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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여배우의 혼’
글 김옥란(연극평론가) 3/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3월호 - 전체 보기 )




1월14~24일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

영혼의 자유로움을 위하여

‘여배우의 혼’은 극단 디렉터그42의 창단 공연이다. 오카다 토시키의 단편소설 ‘여배우의 혼’과 ‘여배우의 혼 속편’을 배우의 퍼포먼스와 설치미술을 결합한 형태로 만든 실험극이다. 퍼포먼스는 배우 조아라가, 미술은 드로잉 작가 이상홍이 맡아 2인극으로 진행한다. 오카다 토시키는 두산아트센터 공연인 ‘현위치’로 한국 관객에게도 낯익은 이름이다.

공연은 흥미로웠다. 혜화동1번지 소극장 공간을 흑백의 두 개 공간으로 나누었다. 한쪽 벽엔 하얀 A4 용지를 잔뜩 붙여놓았다. 다른 쪽은 검은 벽에 흰 분필로 작품의 배경이 되는 하겐다즈와 모스 버거와 지하철 계단을 정교한 드로잉으로 그려놓았다. 흰 벽은 이른바 사후 세계이고, 검은 벽은 현실 세계의 공간이다.

도쿄의 소극장 연극배우 10년 차인 코야마 사다코는 어느 날 자신에게 배역을 빼앗긴 후배 여배우에게 살해당한다. 그리고 사후 세계 입구에서 미술을 전공했으나 제대로 된 예술가도 되지 못한 채 자살한 와카야마를 만난다. 두 사람은 사후 세계로 들어가는 전입신고 등록기관에 함께 줄을 서게 되고, 개인정보 등록 설문 내용인 ‘본 직업 유지를 희망한다/안 한다’란 문구를 두고 토론을 벌인다. 여배우로서 삶에 만족하고 있던 코야마는 여전히 예술가로서 삶을 선택하지만 와카야마는 망설인다. “예술가를 계속하더라도 인종을 다른 걸로 바꿀 수 있을까? 일본인만 아니면 좋겠는데?” 엉뚱한 상상력에 웃음이 터진다. 사후 세계에 대한 상상력이 한없이 발랄하고 경쾌하다. 흰 벽과 검은 벽, 사후 세계와 현실 세계의 경계는 더 이상 엄격하지 않다. 현실 논리를 가뿐하게 뛰어넘는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시원하다. 가뜩이나 검열이다 뭐다 금지의 벽들만 바라보는 요즘, 묘한 해방감마저 준다. 예술가인 건 좋은데 한국의 예술가는 답답한 요즘이다.

사후 세계에 대한 작가의 흥미진진한 상상은 ‘여배우의 혼 속편’에서도 계속된다. 여배우 코야마는 사후 세계에서만 가능한 영원한 시간 덕에 인생의 시간이 부족해 포기했던 대극장 연극의 연기를 연마하는 데 충분한 시간에 만족해하며 여배우로서 삶을 만끽한다. 문득 자신만 너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미안해진 코야마는 와카야마에게 충고한다. 아무래도 와카야마는 현실의 삶을 충분히 살고 오지 못해 사후 세계에서도 불행한 것 같다고. 두 사람은 와카야마가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는데, 그 방법은 단순했다. 신청 서류를 접수하기만 하면 된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것을 마치 옆방 문지방 넘어가듯 처리하는 방식이 자유분방하다. 최근 젊은 세대의 자조적 유행어인 “이번 생은 망했어!”를 비틀어 전복적인 힘을 주기도 한다.

공연의 방식 또한 자유롭다. 단편소설의 내용을 연극적으로 재현하는 것을 넘어 조아라의 몸의 표현력과 이상홍의 설치미술을 적극 활용한다. 코야마의 살해 현장을 검은 벽의 드로잉 배경을 칠판 삼아 친절하게 해설하거나, 미술대학 누드 모델 아르바이트를 했던 코야마의 장면에선 조아라가 다양한 모델 포즈를 취하면 이상홍이 붓으로 흰 칠을 한다. 그런가 하면 소설의 내용을 빠른 속도로 낭독하되 하얀 방의 바닥과 벽에 붙여놓은 A4 용지에 미리 깨알같이 작은 글씨를 써놓고 마치 커닝페이퍼를 줄줄줄 읽는 식으로 낭독 자체를 퍼포먼스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번엔 어디에 커닝페이퍼를 숨겨놓았을까 궁금해하는 관객들 앞에 갑자기 바닥 한 장을 떼어내고 밑바닥에 써놓은 글을 읽는 식으로 장난기도 가득하다. 자신들이 지닌 것을 자유분방하게 표현하고 관객에게 말을 걸 줄 아는 극단이다. 앞으로 행보에 기대를 걸게 된다.

사진 혜화동 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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