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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
‘창조적 연극인’으로 향하는 나침반
글 김선영 기자 6/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6월호 - 전체 보기 )




지난 몇 년 사이 국공립단체와 몇몇 문화재단을 중심으로 시작된 신진 예술가 양성 프로그램은 우리 공연예술계의 척박한 땅을 고르고 씨를 뿌리는 중요한 일이 됐다. 현재 활발하게 진행 중인 공연예술계 신진 예술가 양성 프로그램을 살피는 네 번째 걸음으로 국립극단의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를 취재했다.

지난 1950년 창단된 국립극단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극 전문 단체로, 과거 국립극단 전용극장으로 사용되던 명동예술극장이 2015년, 42년 만에 흡수되면서 현재 3개 전용극장(명동예술극장·백성희장민호극장·소극장 판)에서 연간 총 333회 공연(자체제작 기준, 2015)을 올리며, 공연예술 인재를 양성하는 동시에 우리 연극 발전을 이끌고 있다.

연극인에게 재교육은 왜 필요한가?

국립극단의 연극인 재교육 프로그램인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에 관해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궁금증은 프로 연극인을 위한 ‘재교육’에 대한 것이었다. 한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 연극 관련 학과가 개설된 대학이 60곳 가량으로, 매해 2000여 명이 졸업하지만 정작 이들이 프로 연극인으로 활동할 무대와 환경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프로 데뷔를 하더라도 학교에서 배운 기본기를 변수가 비일비재한 현장에서 어떻게 변형, 발전시킬 것인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프로 데뷔 5년 차 미만, ‘재능’ 위에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를 붙든 이들의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지난 몇 년 사이, 국내 공공기관 및 문화재단에 연극인 재교육 프로그램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교육은 천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둔재를 위한 것이죠. 교육의 목표는 둔재로 하여금 천재적 역량에 접근할 수 있도록 어떻게 이끌어나갈 것이냐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학교가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는 교육적 기량, 전문적인 실습과 훈련을 국립극단에서 제공한다면 앞으로 예술가로서 인생을 펼쳐나가는 소중한 계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국립극단 예술감독 김윤철은 현 제작 환경을 활용해 이들이 실질적으로 도움을 얻도록 전문적 훈련과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국립극단이 기여할 수 있고 기여하고픈 영역이라는 이야기를 건넸다. 오랜 시간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현장을 오가며 그가 느낀 것은 대학 내 연극 교육 인력이 구조적으로 열악할 수밖에 없거니와, 현장에서도 체계적인 방법론보다 경험론에 기댄 교육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데에 관한 아쉬움이었다.


▲ ‘바로연기하기’ 수업

스스로 실패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현재 국립극단의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는 만 31세 이하, 프로 연극 데뷔 3~4년 차 연극인의 역량 강화를 위한 재교육에 방점을 찍고 있다. 지난 2012년, 당시 예술감독 손진책은 ‘민간극단에서 주춤하고 있는 배우 훈련 시스템 재정립’이라는 취지 아래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를 시작했다. 그는 ‘연극 정신뿐 아니라 기본기가 철저한 배우들이 연극 발전의 토대가 될 것’을 기대하며 연출가 이병훈에게 소장직을 제안했고, 약 5개월간의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며 무대에 올린 황석영 원작 소설 ‘손님’(이해성 각색, 이병훈 연출)은 2012 한국연극 베스트 7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이병훈 연출로 브레히트 ‘사천의 착한 영혼’(2013), 체홉 ‘플라토노프’(2014)가 매년 교육 종료 후 공연으로 올랐고, 지난해에는 강량원 연출로 안토니오 부에로 비예호 ‘어느 계단 이야기’가 공연됐다.

국립극단은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 5기 운영을 앞두고 지난해 12월 5일 차세대 연극인 재교육 심포지엄을 열어 연출·연기·극작·무대미술 등의 영역에서 활동 중인 현장인들과 지난 기수 교육생들의 경험담과 생각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 과정을 거친 배우들은 “교육과정 가운데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을 권리를 누리는 것” “다양한 관점에서 창조할 수 있는 기회와 자유”에 관해 목소리를 모았다. 4~5개월의 기간 중 마지막 한 달 반가량을 발표 작품 연습을 하면서 공연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과연 효과적인지에 대한 반문이었다. 재교육 연장선에 따른 공연이지만, 결국 작품 완성을 위해 결과 중심적이거나, 연출가의 지향점을 따라야 하는 상황이 일반 극단에서의 연습과 다를 바 없다는 의견에 김윤철 예술감독 역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고. 여기에 점차 달라지고 있는 현대 연극의 경향을 감안할 때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의 변화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공동창작 개념이 날로 커지는 요즘, 현대 연극은 배우로 하여금 작가가 되기를 원하고 있어요. 더구나 배우가 연기 기능에만 국한되어선 감당이 안 되죠. 그간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를 거쳐 간 교육생들이 언급한 ‘스스로 실패할 수 있는 권리’ ‘창조할 자유’를 가장 큰 외침이자, 시대에 적합한 요청이라 생각했습니다.”

창작에 있어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 연출가는 연기를 할 수 있고, 배우가 극작을 할 수 있는 것. 각기 다른 영역의 연극인 모두가 작가로서 창작할 수 있는 훈련을 지향하며, ‘작가적 연극인’이 될 수 있게 한다는 관점이 올해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에 도입됐다.


▲ ‘장면꾸리기’ 수업

공동창작, 새롭게 더해진 방향성

2016년 예술감독 김윤철은 한예종 연극원 초대원장을 역임한 연출가 김우옥에게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 총지휘를 맡기고, 기존 교육방식에 ‘공동창작’이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더했다. 이전까지 ‘배우’만을 위한 교육과정은, 올해부터 연출, 극작, 무대미술 등 ‘전 영역에 걸친 연극인’으로 그 대상이 확대됐고, 오디션 방식부터 커리큘럼까지 상당 부분 변화를 맞이했다.

올해 오디션 지원자는 총 260명. 각각 다른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지원자 가운데 남녀 각각 10명씩, 총 20명을 선발하기 위한 기준은 ‘작가적 역량의 가능성’이었다. 이에 따라 1분 30초 안에 자신이 창작한 독백을 발표하는 것이 오디션 관제로 주어졌다. 기존 희곡 중 일부를 발췌해 낭독하는 대개의 일반 오디션과는 확연히 다른 방법이었다.

커리큘럼에도 상당한 변화가 생겼다. 과거 대사, 소리, 움직임, 연기, 작품 분석, 무용 등 배우를 위한 연기술과 신체 기능을 향상시키는 과정 외에 놀이연극하기(남인우), 인형물체쓰기(김경희), 힙합부르기(류상구), 공간채우기(여신동), 기술쓰기(윤제호), 물장면만들기(윤형섭), 대사쓰기(배삼식), 빛 찾기(공연화), 연극뒤집기(임도완) 같이 ‘공동창작’을 염두에 둔 수업들이 신설됐다.

그중 지난 5월,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진행된 ‘빛 찾기’ 수업 현장을 직접 찾아가봤다. 강사로 나선 공연화 조명디자이너의 이론에 이어, 교육생들이 조별로 모여 원하는 조명 장치를 이리저리 옮기며 손수 구성하고, 동선과 타이밍에 따른 효과를 구현하는 실습이 이어졌다. ‘힙합 부르기’의 경우 랩을 부르기 위한 가사를 쓰고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창작 능력뿐 아니라 그것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익혀나가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이러한 수업을 교육생들은 실제로 어떻게 체감하고 있을까?

“처음 ‘힙합 부르기’라는 명칭이 생소했는데, 실제로 랩하는 것을 보니 연극의 독백과 비슷하고, 리듬과 템포가 있어 표현 면에서 굉장히 연극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랩을 만들기 위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쓰다 보니 정서적으로 해소되는 부분도 있었죠.”

교육생 한혜민 씨는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수업을 통해 창작 작업에 필요한 재료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래의 젊은 연극인들과 교류하며, 각기 다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경험 또한 소중했다고. 그녀는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 수료 후, 지금까지 해온 1인 독립예술가 시스템의 공연 프로젝트를 다채롭게 발전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배우에게 기본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깨달았다”는 교육생 안창현 씨는 “과정을 이수하면서 24시간을 체계적으로 쓰게 됐고, 배우에서 더 나아가 종합적 예술가로서 필요한 기초가 쌓이는 느낌이다. 과정을 마치고 나면 더 좋은 나만의 독백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단기간에 다양한 영역을 경험하면서, 개인의 역량을 점검하고 새로운 방향성을 세우는 기회”로 표현한 교육생 조성우 씨는 “정답을 강요하기보다, 각자에게 필요하고 알맞은 방향성을 스스로 모색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분위기”를 장점으로 꼽았다.

지난 2월 24일부터 6월 23일까지 4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2016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의 마침표는 오는 7월 1~3일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온몸의 감각을 활용한 움직임, 고전의 현대적 각색, 힙합과 연극의 접목 등 교육과정을 이수하며 체득한 것들을 19명의 교육생이 자유롭게 펼칠 예정이다.


▲ ‘공연살피기’ 수업

선순환 구조를 위한 체계적·장기적 시스템의 필요성

새롭게 달라진 국립극단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의 방향성을 살피고 교육과정을 취재하는 동안 상당수 연극인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부분은 재교육의 범위와 기간에 대한 것이었다. 약 4개월에 불과한 교육 기간으로 인해 수료생이나 교육생, 국립극단마저 예술적 기량의 완숙보다 동기부여와 자극을 통해 스스로 훈련해나가는 토대를 마련한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었다.

반면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해외 극단이나 극장들은, 자체 아카데미를 개설해 오랜 기간 배우를 양성하고 배출해 무대에 올리는 선순환 구조를 지속해왔다. 영국 출신 연출가 피터 브룩의 극단은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비롯됐고, 러시아 레프 도진의 말리극단이나 프랑스의 태양극단도 그 구성은 학교와 공연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가까운 일본 신국립극장의 경우, 2005년부터 시작된 배우양성소는 만 18세 이상, 30세 이하 프로 배우를 목표로 하는 12명을 선정해 3년간 연수를 진행한다.

한편 연극계 전반으로 시선을 돌리면 서울연극센터의 ‘PLAY-UP’ 아카데미,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의 ‘연극인 재교육 아카데미’ 등 단기간 내, 비슷한 커리큘럼 또는 기능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이 각각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커리큘럼의 범위 혹은 혜택 면에서 차별성과 적합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국내에서 이뤄지는 상당수의 재교육은 연극인들에게 배움을 즉각 적용할 수 있는 무대를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힘들다. 교육이 현장에 적용되고, 현장의 경험이 교육을 발전시키는 선순환 구조 가운데 작품이 탄생하기 위해선 보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양성 시스템이 절실하다.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 1기
국립극단 2016 시즌 단원
배우 정현철 인터뷰



2016년 국립극단 시즌 단원으로 활동 중인 20명의 배우 가운데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 출신 배우는 총 3명.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 수료 혜택이 아닌, 시즌 단원 오디션을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통과한 정현철·우정원·정혜선이 바로 그들이다.

그 가운데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 1기 출신으로, 2015·2016 국립극단 시즌 단원으로 활동하며 올해 ‘겨울 이야기’ ‘혈맥’에 이어, 하반기 ‘산허구리’ ‘십이야’ 무대에 오르는 배우 정현철을 만나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 경험과 과정에 대해 들어보았다.

2012년, 어떤 계기로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에 지원했나?

배우로 생활하면서 막연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 20대 중·후반이었는데, 나만의 ‘그 무엇’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불안했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방법도 잘 모르던 때다. 다른 친구들도 대부분 비슷한 시기에 재교육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재교육의 필요를 어떻게 채울 수 있었는가?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하고 공연계에 뛰어들면서 나만의 장점으로만 버텨왔던 것 같다. 많이 소진됐고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 과정에서 내 약점을 많이 드러냈고, 부족한 부분에 대한 균형을 잡으려 노력했다. 동기들과 모토로 삼은 문구가 ‘솔직하게 인정하라’였다. 부족한 점을 다른 것으로 위안 삼기 보다는 못하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면서 훈련하는 분위기를 소장이셨던 이병훈 연출가께서 만들어주셨다. 더 심화된 작업 속에서 분명한 목표를 세우다 보니 학교의 정규과정에서 배우지 못한 것을 많이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교육과정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지.

프로그램 첫 해라 시행착오도 많았고, 신체 훈련도 지금보다 강도가 훨씬 높았다. 호흡, 신체, 연기 등 구체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체득한 것이 많다. 그 전까지 막연하게 열심히 했다면, 이후엔 희곡에 접근하는 나만의 방법론이 생겼고, 덕분에 자신감과 용기도 늘었다. 그 시간들이 기반이 되어 나만의 메소드, 훈련법을 구축했다고 말할 수 있다. 국립극단 시즌 단원까지 하게 되면서 책임감과 사명감도 생겼다. 당시 이병훈 선생님이 “여기서 배운 연극관, 나태해지지 않는 연극 정신을 밖에 나가 다른 연극인들과 공유하고 좋은 분위기를 이끌다 보면 언젠가 우리나라 연극의 질이 높아지고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하셨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해준다면.

재교육의 필요성을 느낀다면 의심보다, 일단 몸을 내던져보길 바란다. 예전과 프로그램 내용이 달라졌어도 좋은 연극인을 만들어 배출한다는 목표는 동일하기에, 용기를 갖고 자신의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 얻는 것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간혹 ‘차세대 과정을 했는데 왜 아무도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그들 눈에 시즌 단원을 하는 내가 하는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재교육을 받은 이후 시간은 스스로 개척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립극단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가 등용문이라는 착각과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든 배우는 선택받는 것이 숙명이니, 재교육을 통해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보고 무엇이 부족한지 살펴보는 기회로 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사진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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