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 Opera
빈 슈타츠오퍼 ‘투란도트’ vs 프라하 국립극장 ‘안드레아 셰니에’
아쉬운 무대, 의외의 수확
글 유혁준(음악 칼럼니스트) 6/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6월호 - 전체 보기 )




▲ 낯익은 풍경의 연속이었던 마렐의 연출의 빈 슈타츠오퍼 ‘투란도트’

소문만 자자했던 잔치, 빈 슈타츠오퍼의 ‘투란도트’

2008년 제65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화제작으로 손꼽힌 ‘푸치니의 여인’. 파올로 벤베누티 감독이 100년 동안 베일에 가려 있던 푸치니의 친손녀를 찾아 떠난 영화에서 의붓 손녀 시모네타와의 법적 공방으로 진실은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즉,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의 실제 인물로 거듭난 줄리아 만프레디는 주역으로 등장하지 않았다. 줄리아와 푸치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안토니오의 딸 나디아가 푸치니의 친손녀임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는 줄리아의 사촌이자 이른바 ‘도리아 만프레디 사건’의 당사자인 도리아를 집중 조명하며 또 다른 진실을 밝혀낸다. 교통사고를 당한 푸치니를 위해 고용된 10대의 청순한 가사 도우미 도리아는 악처(惡妻) 엘비라의 질투와 학대를 이기지 못하고 1909년 자살로 결백을 증명한다. 그 당시 유럽 최고 연예인이라 할 만한 푸치니를 둘러싼 엄청난 스캔들이었다. 그리고 푸치니와 관계됐던 여인들이 늘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다시 나왔던 것처럼 도리아는 푸치니의 ‘백조의 노래’가 되었던 ‘투란도트’에서 ‘류’로 환생한다.

올봄, 세계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올린 뉴프로덕션 가운데 가장 관심을 모은 것 중 하나는 구스타보 두다멜이 빈 슈타츠오퍼에서 지휘한 ‘투란도트’였다. 이 공연 티켓은 지난해 시즌 오픈 직후 매진되었다. 실제로 지난 5월 5일 빈 슈타츠오퍼의 객석은 두다멜의 빈 슈타츠오퍼 데뷔를 보기 위한 사람들로 초만원이었다. 드디어 조명이 꺼지고 음악이 나오기도 전에 막이 먼저 올라갔다.

곧바로 드러난 무대는 익숙한 풍경, 바로 푸치니가 ‘에덴동산’이라며 애지중지하던 토레 델 라고에 있는 자신의 저택이었다. 영화 ‘푸치니의 여인’에 그대로 재현된 거실 왼쪽에 놓인 피아노 앞에 푸치니가 앉아 있고 떨어진 곳에 도리아가 있었다. 푸치니는 칼라프 왕자요, 도리아는 류인 셈이다. 어딘가 낯익은 설정이다 했더니 이번 프로덕션의 연출가 마르코 아르투로 마렐리가 2015년 브레겐츠 페스티벌에서 적용한 무대와 거의 똑같았다. 마렐리는 호수 위에서 펼쳤던 스펙터클을 실내 오페라극장으로 가져온 것이다.

무대가 순식간에 횡으로 움직이며 천자의 황궁 앞 광장으로 바뀌었다. 때맞춰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굉음이 울리며 두다멜의 신들린 듯한 지휘가 시작되었다. 군중이 무대 뒤에 세팅된 관중석에 앉아 있고, 티무르와 류 그리고 칼라프가 재회하는 장면은 대단히 사실적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아이디어 역시 브레겐츠 페스티벌에서 가져온 것. 사형 장면 전후로 중국식 서커스를 보여주는 것과 아크로배틱의 현란한 몸짓, 세 명의 대신 핑·팡·퐁의 등장도 그러했다. 잠시 등장한 투란도트 공주가 망나니 앞에서 사형 당하기 직전인 페르시아 왕자의 얼굴을 만지는 장면은 잔인함을 배가시켰다.

2013년 빈 슈타츠오퍼, 2014년 메트 오페라에서 ‘카르멘’의 미카엘라로 데뷔해 세계무대에 우뚝 선 루마니아 출신 아니타 하르티그가 부르는 ‘왕자님 들어보세요’는 죽죽 뻗어가는 리릭 소프라노의 진수를 들려주었다. 이를 받는 칼라프의 아리아 ‘울지 마라, 류’는 테너 유시프 에이바조프가 노래했다. 지난 3월, 부인 안나 네트렙코와 함께 내한해 국내 팬들에게 첫선을 보인 아제르바이잔 대표 가수다. 하지만 왕자 역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비대하고 육중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성은 리리코 스핀토의 진성(眞聲)에 미치지 못했다. 이는 2막을 지나 3막의 하이라이트인 ‘아무도 잠들지 못하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세계 오페라계의 추세를 반영하듯 소프라노와 바리톤에 비해 걸출한 테너 가수의 기근이 여기서도 확인된 셈이다.

4월 28일 ‘투란도트’의 시즌 첫 공연이 끝나고 빈 슈타츠오퍼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연출과 연주에 불만을 품은 청중이 몇 분 동안 객석에서 야유를 퍼부었던 것. 브레겐츠 무대의 축소판 같은 연출도 문제였지만 오페라 지휘에 익숙지 않은 ‘두다멜 사운드’는 기름에 불을 끼얹은 격이었다. 음향 좋기로 소문난 오페라극장에서 성악가들의 목소리에 비해 오케스트라의 음량을 지나치게 키워 화를 자초한 것이다. 여기에 빈 슈타츠오퍼 총감독 도미니크 마이어가 기자회견에서 청중을 ‘한 무리의 바보들’이라고 비하한 것은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 ‘안드레아 셰니에’ 1막, 코와니 백작의 연회장의 ‘전원극’은 재미와 불안을 동시에 구현했다

‘리바이벌’로 점절된 마렐리의 연출

두다멜의 ‘오케스트라 소리 키우기’의 직접적 피해자는 에이바조프였다. 투란도트 공주를 노래한 리즈 린드스트롬은 2008년 같은 역으로 메트 오페라에 데뷔한, 현제 세계에서 투란도트를 가장 잘 부르는 가수 중 한 명이다. 5월 5일 무대는, 개막 공연에 비해 두다멜이 조금 자제한 편이었지만 오케스트라는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내 소리가 너무 크지 않은가요(Am I too loud)?” 피셔 디스카우, 슈바르츠코프 등 위대한 성악가들의 반주를 도맡아 했던 피아니스트 제럴드 무어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대목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린드스트롬은 아무렇지도 않는 듯 악기 소리를 뚫고 객석을 유린했다. 이날 공연의 진정한 승자는 두 소프라노 린드스트롬, 그리고 하르티그였다.

마렐리의 ‘투란도트’는 브레멘, 스톡홀름, 그라츠, 브레겐츠에 이어 빈에서 다섯 번째 프로덕션으로 올려졌다. 완전히 새로운 연출보다는 기존 무대의 업데이트가 그로선 훨씬 더 유리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엄밀히 말하면 빈 슈타츠오퍼 버전은 ‘뉴프로덕션’이 아니라 ‘리바이벌’이라 함이 옳다.

핑·팡·퐁의 3중창이 나오는 2막 무대는 역시나 브레겐츠 페스티벌을 통해 알려진 낯익은 풍경이었다. 페르시아 왕자의 ‘잘린 머리’를 무대 한가운데 덩그러니 놔두고 그동안 투란도트의 수수께끼에 희생된 18명의 남자 머리를 생물학 실험실에서 쓰는 포르말린 액침(液浸) 표본으로 만든 장면은 대단히 엽기적이었고 파격을 보여줘야겠다는 강박관념으로 비쳐졌다.

알톰이 등장하기 전 중국 서커스의 곡예는 역동적이고 화려했다. 드디어 투란도트가 수수께끼를 내기 위해 나오고, 무대 상단에는 중국 한자 ‘제(題)’와 ‘삼(参)’이 내걸려 세 가지 문제를 암시하고 ‘자(子)’와 ‘사(嗣)’는 왕위 계승자를 뜻하고 있었다. 두 번째 정답으로 ‘혈(血)’이 적힌 두루마기를 관중석으로 내던지자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이와 함께 린드스트롬의 격정적인 투란도트 연기는 절정에 달했다.

3막에서 류는 투란도트가 절망에 빠져 스스로를 찌르려고 했던 단도를 집어 들어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사랑의 2중창’에 이은 피날레, 결혼 예복을 입은 커플로 채워진 군중 앞에 조그만 탁자가 덩그러니 놓이고, 1막 시작 전 푸치니가 앉아 있던 피아노 의자에 칼라프가 앉아 꽃 한 송이를 맞은편 투란도트에게 바쳤다. 그리고 공연 내내 힌트를 제공하던 침묵의 곡예사가 폭죽을 터뜨리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빈 슈타츠오퍼 합창단은 단원 개개인의 연기뿐 아니라 합창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뽐냈다.

두다멜은 현재 빈에서 상한가다. 35세에 2017년 빈 필 신년음악회 지휘자로 내정돼 인기 절정의 스타로 등극했다. 여기에 빈 슈타츠오퍼마저 접수했으니 거침이 없어 보였다. “저는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주인공 톰 크루즈입니다. 톰 크루즈는 빈 슈타츠오퍼로 귀환했습니다. ‘투란도트’에서 거친 추격전을 벌이죠. 그러나 ‘투란도트’에서는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이 아니라 ‘미션 파서블(mission possible)’입니다.”

두다멜은 ‘투란도트’ 개막을 앞두고 공공연하게 이렇게 말했다. 자신을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는 칼라프에 빗대어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그의 빈 슈타츠오퍼 데뷔는 논란으로 남은 연출과 함께 절반의 성공이었다. 오페라 지휘와 콘서트 지휘는 엄연히 다르다. 커튼콜은 칭찬 일색이었다. 두다멜은 웃었지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지금 정상의 자리에 깃발을 꽂았다. 허나 오페라에선 이제 시작이다. 피나는 정진이 뒤따라야 진정한 거장으로 태어날 수 있다.


▲ 권투 경기장 링 위에서 재판이 시작됐던 ‘안드레아 셰니에’ 3막 장면

내실 있는 무대와 최선을 다한 성악진, 프라하 국립극장 ‘안드레아 셰니에’

체코 프라하 블타바 강변에 자리한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프라하 국립극장은 ‘체코어에 의한 체코인을 위한 무대’를 슬로건으로 체코 국민들이 기부금을 내어 완공한, 체코의 자존심이자 세계 정상급 인테리어와 음향을 자랑한다. 1883년 스메타나의 ‘리부셰’로 개관할 당시 드보르자크는 국립극장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를 연주했다. 드보르자크의 ‘루살카’를 비롯해 체코 작곡가의 오페라가 대부분 이 극장에서 초연됐다.

5월 6일 프라하 국립극장. 체코를 대표하는 영화감독이자 연출가로 유명한 미할 도체칼이 제작한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셰니에’가 뉴프로덕션으로 막을 올렸다. 1막 서주에서 지휘자 페트르 코프론은 지휘봉을 객석 맨 앞으로 떨어뜨렸다. 곧바로 악장이 예비 지휘봉을 건네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코프론의 ‘안드레아 셰니에’는 대단히 역동적이면서 섬세했다. 이에 더해 뛰어난 극장의 어쿠스틱은 미세한 음 하나도 놓치지 않고 객석으로 고스란히 전해지게 했다.

1막 코와니 백작의 연회장은 고풍스러운 디자인과 혁명을 암시하는 갖가지 이미지가 기막히게 어우러졌다. 벽면에 격자 모양으로 설치된 조명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며 분위기를 바꿨다. ‘전원극’은 익살과 재미, 그리고 불안과 초조를 동시에 구현했다. 1막에서 세니에가 부르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는 멕시코 출신 테너 라파엘 알바레즈가 우렁찬 목소리로 소화했다.

무대를 위아래로 양분한 2막 카페 오토 장면은 시각적으로 볼거리가 풍부했다. 상층부에서 혁명 지지자들이 핏빛 바탕에 흰 글씨로 ‘살기 위해(vivat)!’라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나부끼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혁명군이 지나갈 때 양분된 무대 위층에서 민중들이 뿌리는 흰 꽃가루는 대단히 사실적이었다. 베르시가 밀정을 만날 때 조명이 급작스럽게 어두워지며 강한 대비를 이뤘다. 마달레나와 세니에의 사랑의 2중창은 소프라노 안다 루이제 보그자의 유연한 발성이 더해져 감동을 자아냈다.

3막 혁명재판소는 권투 경기장의 링처럼 생긴 구조물을 수감자들이 떠받치고 있어 더욱 처절했다. 이 링을 조명이 강력하게 비추고 재판이 시작되었다. 각각의 죄인이 링에 올라갈 때 민중은 돌을 던졌다. ‘조국의 적’을 열창하는 바리톤 스바토플루크 셈은 커튼콜에서도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 4막 생 라자르 감옥은 무대를 극히 단순화하여 음악에 몰입하게 했다. 단장시 ‘5월의 아름다운 어느 날’과 마달레나와 세니에의 마지막 2중창은 비극의 깊이를 더했다.

연출가 미할 도체칼은 ‘연출을 위한 연출’이나 극을 뒤틀어 청중에게 충격을 안겨주는 방식이 아니라 고전과 현대를 혼합해 대단히 사실적이고 공감 가는 무대를 선보였다. 관객들에게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려는 강박관념과 의욕이 앞선 빈 슈타츠오퍼의 ‘투란도트’와 대비되는 대목이었다. 수용미학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연출이 능사가 아님을 증명해주었다.

체코는 수백 년 동안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식민지였다. 그러나 음악에서도 식민지였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앞선 적도 있었다. 모차르트는 빈에서 8회를 끝으로 강제로 공연 금지된 ‘피가로의 결혼’을 프라하로 가져와 대박을 터뜨렸다. 프라하 시민들은 지배계급을 비웃고 비뚤어진 사회를 조롱하는 ‘피가로의 결혼’을 제대로 이해했던 것이다. 이후 모차르트는 ‘돈 조반니’를 아예 프라하 에스타테 극장에서 초연했다. 에스타테 극장은 현재까지도 프라하 국립오페라극장과 함께 프라하 국립극장이 운영하고 있는 주요 오페라극장로 건재하다.

반면 우리나라의 후진적 오페라 제작 시스템은 무대 세트 창고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 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스타 연출가와 지휘자, 성악가로 무장한 빈 슈타츠오퍼와, 자체 성악진과 자제 제작한 무대로 충분히 감동을 안겨준 프라하 국립극장 가운데 어느 쪽과 손을 잡아야 하는지 자명해진다. 어차피 천문학적 제작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열악한 예산 구조에서 프라하 국립극장의 ‘안드레아 셰니에’ 같은 알찬 프로덕션을 공동제작하거나, 라이선스로 수입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언제까지 우리는 많은 돈을 들여 만든 무대를 폐기하고 다시 만드는 악순환을 반복할 것인가. 국내 오페라 팬들의 눈높이는 이미 빈과 프라하에 닿아 있다. 


사진 Wiener Staatsoper·Nérodní divadlo Praha


copyright ©월간객석/Auditoriu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쇄하기   트윗터 페이스북
이전 페이지 분류: Opera 2016년 6월호
[Opera 분류 내의 이전기사]
(2016-06-01)  제네바 대극장의 ‘벼락치기 의사’
(2016-05-01)  파리 오페라 극장의 ‘욜란타/호두까기 인형’
(2016-04-01)  몽펠리에 오페라의 ‘투란도트’
(2016-03-01)  메트 오페라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팔리아치’와 ‘마리아 스투아르다’
(2016-03-01)  리옹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
Volume 선택:
2017년 9월호
분류내 최근 많이 본 기사
리옹 오페라의 트리샤 브라운 페스티벌
서울오페라앙상블
‘마탄의 사수’의 막스와 카스파르
카를 라거펠트의 오페라 의상
바리톤 양태중
리옹 오페라의 브리튼 페스티벌 중 ‘피터…
샤를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
소프라노 서희정 독창회
다시 보는 ‘파르지팔’ 한국 초연
라벨라 오페라단

(주)객석컴퍼니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7길 12   백상빌딩12층 '월간객석'   |   T. 02)3672-3002   (구독문의: 02)747-2115)   F. 02)747-2116
대표 : 김기태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김기태   |   사업자등록번호:101-86-84423   |   통신판매업신고 제01-260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