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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
마지막은 늘 미소로
글 김호경 기자 6/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6월호 - 전체 보기 )




“두 번이 아니라 세 번이었어요!”
지난 5월 2일,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이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와 비발디 ‘사계’를 협연하던 도중 그녀의 바이올린 현이 두 번이나 끊겼다. ‘가을’ 3악장에서 한 번, 그리고 앙코르 무대에서 알렉세이 이구데스만(1973~)의 ‘애플마니아’를 연주하다가 또 한 번 그랬다. 한 무대에서 악기 줄이 두 번이나 끊긴 건 처음 본다고 웃으며 말하니 “당일 리허설 때도 한 번 끊겼어요. 세 번이라니까요. 어쩐지 불안해서 연주 시작 전 무대와 가까운 곳에 현을 가져다두었는데 다행이었죠”라며 그녀도 웃는다.

해프닝일 뿐이지만, 윤소영의 활에 ‘힘’이 넘치는 건 사실이다. 까무잡잡하고 긴 팔로 활을 휘익 그으면 화려하면서도 무게가 실린 소리가 나온다. 그녀의 연주는 바이올린의 모든 것이다. 가녀린 듯 유연하고, 치열하고 격정적인 몸짓으로 서늘한 기운을 만들면서도, 특유의 온화함으로 여유를 보인다. 그녀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다. 청중에게 자신의 연주를 설명하기보다 듣는 이를 자신의 세계로 끌어당기는 편이다.

스위스의 바젤 심포니 오케스트라 악장 윤소영은 그 위치와 실력에 비해 한국 관객과 친숙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올해 서른두 살인 그녀는 예원학교, 서울예고, 한예종을 거쳐 독일 쾰른 음대와 스위스 취리히 음악원에서 수학했다. 2002년 예후디 메뉴인 콩쿠르 1위, 2003년 쾰른 콩쿠르 1위, 2006년 오이스트라흐 콩쿠르 1위, 2011년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 1위를 수상했고, 차이콥스키 콩쿠르(2007)·퀸 엘리자베스 콩쿠르(2009)·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2010)에서 입상했다. 2014년 ‘객석’의 유망주로 선정되었고,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벨기에 내셔널 오케스트라·쾰른 WDR 심포니·NDR 심포니·폴란드 방송교향악단 등과 협연했다.

윤소영이 바젤 심포니의 악장을 맡은 지는 올해로 4년째. 악장은 오케스트라의 얼굴이자 단원의 대표라는 점에서 평단원과는 여러 모로 다르다. 1876년에 설립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바젤 심포니의 중심을 지키면서도 솔리스트로서 연주 활동을 바쁘게 이어가고 있는 그녀와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그녀가 야니부 디누어/이스라엘 카메라타와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기 위해 이스라엘로 날아간 덕에 텔아비브의 한 호텔로 전화를 걸었다.

반갑습니다. 한국은 저녁인데, 그곳은 아침이죠?

네, 사실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됐어요.(웃음) 이곳은 연주회를 저녁 9시에 시작하더라고요. 어제 연주가 너무 늦게 끝나기도 했고, 이후에 또 관계자들이랑 이야기하느라… 그런데 늘 있는 일이라 별로 힘들지는 않아요.

연주 스케줄이 정말 많더군요. 2~4월에 폴란드·크로아티아·독일·터키에서 각각 다른 단체와 다른 레퍼토리로 협연을 했고, 이번 한국 공연을 마치자마자 바로 이스라엘로 건너갔죠. 6월에는 스페인에서 미할 네스테로비치/테네리페 심포니와 협연을, 7월에는 금호아트홀에서 피아니스트 김다솔과 듀오 콘서트를 갖고요. 오케스트라마다 단원이 외부 연주를 갖는 것에 대한 입장이 다르던데, 바젤 심포니는 자유로운 편인가 봅니다.

유명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것을 오히려 반기는 편이에요. 바젤 심포니에서 한 달에 평균 일주일 정도, 여러 일정을 소화하거든요. 매니저에게 ‘조금 늘릴까요?’ 하고 물었더니 주어진 것에만 최선을 다해달라고 하더군요. 바젤 심포니에는 악장이 둘인데요, 저 말고 다른 한 명인 악셀 샤세르도 자신이 이끄는 현악 4중주단으로 일 년에 100회 이상의 연주를 갖고 있죠. 그 친구와 서로 잘 조정하면 오케스트라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협연 및 리사이틀을 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요.

다양한 작품을 숙지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이번에도 텔아비브에서 브람스 협주곡 두 번 하고, 바젤로 돌아가면 바로 오페라 연습 일정이 있어요. 정말 쉽지가 않죠. 배워야 할 레퍼토리가 너무나 많고, 컨디션 조절도 잘해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이 모든 과정에 놓인 게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바젤 심포니 들어가기 전까지는 사실 교향곡이나 오페라에 큰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여러 작품을 폭넓게 접하면서 아이디어도 얻고 ‘움직임’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되었어요. 연주자로서 성장하는 데 무척 좋은 환경이죠.

악장으로서 삶은 어떤가요?

제1바이올린 단원 중 제가 가장 어려요. 스물여덟에 시작해 4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제일 어리죠. 바로 옆자리에 앉는 바이올리니스트는 64세예요. 뭔가를 결정하고 지시할 때면 아직도 좀 불편해요. 한국에서 나고 자랐으니 윗사람의 말에 따르는 것이 익숙하잖아요. 무대에서의 자리를 결정한다거나 오케스트라의 재정적인 부분을 논의할 때면 일어서서 생각을 이야기하고 단원들의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에서 아직도 조금 힘들어요. 막상 그들은 당연하게 여기는데 말이죠.

지난해 상임지휘자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와 함께 통영국제음악제 무대에 올랐죠. 당시 데이비스와 인터뷰를 가졌는데, 바젤 심포니에 대해 ‘오페라 작품을 비롯한 레퍼토리의 폭이 넓고 실력이 뛰어나다’라고 하더군요.

동감해요. 작품의 특색을 잘 드러내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스코어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변하죠. 데이비스는 올해 상임지휘자 임기가 끝나는데, 현대음악에 조예가 깊은 데이비스 덕에 동시대 음악에 대해 많이 공부할 수 있었어요. 새로 맞이할 아이버 볼턴은 하이든·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로 유명해요. 음악적으로 확장될 것을 기대하고 있죠.


▲ 2015 통영국제음악제를 찾은 데이비스/바젤 심포니

청중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독일 쾰른에서 유학하다 스위스 취리히로 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어요?

쾰른에서 6년 정도 공부하다 보니 게을러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쾰른은 학생이 무척 많은 도시인데, 익숙해지니 스스로 안주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떠나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자카르 브론 선생님에게는 계속 배우고 싶었죠. 선생님이 쾰른 음대 외에 취리히 음악원에 출강하셔서 그곳으로 가야겠다는 결정을 했어요.

오케스트라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했나요?

학업이 점차 마무리되니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10대부터 20대까지는 배우는 과정이었고, 콩쿠르에 집중했으니까요. 그러다 바젤 심포니에서 악장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고, 제가 살던 취리히에서 50분을 달려 바젤에 도착해 오디션을 봤죠. 그 길로 오케스트라 생활이 시작됐어요. 연주자로 성장하는 동안 장기적인 계획보다는, 늘 주어진 기회에 충실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3학년 때 부천청소년현악합주단에서 꽤 오래 활동을 해서인지 오케스트라에 입단하는 것이 어색하지는 않았어요.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 연주할 때와 솔리스트로서 무대에 설 때, 음악에 접근하는 방식이나 연주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다른가요?

글쎄요. 기술적으로는 다르겠지만 목적은 하나예요. 듣는 이와 마음으로 통해야 한다는 것. 음악 그 자체만 즐긴다면 조용한 방에서 CD를 듣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한 공간에서 연주자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이야기를 듣는 관객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떤 감정을 느끼는, 그 순간을 위해 연주자와 관객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연주의 콘셉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콘셉트라면 어떤 것을 말하는 건가요? 연주회의 기획 의도? 아니면 눈에 보이는 것?

전부 다요. 연주자가 무대에서 걸어 나올 때부터 퇴장할 때까지 모든 게 음악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연주를 하다가도 다른 악기 파트나 피아노 반주가 나올 때면 청중을 가만히 바라봐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저 사람이 듣고 있구나’ ‘나도 말을 하고 있구나’하는 감정을 느끼며 연주를 하죠. 조슈아 벨은 호텔에서 나올 때부터 연주가 시작된다고 말했다던데, 그 정도는 과한 것 같고요.(웃음)

연주할 때 표정이나 몸짓이 화려하다는 생각은 했어요. 의도한 것인지는 몰랐지만.

물론 계산적으로 하는 행동은 아니에요. 이 이야기를 하려면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요. 가족 중 음악을 한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어릴 때부터 가족, 특히 아버지가 제 연주를 보러 자주 오셨는데 제가 연주하는 음악을 자세히 모르실 테니까 얼굴 표정으로, 몸동작으로 음악에 담긴 특징이나 감정을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랬죠. 레슨 받으면서 ‘몸 너무 흔들지 마라’ ‘악기 더 올려라’ 이런 지적을 들으면서 점점 절제했고요. 그러다 2009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때 심사위원들이랑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어요. 다른 심사위원들은 비브라토, 보잉 같은 것들에 대해 조언하는데 그중 한 분이 무대 매너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인사할 때, 또 연주할 때의 모습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했어요. 당시에는 뭐 저런 말을 하나 싶었는데 연주회를 거듭할수록 이해가 되더라고요. 이후부터 좀 더 자유롭게 감정 표현도 하고, 관객들에게 말을 걸게 된 것 같아요.

연습이나 연주가 없을 때는 주로 무엇을 하나요?

연주 자체가 여행이니까, 새로운 곳에 가면 돌아다니기 바빠요. ‘강행군’을 즐기죠. 이동 시간에는 주로 책을 읽고요. 여유 있을 때는 집에서 케이크나 과자를 구워요. 단원들에게 종종 가져다주는데 별로 맛은 없나 봐요. 반응이 없더라고요.(웃음)

앞으로도 바젤 심포니 악장으로서, 또 매혹적인 솔리스트로서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죠?

한 가지 더 있어요. 최근 바젤 심포니의 멤버 중 두 명과 함께 트리오를 결성했어요. 오리온 트리오라는 이름으로요. 독특한 건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하는 실내악단이라는 점이에요. 어느 날 문득 ‘솔로 연주는 암보로 하는데 실내악은 왜 악보를 보고 할까?’ 궁금했어요. 연주자들이 대부분 거의 외우거든요. 근데 관습처럼 보고 하는 거예요. 결국 보면대를 치우기로 했죠. 의자도 가까이 놓고, 서로 얼굴 쳐다보면서 해요.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레퍼토리를 넓히는 건 힘들지만, 부담감이 있어야 더 배우게 되고 성취감도 남다르니 좋아요. 앞으로 2, 3년 간 예정되어 있는 연주가 많습니다.

윤소영과 통화를 하는 내내 나는 “~는 힘들지 않아요?”라고 질문했고, 그녀는 “~는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라고 답했다. 프랑스·독일과 맞닿은 도시 바젤에 살며 음악적으로 오랜 전통을 지닌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것, 연주 일정을 스스로 관리하며 홀로 세계를 여행하고 다니는 것, 그러면서도 무대에서는 늘 여유롭고 씩씩하다는 게 한편으로는 믿기지 않았고,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그녀는 “관객들이 객석에서 보여주는 표정, 연주회가 끝나고 대기실에 찾아온 사람들이 건네는 따뜻한 마음 덕에 늘 에너지가 생긴다”며 또 한 번 웃는다. 그녀의 활에 더 많은, 더 강한 힘이 실리기를 응원한다. 


사진 International Violin Festival·통영국제음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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