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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엘라지’에 가다!
젊은 무용수들의 깊은 사색 그리고 무모한 충돌
글 김호경 기자 7/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7월호 - 전체 보기 )




▲ 정세영 ‘데우스엑스마키나’

‘가능성’. 얼마나 무성의한 단어인가. 긍정의 이면에서 그저 방관하는 것과 다름없다. ‘댄스 엘라지’는 가능성이 태동하여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도록 ‘판’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지난 6월 11·12일, LG아트센터에서 ‘댄스 엘라지’가 개최됐다. 경연 형식의 이 무대는 각종 해프닝이 한데 모일 수 있는 완벽한 장이었다. 극장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각 팀별로 3인 이상의 출연자가 무대에 올라 10분이란 시간 동안 무엇이든 행할 수 있다는 독특한 조건은 새로운 예술적 긴장감을 자아냈다. 17팀의 젊은 예술가들이 무용의 넓은 범위를 아우르며 음악, 미술, 영상 등 여러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첫날 본선을 통해 9개 팀이 결선에 진출했고, 둘째 날 결선 무대를 통해 최종 1·2·3위가 결정됐다. 이들의 잠재력을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전날 열린 리허설부터 참관했다. 흥미로운 현장을 지면에 전한다.

‘시도’가 ‘기회’를 만든다


▲ 창 젠 하오 ‘바웃’


▲ 엘리즈 르 라 ‘래좀’

‘댄스 엘라지’는 2010년, 프랑스 파리의 유서 깊은 극장 테아트르 드 라 빌과 프랑스 렌의 뮈제 드 라 당스, 그리고 에르메스 재단의 협업으로 시작되었다. 2년에 한 번씩 총 세 차례의 경연이 테아트르 드 라 빌에서 개최되었고, 올해에는 ‘한·불 상호교류의 해’를 맞아 아시아권 아티스트들의 참여를 장려하며 LG아트센터를 별도의 공연장으로 선정했다.

올해에는 한국과 프랑스 외에 이탈리아, 스페인, 아르헨티나, 모리셔스, 미국, 대만 등 50개국의 500여 팀이 본 경연에 지원했다. 지난 2월, 주최측의 대표자들이 모여 제출된 자료를 토대로 심사를 진행했고, 총 34팀이 예선을 통과했다. 이 중 절반인 17개 팀이 한국의 LG아트센터에서 본선과 결선을 치렀으며, 나머지 팀이 6월 18·19일에 프랑스의 테아트르 드 라 빌에서 같은 방식으로 경연을 치렀다. 수상자는 서울과 파리에서 따로따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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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엘라지’ 한국 경연 참가팀 *가나다 순

본선
가오 신 위, 강경민, 게탕 뷜우르드, 김보람, 김호연·한아름·임정하, 루이자 사라이바, 상드라 아부아브·예지 비엘스키, 새뮤얼·마티외 조지프, 쌍방, 엘리즈 르 라, 오스만 시, 이선태, 임샛별·윤나라, 임지민·김기홍, 정세영, 창 젠 하오, 허성임

결선
가오 신 위, 게탕 뷜우르드, 김호연·한아름·임정하, 상드라 아부아브·예지 비엘스키, 새뮤얼·마티외 조지프, 엘리즈 르 라, 오스만 시, 정세영, 허성임

수상
1위 정세영, 2위 새뮤얼·마티외 조지프, 3위 게탕 뷜우르드, 관객상 창 젠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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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국 공연의 심사위원은 안무가 안은미, 미술작가 이불, 음악감독 장영규와 안무가 파울라 로졸렌(독일)·도로시 무냐네자(프랑스)·티아고 구에데스(포르투갈)와 미디어아트 디렉터 야웬 푸(대만) 등 총 7명으로 구성됐다. 심사 기준에 따라 수상자를 선정해 각각 다른 금액(1위 15000유로, 2위 11000유로, 3위 7500유로)의 상금을 수여하지만, 순위 자체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공연은 아니다. 신진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실제로 주최사는 결과에 상관없이 경연에 참가했던 여러 단체에게 지속적으로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공정한 심사 기준은 필요할 터. 테아트르 드 라 빌의 디렉터 클레르 베를레는 ‘무엇보다 과감한 시도를 한 아티스트들에게 영예가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는데,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번 결과가 타당해 보인다. 한국에서 개최된 경연에서 1위를 차지한 안무가 정세영의 ‘데우스엑스마키나’는 메시지에 접근하는 방식과 표현법이 무척 참신했다. 세 명의 남자가 엄격한 질서 하에 주전자에 물을 끓여 수증기를 만들고, 바닥에 고정되어 있던 풍선을 끊어 올려 보내며, 상승하는 구조물에 양팔로 매달리는 행위 등을 선보였다. ‘우연성’을 드러내기 위해 작위적 요소를 배치하는 것이 아닌, 특정 행동을 기점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만들고, 이후에는 그저 바라보는 입장을 취하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 임지민·김기홍 ‘볼 어라이브’

이와 비슷한 형식으로 임지민·김기홍의 ‘볼 어라이브(Ball Alive)’가 공연되었는데, 경기를 위한 코트에 두 팀의 선수가 서 있고, 심판이 살아 있는 닭을 경계선에 내려놓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닭에 손을 대지 않고, 자기 진영으로 유도하는 팀이 점수를 내는 방식인데, 앞서 언급한 작품과는 반대로 지나친 통제와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이 결말에 대한 기대감을 떨어뜨려 아쉬웠다.


▲ 새뮤얼·마티외 조지프 ‘리브르 상 투아-T’

2위는 아프리카 동쪽 인도양 남서부의 섬나라 모리셔스에서 온 새뮤얼·마티외 조지프의 ‘리브르 상 투아-T(Libre Sans Toi-T)’가 차지했다. 조지프 형제는 소외된 도시 망갈칸에서 태어나 생계를 위해 어린 시절부터 관광객들을 위해 춤을 췄다고 한다. 전통악기 라바네와 재활용품으로 만든 타악기를 들고 등장한 이들은 흥겨우면서도 황량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깊은 내면을 표현하는 몸짓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신체를 통해 서정적 여정을 완성했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했다’(티아고 구에데스)는 평을 받았다.


▲ 게탕 뷜우르드 ‘스포일드 스프링: 데어 아 노 모어 시즌스’

3위에 오른 게탕 뷜우르드(벨기에·프랑스·이탈리아)는 ‘스포일드 스프링: 데어 아 노 모어 시즌스(Spoiled Spring: There Are No More Seasons)’이라는 제목으로 스트라빈스키를 조명했다. 발레 ‘봄의 제전’을 오늘날의 방법으로, 당대로 돌아가 반향을 일으키겠다는 시도를 담았다. 단 3명이 무대에 올라 ‘봄의 제전’의 선율을 목소리만으로 연주하고, 유머를 곁들여 원시성과 자유로움을 강조한 것이 무척 신선했다. 이들은 ‘‘봄의 제전’을 기념하는 수많은 작품이 있지만, 해체하는 방식이 매우 훌륭했다’(파울라 로졸렌)는 평을 받으며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 루이자 사라이바 ‘호흐바서’


▲ 오스만 시 ‘베이식’


▲ 상드라 아부아브·예지 비엘스키 ‘+ - / , 1 = _ ; X %’

젊은 한국인 아티스트들의 ‘표현’에 대한 사유
‘댄스 엘라지’는 사전 신청을 한 관객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다. ‘창조의 장’을 널리 교류하기 위함이다. 각기 다른 장르의 공연을 즐기던 관객들이 ‘댄스 엘라지’를 통해 예술적 취향을 확장하는 것도 기대해볼 만한 일이다.

올해 ‘댄스 엘라지’에 지원한 한국인 참가 팀은 총 77개 팀이었고, 12개 팀이 본선에 진출했다. 이 중 이정호·곽소민, 권령은을 제외한 10개 팀이 서울에서 경연을 치렀다(권령은은 파리 경연에서 3위를 차지했다). 김보람, 이선태, 임샛별·윤나라 등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젊은 무용수들이 본선에 올라 많은 이의 이목을 끌었다.


▲ 김보람 ‘링귀스틱스’

김보람이 이끄는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는 ‘링귀스틱스(Linguistics, 언어학)’이라는 제목으로, 언어적 표현으로서 춤을 선보였다. 검은색 타이즈를 맞춰 입은 4명의 무용수는 음악도 없이 ‘질문’ ‘답’이라는 구분 아래 분절된 동작을 연결했다. 말이 아닌 몸으로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지 안무가 스스로 가능성을 시험해보는 듯한 무대였다.


▲ 이선태 ‘노 원 오어 에브리원’

이선태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의 등장인물인 오대수, 이우진, 미도의 관계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노 원 오어 에브리원(No One Or Everyone)’을 선보였다. 3명의 무용수가 서로 부딪치고 밀어내며 흥미로운 구도를 만들었다. 지지대로서 또는 방해물로서 서로 관계를 형성하는 전개가 인상 깊었지만, 직관적인 표현이 나열된 후반부는 집중력을 흐트러뜨렸다.

‘링크 인 아워 카인드 오브 센스(Link in Our Kind Of Sense)’를 공연한 임샛별·윤나라는 패드 컨트롤러의 압력과 센서로 소리가 파장되는 이미지를 표현했다. 현 사회 안의 무언의 아우성을 상징하는 유려한 몸짓을 선보였지만, 주제에 치중한 듯 안무 자체에는 다소 아쉬움이 느껴졌다.

이들은 안타깝게도 결선에 오르지 못했지만, 허성임·이소망과 한아름·김호연·임정하가 결선 진출 팀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주목을 받았다. 벨기에와 영국에서 각각 안무와 디자인을 공부한 허성임과 이소망은 ‘유 아 오케이!(You are Okay!)’라는 제목으로 1950~1960년대 파독 간호사·광부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허성임은 자신을 1941년생이라고 소개하며, 이소망이 그려나가는 일러스트 영상을 배경으로 격정적인 움직임을 선보였다. 그녀의 굽은 등이 수묵화를 연상케 하는 검은 배경, 구슬프게 연주되는 장구 소리와 겹쳐지며 진한 여운을 만들었다.


▲ 한아름·김호연·임정하 ‘인 더 멜팅 팟’

한아름·김호연·임정하는 한국에서 공부하며 국립현대무용단의 해외안무가 프로젝트에 참여한 바 있는 젊은 무용수들이다. 이들이 선보인 ‘인 더 멜팅 팟(In the Melting Pot)’은 그야말로 재기 발랄했다. 지구의 오염이 심각해진 미래의 어느 날을 상상한 이 작품은 욕심과 집착, 배설을 상징하는 다양한 소재와 몸짓으로 폭소를 유발했다.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주제였지만, 젊은 감각과 에너지가 돋보였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안무가 안은미는 “승자를 꼽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만남 그 자체가 중요하다. 만남은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고, 그 에너지는 세상을 바꾸는 힘을 지닌다”고 말했다. 예술가들의 창의력을 끌어올리고, 상상력에 힘을 보태는 것. 그에 못지않게 그 시도를 인정하며 그들의 생각이 확장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경연이 모두 끝나고 무대는 텅 비었지만, 그곳에는 또 다른 가능성이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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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자 안무가 정세영 인터뷰

‘데우스엑스마키나’는 초자연적 힘으로 긴박한 국면을 타개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 작품을 창작한 계기와 말하고자 한 바는?

2013년, 몽펠리에 국립 안무 센터에서 수학할 때 만든 작품이다. 같은 제목으로 비슷한 형식의 여러 버전을 만들었다. 이번에 선보인 무대는 최초의 버전과 거의 다르지 않다. ‘운동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늘 방향성을 지닌다. 설령 무한한 시간 속에 반복의 외형으로 나타난다 해도 말이다. 운동성은 모든 이야기의 기본이다. ‘운동’이란 ‘존재’와 다름없는 말이라 생각한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니 존 케이지의 ‘4분 33초’가 생각난다. 4분 33초라는 길이만 설정해두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우연한 소리를 작품으로 승화한 것과 비슷한 듯 보인다. ‘내버려두는 행위’에서 어떠한 예술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보는가?

굳이 비교하자면 ‘4분 33초’보다는 리게티의 ‘100대의 메트로놈을 위한 교향시’(100대의 메트로놈을 시간차를 두고 작동시켜 연주하는 흥미로운 형식의 곡)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나의 작업은 그저 내버려두는 것이 아닌 ‘양도’하는 일이다. 주전자의 스위치를 누르거나 선풍기를 켜는 행위를 통해 인간이 아닌 무언가에 키를 넘겨주고, 바라보는 입장을 취하는 형식이다.

당신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한국에서 연극을 전공한 이후 모나코와 몽펠리에에서 각각 무대미술과 안무를 공부했다. 당신이 궁극적으로 꿈꾸는 예술은 어떤 모습인가?

극장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모든 행위에 관심이 있다. 처음에는 서사적 표현법이 궁금했고, 이후에는 그것들을 이루는 각 요소의 상호작용,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환경에 집중했다. 공간이라는 제한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나의 메시지를 분명히 드러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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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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