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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과 트리포노프 다큐멘터리
실황과 인터뷰로 느끼는 그들의 매력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3/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3월호 - 전체 보기 )




카메라는 러시아가 낳은 두 피아니스트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떤 피아니스트인가요?

1971년 태생의 예브게니 키신과 1991년 태생의 다닐 트리포노프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감독은 크리스토퍼 누펜. 그는 재클린 뒤 프레,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 다니엘 바렌보임, 핀커스 주커만, 이츠하크 펄먼, 기돈 크레머 등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이다.

키신의 ‘음악의 재능’과 트리포노프의 ‘음악의 마술’은 각각 한 장짜리 DVD로 구성되어 한국어 자막을 갖췄다. 두 피아니스트의 공연 실황은 물론이고, 누펜의 카메라는 음악의 왕국인 러시아 피아니즘의 계보를 잇고 있는 두 피아니스트의 사유와 인터뷰를 생생히 담아낸다. 피아노를 위한, 피아노를 향한, 피아노에 의한 그들의 사유와 언어는 연주만큼 뜨겁고 감동적이다.


▲ ‘예브게니 키신, 음악의 재능’ DVD br
Aulos Media ADVD-067 (DVD, NTSC, Stereo, 16:9, 104분)

키신의 ‘재능’을 말하다

1997년 8월 런던 로열 앨버트홀. 관람석 중앙에 배치된 피아노에서 핀 조명을 받으며 피아노를 치고 있는 남자, 마치 자신의 음악을 뮤즈에게 바치는 듯하다. 키신이다.

영상은 총 104분 분량. 6000명의 청중이 26세의 피아니스트를 놓고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는,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프롬나드 콘서트의 앙코르 현장은 41분 분량이다. 키신은 베토벤 ‘터키 행진곡’, 쇼팽 화려한 대왈츠 Op.34-1, 파가니니-리스트 ‘라 캄파넬라’, 슈베르트 ‘악흥의 순간’, 베토벤 ‘론도 카프리치오’, 쇼팽 마주르카 Op.67-4를 연주한다.

키신의 스승 안나 파블로브나 칸토르에 렌즈가 맞춰질 때, ‘음악의 재능’은 키신만을 담은 영상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건반의 왕자’를 기른 피아노의 여왕은 수더분한 노년의 여인으로 나온다. 키신은 건반에 손이 닿을 정도가 된 두 살부터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눈부신 학습 속도를 타고 여섯 살에 모스크바 그네신 음악학교에 입학하여 칸토르를 만났다. 키신이 로열 앨버트홀에서 리허설을 하는 동안, 무대를 지켜보는 칸토르의 모습에서 사제의 끈끈한 정을, 그리고 그 인연과 믿음의 끈이 오랜 시간 이어져왔음에 놀라게 된다. 그래서 이 다큐멘터리는 ‘음악의 재능’을 발견하고 키운 칸토르에 관한 영상물이기도 하다.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작곡가 키신’의 모습도 보인다. 피아노 앞에 앉아 누펜의 질문을 꼭꼭 씹고, 꼼꼼한 답변으로 풀어내던 키신은 ‘7세에 작곡한 곡을 지금도 기억하느냐’는 누펜의 질문에 답이라도 하듯 그 자리에서 바로 연주를 선보인다.

이런 천재라고 성장 과정이 일사천리이기만 했을까. 키신은 17세에 러시아의 유명 평론가가 자신에게 남긴 문장을 뚜렷이 기억해낸다.

‘지금 우리는 그(키신)의 빼어난 재능으로 인해 새롭게 태어난 연주를 듣고 있다. 그의 연주는 확실히 훌륭하다. 그러나 앞으로 무언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이, 언제,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그것이 그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과제다.’

41분 분량의 전설적인 장면이 펼쳐지기 전, 63분의 영상은 그 전설이 만들어지기까지 다양한 면모를 이처럼 담아내고 있다.


▲ ‘다닐 트리포노프, 음악의 마술’ DVD br
Aulos Media ADVD-068 (DVD, NTSC, Stereo, 16:9, 103분)

트리포노프의 ‘마법’을 말하다

이탈리아의 한 마을. 축제의 행렬이 펼쳐지고 있는 동안, 악보를 부지런히 보며 걸어가는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시즌당 100회의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소화해내고 있는 이 남자, 다닐 트리포노프다.

이 영상은 이탈리아 카스텔프랑코 베네토 아카데미아 극장의 연주 실황을 담았다. 트리포노프는 쇼팽 연습곡 Op.10-8, 스크랴빈 연습곡 Op.42-5, 라흐마니노프의 ‘쇼팽 주제에 의한 변주곡’, 그리고 트리포노프가 직접 편곡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박쥐’ 서곡을 연주한다.

스승 세르게이 바바얀은 19세 때 트리포노프가 보낸 영상으로 트리포노프와 처음 만났다. 그 비디오 속에서 트리포노프는 쇼팽 스케르초 4번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때를 회상하던 바바얀은 말한다.

“쇼팽을 연주하기 위하여 태어난 피아니스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증언이 아니더라도 ‘음악의 마술’ 속의 트리포노프는 쇼팽 연습곡 Op.10-8으로 건반을 뜨겁게 달구며, 그가 직접 편곡한 ‘박쥐’ 서곡에서는 음악적 아이디어가 굉장히 많은 피아니스트이자, 새로운 색채를 찾아내거나 새로운 구조물을 건설하는 의지가 강한 피아니스트라는 느낌을 준다.

그의 강렬한 연주만큼 눈길을 끄는 인터뷰 대목도 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습할 때 일이다. 그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말한다.

‘곡을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아 힘들었다. 복잡한 협주곡이었다.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선 상반신의 힘을 빼고 부드러운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목과 어깨도. 그 홀의 맞은편에 수영장이 있었다. 수영장에서 연습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연주의 완성에만 집중하며 보이지 않는 건반을 두드렸다. 공기는 저항이 없지만 물에는 저항이 있었다. 그 속에서 협주곡 전 악장을 쳤다. 그러고 나서 피아노로 연습했다. 무게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 음이 완전히 변했다. 그 전부가. 손이 무척 자유롭게 되고 편하게 칠 수 있었다.’

피아노 근방으로 땀을 튀기며 흑색과 백색의 건반으로부터 오만 색을 소리를 뽑아내는 그에게 피아노는 형이상학적 사유의 도구도, 우주적인 존재도 아니다. 저항을 이겨내야 할 소리 나는 물건일 뿐이다. 하지만 그 ‘물건’에서 예술의 소리를 뽑아내기 위해 제 자신의 근육과 생각을 연금술로 바꾸는, 이 젊은 피아니스트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트리포노프의 매력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누펜의 영상이 지닌 힘은 이러한 발견에 있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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