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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쇼이 발레 수석무용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
음악과 춤, 그 사이의 행복
글 한정호(해외 통신원) 6/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6월호 - 전체 보기 )




2005년 볼쇼이 발레 내한 기자 간담회. ‘지젤’ 오프닝 주역을 맡은 ‘볼쇼이의 에이스’ 스베틀라나 자하로바(Svetlana Zakharova) 옆에는 신장 193cm의 파트너 안드레이 우바로프(Andrei Uvarov)가 앉아 있었다. 언론 촬영을 위해 둘이 일어서니 회견장에 탄성이 퍼졌다. 발레에서 탁월한 신체 조건이 반드시 큰 키를 의미하진 않지만, 자하로바가 풍기는 인상은 신장 173cm 이상이었다. 눈 앞에서 보니 안무가의 도구보다는 리듬체조 선수처럼 가녀리고 늘씬했다.

단 한 차례 한국을 방문한 자하로바를 그동안 자주 볼 수 있는 공간은 도쿄였다. 일본 신국립발레의 객원 주역이나 볼쇼이 발레 방일 공연, 도쿄 세계 발레 페스티벌에서 자하로바는 주로 오프닝 주역을 맡거나 회견장 메인테이블의 주인공이었다. 도쿄문화회관 공연이 끝나면 주최 측이 제공하는 택시 대신, 전철을 타러 공연장 앞 우에노 역으로 걸어가면서 사인과 촬영에 응하는 모습을 관계자들은 불안해했지만 팬들은 좋아했다.

도쿄에서 자하로바는 주위 눈을 의식하지 않고 휴식을 즐겼다. 2008년 겨울, 볼쇼이 발레 ‘백조의 호수’ 공연이 끝나고 자하로바의 대기실 밖에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이 나타났다. 그보다 며칠 전, 바딤 레핀의 도쿄 협연을 위한 콘서트홀에는 자하로바가 있었다. 2010년 겨울, 밀라노 라 스칼라와 도쿄 신국립발레는 자하로바의 공연 취소와 함께 두 사람의 결혼과 출산 예정을 동시에 알렸다. 가히 세계 최정상 아티스트의 결합이었고, 둘 사이의 협업은 시간문제였다.

2007년, 그녀는 푸틴 대통령의 권고에 따라 통일러시아당에 합류해 하원 의원이 됐다. 우크라이나-러시아의 크림 반도 분쟁에서 자하로바는 자신이 태어난 우크라이나 대신 러시아의 크림 병합을 지지했다. 키예프 발레 학교 교장은 “학교 재건을 위해 후원금이 필요하지만 자하로바의 도움은 거절한다”고 했다. 소치 올림픽 개막식에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발레리나 디아나 비시뇨바와 함께 출연하면서 자하로바는 대외적으로 러시아 고급문화의 아이콘이 됐다.


▲ 레핀·자하로바의 클래식 음악-발레 프로젝트 갈라 모습

비범한 유연성, 경이로운 운동성의 소유자

1979년 소련 시절, 우크라이나 북서부 루츠크에서 태어난 자하로바는 10세에 키예프 발레 학교에 입학했다. 또래에 비해 심화 교육이 매우 늦었고 신체가 훈련을 견딜 준비가 안 된 ‘불행하던 시절’이라고 자하로바는 CNN과 인터뷰했다. 13, 14세 무렵 체력이 붙으면서 본격적으로 프로를 꿈꾸게 됐다. 소련의 벽지까지 찾아가 발육과 체형, 유연성과 근육의 크기, 음감을 고루 체크하는 국가 무용수 선정 위원회의 발탁으로 그녀는 바가노바에 입학했다.

기숙사 7인실에서 또래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일찍부터 생존 경쟁을 배운 자하로바는 1996년 바가노바를 졸업하고 마린스키 발레 입단 일 년 만에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그리고 일곱 시즌 동안 마린스키 클래식 발레의 주요 역할인 ‘지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습득했다. 새 스타일의 적응을 도운 멘토, 올가 모이세바의 가이드가 마린스키 안착에 결정적이었다. 자하로바는 “피지컬과 기교를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시기”라고 말했다.

2003년 볼쇼이로 이적한 배경을 두고 ‘텔레그래프’지는 “자하로바가 위엄과 개방을 찾아갔다”고 분석했는데 “연습 중에 성장하지 않는 자신을 확인했고, 루틴을 바꾸고 싶었다”는 것이 그녀가 내한 회견 때 밝힌 이유다. 2000년대 투어지에서 자하로바 공연은 늘 매진에 가까운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2005년 내한에선 “감정 연기가 아쉬웠다”는 평도 들었다. 이후 그녀는 볼쇼이에서 류드밀라 세메냐카에게 몸의 구조와 감정, 흐름의 조화를 익혀나갔다.

볼쇼이는 ‘경이로운 운동성’을 자하로바의 프로필 전면에 내세웠다. 연체동물 같은 비범한 유연성과 커다란 스텝, 안정적이고 차분한 회전이 최대 무기다. 반면 관계자들은 신작을 받았을 때 문학을 숙독해 자신의 외양으로 캐릭터를 투과시키기까지, 들뜨지 않고 배역에 침잠하는 태도를 롱런의 비결로 입을 모은다. 2010년대 들어 발레 블랑에선 과거에 비해 쇠퇴한 감이 없지 않지만, 출산 이후에도 체형이 크게 변하지 않아 여전히 클래식 발레에 중용되고 있다.

자하로바의 경우, 경쟁자들보다 무게중심이 위에 있어서 자칫 밸런스가 무너지는 위기를 챙겨줄 파트너의 존재가 절실하다. 그녀의 큰 키를 잡아주는 상대는 볼쇼이 발레에선 주로 안드레이 우바로프, 라 스칼라 발레에선 로베르토 볼레(Roberto Bolle)였다. 특히 자하로바-볼레 듀오에 대한 이탈리아 팬들의 환호는 밀라노, 로마를 넘어 국가 전역으로 퍼졌다. 모데나·파르마·제노아 같은 광역 도시가 아니더라도 자하로바의 이름으로 컨템퍼러리 갈라를 흥행시킬 티켓 파워를 갖고 있다.

자하로바는 시대를 대표하는 발레리나를 지칭하는 ‘프리마 발레리나 애솔루타(prima ballerina assouluta)’로 불릴 때가 있지만 연기력과 테크닉, 화려함과 존재감 면에서 알레산드라 페리(Alessandra Ferri), 니나 아나니아시빌리(Nina Ananiashvili)와는 격차가 있다. 서른 중반에 접어든 자하로바의 결핍을 보충하는 것이 레핀의 음악이다. 두 사람의 협업은 2015년 겨울, 로마에서 ‘발가락과 손가락을 위한 파드되(Pas de deux for Toes and Finger)’로 구체화됐다.

2016년 바딤 레핀이 감독으로 있는 ‘트랜스 시베리아 축제’에 동일한 프로그램이 올라갔고, 6월 일본 순회공연을 앞두고 있다. 당초엔 아시아 투어로 기획되어 서울 공연이 조율됐지만 결국 무산됐다.

갈라 공연차 로마에 온 자하로바와 바티칸 광장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멀리서 걸어오는 커플의 자태가 한눈에 자하로바-레핀임을 알 수 있었다. 정중한 팔걸이로 아내와 완보하는 레핀도 무용 스텝을 밟듯 날렵했다. 자하로바를 인터뷰하는 동안, 레핀이 러시아어-영어 통역을 맡았다.


요즘도 피겨스케이트 경기를 즐겨 보는가?

뉴스로 결과를 확인하는 정도인데 스케줄 때문에 직접 링크를 찾기는 어렵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발레를 시키려는 부모가 많았는데, 요즘 프로 스포츠가 성장하면서 인재들이 수입이 많은 쪽으로 향한다. 사회주의 시절 국가 차원의 발레 유망주 관리를 의원으로서 관심 갖고 있다.

무용수 관점에서 김연아는 어떤 매력을 지닌 선수였나?

김연아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천부적 재능을 노력으로 완성하는 과정이 선명하게 보였다. 김연아의 피겨를 보면서 발레적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지적은 지엽적이다. 은퇴 이후, 다음 올림픽에서 그런 퍼포먼스를 보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2005년 내한 당시, 한국에 대한 기억은 어떤가?

시차 적응이 어려웠지만 따뜻하게 맞아준 관객들이 고마웠다.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온 관객을 보고 있으니 바가노바 시절 함께 공부하며 내 그림을 그려주던 한국 친구도 생각났다. 리셉션도 훌륭하게 열어주어 무용수들 사이에서 아주 인상 깊다는 평이 자자했다.

모스크바를 벗어나, 밀라노나 도쿄에서는 일상을 어떻게 보내나?

도시를 오가면서 감기에 걸리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보통은 아침에 클래스를 시작하면서 시차를 맞추고 현지 스태프와 논의하면서 아주 가볍게 음식에 손을 댄다. 공연 날엔 되도록 머리를 가볍게 한다. 남편이 공연 없을 때, 내 투어지에 와주는게 참 고맙다.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궁금하다.

2008년 12월 도쿄에서 처음 만났다. 레핀이 내 공연에 왔고, 나도 그의 런던 심포니 공연을 보러 산토리홀에 갔다. 공교롭게도 첫 저녁에 롯폰기에서 한식을 먹었다. 좀 매웠지만 좋았던 시간으로 기억나는 게, 남편과의 첫 만남이 완벽했기 때문이다(답변을 통역하다가 레핀은 쑥스럽다고 했다). 나중에 뉴욕에서 데이트할 때는 내가 한국 음식을 먹으러 퀸즈에 있는 플러싱에 가자고 했다.


바딤 레핀과 즉흥으로 완성한, 꿈의 프로젝트

클래식 음악-발레 프로젝트를 함께 하자는 것은 누구 아이디어인가?


스위스 루나(Luna) 클래식의 제안으로 실현에 옮기게 됐다. 발레와 클래식의 언어 교환에 열정적인 프로모터였다. 일단 우리 둘은 ‘작품의 질을 담보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니, 그들은 3년 동안 투자 개념으로 프로젝트를 밀고 가자고 했다. 그 선택에 후회가 없다.

첫 제안을 받았을 때, 프로젝트의 밑그림이 잘 그려졌나?

아니었다. 남편이 함께 할 것이고 내 발레 친구들이 합류할 것이라는 감만 있을 뿐 세부적인 건 정한 게 없었다. 나는 안무가들을 만날 때마다 이 사업에 대해 설명했고 레핀은 발레를 더 잘 이해하려 노력했다. 주어진 걸 추는 게 아니라, 내 힘으로 창조하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갈라 무대에 올리는 작품 선택의 기준은?

일단 레핀이 음악적으로 흥미를 갖는 작품을 먼저 고려한다. 그 작품군에서 내가 레퍼토리를 추려낸다. 즉흥적인 느낌을 극대화하려면 먼저 음악에서 흥이 나야 한다. 알비노니 오보에 협주곡을 바이올린 버전으로 편곡해 에드워드 리앙이 안무하고, 영화 ‘쉰들러 리스트’ 사운드 트랙을 독무로 옮기는 작업도 음악적 아름다움을 춤으로 전이하는 과정을 거쳐 이뤄졌다.

총 여덟 개의 세부 가운데, 다섯 개가 클래식 음악-발레 협업이다. 하이라이트는 무엇인가?

개인적으론 피날레인 요한 코보르 안무의 ‘요정의 춤’이라 생각한다. 남편은 ‘빈사의 백조’라고 한다. 남편이 연주하고 있으면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음악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방식이어서 매번 무대마다 흥분의 감도가 다르다. 즉흥에 남편과 함께한다니, 나에겐 꿈이다.

각자 작품 해석에서 이견이 있었던 적은 없나?

‘빈사의 백조’의 경우 남편은 처음엔 원곡인 첼로 느낌을 바이올린으로 살리는 법을 고민했는데, 나는 굵게 가지 말고 남편의 악기 느낌대로 얇게 선율을 내주면 춤은 알아서 추겠다고 했다. 무용수로서 음악에 깊이 파고들 수 있는 기회였다.

바딤 레핀은 어떤 바이올리니스트인가?

움직임과 음악성 사이에 잘 보이지 않던 작품의 매력을 그가 새로 발견하는 걸 보고 진심으로 놀랐다. 실내악에서 이 사람과 함께하는 음악가들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해봤다. 고급 예술 언어로 영감을 이끌어내는 그가 존경스럽다. (이 역시 레핀은 통역하기 부끄럽다고 했다.)

발레에서 새로운 동료를 만드는 비결은 무엇인가?

안무가들과 만나는 데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협업을 위해서는 의사 교환 과정에서 친절함이 절실하다. 누가 만든 걸 잠깐 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작품이면 더욱 그렇다. 자신이 쌓은 신뢰의 크기로 다른 무용수의 인생도 풍성해진다. 거만을 버리고 친절해야 한다.

사진 Massimo Dan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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