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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티스트 최나경
그녀는 예뻤다. 행복해 보였다
글 김호경 기자 6/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6월호 - 전체 보기 )




싱그러운 5월의 어느 날, 기자와 마주 앉은 플루티스트 최나경은 일주일 전 결혼식을 올렸다며 환하게 웃었다. 오스트리아 보덴 호를 항해하는 오스트리아인 선장과 배 위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신혼여행은 나중으로 미뤄두었다고. 축하의 인사와 감사의 응답이 이어지며 함께 웃었다. 그녀는 예뻤다.

편안해 보였다. 신시내티 심포니 부수석 주자로 6년, 빈 심포니 수석 주자로 일 년을 지내고 솔리스트로 세계 곳곳을 다닌 지 3년. 스스로 연주 스케줄을 조정하고, 여유롭게 사람들과 만나며 ‘음표’가 아닌 ‘작품’을, ‘연주’가 아닌 ‘음악’을 고민하게 되었다는 그녀에게서 안정감이 느껴졌다. 무척 행복해 보였다.

‘행복’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꿈 많던 어린 시절, 최고 악단에서의 눈물겹던 삶, 자유롭지만 어느 때보다 치열한 현재의 일상까지, 돌이켜보면 어느 한순간도 불행한 적이 없었다. 행복은 그렇게 진화하고 있다고, 최나경은 새삼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역할에 대한 고민

빈 심포니 수석 주자로 지내던 2012~2013년은 최나경 인생의 황금기였다. 클래식 음악사가 뿌리 내리고 있는 도시 빈에 살며, 단원 중 80% 이상이 오스트리아인인 전통 있는 오케스트라에서 연주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건 “자다가도 눈을 번쩍 뜰 만큼 행복한 일”이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단원들과 마찰이 심했지만, 연주 일정이 빠듯해 고민할 여유도 별로 없었다. 빼곡한 오케스트라 스케줄을 소화하고, 동시에 솔로 커리어를 천천히 쌓으며 그녀는 ‘이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 했다.

음악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삶이었지만, 내면의 상처는 자신도 모르게 깊어지고 있었나 보다. 2013년 여름, 최나경은 브레겐츠의 호수 위 크루즈에서 동료 연주자들과 작은 음악회를 가졌다. 승객이 모두 퇴장하고, 승무원들과 연주자들만 남아 함께 시간을 보냈다. 브레겐츠의 맑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그녀는 곁에 있던 선장에게 “나는 컴컴한 극장에서 예민한 사람들만 만나는데, 당신은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행복한 사람들만 보니 좋겠다”고 말을 건넸다. 그래도 일이니 힘들다는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지만 그 남자는, 브레겐츠의 석양은 매일 다른 얼굴을 한다며 여러 장의 사진을 보여줬다. 두 눈을 반짝이며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그를 통해 최나경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빈 심포니를 떠나게 되었을 때 무척 답답하고 슬펐지만, 그 사람 덕에 버틸 수 있었어요. 여러 오케스트라에서 입단 제의를 해왔지만, 잠시라도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브레겐츠로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전부 정중히 거절했어요.”

현재 그녀는 프리랜서로 일하며 여름에만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로 활동하고 있다. 파보 예르비가 이끄는 페르누 페스티벌과 링컨센터에서 열리는 모스틀리 모차르트 페스티벌에 참여하며, 협연 및 리사이틀 스케줄은 스스로 조정한다. 삶을 돌보고, 음악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얻은 그녀는 악기를 처음 배울 때의 기분을 느끼고 있다.

“브레겐츠 친구들은 대부분 음악이 아닌 다른 일을 해요. 그들과 자주 대화하니 연주자가 아닌 청중의 입장에서 음악을 듣게 되더군요. 예전에는 연주회장에 가면 ‘저 사람은 왜 연주를 저렇게 하지’라고 생각했는데 점차 ‘이 곡은 작곡가가 이런 감정으로 쓴 곡이었지’ 하게 됐어요. 음표 익히느라 막상 곡 자체는 궁금해할 시간도 없던 거죠. 정말 기초적인 것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플루트의 역사부터 다시 들여다봤죠. 음색을 연구하고, 저만의 테크닉도 개발하고 있어요.”

이러한 과정은 음악가로서 존재에 대한 고찰로 이어졌다. 유명 악단 소속 연주자, 솔리스트로서의 삶이 아닌 플루트를 연주하는 한 사람으로서 의미 있는 삶을 누리기 위해 그녀는 어느 때보다 음악에 몰두하고 있다.

“그동안은 연주를 제안받고, 날짜와 장소를 정한 뒤, 사람들을 모아놓고 하는 연주만 했잖아요. 물론 열심히 연습해 선보이는 연주도 가치가 있지만, 언제라도 제 음악이 필요하다면 바로 미니 리사이틀을 열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돼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 즉흥적으로 연주를 요청했을 때 ‘예정된 음악회까지 며칠 남았으니 지금은 안 할래요’가 아니라 바로 악기를 꺼내 들고 제 소리를 들려줄 수 있을 만큼 늘 준비하려고 해요. ‘왜 이런 데서 연주를 하라고 하지?’라는 닫힌 마음도 버리려고요. 어제도, 내일도 들을 수 없는 지금 이 순간의 음악으로 듣는 이에게 기쁨을 주는 게 음악가의 진짜 역할 아닐까요.”


건강한 음악을 위해

최나경은 2005년 ‘객석’과의 인터뷰에서 “10년만 지나면 한국에도 플루티스트가 무척 많아질 것이고, 수준도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고, 그녀의 예언대로 한국인 플루티스트가 해외에서 활동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최근 2년간 ‘객석’은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수석 조성현, 뉴욕 필하모닉 단원 손유빈, 그리고 리옹에서 공부하며 각종 콩쿠르를 휩쓸고 있는 김유빈을 주목했다.

“제가 한국에서 공부하던 시절에는 배움의 폭이 좁았어요. 당시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공부하던 친구들은 러시아 스타일, 독일 또는 미국 스타일을 접하며 자신의 소리를 개발할 수 있었지만, 플루트는 프랑스식 연주가 정답인 것처럼 여겨졌죠. 음반을 사러 가도 제임스 골웨이 레코딩 외에는 찾아볼 수 없었어요. 인터넷이 발달하고, 세계적으로 문화예술 교류가 활발해지니 어린 친구들이 좋은 것을 많이 흡수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죠. 지금은 어느 나라 출신인지, 어디에서 배웠는지보다는 자신만의 개성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최나경은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 스스로 답을 찾던 시간, 실제로 부딪히며 깨우쳐야 했던 오랜 시간을 조금이나마 절약하고,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조금씩 도우려 한다. 대표적인 예로, 2014년부터 매년 인터내셔널 마스터클래스를 개최한다. 신청자 중 10명을 선발해 5일 간 브레겐츠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레슨을 갖고 함께 연주회를 여는 것은 물론,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나누고 요가 클래스도 연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보는 게 가장 중요해요. 연습은 무척 고되고 힘든 일인데, 무엇을 위해 하는지도 모른 채 반복하는 건 너무 괴로운 일이잖아요. 학생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요. 한국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좋은 대학 가는 거요’ ‘유명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는 거요’라고 대답하죠. ‘그 이후엔?’ 하고 물으면 대답을 못해요. 큰 오케스트라에 들어간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한 건 아니거든요. 제가 악단에 있을 때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적지 않았어요. 그저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할 수 없으니 출근하듯 나오는 거죠. 학생들이 좀 더 삶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면 좋겠어요. 무엇을 해야 매일매일 행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이 뒷받침돼야 건강한 음악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깊이, 그리고 가능성에 주목하다

최나경은 5월 29일까지 열린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에서 고베르·이베르·프랑세부터 뒤티외·코네송까지 프랑스 작곡가들의 다양한 곡을 연주했고, 6월에는 방콕에서 스테파노 미첼리/방콕 심포니와 자신이 직접 편곡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다. 그녀의 레퍼토리의 폭은 무척 넓다. 최근 일 년만 해도 베를린, 바덴바덴, 루체른, 파리, 크로아티아, 터키에서 비발디, 모차르트, 메르카단테, 마크 레이콕 등의 작품을 연주했다. 2014년 2월, 한국에서 열린 서울시향과의 협연에서 취구에 바람을 거칠게 불어넣고, 노래와 비트박스까지 선보이는 이언 클라크의 ‘줌 튜브’를 연주해 청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녀는 최근 무대 중 가장 강렬한 순간으로 지난해 11월,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마크 레이콕/베를린 심포니와 ‘재스민 최(최나경의 영어 이름)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하던 때를 꼽았다. 이 곡은 그녀를 10년 간 지켜본 동료 음악가 마크 레이콕이 그녀의 삶을 협주곡 형식으로 담아낸 작품으로, 1~3악장이 전혀 다른 형식과 장르를 띠는 것이 특징이다. 1악장은 새가 날아오르는 듯한 플루트 카덴차로 시작해 하프와 현악기가 더해지며 즐겁게 노래한다. 2악장은 종교적 색채가 짙은 경건한 분위기이며, 3악장은 빠른 템포의 타악기 연주에 펑크, 재즈 등의 요소가 결합되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처음에는 ‘재스민 최를 위한 협주곡’이라는 제목이 부담스러웠어요. 다른 플루티스트가 연주해도 이 제목으로 소개되는 거잖아요. 작곡가에게 물었더니 제 인생을 담은 곡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하더군요. 한국에서 태어나 온 세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시기, 어두운 곳에서 괴로워하던 시기를 거쳐 음악에 수만 가지 감정을 담아내는 현재의 모습까지 담았다고 들었어요. 장르적으로 통일성이 없고, 테크닉이 너무 어려워 연주하기가 무척 힘들죠. 불만을 표하면서 수정해달라고 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열심히 연습했어요.(웃음) 뉴욕에서 버펄로 필과 초연한 이후 유럽에서의 첫 연주였는데 수준 높은 베를린 청중이 기립박수를 보내주어 무척 뿌듯했어요.”

그녀는 최근 다시 고전 레퍼토리에 집중하고 있다. “가장 ‘플루트적’인 소리가 무엇인지 깊이 있게 파헤치고 싶다”면서도 “많은 이가 플루트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새로워질 것”이라는 그녀의 말에 음악에 대한 끝없는 열정이 묻어났다.

최나경은 ‘행복’의 조건에 대해 한참 동안 이야기하다 원하는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 듯 멈칫했다.

“예전에는… 헬렐레하게 행복했다면, 요즘은… 꽉 차게 행복해요. 하하. 말이 이상하지만 그래도 무슨 의미인 줄 아시겠죠? 지금의 완전한 느낌이 참 좋아요.”

그녀가 사진 촬영을 위해 플루트를 꺼내 들고 휘리릭 소리를 내자 경쾌한 콧노래가 나온다. 그녀가 밝게 웃는 만큼 그녀의 손에 들린 스트라우빙거 플루트도 행복한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녀의 연주 일정이 궁금하다면 그녀의 홈페이지(www.jasminechoi.com)를 확인해보길.

사진 심규태(H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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