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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정악단 타악기 수석 박거현의 종묘제례악 타악기 특강
태평성대를 향한 신비로운 두드림
글 전윤혜 기자 5/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5월호 - 전체 보기 )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종묘제례악의 타악기를 만나다


列聖開熙運 성군께오서 빛나는 국운을 여시어
炳蔚文治昌 찬란한 문화 정치가 창성하도다
願言頌盛美 성대한 아름다움을 칭송하고자
維以矢歌章 이를 노래에 베풀어 부릅니다

종묘제례악 희문(熙文)



“전하, 종묘와 사직을 생각하시옵소서!”

사극을 보면 국가에 위기가 닥치거나, 임금이 잘못된 결정을 내릴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신하들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강조하는 ‘종묘와 사직’이다. 충효를 중시하던 농경사회의 조선에서 역대 왕의 신위를 받든 ‘종묘’와 토지·곡식의 신을 모신 ‘사직’은 그 자체가 곧 ‘국가’를 뜻하는 고유명사였다.

특히 조상에 대한 예우를 최고의 덕으로 삼았던 선조들은 왕실의 제향을 나라의 가장 중요한 행사로 여겼다. 1394년 한양으로 천도한 조선의 태조 역시 제일 먼저 종묘 건립에 착수했고, 이듬해 완공된 종묘에서는 매년 봄·여름·가을·겨울의 첫 달 초하루와 동지 무렵의 납향일, 이렇게 총 다섯 번의 대제(大祭)를 치렀다. 선왕에게 국가의 태평성대와 백성의 안위를 기원한 제례는 신을 맞이하는 첫 번째 의식 ‘영신’과 폐백을 올리고 음식을 장만하는 ‘전폐’ ‘진찬’, 맞이한 신에게 술을 올리는 ‘초헌’과 둘째 잔과 셋째 잔을 올리는 ‘아헌’ ‘종헌’, 제기를 정리하는 ‘철변두’, 제사가 끝나고 신을 보내는 ‘송신’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이처럼 중요한 국가적 제향에 음악이 빠질 리 없었다. 이 종묘대제에 쓰인 음악이 ‘종묘제례악’이다. 기악과 함께 노래와 춤이 수반되는 종합예술인 종묘제례악은 절차에 따라 선왕의 문덕을 칭송하는 ‘보태평’과 무공을 찬양하는 ‘정대업’ 등을 연주하며, 동시에 가로세로 각각 8줄씩 모두 64명의 무용수가 장대하게 움직이는 일무가 곁들여진다.

세조 때 현재의 모습을 갖춘 종묘제례악은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6·25를 거치며 악공이 흩어지고 종묘가 불타는 등 여러 번 성음이 끊길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악사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명맥을 이어 6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역사와 예술성을 지키며 온전히 전승되어왔다. 그 가치를 인정받은 종묘제례악은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됐으며, 2001년에는 유네스코의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됐다. 지난해에는 ‘한·불 상호교류의 해’ 개막작으로 선정돼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공연예술로서 프랑스 샤요 국립극장에 올라 격찬을 받기도 했다. 현재 종묘대제는 일 년에 한 번, 5월 첫째 주 일요일 종묘에서 거행된다.


종묘제례악에는 열다섯 가지 악기를 사용한다. 그중에서도 무려 열 가지를 차지하는 타악기는 음악의 시작과 끝을 알리고 중심 선율을 이끄는 중추다. 이러한 타악기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국립국악원(원장 김해숙) 정악단 타악기 수석 겸 지도단원 박거현을 만났다.

박거현은 매년 종묘제례악의 장구 자리를 지켜온 정악 타악계의 터줏대감이다. 그는 본래 국립국악고와 한양대에서 해금을 전공했다.

“당시(1980년대 후반)만 해도 국악계에 ‘타악 전공’이란 개념이 없었어요. 장구 반주가 필요할 때면 감각 있는 타 전공생이 대신하는 정도였죠. 고등학교 시절부터 반주를 맡아왔는데, 돌이켜보니 해금보다 장구를 더 많이 잡았더라고요. 대학 졸업 후 10년을 전공한 해금을 이어갈 것이냐, 좋아하는 타악을 시작할 것이냐의 기로에서 한참을 고민했죠. 결국 천안시립국악관현악단에 타악기 주자로 입단하며 타악인으로서 삶을 시작했습니다.”

정악과 민속악을 겸하던 그는 2001년 국립국악원 정악단 입단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정악 타악의 길에 매진한다. 정악의 주선율이 되는 피리를 탐구하기 위해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피리정악 및 대취타를 이수했고, 현재 제39호 처용무를 전수 중이다. 4년 전부터는 정가(가곡·가사·시조)를 공부해오고 있다. 어느 음악이든 몸소 체험해봐야 반주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 2000년에 종묘제례악을 이수한 후 종묘대제에도 17년째 참여하고 있다.

“종묘제례악은 우리 음악의 자부심이에요.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형태이고, 이렇게 오래도록 잘 전승되어온 음악은 종묘제례악이 유일합니다. 선율을 연주할 수 있는 ‘유율타악기’는 종묘제례악의 중심이고, ‘무율타악기’는 효과음을 내는 특수 악기에 가까워요. 악기의 색깔부터 배치 순서, 연주 방법까지 모두 음양의 오묘한 조화로 빚어낸 신비로운 악기들이죠.”

자, 박거현과 함께 신비로움을 머금은 종묘제례악의 열 가지 타악기를 만나보자.


음양의 조화, ‘등가’와 ‘헌가’

제례 순서에 따라 댓돌 위의 ‘등가’와 댓돌 아래의 ‘헌가’ 두 악대가 번갈아가며 연주한다. ‘양(陽)’을 상징하는 등가는 문덕을 기리는 ‘보태평’을 연주하며, ‘음(陰)’을 뜻하는 헌가는 무공을 찬양하는 ‘정대업’을 연주한다. 등가와 헌가 사이에서 행해지는 일무는 하늘(양)과 땅(음) 사이의 사람을 나타내며 세 요소는 곧 하늘(天)·땅(地)·사람(人)을 상징한다.

동쪽과 서쪽

등가와 헌가의 악대는 다시 그 역할에 따라 동과 서로 나뉜다. 해가 떠오르는 동쪽은 시작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음악의 시작에 쓰이는 악기를 두고 대표 색인 청색을 입혔다. 해가 지는 서쪽에는 음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악기를 두고 대표 색인 흰색을 칠했다.


시작과 끝을 알리는, 박

가죽끈으로 묶은 6개의 나무 조각을 부채처럼 펼쳤다가 닫으며 소리 내는 박. 재질이 단단한 박달나무·대추나무 등으로 제작한다. 그리 크지 않은 크기임에도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음량을 지녔다. “박 특유의 큰 음량으로 곡의 시작과 끝을 알려요. 집사(진행자)가 ‘드오!’ 하며 곡의 시작을 외치면 박을 한 번, ‘지오!’ 하고 끝을 알리면 세 번 연주합니다. 중간중간 악절이나 악구가 바뀔 때도 박으로 신호를 주죠. 박을 담당하는 ‘집박’은 지휘자인 셈입니다. 그렇기에 음악적으로 가장 뛰어나고 연륜이 깊은 분들이 담당해요.”


악기에 웬 엽전?

“부를 기원하는 의미입니다. 예전에는 진짜 엽전을 붙였지만, 지금은 악기를 위해 따로 제작하죠.”

               
 

두 종류의 북

등가에 앉아 연주하는 ‘절고’와 헌가에 서서 연주하는 ‘진고’는 박과 함께 음악의 시작과 끝을 알린다.

절고

절(節)마다 치는 북(鼓). ‘보태평’의 시작과 끝에 세 번씩, 악절의 첫 박에 한 번씩 두드리는 등가의 악기로, 뒤로 비스듬히 젖혀진 북면을 나무채로 두드려 소리 낸다. 종묘제례악에서 절이란 일정한 마디가 아닌 가사의 한 구절을 뜻한다. 그 길이가 제각각이기에 모든 박을 외워야 하는 고충이 있다.

진고

진고의 크기는 웬만한 성인 남성의 키를 훌쩍 넘는다.

“현재 국악에서 사용하는 북 중에서 가장 큰 북이에요. 헌가에서 연주하죠. 특히 ‘정대업’의 도입부에서 존재감이 확 드러나는데, 옛날에는 전쟁을 시작할 때 ‘진격하라!’ ‘공격하라!’ 외치며 북을 둥둥 울렸잖아요. ‘정대업’은 무공을 기린 음악이니까 그런 느낌으로 진고를 두드리며 시작하는 거죠. 이후로는 악절 첫 박마다 한 번씩 연주해요. 등가의 절고와 같은 역할이죠.”

선율 담당 삼형제

율(음)의 높낮이 표현이 가능한 유율타악기 편종·편경·방향. 종묘제례악의 중심 선율을 함께 연주하는 세 악기는 외양마저 닮았다. 사각형 방대 위에 2단으로 된 나무틀을 세운 후 소리를 내는 울림체를 8개씩 나눠 달았으며, 한 울림체당 한 음씩 총 16음을 연주할 수 있다. 음역은 가온 C로부터 한 옥타브 위의 D#까지. 연주자 기준으로 아랫단 오른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한음씩 높아지며 쇠뿔로 만든 망치인 ‘각퇴’로 두드려 연주한다.


편종

엮을 편(編)에 쇠 종(鐘). 이름처럼 나무틀에 쇠로된 종을 죽 걸어놓았다. 종의 크기는 같으며 그 굵기에 따라 음정이 달라진다.

산사의 종소리와 풍경(風磬) 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듯한 음향은 웅혼하고 잔향이 길다. 방대 위에 해태를 얹고 틀 양쪽으로 용머리를, 위쪽으로 공작을 조각했으며, 용의 입으로부터 오방색의 술을 늘어뜨렸다.


남다른 뒤태

종의 뒷면에는 앞면에 없는 두 가지가 있다. 중앙의 율명(음이름)과 아래의 원형 양각이다. “같은 종이라도 어디를 두드리느냐에 따라 울림이 달라집니다. 한쪽은 맑은데 다른 쪽은 막힌 소리가 나기도 하지요. 보통 볼록한 아랫부분을 쳤을 때 가장 풍부하게 울립니다. 일정하게 좋은 음색을 낼 수 있도록 그 부분을 표시해놓은 거죠. 한 가지 더, 처음부터 음정이 완벽한 종은 드물어요. 음이 조금 낮다 싶으면 종의 아랫부분을 조금씩 갈아내며 직접 조절하곤 합니다.”


편경

방대 위에 기러기를 올리고 위쪽으로 공작, 양쪽으로 봉황, 그 아래에 꿩 깃털로 만든 제기 모양의 술을 장식했다. 나무틀에는 붉은 동아줄로 ㄱ자 모양의 ‘경’(옥돌)을 매달았다. 맑고 우아한 울림을 지닌 경은 원래 중국에서 수입했으나 세종 때 경기도 남양에서 옥돌산을 발견한 후로 쭉 자급하고 있다. 온도·습도에 민감하지 않아 국악기 조율의 기준이 된다.


편경 뺨치는 소리

“정면을 두드리는 편종·방향과 다르게 편경은 아래쪽 측면을 칩니다. 각 단에 매달린 8개의 경을 반으로 나눠 오른쪽 경은 왼쪽 아래를, 왼쪽 경은 오른쪽 아래를 두드리죠. 가장자리다 보니 간혹 깨지기도 해요. 그럴 때는 깨진 부분을 다듬은 후 새 돌을 붙여 수리합니다.”


방향

나무틀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긴 철편(쇳조각)을 내리쳐 연주하는 악기. 철편 아래 나무로 인해 소리가 울리지 못해 잔향이 짧고 고음역에서는 날카로운 소리가 난다. 본디 나무로 만든 동그란 채인 ‘목퇴’로 연주했는데, 지금은 “소리도 예쁘고 보기에도 좋은” 각퇴를 사용한다. 같은 크기의 틀(폭 2.2m, 높이 1.5m)을 사용하는 편종·편경에 비해 방향은 폭이 그 3분의 2가량으로 조금 좁다. 해태와 봉황, 오방색 술로 장식했다.


각도가 생명!

울림체가 매달린 편종·편경과 달리 방향은 철편이 45도 각도로 누워 있다. “처음에는 철편도 공중에 매달려 있었어요. 울림은 좋았지만 음색이 편종과 흡사해 거의 구별되지 않았죠.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나서야 방향 특유의 음색을 지니게 됐습니다.”

철편이 완전히 누운 방향도 있다. “개량 방향이에요. 짧은 잔향을 개선한 악기죠. 창작곡에서 주로 사용합니다. 마림바처럼 협연도 하고요.”


동물의 의미

조상들은 악기의 작은 부분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저마다 의미를 부여했다. 동쪽에 배치되는 편종과 방향은 잡귀를 물리치는 푸른 해태를 조각했다. 특히 편종의 양쪽을 장식한 청룡은 오방(五方) 중 동쪽을 상징하는 신이다. 편경을 장식한 새(기러기·봉황·공작)들은 음이 멀리 퍼져나가기를 기원한다. 기러기에는 서쪽을 상징하는 흰 빛깔을 입혔다.


각퇴

쇠뿔을 잘라 가운데 구멍을 뚫고 나무를 꽂아 만든 망치. 주로 암소의 뿔을 사용한다. 쇠나 나무망치보다 부드럽고 온화한 소리를 얻을 수 있으나 그리 강한 재질이 아니기에 사용하다 보면 닳고 갈라지는데, 이는 꾸준한 연습의 증거이기도 하다. 국립국악원 정악단 연습실의 각퇴는 모두 닳아 있었다. 오른쪽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보급형 각퇴.


장구

일반적으로 장구는 장단을 연주하며 음악을 이끄는 악기다. 그러나 일정한 장단이 없는 종묘제례악에서는 효과음을 내는 특수 악기에 가깝다. “종묘제례악 장단을 다 익히려면 적어도 1년 이상 걸려요. 몇 백 개의 숫자를 섞은 다음 무작정 외우라는 것과 같죠. 힘들게 외워도 연주 한 번 하고 나면 다 잊어버릴 정도예요.”

장구의 가죽

제례용 장구는 일반 장구보다 조금 더 크다. 북편(왼손)에는 두꺼운 가죽을 씌워 묵직한 소리가 나고, 채편(오른손)은 보다 얇은 가죽을 사용해 높은 음이 난다. “예전에는 말가죽(북편)·소가죽(채편)을 주로 썼는데, 요즘에는 양가죽(북편)·개가죽(채편)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특히 개가죽은 얇으면서도 기름기가 돌아 알찬 소리가 나죠.” 뜨악해하는 기자의 반응에 박거현이 말했다. “개보다 소가 더 착한데….”


대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징은 종묘제례악에 사용될 때 대금(大金)이라 불린다. 헌가에서 ‘정대업’ 연주에 쓰이며, 특히 종헌의 ‘정대업’ 마지막에 열 번 울리며 음악을 웅장하게 마무리한다. “연주자는 무거운 대금을 들고 종묘제례악이 끝날 때까지 서서 연주해야 해요. 육체적으로 제일 힘든 악기일 거예요.”(웃음)


하늘을 여는 악기, 축

울림이 좋은 오동나무로 만든 나무 상자에 구멍을 뚫어 그 가운데를 나무채로 내리쳐 소리 내는 악기. ‘정대업’과 ‘보태평’ 도입부에서 북(진고·절고)과 함께 세 번씩 3회 반복한다. 위아래로 내리치는 동작은 땅과 하늘을 열어 음악을 시작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푸른빛을 입힌 상자에 그린 산과 하늘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하늘을 닫는 악기, 어

타악기 중 가장 익살스러운 외모를 지닌 어. 통나무를 깎아 만든 ‘엎드린 호랑이’ 자체가 악기가 된다. “대나무를 갈라 만든 채로 호랑이의 머리를 세 번 내리친 후, 등의 톱니를 한 번 쓸어주는 것을 총 3회 반복해요. 얼마나 내리쳤으면 호랑이 머리가 다 벗겨졌네요.”(웃음)

백호는 서쪽을 관장하는 신이며, 서쪽은 끝을 의미한다. 호랑이 등을 긁는 수평적인 동작은 축이 열어놓은 하늘을 다시 닫아 음악을 맺는다는 뜻이다.

사진 이은비(studio BoB)·국립국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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