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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리카르도 무티
미래의 오페라 지도를 그리다
글 김선영 기자 4/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4월호 - 전체 보기 )



“정경화를 이끈 프레빈과 뒤투아, 조수미를 발굴한 카라얀처럼, 우리 젊은 음악가들이 한발 더 도약하려면 세계적인 거장을 만나고, 그들이 끌어주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습니다.”

이번 취재 중 경기도문화의전당 정재훈 사장이 건넨 말이다. 줄리아드 음악원을 거쳐 예일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그는 누구보다 음악가들의 성장에 대해 고민하며, 한국의 클래식 음악 저변 확대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진행하는 중이다. 오는 5월, 아시아 최초로 리카르도 무티(Riccardo Muti)의 이탈리아 오페라 아카데미를 한국에 유치할 수 있었던 것도 연주자로서 경험과 안목, 직관에 따른 추진력이 결실을 맺은 성과라 할 수 있다. 세계적 거장의 마스터 클래스나 오페라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국내 현실에서, 무티의 레슨을 한국에서 직접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전무후무한 이슈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 2015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1회 무티 이탈리아 오페라 아카데미 ©Silvia Lelli

좋은 오페라를 만드는 중요한 조건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을 오페라계에 대입해보면 젊은 음악가는 콩쿠르에 나가거나, 거장을 만나거나, 치열한 양성 시스템에 담금질되어야 한다.

오늘날 재능을 갖춘 젊은 인재들의 상당수는 유럽의 각 오페라극장이 운영하는 일종의 인턴십 프로그램인 ‘오펀 스튜디오’나 북미 지역의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일정 기간 동안 훈련받고, 가능성을 안팎으로 확인받으며 발탁과 발굴로 이어지는 기회를 얻어야 한다. 이런 담금질 과정은 오페라극장뿐 아니라 유명 오케스트라 정단원이 되기 위한 필수 코스가 됐다.

현재 해외 오페라 무대에서 활약하는 우리 성악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은 쾰른 오펀 스튜디오 기간 동안 주어진 단역을 성실히 수행하며 오페라극장 정단원이 됐고, 이후 관계자들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까지 안착했다. 홍혜경·조수미·신영옥에 이어 메트 오페라 주역으로 러브콜을 받고 있는 캐슬린 김은 시카고 리릭 오페라의 ‘영 아티스트’로 발탁되어 단역부터 시작해 이후 메트 오페라의 캐스팅 감독 눈에 띌 수 있었다.

몇 해 전 서울시오페라단 이건용 단장은 “굳이 통계를 내지 않아도 한국 성악가들의 우수성은 해외 오페라 관계자들 사이에서 충분이 입증되고 있다”고 말했다. 라 스칼라의 한 오페라 코치는 “한국 성악가들이 빠지면 유럽 오페라 극장들이 타격받는다”는 이야기를 건넸고, 콩쿠르에 한국인을 못 나오게 했다가 유명무실하게 되니 할 수 없이 세운다는 소문도 있었다는 것. “세계에서 좋은 성악가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가 한국이며,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좋은 오페라를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조건 하나를 갖추고 있다”는 이건용의 이야기는 이제 믿음을 넘어 우리 오페라계 자신감이 됐다.

가수는 충분하다. 반면, 국내 국공립·민간단체에서 제작하는 그랜드 오페라 크레딧을 살펴보면 연출가·지휘자 등 주요 제작진의 상당수는 여전히 해외 인력에 의존하는 현실로, 현재 한국의 오페라 생태계의 불균형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나라엔 극장을 정기적으로 찾는 오페라 관객이 많지 않다. 휴가 시즌을 제외하곤 일 년 내내 오페라극장에 며칠 간격으로 오페라가 계속 오르는 레퍼토리 시스템의 유럽과 한국의 사정은 판이하게 다르다. 상근단원으로 구성된 전속 오케스트라, 합창단, 발레단을 갖추고 있는 해외 오페라극장에서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은 극장을 움직이게 하는 톱니바퀴와도 같다. 그런데 이 모든 조건이 없는 한국에서 세계적인 실력을 갖춘 성악가들이 배출되니 유럽인들은 깜짝 놀라고, 우리는 분석이나 연구조차 없이 그저 환호하고 있을 따름이다.


▲ ©Todd Rosenberg

거장의 철학과 비밀을 공유하는 시간

5월, 리카르도 무티가 한국을 찾는다. 이번엔 자신의 이름을 딴 오페라 아카데미를 아시아에서 처음, 한국에 펼쳐놓기 위해서다. 제임스 러바인과 함께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위대한 베르디 지휘자로 불리는 리카르도 무티는 1941년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에서 태어나 1967년 귀도 칸텔리 지휘 콩쿠르 우승 후 피렌체 5월 음악제 수석지휘자 겸 음악감독을 거쳐,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1973~1984),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1980~1992) 음악감독을 지냈다. 이후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후임으로 1986년부터 19년 간 이탈리아 오페라의 종가 라 스칼라 극장 음악감독을 역임했다. 이를 계기로 무티의 이름은 이탈리아 오페라의 상징이자 하나의 권력이 됐다. 총감독 카를로 폰타나와의 불화로 2005년 불명예를 떠안고 사임했지만, 지금도 반추하게 되는 그의 전성기는 라 스칼라 시절이다. 더군다나 현재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지휘자로 무티를 손꼽는 데 주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흰 도화지 같은 상태의 재능 있는 젊은 음악가 발굴을 위해” 무티는 오페라 아카데미를 지난해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했고, 올해 한국에선 5월 22~29일 ‘경기 리카르도 무티 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개최한다. 18~32세의 음악 전공자를 대상으로 지휘·성악·오페라 코치(피아노 반주) 부문 수강생을 선발해,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를 초점에 두고 전 부문을 무티가 함께 한다.

5월 29일에는 경기 필의 지휘봉을 잡아 유망한 아카데미 수강생들과 함께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라 트라비아타’ 공연을 콘서트오페라 형식으로 올린다. 무티는 올해부터 지휘봉을 잡는 오케스트라를 5개(시카고 심포니·베를린 필·빈 필·뮌헨 필·루이지 케루비니 유스 오케스트라)로 제한하면서 경기필로선 이번 아카데미를 통해 무티와 전무후무한 인연을 맺게 됐다.

‘경기 리카르도 무티 아카데미’로 한국에 네 번째 발걸음을 앞둔 리카르도 무티와 이메일로 이야기를 나눴다.



▲ 2015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1회 무티 이탈리아 오페라 아카데미 ©Silvia Lelli

2015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아카데미를 처음 시작했다.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는지?

“지금까지 살면서 많은 것을 얻었고, 또 배웠다. 과거 위대한 지휘자들에게서 전수받은 비밀스러운 노하우와 경험을 지휘와 성악을 공부하는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서 아카데미에 대한 구상이 시작됐다. 이런 생각을 10여 년 전, 작은아들과 공유했다. 리허설부터 최종 무대에 이르기까지 오페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탈리아 오페라 아카데미 프로젝트를 통해 더욱 다양한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약 2년간의 실제적인 준비 끝에 무티는 2015년 여름, 아내 크리스티나가 예술감독을 맡은 이탈리아 라벤나 페스티벌 기간 중 첫 번째 아카데미를 개최했다. 그의 작은아들 도메니코 무티는 현재 오페라 아카데미의 행정 부분을 총감독하며 아버지를 돕고 있다.

과거 노하우를 전수받은 지휘자 중 누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나?

“수많은 스승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한 사람만을 택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한 명을 꼽자면 안토니노 보토를 언급해야 할 것이다. 라 스칼라 극장에서 토스카니니의 가르침을 직접 받은 그를 베르디 음악원 시절부터 사사하면서 베르디(1813~1901)‐토스카니니(1867~1957)‐보토(1896~1985)로 이어지는 이탈리아 오페라 계보를 이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라 스칼라 극장에서 토스카니니의 조수를 지낸 안토니노 보토는, 부지휘자를 거쳐 1948년엔 상임지휘자로 취임했다. 토스카니니의 어깨 너머 많은 것을 배운 그이지만, 개성을 표출하기보다 오히려 보수적인 관습을 존중하며 이탈리아 오페라 지휘에만 일관된 삶을 살았다. 그런 면에서 무티의 음악적 기질은 보토보다, 깐깐한 다혈질 완벽주의자 토스카니니와 더 닮은 듯하다.

아카데미 레퍼토리를 ‘이탈리아 오페라’로 한정했다.

“앞서 언급한 이탈리아 오페라 계보에 속해있는 음악가로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오페라의 첫 언어는 이탈리아어 아닌가. 이탈리아어로 쓰인 글과 음악에 대한 이해 없이 오페라 지휘를 하는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아카데미 프로그램으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를 택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내 아카데미에서 베르디는 아주 중요한 작곡가다. ‘라 트라비아타’는 관객들에게 줄거리와 아리아가 잘 알려진 작품인데, 이렇게 유명한 작품일수록 본래 의도와 다르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해석해 좋지 않은 결과물을 내놓는 일이 상당하다. 초연 당시 사회적으로 굉장히 혁신적인 작품으로 여겨진 ‘라 트라비아타’를 요즘엔 너무 센티멘털하거나 부풀려 표현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베르디가 원하던 바가 아니다. 또한 잘못된 해석으로 작품의 본질이 흔들려서도 안 된다. 베르디가 했던 대로, 그의 생각을 존중하며 해석하는 방법을 이번 아카데미에서 보여줄 것이다.”

무티에게 ‘라 트라비아타’는 기록적인 작품 중 하나다. 1987년 라 스칼라 취임 이래로 무티는 베르디의 모든 작품을 새로 제작해 무대에 올린다. 그중에서 마리아 칼라스의 마지막 공연 이후 소프라노 티티아나 파브리치니를 발굴해 30년 만에 올린 1989/1990 시즌 ‘라 트라비아타’는 성공적이었다. 이후 4년 뒤에 올린 ‘라 트라비아’도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공연 시작 직전, 오케스트라 노조원들이 파업을 일으키면서 공연이 취소될 위기에 처한 것. 예정된 시작 시간보다 30분이 경과한 뒤, 무대로 올라온 무티는 객석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꺼낸다.

“아마 제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마음 아픈 순간일 겁니다. 여러분은 음악을 듣기 위해 이곳에 모이셨고, 이곳은 예술이 자신의 권리를 갖고 있는 라 스칼라입니다. 여러분께서 허락하신다면 제가 피아노로 반주하면서 오페라의 몇 대목을 연주해보겠습니다.”

결국 이날의 ‘라 트라비아타’는 무티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공연됐고, 이후 관객과 언론 모두 무티에게 찬사와 경의를 표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실시하는 무티 아카데미를 한국에서 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한국에서 훌륭한 음악가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는 것이 큰 이유 중 하나였다. 특히 한국 성악가들은 발음이나 연기 면에서 이탈리아 오페라를 충분히 소화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 이탈리아인 못지않게 열정적인 것도 잘 안다. 한국은 이탈리아 오페라에 굉장히 열려 있는 토양이고,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탈리아 오페라가 시작되는 젊은 단계에 있다. 이번 아카데미 과정을 통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음악학도들에게 이탈리아 오페라 레퍼토리를 전하고,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오페라극장에 들어선 관객은 어둠 속에서 가장 먼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오케스트라 피트 속 지휘자의 뒷모습을 본다. 조명 아래서 그저 ‘지휘봉을 흔든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오페라 지휘자의 역할은 그보다 훨씬 까다롭고 고되다. 일례로 2009년 다니엘 바렌보임에게 발탁되어 동양인으론 처음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부지휘자로 활동한 윤호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는 첫 3~4년간 매 시즌 초연되는 현대 오페라 작품을 사전에 숙지해 오케스트라, 가수들의 연습을 이끌며 세세하게 준비시키는 일을 도맡았다. 그야말로 오페라극장 ‘말단’에 준하는 경험이다. 오페라 지휘자에겐 음악을 아는 것 그 이상의 복잡다단한 능력이 요구된다.

아카데미에서 지휘뿐 아니라 성악·오페라 코치 부문까지 직접 맡아 가르친다.

“한 편의 오페라는 지휘자, 오케스트라, 성악가 그리고 오페라 코치가 함께 만들면서 현실화된다. 여기에서 지휘자는 충분한 공부를 통해 오페라 작품에 높은 이해를 갖춰야 하며, 가수들을 연습시킬 수 있을 정도의 피아노 연주 또한 가능해야 한다. 이것이 과거 훌륭한 오페라 지휘자들이 해온 방식이고, 나 역시 그와 동일하게 할 따름이다.”

오페라 제작 과정에서 지휘자·성악가·오페라 코치에게 공통으로 요구되는 자질은 무엇인가?

“성공적인 오페라를 만들기 위해선 구성원 각각의 타고난 재능, 반드시 해내겠다는 의지, 서로 배려하는 희생과 절제 그리고 타 분야에 대한 존중이 필수적이다. 이것은 모든 파트에 적용되며, 프로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특히 오페라 지휘자 역할에 관해 강조한다면?

“텍스트를 존중하고, 의미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이 기본이다. 1970년대부터 텍스트를 존중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진지하고도 정확한 해석은 반드시 필요하다. 어떤 해석은 오페라 공연의 본질 자체를 흐리게 할 정도로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베르디가 얘기했듯이, 작품은 작곡가가 원하는 대로 존중되어야 한다. 그래서 베르디·벨리니·모차르트의 작품들을 대할 때 단순히 음악성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어우러진 텍스트가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전 세계에서 모인 젊은이들과 지난해 아카데미에서 음악과 텍스트를 가지고 작곡가 의도에 접근하는 방법을 공유했는데,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경험이 됐다.”

무티는 지난해 아카데미 프로그램으로 베르디의 ‘팔스타프’를 택했고, 수강생 중 재능 있는 학생 몇몇을 라벤나 페스티벌의 ‘팔스타프’ 무대에 올렸다. 아카데미 과정은 지원한 음악 전공생 외에 비전공자 및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을 수 있게 빗장을 열어놓았다. 덕분에 청강생들은 성공적인 오페라 공연이 만들어지는 생생한 과정의 목격자가 되었다. 이러한 형식은 올해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진행된다.

아카데미 과정을 일반 대중에게 전체 공개한다. 어떤 경험이 공유되길 바라는가?

“음악을 막 배우기 시작한 어린 음악학도뿐 아니라, 음악에 관심을 가진 모두에게 열려 있다. 지난해 아카데미에선 때때로 청강생의 눈높이에 맞춰 쉽고 흥미로운 설명을 풀어놓을 때도 있었다. 아카데미에 참여한 이들 모두가 오페라를 조금이라도 더 친숙하게 여기고 즐기길 바란다.”


▲ ©Silvia Lelli

베르디가 원했던, 그대로

무티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악보 순결주의’다. 작곡가 의도를 존중해 자필보를 세세히 연구하고, 원본 텍스트에서 어느 것 하나 가감 없이 살리려 애써온 일화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그의 열정은 베르디의 작품을 충실하게 연주하기 위한 노력에서 시작됐다. 무티는 “베르디의 작품은 내 음악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사랑의 대상이다. 베르디가 만약 ‘무티, 당신의 연주는 틀렸소’라고 한다면, 정말 끔찍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베르디 작품에 대한 해석은?

“일반적으로 베르디 음악을 마치 밴드가 연주하는 것처럼 하는 경우가 있다. 고귀함과 섬세함이 베르디 음악에 담겨 있는데도 오로지 멜로디만 따라서 연주하는 경향이 종종 발견된다. 그건 정말 잘못된 연주다. 또한 지휘자들이 베르디의 작품을 만들어갈 때 겪는 어려움은 연주 실력보다, 연주자 역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아카데미에서는 특히 오케스트라에 큰 초점을 두고, 연주자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작곡가 의도대로 해석하기 위해 시간을 어떻게 보내나?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기 직전까지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음악사 관련 책을 읽으며 연구하고, 끊임없이 악보를 분석한다. 그렇게 공연을 올리지만, 모든 연주가 끝난 뒤에는 아쉬움이 늘 남는다. 작곡가 의도를 살피기 위한 시간은 늘 충분치 않다.”

1970년대 이전까지 오페라 제작의 큰 권한은 지휘자에게 달려 있었다. 이후 작품의 시대 배경을 연출가가 자유롭게 바꿔 설정하는 레지테아터(Regie-Theater) 개념이 오페라에 적용되면서 오페라를 이끄는 힘은 음악보다 극으로, 지휘자에서 연출가로 기울어졌다. 이러한 현상을 당신은 어떻게 보는가?

“한 편의 오페라를 만드는 데 있어, 어느 쪽에 힘이 실리는지 논하는 것은 그리 중요치 않다. 작품의 해석에서 가장 큰 초점은 작곡가 의도에 있고,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지휘자, 오케스트라, 성악가 그리고 오페라 코치에 이르는 모든 구성원이 텍스트에 신뢰를 갖고 작품에 담긴 의도를 관객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들이 오페라가 의도하는 바를 놓치거나, 잃어버린다면 그 공연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올봄 한국에서 들려주겠다.”

요즘 눈여겨보는 아시아 출신의 젊은 음악가가 있나? 최근 해외 콩쿠르에서 한국 출신 음악가가 상위권을 차지하는 일들이 늘어났지만, 우승 이후 본격적인 커리어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특정 음악가를 콕 집어 말하지는 않겠다. 다만 한국의 음악가들이 타고난 재능이 뛰어나다는 것, 특히 성악가들은 이탈리아 오페라에 기질적으로 뛰어난 모습을 갖추고 있음을 목격했다. 그러나 재능이 전부는 아니다. 성공을 위해서는 인생 전체를 내던질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2015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콘서트오페라 형식으로 공연한 베르디 ‘에르나니’에서 여주인공 돈나 엘비라 역을 맡은 소프라노 여지원은 한국보다 무티가 먼저 알아보고 발탁한 인물이다. 2013년 라벤나 페스티벌에서 ‘맥베스’의 여주인공 맥베스 부인을 부른 것을 눈여겨본 무티가 직접 그녀에게 오디션을 제안했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소프라노 앞에 놓인 기회가, 재능과 용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순간이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녀에게 무티의 선택은 다시 한 번 주어져 오는 5월, 여지원은 무티가 스웨덴 스톡홀름 로열 오페라극장에서 올리는 베르디 '맥베스'에서 맥베스 부인 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유럽에 비해 한국의 클래식 음악 관객은 젊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 종주국이 아니기에 뿌리가 튼튼하지 않고, 마켓이 형성되기도 쉽지 않다.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가 클래식 음악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한국이나 중국에선 음악 전문학교를 세워 재능 있는 젊은 음악가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교육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토대에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인 유럽의 좋은 프로그램이 연계된다면, 클래식 음악과 오페라의 저변을 넓히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오늘날,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예술가는 사회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다. ‘아름다움의 감각’을 사람들에게 전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삶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안타까운 분열이 계속 일어나는 오늘날, 사람들에겐 잠시 멈추고 생각할 시간적 여유조차 없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오페라를 관람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을 서로 연결하고 화합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오케스트라를 이루는 80여 명의 연주자가 각자의 악기를 연주하면서도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존중하는 것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무티의 답변을 기다리던 3월, 한국에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 소식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렸다. 바둑을 모르는 사람도 한 수에 울고 웃으며 세기의 대국을 지켜보는 사이 구글의 지주사인 알파벳의 자산 가치는 58조원이 됐다. 2016년 봄, 구글의 ‘이벤트’는 ‘이슈’가 됐고, ‘이펙트’를 양산하는 중이다.

5월,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계 최대 이벤트가 될 ‘무티 아카데미’도 이렇게 될 수는 없을까. 이를 위해 무엇보다 가능성을 지닌 한국의 음악학도들이 홈그라운드 이점을 적극 활용해 기회의 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경기도문화의전당으로선 거장의 국제적인 아카데미를 처음 유치한 경험을 발판 삼아, 장기적인 자체 프로젝트를 태동시켜주길 기대한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재능 있는 개인이 홀로 고군분투해야 하는 한국 오페라 생태계에서,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를 위해 관공의 이해와 지원은 필수다. 한국 클래식 음악계 전반적으론, 이번 이벤트에 잠재된 새로운 관객 유입의 가능성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거장의 발걸음이 부분적으로만 성장해온 국내 오페라 생태계를 살피고 균형을 잡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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