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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스 콰르텟 1집
젊은 ‘깊이’에 ‘넓이’를 더하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6/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6월호 - 전체 보기 )




클래식 음악 유입 이후, 훌륭한 독주자와 성악가를 한국만큼 빠르고 많이 배출한 나라가 있을까? 하지만 현악 4중주 같은 실내악은 한국에서 워낙 비인기 장르다 보니 빛을 발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클래식 음악의 역사는 개개인의 천재만 기억해왔을 뿐, 실내악은 부수적이고 곁가지 활동으로 치부되어왔다. 그래서 한국의 현악 4중주단에게 제1목표를 물으면 대개 같은 답을 내놓는 편이다. 발전도 좋지만, 그보다는 존속이 제일 중요하다고.

1990년부터 2002년까지 활동하던 금호 현악 4중주단이 있었지만 해체 후, 그 뒤를 잇는 현악 4중주단의 활동을 오랫동안 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지난 2007년 노부스 콰르텟이 세상에 나왔을 때, 이들은 한국 음악계에 축복처럼 쏟아진 존재 그 자체였다. ‘새롭고 신선하다’는 뜻을 지닌 라틴어 ‘노부스(novus)’라는 이름을 탑재한 그들은 실내악의 불모지에서 핀 네 송이 꽃이었다.

김재영·김영욱(바이올린), 이승원(비올라), 문웅휘(첼로)로 구성된 노부스 콰르텟은 2008년 오사카 콩쿠르, 2012년 독일 ARD 콩쿠르와 요제프 하이든 콩쿠르, 2014년 모차르트 콩쿠르 등에서 입상과 우승이라는 낭보를 국내에 던져주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실내악의 불모지와 다름없는 한국 음악계의 현실을 되돌아보는 신호탄 같았다. 이들은 슈포어의 현악 4중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같은 새로운 레퍼토리를 무대에 수혈하며 세상에 많은 음악이 존재함을 알려주었다. 또한 바흐 ‘푸가의 기법’, 슈베르트 ‘죽음과 소녀’ 등을 선보이며 현악 4중주단이 지녀야 할 깊이와 내실을 다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각 멤버들은 리사이틀과 협연을 통해 활발히 활동하는 중이다. 2014/2015 시즌부터 하겐 현악 4중주단, 벨치아 현악 4중주단 등 현악 4중주단 전문 매니지먼트인 지멘아우어(Impresariat Simmenauer)와 전속 계약을 맺어 활동하는 이들의 모습은 한국 실내악계를 돌아보게 하며, 활성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고 있다.

한국과 유럽을 아우르는 동그란 우주

이번에 출시한 1집 앨범은 그동안 몰랐던 노부스 콰르텟의 음악적 ‘반경’과 ‘넓이’를 보여준다. 앨범에는 베베른(1883~1945)의 ‘느린 악장(Langsamer Satz)’을 시작으로, 베토벤(1770~1827)의 현악 4중주 11번 ‘세리오소’, 윤이상(1917~1995)의 현악 4중주 1번, 그리고 한국민요 ‘아리랑’이 수록되었다. 음반이라는 동그란 우주 안에서 노부스 콰르텟을 다리 삼아 고전과 현대, 오스트리아와 독일과 한국이 만나고 있는 셈이다. 한마디로 여타 현악 4중주단이 쉽게 선택하지 않은 길을, 그들은 택했다. 그런데 음반을 듣다 보면 4명의 연주자가 한국에서 물려받은 문화적 ‘피’와 독일 유학을 계기로 찌운 음악적 ‘살’을 통해 한국과 유럽의 예술을 흡수하여 네 곡을 아무렇지도 않게 ‘접속’시키는 힘에 놀라게 된다. 훗날 아내가 될 빌헬미네 뫼르틀을 위해 21세 청년 베베른이 꾹꾹 눌러 담은 연정, 현악 4중주의 ‘양식’을 확립한 하이든(1732~1809)에 이어 현악 4중주의 새로운 ‘스타일’을 꾀한 베토벤의 엄밀성과 파격 그리고 ‘세리오소’라는 제목에 걸맞은 심오함과 진지한 빛깔, 유럽의 음악적 전통과 한국 특유의 문화 사이에 새로운 가교를 놓았던 윤이상의 시도와 정서, 끝으로 한국 민요 ‘아리랑’이 품은 노스탤지어를 노부스 콰르텟은 하나둘 펼쳐놓는 것이다.

특히 내년이면 탄생 100주년을 맞는 윤이상의 현악 4중주 1번(1955)은 총 35분 분량으로 음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윤이상이 독일어로 쓴 가곡에서 작곡가의 고향인 경상도 사투리가 녹아 있는 것을 간파하여 그 운율을 찾아내어 불렀다는 성악가처럼, 유럽의 정통 장르 중 하나인 현악 4중주에 윤이상이 담은 한국적 빛깔과 미학을 노부스 콰르텟은 그 어떤 현악 4중주단보다 잘 살려낸다. 이 작품이 이번 녹음·발매를 계기로 작곡가 진은숙의 작품을 출간하고 있는 출판사 부지 앤 호크스(Boosey & Hawkes)에서 독점 출판하게 된 것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마지막 트랙에 수록된 안성민 편곡의 ‘아리랑’ 또한 베베른‐베토벤‐윤이상으로 이어지는 음악적 분위기에 잘 맞게끔 편곡되었다. 마치 세 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윤이상 현악 4중주곡의 숨은 4악장처럼 느껴진다. ‘아리랑’은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의 합창’처럼 한국에서 제2의 국가(國歌)로 불리는 노래다. 안성민 편곡의 ‘아리랑’은 듣는 이로 하여금 읊조리게 하는 동시에 노부스 콰르텟이 지닌 음악적 살결을 잘 드러내도록 편곡되었다.


세계적인 녹음 명장의 선택

광대한 음악적 반경을 택해 연결하고 아우르는 노부스 콰르텟의 힘과 노련미는 프로듀서 니콜라 바르톨로메(Nicolas Bartholomée)의 협업으로 더욱 빛난다. 프랑스 아파르테(Aparté) 레이블의 창립자이기도 한 바르톨로메는 1989년 첫 레이블을 시작으로 조르디 사발, 필립 헤레베헤 등과 작업했으며, 나이브(Naïve), 알리아 복스(Alia Vox), 아르모니아 문디(Harmonia Mundi) 등 메이저 레이블의 명반 제작을 진두지휘한 음향의 명장이다. 노부스 콰르텟이 지닌 색채와 연주가 흘러가야 할 방향성을 명확히 잡아내는 그는 이번 녹음에 ‘제5연주자’로 참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네 대의 현악기가 빚어내는 살결과 연주 현장의 숨결을 치밀하고 섬세히 담아냈다. 바르톨로메는 유튜브에 올라 있는 노부스 콰르텟의 영상을 보고 직접 연락해 인연을 맺었고, 그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며 이번 앨범을 제작했다.

국내 음반으론 KBS 클래식 FM에서 제작한 ‘2014 한국의 클래식, 내일의 주역들’에 참여한 바 있는 노부스 콰르텟은 향후 아파르테 레이블에서 두 장의 인터내셔널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다. 이번 앨범은 그들이 앞으로 보여줄 깊이와 넓이를 가늠케 하고 기대하게 만드는 ‘출사표’ 같은 앨범이라 생각한다. 윤이상의 곡과 ‘아리랑’이 수록된 이번 녹음처럼 한국 실내악단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장이 잘 반영되기를 바란다.

김재영·김영욱(바이올린)/이승원(비올라)/문웅휘(첼로) Aparte MSCD5010 베베른 ‘느린 악장’, 베토벤 현악 4중주 11번 ‘세리오소’, 윤이상 현악 4중주 1번, ‘아리랑’(안성민 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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