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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문지영
행복의 방향성을 묻다
글 장혜선 기자 2/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2월호 - 전체 보기 )




문지영과 강남에 있는 한 카페에 마주 앉았다. 버건디 색상 원피스를 입고, 룽고 커피를 마시며 똘망똘망하게 기자를 쳐다보는 문지영에게 물었다. “요즘 많이 바쁘죠?”

부소니 피아노 콩쿠르 측에 요청한 그녀의 올해 연주 일정을 보고 ‘뜨악’했다. 2017년 4월까지 빼곡히 채워진 연주. 스물한 살의 문지영은 씩씩하다. 지도 보고 공연장을 찾는 것은 고수의 경지에 올랐다고 웃으며 말했다. 휴대폰으로 ‘구글 맵’을 펼치고 유럽의 거리를 활보하는 문지영의 모습이 상상됐다.

지난해 이탈리아 볼차노에서 열린 부소니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피아니스트. 20세에 찾아온 명예로운 순간이었지만, 문지영의 반응은 담담한 편이다.

“원래 주변을 의식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연주하는 그 순간에만 집중하고 싶어요.”

오는 2월 26일에는 박영민이 지휘하는 부천필과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를 연주한다.처음 마주한 레퍼토리라 부지런히 연습하고 있다는 그녀. 부소니 피아노 콩쿠르 입상 후 첫 국내 협연이라 기대가 모아진다.

지난 9월, 부소니 피아노 콩쿠르 우승 이후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나?

콩쿠르가 끝나자마자 1등 수상자에게 계획된 연주를 소화하느라 예정보다 늦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김대진 선생님이 조금 쉬라고 하셔서 한 달 정도를 푹 쉬었다. 현재는 학교를 다니며 새로운 곡을 많이 배우고 있다.

1등 수상 소식을 듣고 부모님과 선생님의 반응은 어땠나?

나와 어머니는 무덤덤했다. 긴 콩쿠르 일정에 체력적으로 지쳐 있는 상태였다. 김대진 선생님께 소식을 전하니, “역대 부소니 콩쿠르 우승자들의 영예를 떨어뜨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행동하라”고 하셨다. 평소에도 선생님께선 칭찬에 인색하신 편이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오니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고 정말 놀랐다.

콩쿠르 이후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느껴지는 변화가 생겼다면 무엇인가?

규칙적인 연주 일정이 생겼다. 예전에는 연주와 연주 사이에 공백이 길었다면, 지금은 부소니 콩쿠르 측에서 일정을 관리해주니 연주가 늘었다. 콩쿠르가 끝나고 새로운 곡을 공부하면서 생각이 복잡해졌다. ‘나의 음악관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같은 곡도 일 년 전과 현재의 내 생각이 완전히 달라서 연주할 때 느낌이 다르다.

지난 대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는지?

역대 부소니 콩쿠르 우승자들이 이번 심사를 했다. 우승에 대한 부담감보다는, 말로만 듣던 유명한 피아니스트들이 내 연주를 본다는 사실이 긴장됐다. 다른 콩쿠르에선 심사위원들에게 연주에 대한 피드백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있는데, 부소니 콩쿠르에선 유독 그럴 기회가 없었다. 콩쿠르 기간에 밥 먹으러 가다가 심사위원들과 마주치면, 알렉산드르 코브린은 항상 무표정이었다. 평소에 좋아하던 피아니스트인데, 무뚝뚝한 모습에 다가가기 힘들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코브린이 갑자기 뚜벅뚜벅 걸어와 나를 꽉 안아주며, “나에겐 네가 최고였다”고 말해줘 가슴이 뭉클했다.

문지영의 행보만 보더라도 해외 콩쿠르 입상이 젊은 연주자들의 화두임이 분명해 보인다.

콩쿠르를 통해야 연주자의 길이 열리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아직까지는 콩쿠르에 대해 단점을 느끼지 못했다. 다만, 콩쿠르 참가자 명단을 보면 모든 콩쿠르에서 이름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항상 똑같은 곡으로, 똑같은 콩쿠르를 준비해, 똑같은 연주만 하는 것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콩쿠르를 통해서 스스로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

국내에서만 교육받은 피아니스트라 더 큰 화제가 됐는데.

아직까지 유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은 없다. 이미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좋은 선생님이 많이 계신다. 유학을 간다면 교육적인 면보다는 다른 나라의 문화를 습득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작곡가가 성장한 나라의 생활 방식을 알면, 곡에 대한 이해가 남다르다. 프랑스 작곡가의 음악이 이해되지가 않아 어려움을 느낀 적이 있는데, 프랑스 친구에게 말하니 자신은 프랑스 음악은 몸으로 느껴진다고 말하더라. 독일 작곡가를 좋아한다. 슈만을 정말 좋아해, 독일어를 배울까 생각 중이다.

2014년 금호 영아티스트 오프닝 콘서트에서도 ‘올(all) 슈만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김대진 선생님께서 제안해주신 프로그램이다. 당시에는 슈만을 좋아하진 않았는데, 선생님께서 나와 슈만이 잘 맞는 것을 미리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슈만은 정말 인간적이다. 사람에겐 누구나 이중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슈만은 작품 속에 대놓고 자신의 이중성을 드러냈다.복잡 미묘한 그 감정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박영민/부천필과 ‘프렌치 클래식’의 일환으로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를 선보일 예정이다. 부소니 콩쿠르 이후 국내 첫 협연이라 의미가 클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콩쿠르가 끝나고, 콩쿠르의 한 관계자가 나에게 “슈만과 라벨 협주곡은 정말 너의 곡이다. 이번 시즌에 배워두면 어떨까?”라고 슬쩍 말했다. 그런데 부천필에서 라벨 피아노 협주곡 제안이 들어와 정말 신기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연습 중이다.


곡을 처음 시작할 때, 어떤 과정으로 연구하나?

곡마다 다르고, 때마다 다르지만, 곡을 정하고 연습을 시작하면 되도록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듣지 않는다. 다른 연주자의 음악을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따라 치게 되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자신 있는 레퍼토리는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자신 있는 레퍼토리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모든 작곡가의 곡을 고르게 잘 치는 사람’이 있고, ‘특정 작곡가만 엄청 잘 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후자에 가까운 것 같다. 작곡가에 대한 호불호가 심하다. 하지만 지금 소화해야하는 레퍼토리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직은 배우는 학생이니 많은 레퍼토리를 섭렵해야 한다.

그렇다면, 가장 자신 없는 레퍼토리를 말해줄 수는 있나?

쇼팽이다. 이상하게도 쇼팽은 대중적이고 귀에 ‘쏙쏙’ 박히는데도 어렵다.

클래식 음악계에 점점 ‘기획물’이 늘고 있다. 많은 연주자들이 콘셉트를 잡고 독주회나 음반 레퍼토리를 결정한다. 나중에 프로그래밍하고 싶은 콘셉트를 생각해본 적이 있나?

실황 음반을 많이 듣는 편이다. 음반 낼 기회가 생긴다면 실황 녹음을 하고 싶다. 예전에 한 연주자의 음반을 듣고 소리에 반한 적이 있다. 그 연주자의 내한 공연을 보러 갔는데, 음반에서 듣던 소리와 많이 달라서 실망했다. 스튜디오 레코딩을 하면 기계를 이용해 소리를 많이 다듬기 때문인 것 같다.

소리에 대한 고민이 많아 보인다.

소리에 집착하는 편이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소리가 모두 다르다. 좋아하는 연주자가 계속 바뀌는데, 최근에는 머리 페라이어 연주에 빠져 있다. 소리가 이성적이면서도 감성적이다.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으면서, 그대로 꽂히는 느낌!

소리라고 하면… 음색을 말하는 것인가.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느낌을 말하는 것인가?

자연스럽게 들려지는 소리다. 성악가들을 보면 목소리가 다 다르지 않나. 피아노도 똑같다. 예를 들어 현악기 연주자들은 자신의 악기를 길들이며 소리를 만든다.

피아노 연주자들은 장소마다 악기가 달라지는데, 피아니스트에게 ‘자신만의 소리’는 무엇을 의미하나?

장소마다 피아노가 달라진다고 악기 탓을 할 수는 없다. 악기를 떠나서 자신만의 소리가 있다. 다양한 콩쿠를 나가며 느낀 점이다. 많은 사람이 똑같은 피아노에서 연주를 하더라도, 각자 뽑아내는 소리는 분명 다르다.

문지영의 연주를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부드럽고, 유연하다’고 평한다. 이러한 평을 들을 때 어떤 기분인가?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열여섯 살부터 나만큼 뻣뻣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일단 몸이 엄청나게 뻣뻣하다. 피아노도 마찬가지다. 나의 단점은 부드럽지 못한 것인데, 부드럽다고 평을 해주니 정말 의외다.

2013년 금호아트홀 독주회에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곡들로 레퍼토리를 선정했다고 들었다. 당시 고민하던 단점은 무엇인가?

너무 내성적이었다. 레슨을 가면 선생님이 항상 하는 말은 “더, 더, 더!”였다. 버르토크처럼 시원하게 쳐야 하는 곡들로 독주회 프로그램을 결정했다. 그 당시 독주회를 준비하며 과감해진 면이 있다.

“김대진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의 음악적 개성을 존중해주신다”고 말한 인터뷰를 봤다. 본인의 해석과 선생님의 해석이 다를 때 어떻게 절충하나?

절충해서 맞춰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음악은 나와 선생님의 해석이 합쳐져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나의 길을 가다가, 그 길에서 심하게 벗어나면 선생님이 다시 방향을 잡아주신다. 선생님이 말한 것에 대해 고집을 부리진 않는다. 내가 너무 벗어났기 때문에 알려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독기’를 품고 한다”고 말했다. 스스로 독하다고 느낀 적은 언제인가?

3년 전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지금은 조금 자유로워졌다. 열여덟 살에는 피아노를 ‘많이’ 치고 싶었다. 하루에 평균 8~9시간 연습했다. 현재는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느긋해졌다. 무엇보다 나에게 적당한 연습량을 찾았다. 5~7시간 정도가 적합하다. 그보다 못하면 부족하고, 더 하면 육체적으로 힘들다. 한 거장 연주자는 ‘하루에 4시간 이상 연습하면 정말 멍청한 거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웃음)

중고등학교 모두 홈스쿨링을 했는데, 학창 시절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후회는 없다.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대학생이 되니 또래 친구들이 많아져 설렌 점은 있다. 입학 후 일 년 동안 정말 많이 놀았다.

21세 문지영의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가?

영화 보고, 맛집 탐방을 한다. 커피도 많이 마시는 편이다. 하루에 보통 세 잔을 마신다. 하지만 역시 피아노가 삶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무엇을 하든 피아노만큼 열정을 느낀 적은 없다.

10년 뒤에는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

일 년 전에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는데, 요즘은 ‘행복한’ 음악가를 꿈꾼다. 너무 많은 연주는 스트레스를 준다. 행복하게 연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진 박진호(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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