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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헤리치의 베르비에 페스티벌 2007 실황‘&아르헤리치와 친구들 2013’ 실황 DVD
든든한 신뢰 위에 쌓은 넉넉한 음악
글 김주영(피아니스트) 10/1/2015 |   지면 발행 ( 2015년 10월호 - 전체 보기 )



정말 보고 싶고 궁금하던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났을 때, 반가운 기분과 함께 서늘하게 뇌리를 스치는 깨달음이 있다. ‘이렇게 많이 변하다니’ ‘나도 어느새?’ 등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때론 세월의 흐름을 주변 환경과 내 곁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기도 한다.

마르타 아르헤리치를 사랑하는 팬이라면 누구나 하얗게 변해가는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보며 세월의 흐름을 인지할 것이다. ‘아름답던 그녀가 어쩜 저렇게 변했을까’ 하는 격세지감의 안타까움이 와 닿는다. 하지만 언론과 마주하지 않는 신비주의 아닌 신비주의를 고수하던 피아니스트가 솔로 연주 종료를 선언한 후 앙상블리스트로 변신해 팬들에게 한 발 친근하게 다가온 것이 뿌듯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정작 그녀의 연주를 들어보면, 그렇게 많은 변화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여전히 날이 선 테크닉이 짜릿한 쾌감을 품는다. 프레이즈의 음영을 본능적으로 포착해 날렵한 선으로 그려내는 솜씨도 여전하다. 무엇이 변했을까? 검고 싱싱한 머릿결은 잃었을지 모르나, 아르헤리치는 ‘사람’을 얻었다. 음악적으로 공감하고 인간적인 내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든든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친구’들과 행복한 여생을 보내는 그녀의 인생 후반부는 어떤 피아니스트보다도 풍족하고 넉넉해 보인다.


▲ 아르헤리치의 베르비에 페스티벌 2007 실황 마르타 아르헤리치·가브리엘라 몬테로·랑랑(피아노)/르노 카퓌송·줄리안 라츨린(바이올린)/유리 바시메트(비올라)/미샤 마이스키(첼로) DG 02894795096/7 (2CD, DDD)

베르비에 페스티벌, 실내악의 정수를 보여주다

화려함과 다재다능함을 고루 갖춘 아르헤리치와 그 친구들에게도 2007년 7월 27일의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은 특별한 이벤트였다. 페스티벌 측은 모든 프로그램과 연주자를 온전히 아르헤리치에게 맡겼다. 이에 그녀는 최고의 연주자들이 함께한 두 시간 넘는 프로그램의 실내악의 정수로 화답했다. 그간 여러 페스티벌에 올린 그녀의 레퍼토리 중에서도 하이라이트만 엄선했다.

거칠고 공격적인, 그러나 작품의 창작 의도가 명확히 표현된 베토벤의 피아노 3중주 5번 ‘유령’이 오프닝을 장식했다. 리투아니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줄리안 라츨린은 선이 가는 음상과 정확한 인토네이션으로 작품의 중심을 잡았고, 미샤 마이스키의 첼로는 강한 리듬감과 여유 있는 프레이징으로 작품에 굵은 기둥을 세웠다. 베토벤의 비르투오시티에 주목한 아르헤리치의 연주는 자유롭고 편안했는데, 친구들과의 오랜 호흡이 도움을 주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어진 곡은 슈만의 ‘어린이 정경’이다. 언제나 인기 있는 이 소품은 솔로 연주를 중단한 아르헤리치가 연주했기에 더 특별했다. 음표마다 낱낱이 살아 있는 아름다움과 날카로운 악센트가 감탄을 자아냈다. 문학적 은유를 듬뿍 품었음에도 시크한 템포 감각과 아고기크는 청중을 매료시키는 그녀만의 마술이다.

피아노 듀오를 위해 등장한 그녀의 친구는 다름 아닌 랑랑이었다. 랑랑과의 만남은 예브게니 키신보다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세련미와 예민한 감각을 순발력 있게 그려내는 공통 강점을 소유한 두 사람의 연주는 매끄럽게 흘러내리는 음상과 함께 완성도를 높였다. 슈베르트의 론도 D951의 선율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고, 다채로운 색으로 마감된 라벨의 모음곡 ‘어미 거위’는 번쩍이는 음색과 피아니스틱한 쾌감을 긴밀한 호흡으로 펼쳤다.

그녀의 오랜 친구인 비올리스트 유리 바시메트가 연주한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시종 낙천적인 정서로 격식을 차리지 않은 음악적 대화를 수놓았다. 음색의 조화에서도 오랜 내공이 느껴지는 호연이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르노 카퓌송과 함께한 버르토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인데, 무대가 터져나갈 듯한 긴장과 폭발적인 음향 그리고 파우제까지 함께 느끼며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는 두 사람의 앙상블이 일품이었다. 열띤 청중의 반응은 가브리엘라 몬테로와 두 대의 피아노로 연주한 루토스와프스키의 ‘파가니니 변주곡’에서 보여준 즉흥적이고 원초적인 에너지와 앙코르인 몬테로의 ‘해피 버스데이’ 즉흥 연주를 거치며 더욱 커졌다.


▲ ‘아르헤리치와 친구들 2013’ 실황 DVD 마르타 아르헤리치·니컬러스 안겔리치·프랑크 브랄레·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그반챠 부니아티쉬빌리·미셸 달베르토·데이비드 프레이·넬손 괴르너·다비드 카두슈·스티븐 코바체비치·임동혁·가브리엘라 몬테로·아카네 사카이·마우리시오 바이나·릴랴 질버슈타인(피아노)/로잔 체임버 오케스트라 Bel Air BAC115 (2 DVD)

‘아르헤리치와 친구들 2013’, 화려한 축제 분위기의 현장

제아무리 마르타 아르헤리치라도 2013년 가을의 바흐 협주곡 프로젝트는 가슴 설레는 일이었을 것이다. 10월 21·22일에 살 플레옐에서 로잔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이 음악회는 바흐의 건반악기를 위한 협주곡들을 모아 한 무대에 올린 멋진 이벤트였다. ‘아르헤리치의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자리에 모인 14명의 피아니스트는 이름만으로도 팬들을 설레게 했다. 그녀와의 오랜 인연으로 만들어진 피아니스트 명단은 신구의 조화가 두드러지며, 최근의 인기까지 고려되어 흥미롭다. 두 대부터 네 대의 건반악기를 위한 협주곡까지 망라한 프로그램은 다른 악기를 위한 바흐의 협주곡을 편곡한 것이기 때문에 연주자마다 개성 넘치는 해석이 돋보였다.

경력과 실력을 겸비한 인물들이라도 여러 피아니스트가 함께하는 무대가 부담스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터. 실제로 긴장한 모습이 연주에 나타나는 연주자들도 있었는데, 오히려 자연스러운 모습이 보는 이에게 호감을 더했다.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와 그녀의 동생 그반챠가 오프닝 무대에서 함께한 협주곡 BWV1062는 본래 빠른 템포로 공격적인 연주를 하는 카티아와 그녀를 따라가는 그반챠의 모습에서 숨이 찼다. 이어 BWV1056을 연주한 스티븐 코바체비치, BWV1055를 연주한 넬손 괴르너의 연주도 다소 긴장한 듯 서두르는 행보로 인해 오케스트라와의 호흡 면이 아쉬웠다. 세 대의 건반악기를 위한 협주곡 BWV1063은 미셸 달베르토·프랑크 브랄레·다비드 카두슈가 맡았는데, 노장 달베르토의 리드와 오케스트라의 부드러운 호흡이 많은 박수를 받았다.

네 대의 건반악기를 위한 협주곡 BWV1065는 아르헤리치가 특히 사랑하는 곡으로, 첫째 날의 마지막 곡과 둘째 날의 첫 곡으로 두 번이나 등장했다. 역시 흥미로운 것은 ‘두목’ 아르헤리치의 존재감이다. 같은 곡을 같은 오케스트라와 연주하지만 친구들과의 만남에 따라 첫째 날(릴랴 질버슈타인·마우리시오 바이나·임동혁)은 풍성한 양감으로, 둘째 날(니컬러스 안겔리치·아카네 사카이·넬슨 괴르너)은 억양이 분명하고 또렷한 바로크적 깔끔함으로 해석하는 힘을 발휘했다.

결국 이틀에 걸친 음악회의 승자는 질버슈타인과 임동혁이었다. 질버슈타인의 협주곡 BWV1054는 여유로운 템포 감각과 묵직한 터치, 오케스트라와의 호흡과 다성부 표현을 모두 고려한 호연으로, 전성기 때의 타티야나 니콜라예바를 연상케 했다. 임동혁의 매끈한 터치와 세심한 다이내믹, 탄력 있는 리듬감은 협주곡 BWV1058에서도 십분 발휘되어 새삼 그가 ‘아르헤리치의 우등생’이라는 사실을 실감케 했다. 협주곡 연주에 동참하지 않아 아쉽지만, 단편적인 멜로디만의 즉흥연주로도 넉넉히 바흐적 색채를 들려준 가브리엘라 몬테로의 역할도 인상적이었다.

사진 신나라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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