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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마스터 클래스’
글 유석재(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4/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4월호 - 전체 보기 )




3월 10~20일
LG아트센터

‘대체 불가능 배우’의 귀환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마스터 클래스’(테런스 맥널리 작, 임영웅 연출)의 첫 장면. 피아노와 반주자만 보이는 심플하고 한적한 무대 위, 돌연 뒷벽에 붙은 문이 열리더니 자신만만한 자태의 한 여인이 성큼성큼 걸어 나온다.

“박수는 안 치셔도 됩니다. 수업을 하러 왔으니까요!” 정확한 한국어 발성이 객석에 명징하게 내리꽂힌 바로 그 순간, 그 넓은 무대가 그녀의 존재감으로 가득 채워졌다. 실로 경이적이고 불가해한 카리스마였다.

한국 연극사는 2016년 3월 10일 오후 8시의 이 대목을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배우 윤석화가 반주자 역 구자범과 함께 무대에 나타난 이 장면은, 2010년 1월 24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의 ‘베니스의 상인’ 이후 처음으로 그녀가 연극 무대에서 다른 배우와 함께 공연(共演)을 위해 선 모습이었다. 우리가 한동안 그녀를 잊었거나 혹은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의심했던 사람이라면 이 6년 만의 장면이 각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아니라 ‘그녀가 마침내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연기 인생 40년의 시점에서 윤석화가 택한 작품은 ‘신의 아그네스’나 ‘딸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닌 ‘마스터 클래스’였다. 한때 좌절에 빠졌던 1998년 스스로를 구원해 줬으며 최연소 이해랑연극상 수상자가 되게 했던 작품이지만 그 이후 공연된 적이 없는 작품. 전설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가 은퇴한 뒤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기성 가수를 상대로 열었던 특별 수업이 펼쳐지는 쉽지 않은 내용의 작품이다. 극중 마리아 칼라스는 폭풍 같은 정열의 화신이다.

“극장에서의 성공은 완전한 집중을 요합니다. 100%의 세밀함, 그 이상의 치밀한 집중이 필요합니다” “왜 편지를 들고 있는 척만 하죠? 난 진실을 원해요” “예술가란 하늘에 올라 별을 따기 위해 간혹 쓰레기 바닥을 기어 다니기도 해야 하죠”

무대에 제대로 서기 위해선 지독하게 치열해야 한다는 이 대사들은 ‘칼라스인 척’하는 게 아니라 ‘칼라스가 돼버린’ 윤석화의 연기를 타고 생명력을 얻는다.

칼라스의 수업이 순식간에 모노드라마로 바뀌는 1막과 2막의 후반부에서 연기는 폭포수를 쏟아붓는 것처럼 절정에 달한다. 아리아가 시작되자, 조명에 의해 비현실적으로 강조된 그림자 아래 선 그녀는 오만함 뒤에 감춰진 처절한 외로움과 비애를 토로하며 몸부림친다. “당신에게 모든 것을 바쳤어요, 내 모든 것을요…” 18년 전의 무대에서 그녀가 40대 초반의 활활 타는 에너지를 보였다면, 환갑이 된 지금은 거기에 세월을 겪은 노련한 원숙미가 더해졌다.

여기서 사람들은 깨닫는다. 어디까지가 칼라스이고 어디서부터 윤석화인가? 정열, 조소, 질투, 비탄, 눈물, 의지, 환희가 오페라처럼 교차하고 중첩되는 이 ‘천(千)의 얼굴’은 칼라스이자 윤석화이고, 윤석화이자 칼라스였다. 마침내 그녀는 말한다. “하지만 우린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이 없는 세상에 비해 훨씬 풍요롭고 현명한 세상으로 말입니다” 공연이 끝나자 꽃다발을 든 머리 희끗희끗한 관객들이 분장실 입구에 줄을 섰다. 영욕의 춘하추동 40년, 그리고 이제 춘(春)의 새로운 시작이다. 이 ‘대체 불가능 배우’는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기에.

사진 샘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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