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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대극장의 ‘벼락치기 의사’
구노의 숨겨진 보석
글 배윤미(파리 통신원) 6/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6월호 - 전체 보기 )




▲ 2막, 제롱드의 살롱. 실어증에 걸린 뤼생드를 진찰하는 벼락치기 의사 스가나렐

샤를 구노(Charles Gounod)의 오페라 코미크 ‘벼락치기 의사’가 오페라 데 나시옹(L’Opéra des Nations) 무대에 올랐다. ‘벼락치기 의사’는 몰리에르(Molière)의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쓴 오페라. 몰리에르와 구노의 예술적 에센스가 깃든 작은 보석 같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좀처럼 연주를 보기 어려운 작품이기도 하다. 로랑 펠리의 연출과 세바스티앵 롤랑드/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구성된 ‘벼락치기 의사’를 감상하기 위해 제네바 대극장을 찾았다.

오페라 데 나시옹은 파리 코메디 프랑세즈가 공사 기간 동안 정규 프로그램을 무대에 올렸던 이동식 목조 극장이다. 제네바 대극장은 프로그램을 유치하기 위해 이 극장을 구입한 후 제네바 호수 근처 나시옹 지역에 다시 설치했고, 파리에서부터 수송해온 목재 구조물을 이곳에서 재조합했다. 이곳이 오페라 데 나시옹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이 지역에 유엔 제네바 청사와 외교관들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구노의 오페라 코미크 ‘벼락치기 의사’는 1858년 1월 15일 몰리에르의 생일을 기념해 파리 테아트르 리리크에서 극작가 쥘 바르비에·미셸 카레의 대본에 의해 초연됐다. 공연은 성공적이었으며, 그 결과 프랑스 제2제정(1852~1870년) 동안 142회나 무대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작품은 몰리에르의 텍스트들을 그대로 존중하고 있고, 코메디 프랑세즈의 연극 전통을 매우 치밀하게 재현하고 있다. 음악이 몰리에르의 연극적 에센스를 오염시키지 않은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성공 비결이었다.

음악적으로는 어떠한가. 오페라 코미크의 전통과 17세기 프랑스 음악, 모차르트적 고전주의 스타일이 완벽하게 융합된 것이 특징이다. 17세기의 바로크풍으로 시작하는 서주는 다소 놀랍다. 이어서 로시니 느낌의 부파와 하이든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멜로디가 이어진다. 이런 복합성 때문에 ‘벼락치기 의사’는 구노의 작품 중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 예로 레이날도 한은 “이 음악은 몰리에르의 가장 특징적인 성격과 건강한 젊음을 지니고 있다”고 평했고, 베를리오즈는 “이 오페라 코미크에서는 모든 것이 감미롭고, 신선하며, 이해하기 쉽다. 지나치거나 결여되는 것도 없다”며 극찬했다. 스트라빈스키는 한마디로 “감칠맛 나는 명작”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많은 이가 몰리에르의 대표작으로 ‘벼락치기 의사’를 떠올리는 반면, 구노의 ‘벼락치기 의사’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따라서 연출가는 몰리에르적이면서도 구노의 음악이 효과적으로 부각된 연출을 고안해야 했다. 로랑 펠리는 이번 공연에서 즉흥적인 대사를 금지한다는 원칙 아래, 모든 것이 자로 잰 듯 면밀하게 맞아떨어지도록 음악적인 연출을 선보였다. 등장인물들은 성악가이자 배우로서 놀라운 퍼포먼스를 과시했다. 스가나렐 역의 바리톤 보리스 그라프(Boris Grappe)는 펠리와 작업하며 철저하게 연기 지도를 받았을 뿐 아니라 연극적인 대사 처리도 많이 훈련했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조명과 의상, 무대장치는 코믹한 분위기를 더욱 강조했다.


▲ 주인공 스가나렐 역의 바리톤 보리스 그라프

해학 속에 깃든 시사성

등장인물은 코메디아 델라르테(16~18세기 이탈리아에서 발달한 가벼운 희극)를 배경으로 설정했다.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의사가 된 주인공 스가나렐은 일종의 아를르캥(코메디아 델라르테의 ‘아를레키노’에서 유래한 광대 역할)이다. 그는 난봉꾼, 주정뱅이, 거짓말쟁이에다 아내 마르틴을 구타하기까지 하는 고약한 남편이다. 부부의 직업은 숲에서 나뭇가지를 모아 묶는 것. 대본상 배경은 숲 속이지만 연출은 현대로 설정했다. 펠리는 무대를 허리 높이의 단상 위로 설정했다. 무대 뒤 조명은 푸른빛과 초록빛이 어우러졌다.

무대장치와 소품들은 움직이는 미술인 ‘키네틱 아트’의 선구자 알렉산더 콜더(Alexander Calder)의 모빌처럼 공중에 매달려 있다. 침대·자전거·빗자루 등 잡다한 살림살이가 무질서하게 걸려 있다. 스가나렐과 마르틴이 뛰어나오면서 부부 싸움을 벌인다. 트레이닝복 바지에 남루한 티셔츠 차림의 스가나렐은 아내를 구박하고, 마르틴은 남편이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게으름뱅인 데다 주정꾼이라고 힐난하며 서로 티격태격 싸운다. 사실 그는 여기저기 술병을 숨기지 않은 곳이 없다. 탁구채가 공중에서 떨어지자 마르틴은 그것을 들고 남편을 때리려 한다. 이에 스가나렐은 긴 빗자루를 들고 반격하기 시작한다.

마르틴의 고함 소리를 듣고 신사 로베르가 객석을 가로질러 무대 앞으로 등장한다. 그는 “여자를 때리는 남편이 누구인가!”하며 아연실색한다. 더욱 아연한 것은 로베르를 향해 “내가 좋아서 맞는데 무슨 참견이야!”라는 마르틴의 대답과 “가끔 얻어맞는 것은 부부 사이에 필요한 것이지!”라고 변명하는 스가나렐의 뻔뻔함이다. 많은 청중은 이 장면에서 코믹함보다는 충격을 받았다. 이는 몰리에르가 여성 혐오자였기 때문이 아닌, 그의 시대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이런 여성 차별과 학대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마르틴은 바로크풍 멜로디에 맞춰 두 손을 들고 스가나렐을 향한 복수를 다짐한다.

제롱트의 딸 발레르와 아들 뤼카스가 자전거를 타고 의사를 찾아다니다 빨래를 개는 마르틴의 옆을 지나간다. 그녀는 숲 속에 나뭇가지를 줍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명의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나무꾼이 의사가 아니라고 할 때마다 그를 때리라고 덧붙인다. 복수의 시작이다. 이 패시지들은 모두 대화체로 이어졌다.

스가나렐이 빈 술병을 들고 ‘주정뱅이의 노래’를 부를 때, 오케스트라의 스타카토 리듬이 그를 모방하고 있어 매우 코믹했다. 그 사이 발레르와 뤼카스를 만난 스가나렐은 “의사가 아닌데 입을 다물어야 할까, 아니면 도망가야 할까”라며 그들과 3중창을 부른다. 슬쩍 도망가는 듯한 마임과 그 모습을 음악적으로 묘사한 이 패시지는 오펜바흐의 부파적 흥취가 넘쳤다. 구타를 피하기 위해 의사인 척하며 스가나렐은 제롱트의 집으로 향한다. 이어진 제롱트와 마을 주민들이 부르는 합창은 낭만적 정서가 가득했다.


▲ 뤼생드(소프라노 클레망스 틸캥)과 스가나렐

작품 곳곳에 숨겨진 코믹 모티브

2막은 샹들리에가 번쩍이는 제롱트의 살롱에서 펼쳐진다. 제롱트는 고급스러운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는다. 실어증에 걸린 그의 딸 뤼생드를 사랑하는 가난한 청년 레앙드르는 노란 점퍼 차림으로 살롱 근처에 숨어 세레나데를 부른다. 모차르트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레앙드르를 싫어하는 제롱트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일어나 서성거린다. 유모 자클린이 뤼생드의 실어증을 고치기 위해서는 레앙드르와 결혼시키라고 제롱트에게 조언한다. 제롱트는 신문으로 귀를 막고 유모를 피하며 소파에서 옆쪽으로 서서히 움직이는데, 매우 코믹한 연출이었다. 특히 제롱트 역의 바리톤 프랑크 르 게리넬과 유모 역의 메조소프라노 도리스 람프레히트는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온 배우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뛰어났다.

드디어 스가나렐이 발목까지 내려오는 하얀 가운에 모자와 가방을 들고 히포크라테스를 운운하며 박식한 척 등장한다. 여전히 때가 묻은 백색 운동화 차림이다. 그는 라틴어 몇 단어로 사람들을 속이는 데 성공한다. 타고난 거짓말쟁이다. 그러나 이 집에서 진정 그의 마음을 끄는 것은 유모의 거대한 가슴이었다.

이때 뤼생드가 분홍색 잠옷 차림으로 등장한다. 스가나렐이 “예쁜 아가씨, 무슨 일인가요?”라며 말을 거는 장면은 로시니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중 피가로의 등장처럼 거창하다. 뤼생드의 보칼리제에 스가나렐·제롱트·자클린·발레르·뤼카스가 선율을 얹은 6중창 또한 부파적 묘미가 드러난 패시지였다. “이것이 과학이다!”라며 그녀의 맥박을 재는 장면에서는 오케스트라가 ‘뿡뿡’거리는 음향으로 익살스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스가나렐은 그녀가 말을 하려면 빵과 와인을 먹어야 한다고 처방한다. 뤼생드는 구토를 느끼며 스가나렐을 피하고 싶어 한다. 몰래 스가나렐을 찾아온 레앙드르는 “뤼생드와 나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데, 다른 남자에게 결혼시키려는 아버지 때문에 일부러 아픈 척하는 것”이라며 그의 도움을 청한다.

3막, 이제 자신이 유명한 의사가 된 것으로 착각한 스가나렐은 반짝이는 미래를 음미하는 아리아를 부른다. 마을 사람들은 스가나렐의 능력에 놀라 자기 식구들의 병을 진단해달라고 청한다. 스가나렐은 돈을 받고 치즈를 처방한다. 그들은 모두 치즈 조각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으며 그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다. 또한 스가나렐은 시장으로 가는 유모를 보고 스스럼없이 그녀를 유혹하고, 박자에 맞춰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마임을 한다. 이를 본 유모의 남편은 스가나렐을 죽이기 위해 총을 들고 쫓아다닌다. 또 하나 코믹한 모티브다.

스가나렐은 레앙드르를 약사로 분장시키고 뤼생드와의 만남을 주선한다. 레앙드르를 만난 그녀는 드디어 말문을 열고 “레앙드르 아니면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겠다”며 아버지에게 항거한다. 뤼생드 역의 소프라노 클레망스 틸캥은 빠른 템포의 아리아를 명료한 프레이즈 감각과 정확한 딕션으로 연주해 큰 박수를 받았다.

결국 뤼생드와 레앙드르는 도망을 가고, 스가나렐은 공모죄로 사형에 처해진다. 남편을 찾아 나선 마르틴은 목에 밧줄을 맨 그를 보며 고소해한다. 한편, 뜻밖에 작은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은 레앙드르는 정식으로 뤼생드에게 결혼을 청하고자 제롱트의 집으로 돌아온다. 제롱트는 두 팔을 벌리고 환영한다. 사형을 모면한 스가나렐이 마르틴과 다시 옥신각신하며 집에 돌아가는 장면으로 공연이 막을 내린다.


▲ 스가나렐과 그의 부인 마르틴이 살고 있는 숲 속. 공중에 매달린 집기들은 알렉산더 콜더의 모빌을 연상시킨다

이번 공연은 언론과 청중의 호평을 동시에 얻은 수작이었다. 보리스 그라프는 성악가로서뿐 아니라 배우로서 딕션과 연기에서도 재능을 과시했다. 레앙드르 역의 테너 스타니슬라스 드 바베이락은 고음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중창에서 그의 음색은 다른 연주자들과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다만 1막에서부터 오케스트라와 성악가 간 호흡이 잘 맞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몰리에르의 수려한 텍스트와 감칠맛 나는 구노의 멜로디가 어우러진 ‘벼락치기 의사’가 21세기에도 시사성이 강한 작품임을 과시하는 데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특히 로랑 펠리의 연출은 로버트 윌슨처럼 고착된 자신만의 연출 라인으로 거부감을 사기도 하지만, 그가 이번 작품에서 보여준 연극에 대한 열정과 놀라운 프로페셔널리즘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사진 Carol Parodi/Grand Théâtre de Genè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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