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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대릉원 ‘겨울과 봄 사이,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를 듣다’
해금 연주자 꽃별의 ‘거기서 들려오는 소리’
글 꽃별(해금 연주자) 4/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4월호 - 전체 보기 )

 
 
오랜만에 경주에 갔다. 이 연재를 준비하면서 꼭 이맘때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봄을 기다리는 계절, 겨울과 봄의 경계에서 만난 맵싸한 여행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 전국에 폭설이 내렸다. 세상은 아름다운 눈으로 덮였다. 눈이 온 아침은 고요하다. 공기에서는 깨끗한 냄새가 나고,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빛난다. 나무들은 하얀 옷을 입고서 숨죽여 싹 틔울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소리 없이, 봄은 우리 곁으로 오고 있었는데 함박눈이 그걸 슬쩍 가로막았다. 산책길에 나가보니 아이들은 신나서 아빠가 끄는 썰매를 타고, 쌓인 눈으로 3단짜리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차가운 날씨조차 포근하게 만들어주는 눈은, 도시의 사람들에게 축제 같은 하루를 선물했다. 눈 속에서 즐거워하는 이들을 보면서 사람이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생각했다.
 
여행을 떠나는 아침, 문을 열고 나오니 여전히 세상은 하얗고 고요했다.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탄성이 나왔다. 아! 나무들은 죄다 하얀 눈꽃을 피우고 있었다. 작은 나무, 키 큰 나무, 벌거숭이 나무, 품이 넉넉하거나 새초롬한 나무… 모든 나무가 너나 할 것 없이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빛났다. 크리스마스트리로 쓰이는 침엽수 가문비나무는 무거운 눈을 떨구지도 못하고, 어깨가 축 처지도록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흙빛은 간데없이 땅은 전부 희었고, 눈을 가득 머금은 하늘 역시 흰색이었다.
 
눈으로 가득한 세상을 달리던 수십 분은 내 인생에서 손꼽힐 잊지 못할 장면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그들과 이 장관을 함께 볼 수 있다면, 그들에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세상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렇게 떠오르는 얼굴은 하나같이 웃고 있었다.
 
 
눈보라와 닮은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
 
눈이 내리는 걸 보면 나의 귓가에는 가야금 소리가 들린다. 단단하면서도 한편으로 느슨하게 묶인 명주실을 다부지게 오른손으로 뜯고 퉁기고, 왼손으로는 날렵하게 손가락 끝을 세워 줄을 누르고 또 흔든다. 음정 하나하나가 떨어져 있지만 먼저 울린 줄의 울림이 사라질 즈음, 다음 줄이 그 사라지는 소리를 물고 나온다. 그래서 가야금은 단호하게 떨어지고, 유연하게 이어진다.
 
처음 우리 음악을 시작했을 때 나는 여성적인 것을 싫어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여성스러운 악기로 불리는 가야금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그저 예쁘게 줄을 뜯는, 가벼운 울림을 지닌 악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국악 방송을 진행하면서 새롭게 보게 된 것 중 하나가 바로 가야금이다. 가야금이 여성적이라고 생각한 건 나의 선입견이었다. 가야금을 연주하는 자태가 매우 단아하기 때문에 그 소리도 단아한 여인을 닮은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소리만 듣고 있으면, 다이내믹이 매우 풍부한 악기임을 알 수 있다. 낮은 음정의 줄을 흔들면, 그 울림이 매우 깊다. 첫사랑을 겪는 소녀의 떨림으로 비유하기에는 시리고, 서늘하다.
 
어느 눈 오는 날이었다. 청취자의 신청곡으로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를 듣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가슴이 심하게 쿵쿵거렸다.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와 휘몰이, 세산조시로 휘몰아치는 장단과, 그 장단을 밀치며 뿜어져 나오는 명주실의 울림. 무심코 들을 때는 느끼지 못하던 숨 막히게 밀어붙이는 가락의 진중함이란! 그렇게 까다로운 장단을 물처럼 넘나들면서 머릿박을 무시무시하게 밟기도 하고, 마지막에 붙어 있는 끝 박은 오히려 느긋하게 펼치기도 한다. 그 장단의 조화를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게 폭풍처럼 몰아치던 장단을 또 급작스럽게 두세 배로 느리게 해석하기도 하면서, 듣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휘젓고 마는 가야금 산조. 특히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는 매우 섬세하고 화사한 듯하면서도 단정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면서도 매우 박력이 있다. 가락이 시원스럽게 흘러가고, 느닷없이 변화하면서 끊임없는 물결을 만들어낸다. 높은 음에서 선율을 이어가며 숨을 조여오다가, 한 번에 저 아래 음으로 곤두박질할 때면 그 자유로움과 분방함과 무상함에 작은 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김죽파 명인(1911~1989)은 가야금 산조를 처음으로 만든 김창조 명인의 손녀다. 어깨너머로 배운 할아버지의 가락을 어찌나 잘 따라서 표현하는지 부친의 극심한 반대에도 가야금을 잡았고, 결국 인간문화재가 되었다. 할아버지에게서 나온 가락을 평생 안고 다듬어서일까. 서슬이 퍼렇다가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담백하게 이어지는 가락은, 세상 어느 음악보다 사람의 마음을 쥐었다 폈다 하는 힘을 가졌다.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눈보라가 치는 날은 어김없이 김죽파 명인의 가야금 산조가 떠오르는 것은. 잡을 수 없이 휘날리는 눈발처럼, 조를 흩트린다는 뜻을 지닌 ‘산조’라는 음악의 특징처럼, 가야금은 가락을 흩어놓는다. 그리고 끝내 고요하게 세상을 덮어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생명의 탄생을 북돋우기라도 하는 듯이.
 
 
 
삶과 죽음의 경계, 대릉원
 
경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다. 일단 높은 건물이 없는 것이 좋고, 톨게이트를 나오면 느껴지는 아담하고 따뜻한 기운이 좋다.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 천년 고도 신라의 독특하고 내밀한 아름다움이 참 좋다. 도시 한가운데에 자리한 대릉원은 신라의 왕과 왕비 그리고 귀족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산 속에 무덤을 쓴 조선 시대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신라시대, 경주에는 거대하고 화려한 건축물과 높다란 탑이 많았다고 한다. 그렇게 화려한 문화는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숭유억불 정책과 성리학으로 인해 문화 전반에 걸쳐 사치스러운 장식을 배제했고, 섬세한 미적 감정을 미학이 아닌 것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디딤돌조차 자연의 돌 그대로를 살려서 쓰고, 왕궁이나 정원을 만들 때도 본래의 경관을 헤치지 않도록 했던 자연친화적 문화가 조금은 서운하다. 신라가 더욱 번영했으면 우리에게 남겨진 건축물이나 불상, 장식적인 모든 것이 더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 때문이다. 유교가 지닌 훌륭한 점이 많겠지만, 인간이 지닌 욕구를 지나치게 억제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점에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10년 쯤 전에 경주 여행을 했을 때, 새벽에 대릉원을 가게 되었다. 아직 입장 시간 전이라는 걸 알고는 입구에서 서성거리고 있는데, 때마침 출근하던 관리인을 만났다. 먼저 웃으면서 인사를 했더니, 아직 문 열기 전이지만 지금 보면 더욱 좋다면서 살짝 문을 열어주었다. 새벽안개가 내려앉은 대릉원은 그야말로 천상의 세계 같았다. 입구에 들어서면 나오는 소나무 숲의 영험한 기운, 새벽 나무들이 뿜어내는 알싸한 향기, 아직 빛의 기운이 스미지 않은 숲 사이로 멀리 보이는 둥그런 무덤들… 그야말로 인간의 세계와는 다른 차원의 공간 같았다. 조용히 맞이한 새벽, 둥그렇고 나지막한 무덤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때 마음에 담은 대릉원을, 사진을 꺼내듯 가끔 꺼내어본다. 엄마의 젖무덤에 기댄 듯 아늑했던 그날이 떠오른다.
 
여전히 대릉원은 평화로웠다. 해가 기울어가는 시간의 무덤은 새벽과는 전혀 다른 감상을 주었다. 뭐랄까, 엄숙하고 느긋했다. 죽은 이들도 일어나는 시간과 잠드는 시간이 있는 것일까. 무덤에는 주인이 없었다. 물론 이전에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천마총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누구누구의 무덤이 아니라, 천마의 그림이 나온 무덤이라고 해서 천마총이라니… 살아 있을 때는 귀한 사람으로 살았지만, 죽고 나서는 말 그림이 주인 행세를 하는 무덤에 누워 있다. 인생무상이 이런 것일까. 천마총 앞에서 왠지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인생처럼 흐르는 가야금 산조
 
언젠가 혼자 등산을 하면서였다. 왼쪽은 낭떠러지고, 그 옆으로 이어진 좁다란 흙길은 겨우내 얼었던 눈이 녹으면서 완전히 진창이 되어 있었다. 아무도 없는 산을 오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왼쪽 허공으로 한 발짝만 내밀면 죽음이고, 그 왼쪽으로의 한 발을 선택하지 않고 걸음으로 인해 삶이 이어지고 있었다. 진흙이 잔뜩 들러붙어 천근만근인 신발을 끌고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눅눅해진 신발을 벗고 맨발로 앉아서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한 발 한 발 보태서 천천히 걸어온 길은 출발한 곳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었다. 까마득하게 먼 거리를 이 작은 발로 걸어왔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신기했다. 삶이란 그런 것이려니 싶었다. 아무것도 아닌 듯한 하루하루가 모여서 인생이 되는 것. 어디선가 돌아보면, 놀랄만한 풍경이 담긴 인생이 내 뒤에 있다는 것.
 
가야금 소리도 마찬가지다. 한 음 한 음이 모여서 커다란 물줄기를 만들어 낸다. 특히 가야금 산조는 더욱 인생처럼 흘러간다. 모든 일이 술술 풀리기도 하고, 갑자기 절벽을 만나 깊은 어둠에 잠기기도 한다. 가슴이 먹먹하다가 환희의 빛이 보이기도 한다. 꼭 인생 같다. 김죽파 명인의 산조에도 그런 인생이 담겨 있다. 인생의 굴곡과 아름다움, 끓어오르는 기쁨과 번민들이 그 안에 녹아있다. 그리고 돌아가신 선생의 소리를 수많은 제자들이 이어가고 있다. 선생은 세상을 떠났지만, 음악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손끝에서 끊임없이 다시 태어난다. 
겨울과 봄 사이, 눈으로 덮인 세상. 그리고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세상 속에서 가야금 소리가 들려온다. 낮은 무덤들을 마음으로 쓰다듬으면서 다시, 가야금 소리를 듣는다. 대릉원을 나오며 돌아본 세상에는 가야금 소리 같은 봄이 오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는 안압지에서 이야기를 전합니다.)
 
글·사진 꽃별 
해금 연주자 꽃별은 경계를 허무는 평화로운 음악을 꿈꾼다. 해금으로 세상의 수많은 삶과 이야기를 노래하는 한편, 국악방송 ‘꽃별의 맛있는 라디오’를 통해 우리 음악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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