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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샤우뷔네의 ‘민중의 적’
글 김옥란(연극평론가) 7/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7월호 - 전체 보기 )




5월 26~28일
LG아트센터

오스터마이어의 파격, 입센의 폭발력

“입센의 연극은 진정한 스캔들이다.” 지난 5월 LG아트센터에서 올라간 연극 ‘민중의 적’의 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말이다. 독일 실험연극의 산실 베를린 샤우뷔네의 예술감독이자 연출가 오스터마이어의 작품은 한국 관객들에게도 인지도가 높다. 이들은 2005년 LG아트센터에 올린 ‘인형의 집-노라’, 2010년 남산예술센터에 올린 ‘햄릿’에 이어 세 번째 방문이다. 고전에 대한 파격적인 해석과 연기, 감각적인 무대와 음악으로 공연 때마다 화제가 되고 있다. 이번 공연 또한 마찬가지다. 오스터마이어의 감각적이고 강력한 무대 언어는 사회적 폭발력이 큰 입센 드라마의 화약에 제대로 불을 붙였다.

공연의 시작은 심플하다. 무대 배경은 흑색 칠판이다. 가족의 저녁 식사 테이블을 제외하고 집 안의 대소도구는 칠판 위에 흰색 분필로 그려놓았다. 그런가 하면 저 멀리 무대 뒷벽에는 마치 후지산처럼 뾰족하게 솟은 산봉우리 세 개를 그려놓았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온천수가 나온다는 산이다. 스토크만 박사는 지방 소도시에서 운영하는 온천 관광지의 의무실 의사이고, 저녁이면 친구들과 함께 악기를 연주하는 인디 밴드 연주자다. 한때 힘들었던 생활에 비해 안정적인 급여가 나오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장면 전환에 배우들이 직접 연주하는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 ‘체인지’도 흥겹다. 진지한 사회문제극의 꽉 짜인 5막 구조의 고전적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다. 경쾌하고 발랄하다. 알코올 도수가 낮은 스파클링 와인 같다. 오스터마이어의 무대하면 떠오르는 거친 에너지는 줄어들고 대신 세련됨으로 무장한 것인지, 살짝 의아심도 들었다.

무대 분위기를 일순간 반전시킨 것은 4막에 이르러서다. 스토크만 박사는 온천 시설을 이용하는 환자들을 진료하다가 우연히 온천수의 수질 오염 사실을 알게 되고, 시의회 의원이자 온천관리위원회의 회장인 형과 진보적 지역신문 기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서 본의 아니게 논란에 휩싸인다. 스토크만이 지역의 문제점을 가장 먼저 발견하게 되었다는 순진한 영웅심에 들떠 있을 때 시의원인 형은 막대한 개발과 투자로 진행된 온천 개발과 지역 관광 사업이 중단될 위기를 수수방관하지는 않는다. 형은 스토크만은 물론 신문사 기자들에게 오염된 온천수 배관 공사를 위해서는 2년 동안의 사업 중단과 막대한 재정 손실로 지방세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이유를 들어 발표의 수위를 조절하고자 한다. 이에 반발한 스토크만은 직접 시민들에게 연설하겠다고 고집한다.

오스터마이어는 이 4막의 연설 장면을 실제 관객들과 함께하는 토론극으로 바꾸어놓았다. 객석의 불이 켜지고, 1천여 석의 공연장은 토론장이 되었다. 시의 재정을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온천수 오염 문제에 대한 찬반 투표가 즉석에서 거수로 이루어졌다. 온천수 오염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들은 곧바로 관객들의 주의를 집중시켰다. 공연 첫날 객석에서는 최근 가습기 살균제 옥시 사건과 4대강 문제 등이 열띤 토론의 화두로 쏟아져 나왔다. “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지 않는가?” 언론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왔다. 제작진이 예상한 것보다 토론의 열기가 훨씬 더 뜨겁다는 것이 즉각적으로 확인되는 객석의 풍경이었다.

“미디어와 가난이 우리를 분열시키고 있다” “경제가 20년 동안 위기라는데, 그렇다면 경제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스토크만의 연설은 다수당의 독주를 저지하기 위한 소수 의견의 필리버스터를 연상케 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온천수 오염의 주된 원인으로 지적된 폐수의 공장주가 스토크만의 장인이었고, 장인은 스토크만을 위협하기 위해 폭락한 온천 시설 주식을 모두 사들여 상속재산으로 스토크만에게 넘겨준다. 정치적 위협 앞에 당당했던 스토크만은 이제 자본의 유혹 앞에도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을까? 문제를 다시 관객들에게 던져놓는다. 입센의 고전극이 여전히 현재 자본주의 시스템의 뇌관을 건드린다.

사진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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