외면할 수 없다. 누구의 도움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김선욱이 혼자 풀어야 할 문제다. 여기에 자신의 가능성이 무엇인지 스스로 객관화하는 것도 시간이 걸리는 어려운 작업이다.

변화하면서 핵심을 지키려는, 일면 모순된 상황 가운데 김선욱이 이번 독주회를 위해 선택한 건 베토벤 ‘디아벨리 변주곡’이다. 왜 지금 ‘디아벨리’여야 하는지, 김선욱은 자신의 목소리로 소통하고 싶어 한다. 여러 도전에 응하는 김선욱의 선택은 현명한 결과로 이어질 것인가? 김선욱이 그동안 어떻게 변해왔는지, 혹은 그대로인지. 지난 12년 동안의 관찰을 정리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 12년 관찰의 기록

2005년 9월 13일, 스위스 베베이 
클라라 하스킬 콩쿠르 우승
2005년 11월, 김선욱의 크누아홀 독주회에 미디어의 관심은 없었다. 관객 중에서 알아볼 만한 관계자는 스승 김대진과 클라라 하스킬 콩쿠르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원주에서 온 손열음의 모친, 최현숙 여사 정도였다. 공연이 끝나고 로비에서 김선욱과 첫 인사를 나눴고, 이튿날 그는 내게 전화를 걸었다. 문자 대신 통화로 사의를 표하는 청소년. 더욱 놀랐던 건 상대방이 전화를 끊기 전까지 절대로 먼저 끊지 않는, 학습된 태도였다. 혹여 “건방지다”는 소리가 나올 틈을 주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는 10대라는 것이 그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 2006년 9월 23일 리즈 콩쿠르 결승, 마크 엘더/할레 오케스트라 브람스 협주곡 1번

2006년 9월 23일, 영국 리즈 
리즈 콩쿠르 아시아인 최초·역대 최연소 우승
2006년 9월, 런던에서 취재하던 중 기차를 타고 리즈로 갔다. 손열음과 김선욱이 리즈 콩쿠르 기간 동안 먹을 컵라면을 배낭에 채워 갔고, 그들은 리즈 대학 앞 펍으로 나를 데려갔다. 코르크와 글라스를 다루는 김선욱의 솜씨가 한눈에도 와인에 능숙해 보였다. 대회 기간 중 스트레스는 탁구로 푼다면서 라켓을 건넸는데, 곁에서 지켜보니 탁구는 피아니스트들이 순발력을 유지하는 데 그만이다. 어린 시절 뜀틀을 넘다가 엄지를 다친 이후, 김선욱은 되도록 ‘위닝 일레븐’으로 스포츠를 대신한다. 가상의 스포츠 게임에서 그는 역대 월드컵에서 세 골을 넣은 전 국가대표 주장과 붙어도 팽팽할 정도의 실력이다.


▲ 2007년 10월 3일 아시아 오케스트라 위크, 장윤성/KBS 교향악단 쇼팽 협주곡 1번 ©AOW

2007년 11월 9일, 영국 런던 
바실리 시나이스키/런던 필하모닉 데뷔
2007년 10월, 도쿄를 찾은 김선욱은 일본어 연수를 하던 나를 롯폰기의 연습실로 오라 했다. 그러고는 부점 연습으로 손을 푸는 대장정을 시연했다. 유희인 듯 노동 같은 연습, 심지어 만화책도 펼쳐져 있었다. 쇼팽 협주곡 1번에서 중견들이 가끔 쓴다는, 건반 트릭의 정체가 어떤 건지도 구경했다. 라멘을 먹으러 시부야를 거닐다 우연히 들른 분카무라에서 마침 BBC 웨일즈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협연한 지휘자 오타카 타다아키의 콘서트 포스터를 봤다. 타다아키의 공연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무대 뒤로 가서 김선욱이 인사를 하니 지휘자는 크게 웃었다.

2008년 3월 23~26일, 김해·서울·구미
노세다/BBC 필하모닉 투어, 베토벤 협주곡 3번 협연
2008년 여름이 지나고, 김선욱이 활동의 중심을 런던으로 옮겼을 때, 나는 클래식 음악 공연 기획사의 홍보와 기획을 맡고 있었다. 가끔씩 영국에서 국제 전화가 오면, 김선욱은 “서울은 날씨가 어떤가요?”로 통화를 시작했고, 나는 “요즘 런던에선 누가 연주를 잘해요?”라고 물었다. 김선욱은 자신이 본 런던 심포니와 필하모니아, 위그모어홀 이야기를 즐겨 했다. 공연 이야기만 하면 들뜨기 시작하는 그의 목소리에 런던에서 잘 지내고 있겠거니 생각했다.

2009년 3월 27일, 서울 
키릴 카라비츠/서울시향 차이콥스키 협주곡 1번 협연
2009년 1월,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공연이 끝나고 김선욱은 공연 기획사 직원들과 홍대의 와인바에서 날이 밝을 때까지 통음했다. 자리가 파할 즈음, 그의 눈가엔 이슬이 그렁그렁했다. 절친한 후배가 그를 부축했다. “형이 런던에서 아플 때, 곁에서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서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제 커리어를 시작하는 20대가 마주하는 불특정한 미래와 런던만의 경쟁적인 분위기, 그리고 아직은 낯설었을 언어권에 대해 나는 무심했다. 런던 세인트 존스우드에 있던 그의 스튜디오에서 김선욱의 이야기를 듣던 상대는 와인이었다.


▲ 2010년 4월 6일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지휘자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와 함께 ©빈체로/김선욱

2010년 9월, 영국 런던 
왕립음악원 지휘과 석사 입학
2010년 10월, 런던 진출 후 한국에서 첫 독주회 투어를 가졌다. 서울 공연을 앞두고, 부산 공연이 끝난 날, 빈체로 송재영 부장과 김선욱은 서면의 횟집에서 대포를 마셨다. 소주가 몇 순배 돌고 난 뒤 김선욱이 말했다. “서울에서 앙코르로 ‘전람회’를 하면 어떨까요?”

송 부장의 얼굴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김선욱은 같은 해 1월 금호아트홀에서의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 연주가 찜찜했다. 서울 공연 몇 시간 전, 예술의전당 무대감독은 연습실에서 흘러나오는 곡을 듣고는 빙긋이 웃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 그는 “앙코르가 본 프로그램의 여운을 방해하면 안 된다”는 주관이 확고하다.

2011년 11월 2일, 핀란드 헬싱키 
투간 소히예프/핀란드 방송교향악단 모차르트 협주곡 23번 협연
2011년 11월,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공연한 귄터 노이홀트와 교토 심포니. 같은 일본이어도 정명훈/도쿄 필 협연 때와는 달랐다. 어수선한 주변 상황을 내색하지 않는 김선욱의 태도에 일본 담당 매니저가 꽂혔다. 데뷔 5년을 넘기면서 협연으로 재초청 받는 논리를 김선욱은 체득했다. 악단을 존중하고 지휘자와 동반 상승하는 일. 협연이 끝나면 김선욱은 지휘자와 인사를 나눈 다음, 오케스트라에 박수를 보낸다. 청중의 환호에 답하기 전에 협연자가 악단에 먼저 인사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 작은 차이를 오케스트라 단원은 잘 안다.


▲ 2012년 8월 4일 대관령국제음악제 ©대관령국제음악제

2012년 3월 29일, 서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시리즈(8회) 시작
2012년 2월, 런던 시내 첼시 타운홀에서 김선욱은 결혼식을 올렸다. 진은숙과 더불어 작곡가 후지쿠라 다이가 그의 가족과 함께 결혼식에 참가했다. 식순에 쓰일 음원들은 물론 신랑이 모두 선곡해놨지만, 어쩌다 순서가 뒤죽박죽 섞였다. 후지쿠라 다이가 “잊지 못할 음악”이라 말했고,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아스코나스홀트에서 김선욱을 담당하는 매니저는 피로연에서 양성원과 프랑스어로 유쾌한 대화를 이어갔고, 나에게는 영어로 말했다. “당분간 선욱이 지휘자 데뷔를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프랑스 인상주의, 특히 드뷔시에서 아주 빛날 것이다.”


▲ 2013년 8월 14일 BBC 프롬스 데뷔, 카라비츠/본머스 심포니 베토벤 협주곡 3번 ©Maxwell Han

2013년 8월 14일, 영국 런던 
BBC 프롬스 데뷔 카라비츠/본머스 심포니 협연
2013년 8월, 김선욱이 BBC 프롬스에 데뷔하면서 입은 복장은 전통을 지키면서 자유로움을 표방하는 영국풍이었다. 특히 좁고 기다란 타이가 흡사 팝스타 로비 윌리엄스가 담배를 물고 콘서트에 입장할 때의 스타일처럼 분방하지만 절도가 있었다. 영국패션협회가 선정한 ‘뉴제너레이션’ 출신의 디자이너 이정선이 런던 패션 위크를 준비하는 와중에 김선욱을 위한 셔츠와 수트를 준비했다. 2008년 초반, 앙드레 김은 김선욱을 자신의 의상실로 불러 연미복을 선물했지만, BBC 필 협연 이후 그 스타일을 볼 기회는 없었다.


▲ 2014년 6월 25일 시티 오브 런던 페스티벌 독주회 리허설 중, 런던 스테이셔너스홀 ©COLF

2014년 1월 13~14일, 서울시향 연습실 
진은숙 피아노 협주곡(DG) 녹음
2014년, 런던으로 유학을 온 나는 김선욱을 가깝게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는 6월 시티 오브 런던 페스티벌이 끝나고 일간지에 독주회 리뷰가 실린 걸 무척 반가워했다. 10월 맨체스터에서 할레 오케스트라와 쇼팽 협주곡 2번을 마친 후 저녁 식사 자리에서, 2015/2016 시즌 오프닝을 제안받자 만면에 희색이 돌았다. 의뢰 곡목이 낭만주의인데도 곧바로 흔쾌하게 받아들인 것이 나로선 의아했다. 2014년 5월 아들이 태어나고 아빠가 된 김선욱은 연주로 생계를 책임지는 일에 보다 투철해졌다.


▲ 2015년 8월 29·30일 김선욱&이상 엔더스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연주회 ©빈체로/김윤배

2015년 12월 16·18일, 대전·서울 
예르비/도이치 카머필 투어, 슈만 협주곡 협연
2015년 4월, 김선욱을 시즌 상주 음악가로 임명한 카라비츠의 본머스 심포니는 영국 남부 도시 풀에서 열린 순회공연에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을 협연한 김선욱에게 앙코르의 지휘봉을 맡겼다. 곡목은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의 ‘그랑 파드되’였다. 그날 공연 전 카페에서 목을 축이던 김선욱은 지휘를 전공하는 후배에게 이야기했다.
“리허설을 봤는데 장난 아니야. 직접 내는 소리가 죽여줘.”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어휘들이 흥분의 정도를 그대로 보여줬다. 공연이 끝나고 그에게 카라비츠는 “지휘를 결심만 한다면 데뷔는 꼭 우리와 하자”고 했다.


▲ 2016년 3월 23일 리옹에서 열린 김선욱&에드가 모로 듀오 리사이틀 ©Piano á Lyon


2016년 10월 25일, 영국 런던

4년 만의 두 번째 위그모어홀 독주회
2016년 3월, 프랑스 지방을 여행하는 도중, 리옹에서 김선욱이 첼리스트 에드가 모로와 콘서트를 갖는 것을 공연 당일에 알았다. 내가 머물던 디종에서 리옹까지는 자동차로 2시간 30분 거리. 마침 부르고뉴를 지나는 중이라, 서둘러 현지 와인을 사서 달렸다. 김선욱의 자택엔 지금도 부르고뉴의 와인 재배지가 지도로 걸려 있다. 김선욱의 대기실을 찾아온 피아니스트 미셀 달베르토가 내가 산 부르고뉴의 검증을 자처했고, 하스킬 콩쿠르 우승자 둘은 미식의 도시에서 와인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투어를 가면 김선욱의 가방엔 늘 와인 연장이 들어 있다.

2016년, 김선욱과 다시 마주하다

10년 전 이맘때, 뉴욕에 있던 걸로 기억합니다.

2006년 초 김대진 선생님이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집중력 있게 대회를 준비해보라고 미국행을 권하셨어요. 초등학생 시절 사라 장, 장한나, 정명훈의 다큐멘터리를 보니 모두 미국으로 유학을 가거나 거기서 공부했어요. 그걸 보면서 막연히 외국에 가보고 싶다는, 망상 겸 바람을 가졌죠. 맛있는 거 먹고 많이 걸어 다니면서 도시 분위기를 익혔는데, 대회 준비에는 유익했어요. 하지만 앞으로 활동이나 공부에 뉴욕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고요. 뉴욕 생활이 끝나고 아스펜에 가서 또 놀고, 귀국해서 세종 체임버홀 개관 공연으로 독주회를 하고 리즈에 갔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리즈 콩쿠르 당시에는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너무 창피한 생각이 들어요. 수상 뒤에 펼쳐질 세계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였는데, 그때는 다 아는 줄 알았거든요. 콩쿠르까지는 계획된 거지만 이후로는 모든 게 불확실성의 연속이었죠. 정말 앞이 깜깜해지는 상황을 계속 만났어요. 그러면서 의식적으로 ‘길게 보자’고 다짐했던 것 같아요.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연주가가 되지 말자. 그동안의 연주들이 성공한 것도 있고, 실패한 것도 있지만 지난 10년은 방황 같지 않은 방황을 한 것 같아요.

왕립음악원에 입학하지 않았더라도 런던에 계속 머물렀을까요?

런던으로 옮긴 건 단순해요. 1960, 1970년대 대부분의 연주자가 커리어를 시작한 곳이 런던이어서 동기 부여가 됐습니다. 클래식 음악 비즈니스의 허브이고 음반사도 모여 있어서 그 당시엔 최적의 장소라 봤고, 살다 보니 최고의 장소라고 생각해요. 어려서는 파리, 베를린 같은 대도시에 2년씩 살아도 좋겠다고 했는데… 정말 아무것도 몰랐을 때 이야기예요.

런던은 클래식 음악계 신인들에게 불리한 점도 많습니다.

자아를 음악으로 실현해서 생계로 연결하기에 최악인 곳도 런던이에요. 경쟁이 워낙 심하니까. 삶의 질을 유지하는 비용은 너무 비싸고 연주료나 부수적인 대우는 전 세계에서 가장 박하고. 2년 동안 런던에서 지켜보셨듯이 이 세계를 정글이라고 해도 모자라요. 전쟁터예요. 누가 공연을 취소하면 그 기회를 잡으려고 혈안이고, 오케스트라는 솔리스트가 워낙 많으니 진득하게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고. 런던 심포니를 예로 들면, 많은 손님이 왔다 가는 집인 셈이죠.

본머스 심포니와 맨체스터 할레 오케스트라는 편안한가요?

안정감과 즐거움을 함께 주는 곳이에요. 이 오케스트라를 통해 레퍼토리를 늘렸고. 그들과 열심히 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들이 제안하는 건 다 했어요. 공부를 하는 것이니 좋겠다 싶었죠. 이걸 하면 커리어 면에서 도움이 되고 발전할 것이라 생각했어요. 젊은 나이에 진은숙과 브리튼, 버르토크 작품을 해놓은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에요.

거처를 옮기는 것이 전문 연주가에겐 어떤 의미인지?

어디를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단순히 유럽에 가서 꿈을 실현하자, 본고장에서 느껴보자는 의미는 넘었어요. 영국에서 양복 짓는 법을 배워 한국에 전파하겠다는 식이 아니잖아요. 어디에서 사느냐보다 어떤 방향을 갖고 앞으로 어떻게 활동을 하느냐가 중요한데, 소속 없는 연주자로 꾸준히 연주회를 가지면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일은 쉽지 않아요. 음악을 깊이 파고들어 연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지금은 그 외에 무엇이 필요한지 확인하고 길을 잘 닦아야 해요. 독일에 가고 싶은 이유는 언어 말고는 없습니다.

독일어를 익혔을 때 피아니스트가 얻는 혜택은 무엇입니까?

독일 음악을 흡수하는 데 당연히 도움이 될 겁니다. 어떤 자극이든 바로 눈에 띄게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으로 지금이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시도를 해보는 거예요. 불확실성의 연속이죠.

예전에 서울에서 베이스 연광철과 정명훈의 리트 공연을 좋아하던 것도 기억납니다.

미지의 세계가 리트 반주예요. 언어 이해가 필수입니다. 독일어를 모르면 겉핥기에 머물고 말죠. 몇 해 전부터 리트 반주를 하고 싶었는데 언어 장벽이 있었어요. 기악 연주에서 베토벤 악보에 적힌 독일어 지시를 국어나 영어로 바꿔서 보는 게 핵심을 훼손하는 건 아니지만, 결국엔 몸에 얼마나 흡수되어 영혼으로 구현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죠. 한 단계 높은 수준의 과업입니다.

최근 일 년 사이,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하는 음악회를 꼽는다면?

연주나 음악이 미묘한 것이, 제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연주와 관객이 느끼는 게 다르고, 스스로 기준으로 잘했다는 걸 정하기가 미묘해요. 0.1초의 타이밍이 전체 분위기를 바꾸고 타이밍을 계산해서 만들 수도 없고. 그래서 연주마다 느낌이 다르니 이걸 잘한다, 못한다 구분하기가 연주자는 어려운 거죠.

이번 내한 공연에 앞서, 베토벤 ‘디아벨리 변주곡’을 이미 연주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 2월 부다페스트·파리·베를린에서 했어요. 베를린 연주가 제가 바라는 기준에 부합하는 연주였어요. 다음에는 베를린 때보다 잘해야겠다고 기준을 높이죠. 지금까지 계속 그랬던 것 같아요. BBC 프롬스에서 베토벤 협주곡 3번을 잘했다고 생각했으면, 앞으로 더 잘하겠다고 생각해요. 앞선 질문에 과거 연주 가운데 잘했던 연주를 꼽는 것보다, ‘다음 연주를 잘하고 싶다’로 대답하겠습니다.

베토벤의 건반 악기 작품은 어린 시절에도 많이 연주했습니다.

10년 전에도 이미 소나타 32번을 많이 했는데, 어릴 때 어른인 척한 거죠. 소나타 전곡을 하고 나니, 나머지 작품들의 조합이 맞춰지는 게 신기해요. 소나타를 다 치고서 ‘디아벨리 변주곡’을 하니까 후련하고 재밌고. 제겐 선물 같아요. 베토벤의 어법들이 이해가 되고 33개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지고. 슈베르트와 베토벤은 평생 천착해야 하는 작품들인데 어려운 걸 하고 쉬운 작품으로 가면 앞으로 제 색깔을 입히기가 편해요.

‘디아벨리 변주곡’이나 브람스 협주곡처럼 긴 호흡을 가진 곡은 복기가 잘되는 편인가요?

연주를 하다가 말리면 ‘이건 망했다’는 감이 금세 와요. 긴 호흡의 곡은 시행착오를 까먹을 수가 없어요. 연주가 어땠는지 다음 날 연습할 때 당연히 알죠. 복기를 잘하는 편이에요. 긴 곡은 호흡이 깨지는 부분이 명확해요. 그 부분을 놓치면 큰 그림이 무너지니까요.

‘디아벨리 변주곡’에서 베토벤은 어떤 자세를 취했다고 봅니까?

디아벨리가 던진 과제를 통해 베토벤은 자신이 존경했던 인물들을 오마주하고, 능력을 과시도 했습니다. 노작(勞作)이 어디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게 아니에요. 모두들 치열하게 쓴 겁니다. 베토벤하면 흔히 천재,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예술가로 칭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죠. ‘디아벨리 변주곡’은 소나타 32곡을 능가하는 대작이 아니라 베토벤이 스스로에게 주는 상이라고 생각해요.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대한 경쟁심의 발로도 아니고요. 베토벤의 여러 작품을 하면서 얻은 걸 바탕으로 이번 연주회에서 제 주관을 잘 전달했으면 좋겠어요.

‘디아벨리의 변주곡’ 가운데 재밌는 부분은 어디입니까?

22번은 모차르트 ‘돈 조반니’ 오마주가 있고, 그다음엔 바흐식 푸가를 패러디했어요. 체르니 연습곡 스타일도 있고 하이든·헨델의 레치타티보를 베리에이션하기도 했죠. 할 때마다 재밌어서 유희라고 생각해요.

진짜 내 목소리로 음악을 이야기한다는 것

과거에 남들에게 휩쓸리는 경우도 많았나요?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왜 그렇게 눈치를 봤나 싶어요. 그게 음악에서도 나타났던 것 같아요. 진짜 내 목소리로 음악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느낀 건 최근 몇 년 사이입니다. 지금도 후회되는 건, 존 엘리엇 가드너/런던 심포니와 베토벤 협주곡 4번을 연주할 때예요. 가드너의 조언을 받고 서두를 아르페지오로 들어갔어요. 지금 같으면 그렇게 안 했을 거예요. 좋은 걸 흡수하려고 그런 건데, 사실은 눈치도 좀 봤죠. 이제는 많이 벗어났어요.

슈베르트 소나타 D894는 어떤 순서로 접근하는지.

악기의 기능이나 울림 같은 효과 측면으로 곡에 접근하진 않아요. 연주하는 동안 음악은 살아있는 생명체이고, 그 40분 동안 슈베르트의 영혼을 불러들이고 싶고, 그 순간만큼은 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살아 있으면 좋겠어요. 진부한 표현이지만 슈베르트 D894는 서정적이고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릿한 환상성이 있죠. 상상에서만 존재하는 판타지를 그 시대에 존재한 양식과 구조에 맞춰 상상력을 불어넣은 거죠. 그 상상력을 40분 동안 트랜스 상태에서 소리로 구현해야 해요. 그래서 첫 음부터 곡이 끝날 때까지 긴 호흡이 필요하죠.

평소 독주회 곡을 준비하는 순서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어려운 곡을 먼저 하고 그다음에 쉬운 곡으로 가는 편이에요. 다른 연주자들은 의아해할 수도 있는데 보통 시간 순서대로 가는 게 맞죠. 그것이 순리지만 저는 어려운 걸 접했을 때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왜 어려운지 알고 나면 나머지는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아요. 슈베르트 소나타는 D960 악보부터 봤어요. D959·958·894 순서로 갔습니다. 초기작부터 공부하다가 말년작을 만났을 때 버거워지는 느낌을 탈피하고 싶었어요.

이번 독주회 이후 앞으로 준비할 작품들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내년 독주회엔 리스트 ‘순례의 해’, 야나체크 ‘안개 속에서’, 드뷔시 프렐류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요즘 드뷔시에 빠져 있어요. 야나체크와 리스트 사이에 베토벤 ‘열정’을 넣는 식으로 프로그래밍하는 생각만 해도 정말 좋아요.

아스코나스홀트의 담당 매니저가 오래전부터 드뷔시가 어울릴 거라 했습니다.

지금까지 왜 라벨과 드뷔시에 공포심을 가졌는지 자책했어요. 이렇게도 할 수 있는 건데 그동안은 겁먹었던 겁니다. 독일 작품을 주로 하다 보니, 미리 ‘이건 나랑 안 어울릴 거야’ ‘내 길이 아니야’ 하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거죠. 요즘 드뷔시를 치는데, 정말 좋은 거예요. 살맛나요. 늘 김치찌개만 먹다가 파스타 먹을 때, 밥만 먹다가 고기 먹을 때 느낌처럼.

김선욱이 느낀 드뷔시의 매력은 어떠한가요?

긴 호흡보다 순간의 섬광과 아름다움이 빛나죠. 스스로 자신을 얼마나 풀어놓느냐가 중요해요. 여유가 필요한데, 틀과 구조에서 익숙했다가 거기에서 자유로워지는 게 참 좋아요. 반대로 드뷔시나 라벨, 야나체크를 연구하다가 그다음에 베토벤을 탐구하면 어려웠을 겁니다. 틀과 구조가 없는 곡에서 구조 안으로 들어가는 거니까요.

올해 헝가리에서 페렌츠 라도시를 만난 후, 부점 연습을 줄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부점 연습 예찬론자예요. 학교 다닐 때 동료들이 혀를 내두들 정도였죠. 정말 지겨운 작업이지만 근육이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됐고 정서적으로 불안함을 떨치려던 게 컸죠. 피울 때는 맛있지만 끊을 때는 힘든 담배 같아요. 딱 담배 끊는 심정이죠. 그런데 요즘은 그런 게 없더라고요. 최근 SNS에 글을 남기기도 했는데, 요즘엔 부점 연습을 많이 안 해요. 다양한 레퍼토리를 하다 보면 부점 연습으로 연습 스케줄 짜기도 어렵고요.

지난 몇 년 사이 독주회에 바흐 작품들이 몇 개씩 들어갔는데, 의도한 건가요?

전문 연주자로 사는 건 긴 싸움입니다. 모든 걸 한 번에 할 수 없기에 시간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베토벤, 브람스에 집중한 만큼 드뷔시, 라벨에 소홀했고 바흐를 볼 시간도 많지 않았어요. 다른 작품들을 하면서, 제 자신의 직감과 필요에 따라 바흐는 언젠가 할 거라 생각해요. 계획하진 않았지만 자연스레 기조가 바뀔 겁니다.

최근 가장 기뻤던 일은 무엇인지?

지난달에 가이 브라운슈타인과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를 베를린에서 했는데, 바렌보임이 공연을 보러 와서 만났습니다. 그날, 생각보다 칭찬을 많이 받아서 좀 놀랐어요. 예전에 제가 바렌보임을 보러 갔을 땐 차갑게 무시하면서 만나주지도 않았는데, 이번에 감회가 남다르더라고요.

마지막으로 10여 년 전과 지금의 김선욱을 비교한다면.

그동안 여러 작품을 한 것이 제겐 확실히 도움이 됐는데, 관객들에겐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각인된 것 같아 한편으론 불편합니다. 실내악도 많이 했는데 제가 생각한 만큼 관객이 따라오길 바라는 것도 모순이죠. 하지만 이제 눈치 보지 않고 독주회 프로그램을 짤 수 있을 만큼 성장한 것도 사실입니다.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콩쿠르에 나간다고 해도 지금이 훨씬 잘 준비되어 있죠. 그때는 경륜이 부족했지만 제 나름으로는 그사이 어떤 위험에도 빠지지 않고 잘 닦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이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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