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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 예술과 과학의 미래 ④
로봇, 인간의 예술을 훔치다
글 이재연(음악 칼럼니스트) 6/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6월호 - 전체 보기 )






⑦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말하는 미래의 예술가상

독창적으로 탐구하고 즐겁게 도전하라!

과학기술이 발달한 지금, 우리는 앞으로 어떤 예술가를 키워야 할까, 우리에겐 어떤 예술가가 필요하고 삶 속에서 어떻게 예술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5월 16일 서울예고를 찾은 소설 ‘개미’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인공지능의 시대, 예술가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이게 전하는 메시지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시각·청각·촉각 세 가지 감각을 사용해보는 연습을 하겠습니다. 예술 활동 시 감각 사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체험입니다.” 몸 집중 명상으로 시작된 강연장은 고요 속에 빠져들었다. 서울예고 학생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등장에 교주를 신봉하는 신도처럼 열렬히 환호하다가 이내 얌전히 그의 지시에 따랐다.

세계적인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제3인류’ 완간 기념으로 일곱 번째 방한했다. 더없이 화창한 5월 어느 날, 그는 종로구 평창동에 자리한 서울예고를 찾아 예비 예술가인 예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했다. 청중이 미래의 예술가인 만큼 강연 주제는 오늘날의 예술적 지능에 관한 것이었다.

강연장을 꽉 채운 서울예고 학생들은 똘망똘망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경청하며 각자의 감각에 오롯이 집중했다.

“머리를 움직이지 말고 카메라 삼각대처럼 두고, 눈은 카메라인 것처럼 고정해보세요. 펼쳐진 광경을 그림이라 여기고 저장하세요. 이 체험의 목적은 눈에 보이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느끼는 것입니다.” 시각을 시작으로 청각, 촉각에 이르기까지 몸의 감각에만 집중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 체험의 취지는 현재를 온전히 느끼고 순간을 철저히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체는 유기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느끼는 각각의 감각을 별 생각 없이 놓쳐버리곤 합니다. 예술 영역에 종사하려면 느낌을 잘 받아들이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세 감각이 지닌 모든 이미지를 철저히 받아들여야 하죠. 이런 과정을 거쳐 개인적 경험이 축적됩니다.” 감각 집중 체험이 가져오는 명상 효과는 예술적 지능의 첫째 요소인 ‘관찰’의 힘을 역설하는 내용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그는 경험한 바를 덧붙여가며 생동감 넘치는 강연을 이어갔다.

“자연을 관찰하는 것이 예술 활동의 시작입니다. 제 경우엔 개미 관찰이 시발점이었습니다. 개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자세히 관찰하는 사람은 드물지요. 인내심을 갖고 오랜 시간 관찰하면 결국 예술적 목소리를 구현하게 되는 단계에 이릅니다. 구름을 한번 자세히 보세요. 움직이고 변화하는 긴 과정을 천천히 좇아보고요.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을 키운다면 가까이 두고 꼼꼼하게 관찰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종류 여하를 불문하고 동물은 우리를 일깨워주거든요.” 세밀한 관찰을 통해 심오한 통찰이 나온다고 했던가? 마치 구도의 과정을 경험하는 듯했다. ‘자세히 봐야 예쁘고, 오래 봐야 사랑스럽다’는 시구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가 예술적 지능을 설명하기 위해 꺼내든 두 번째 카드는 ‘독창성’이다. “좋은 예술가란 남들과 다른 것을 하기 위해 늘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소설 ‘개미’를 집필할 때 개미를 소재로 글 쓴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지인들은 흥미롭지 않은 소재인 개미에 대해 왜 쓰냐고 했는데, 누구도 쓰지 않아서 제가 썼습니다. 개미에 대해 쓸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저라고 생각했거든요.”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시도하고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라고 제안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안정적이고 편한 길을 가야 한다고 부추기는 우리네 교육 현실을 생각하면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대목이다.

독창성에 이어 그가 세 번째로 강조한 것은 ‘자아존중감’이다. “많은 예술가가 창작할 때 자신의 작품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스스로 과소평가하면서 걱정하고요. 그러나 자신을 다그치고 닦달하는 건 예술 활동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칩니다. ‘결국에 어떻게 되나 보자’라는 마음가짐으로 편안히 지켜보세요. 많은 경우, 끝까지 밀어붙이면 의외로 좋은 발견을 하게 됩니다. 직관적인 믿음이나 내면의 이끌림을 따라가 보세요. 대부분 위대한 발견은 이렇게 태어납니다. 미지의 길을 탐색해 끝까지 가다 보면 길이 열리지요. 이때 중요한 건,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가짐입니다. 예술의 길은 고속도로처럼 평탄하지 않아요. 수치로 정해지는 영역도 아니고요. 계절의 순환을 닮았어요. 겨울이 닥치기도 하지만 곧 봄이 뒤따라오죠. 순환성에 주목하세요.” 멘토에게서 심리 상담, 인생 상담을 받는 느낌이었다. 몸의 감각을 일깨우고 마음의 맷집을 키워나가면서 열린 시각으로 전체를 지켜보라는 그의 조언은 삶의 철학으로 다가왔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열정과 규칙성’을 네 번째 덕목으로 강조했다. 그는 첫 소설에 대한 외부 평가가 좋지 않았지만 굴하지 않고 무조건 썼다고 한다. 마음 깊은 곳에서 패배를 감지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도 무시하고 일단 써 내려갔단다. 소설 ‘개미’ 집필에 12년이 걸렸는데, 평가 여부와 상관없이 썼고, 요즘도 오전 4시간은 무조건 글쓰는 데 할애한다고 했다. 성실함과 근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영광 또한 없다는 것을 그는 몸소 보여준 셈이다.

그가 꺼낸 마지막 키워드는 ‘즐거움’이다. “창작자가 즐겁게 만들어야 감상자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예술의 질은 창작자가 얼마나 즐거워하며 만들었느냐에 따라 판가름 나지요. 창작은 괴로움의 소산이 아니에요. 예술은 괴로움과 고통의 산물이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반드시 즐거움으로 상쇄되어야 합니다.” 예술 창작의 근본 마인드는 즐거움이라고 강조하며 강제적인 규율로는 결코 진정한 예술가가 탄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창작 활동을 하는 동안 시간의 흐름을 망각하고, 꿈에도 나타나며, 같은 분야의 사람들과 끊임없이 이야기 나누고 싶다면, 더없이 즐겁게 예술 행위를 하는 것이라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강연의 열기를 넘어서는 또 다른 진지함과 활력이 가득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언제냐는 질문에 혈관에 종양이 생겨 시한부 선고를 받은 때였다고 고백해 청중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수술 대신 과감히 운동을 택해 사이클로 철저히 관리했는데, 다행히 건강을 회복했다고. 수술을 했다면 못 얻었을 늦둥이까지 생겼다는 유머도 덧붙였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나쁜 일이 꼭 새드 엔딩으로 끝나지 않더란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더 성장하니 주저앉지 말라는 당부를 꼭 기억하라고 했다.

얼마 전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의 바둑 대결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미 소설 쓰고 그림 그리고 작곡하는 인공지능마저 존재한다고 하니, 이제는 감성 기능까지 장착한 셈이다. 그러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강의를 듣는 중에 인공지능은 결코 넘보지 못할 영역이 있음을 발견했다. 예술가의 필수 자질, 즉 시간을 들여 관찰하고, 자긍심을 지니고, 열정과 즐거움을 갖고 창조하는 일! 이야말로 그들이 범접할 수 없는 인류의 전매특허인 셈이다.

인내와 열정, 즐거움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창작자의 마음밭을 품는 것, 인공지능에게는 불가능의 영역일 것이다. 창작자의 즐거움이 감상자에게 전달되어야 좋은 예술품이라는데 인공지능의 작품에 인간이 감동하는 시나리오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 테니 말이다. 쭉 뻗은 직선 코스로 가는 인공지능과 굽이굽이 우회로를 순회하는 인간 중 과연 누가 주도권을 갖게 될까? 아니, 인간과 인공지능이 펼칠 예술의 컬래버레이션을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일까?

바라건대, 예술계의 헤게모니를 점치는 일 자체가 미래엔 시대착오적 기우가 되기를 바란다.

사진 전성빈(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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