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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 ‘파리의 미국인’
복고에 빠진 브로드웨이가 낳은 화제작
글 장일범(음악평론가) 4/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4월호 - 전체 보기 )



브로드웨이가 복고 열풍에 빠져 있다. 요즘은 ‘해밀턴’이나 ‘마틸다’ 같은 신작 뮤지컬과 함께 ‘북 오브 몰몬’ ‘위키드’와 ‘라이온 킹’이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지만, 그 외에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고전이랄 수 있는 명작들을 계속 재생산하고 있다. 예전에 ‘빅 4 뮤지컬’이라고 불리던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같은 대유행 작품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브로드웨이 스타인 켈리 오하라와 한국 출신 배우 이동훈이 시암 왕으로 캐스팅된 ‘왕과 나’가 링컨센터에서 공연되고 있고,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공연된 ‘사랑은 비를 타고’ 역시 올 하반기 브로드웨이에서 리바이벌될 예정이다. 리바이벌 작품들이 박스오피스에서 상당히 인기를 누리는 추세다.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높은 객석 점유율을 보이는, 영화를 뮤지컬화한 두 작품을 만났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과 ‘파리의 미국인’이다.


▲ ‘지붕 위의 바이올린’ 테비에 역의 대니 버스타인 ©Joan Marcus

영화의 강렬한 인상을 뛰어넘지 못한 ‘지붕 위의 바이올린’

1964년에 초연된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1971년 영화로 만들어져 빅 히트를 기록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제롬 로빈스가 연출과 안무를, 제리 복이 음악을 맡은 이 작품은 2004년까지 여러 번의 리바이벌을 거쳤다. 현재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메트 오페라에서 왕성한 활약을 하고 있는 바틀릿 셔의 새로운 연출로 다시 한 번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 공연되고 있다. 바틀릿 셔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남태평양’ ‘왕과 나’ 등의 뮤지컬과 2006년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을 시작으로 ‘호프만의 이야기’ ‘오리 백작’ ‘오텔로’ ‘사랑의 묘약’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팔리아치’ 등 수많은 오페라를 메트 오페라에서 연출하고 있는, 뉴욕에서 가장 바쁜 연출가다.

주인공 테비에가 빨간 점퍼를 입고 등장하는 첫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인물인 그가 점퍼를 벗자, 무대는 바로 20세기 초 제정러시아 강제 이주 시기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마을 아나테프카로 변한다. 이곳에 살며 유대인의 전통을 고수하는 우유장수 테비에와 아내 골디, 그리고 테비에의 뜻과는 달리 결혼해 떠나는 5명 딸들의 이야기가 바로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상징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울려 퍼진 후 나오는 오프닝 넘버 ‘트레디션’(Tradition)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전통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말해주는 대목이었다. 러시아 민속과 유대 민속이 어우러진 춤과 노래는 너무나 눈부시고 매혹적이어서 앞으로 얼마나 더 흥미진진하게 이 작품이 연출될까 싶을 정도로 신바람 나게 전개됐다. 작품의 중심 테마인, 앞으로 펼쳐질 전통과 변화의 갈등을 예견케 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이후 바틀릿 셔의 연출은 별로 특별하지 않다가 큰딸 차이텔의 결혼식 장면에 와서야 흥미롭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큰딸의 결혼식 장면은 1막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다. 유대인의 전통 결혼 풍습에 따라 병을 머리 위에 올려놓고 균형을 잡으면서 추는 춤인 보틀 댄스가 펼쳐진다. 원작에서는 피로연에서 남녀가 따로 벽을 사이에 두고 춤추고 노래했다면, 이번 연출에서는 시대가 바뀌었음을 상징하듯 벽은 사라지고 남녀가 함께 어울리는 이변이 펼쳐진다. 이 유대인들의 통념을 깨는 장면은 매우 역동적이고 즐겁게 그려졌다. 하지만 차이텔 역의 알렉산드라 실버의 목소리와 가창은 부담스러웠다. 또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대표적인 넘버 ‘이프 아이 워 어 리치 맨’(If I were a rich man)이나 ‘선라이즈, 선셋’(Sunrise, sunset)을 부를 때, 다섯 번이나 토니 어워즈에 노미네이트된 베테랑 대니 버스타인(테비에 역)의 가창 역시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는 뇌리에 익숙한 영화 속 테비에의 이미지를 뛰어넘지 못했다. 목소리가 더 낮았으면, 조금 더 푸짐한 체격의 인물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 발레 느낌의 안무가 돋보이는 ‘파리의 미국인’ ©Angela Stering

발레의 옷을 입고 새롭게 태어난 뮤지컬 ‘파리의 미국인’

필자는 조지 거슈윈의 작품들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작년부터 가장 보고 싶었던 뮤지컬이 바로 ‘파리의 미국인’이었다. 이 작품은 빈센트 미넬리 감독과 영화배우 진 켈리가 주연한 1951년 동명 영화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영화와 얼개는 같지만 구체적인 내용과 작품에 담긴 음악이 상당히 달라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먼저 영화는 미국에서 파리로 건너간 젊은 화가 제리 멀리건이 주인공이지만, 이 새로운 뮤지컬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파리에 남아 새 출발을 하게 되는 미군 병사 제리 멀리건이 주인공이다. 브랜던 우라노비츠가 연기했던 리즈를 짝사랑하는 작곡가 애덤은 유대계 미국 작곡가였던 거슈윈의 분신으로 등장한다.

거슈윈의 교향시 ‘파리의 미국인’(1928)을 마음에 들어 한 제작자 아서 프리드는 거슈윈 형제와 작품의 뮤지컬화를 결심한다. 거슈윈 사후 1951년에 영화화되어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최고의 뮤지컬 영화’라고 불리는 작품이 바로 ‘파리의 미국인’이었고, 그로부터 65년이 지난 후인 2015년에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새롭게 태어났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전에 거슈윈의 뮤지컬 ‘걸 크레이지’(1930)를 새로운 스토리와 음악 구성으로 만들었던 1992년 작 ‘크레이지 포 유’를 떠올리게 했다. 음악이 상당히 비슷했기 때문이다.


▲ ‘파리의 미국인’의 두 주연 리앤 코프와 로버트 페어차일드 ©Angela Stering

놀라운 것은 두 남녀 주인공 제리 역의 로버트 페어차일드(뉴욕 시티 발레 수석무용수)와, 제리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발레리나 리즈 역의 리앤 코프(영국 로열 발레 무용수)가 모두 뮤지컬에 처음 출연했다는 점이다. 그뿐 아니라 이 뮤지컬을 연출하고 안무한 뉴욕 시티 발레 출신의 1990년대 발레 스타 크리스토퍼 휠던도 그간 세계 주요 극장에서 발레 안무를 해오다가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연출을 맡은 것이어서, 그야말로 제작자 입장에서는 대모험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지난해 드라마 리그와 아우터 크리틱스 서클 두 곳으로부터 ‘2015년에 발표된 뮤지컬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최고 권위의 토니 어워즈 다수 부문에 올라 최우수 안무상·편곡상·무대 디자인상·조명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다. 뉴욕 시티 발레의 수석무용수인 발레리노 로버트 페어차일드를 캐스팅한 것도 크리스토퍼 휠던이었다.

팰리스 시어터에서 본 이 작품은 모두 거슈윈의 음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협주곡 F장조로 시작한다. 막이 오르면 전후 어둡고 가난한 파리에서 미군 병사 제리가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프랑스에 남기로 결심하는 개선문 앞 장면이 펼쳐진다.

파리의 한 카페에서 새롭게 사귄 친구들은 거슈윈의 뮤지컬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곡인 ‘아이 갓 리듬’(I Got Rhythm)을 부르고 춤춘다. 친한 친구가 된 제리와 작곡가 애덤, 그리고 귀족 집안의 딱딱하고 엄격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가수가 되고 싶어 하는 앙리(리즈의 남자친구이지만 실은 동성애자) 이렇게 삼총사는 파리의 낭만을 노래하며 ‘에스 원더풀’(S Wonderful)을 부르는데 이 남성 트리오의 노래는 무대의 1부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차지한다.

제리를 좋아하는 파리의 부유한 여성 밀로는 영화와 상당 부분 비슷했으며 앙리의 엄마 역인 빈느 콕스는 독특한 억양과 코믹한 대사로 관객들의 배꼽을 잡게 만들었다.

2부에서 앙리가 꿈꾸는 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아일 빌드 어 스테어웨이 투 파라다이스’(I’ll Build a Stairway to Paradise) 장면은 탭댄스와 다리를 번쩍번쩍 드는 춤이 있는 리도 쇼(물랭루주 같은 프랑스의 카바레 쇼)나 라디오 시티 뮤직홀의 쇼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미국 전통 대형 뮤지컬에는 꼭 등장하는 화려한 장면이어서 눈이 매우 즐거웠으며, 당연히 영화 ‘파리의 미국인’을 떠오르게 했다. 영화에서도 제리의 꿈 장면으로 대단한 판타지를 주었던 ‘파리의 미국인’이 연주되는 장면은, 몬드리안 풍의 의상을 입은 리즈가 주인공이 되어 무려 17분 동안이나 춤을 추는 발레 장면으로 등장해 청중을 사로잡았다.

‘파리의 미국인’은 무엇보다 춤이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 브로드웨이에서 기존 전통을 깨고 발레가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었으며 제리 역의 로버트 페어차일드와 리즈 역의 리앤 코프 커플은 배역과 매우 잘 어울리는 캐스팅으로 춤뿐 아니라 목소리도 음악과 잘 어울려 뮤지컬을 성공시킨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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