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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장우재
당신에게 던지는 질문
글 국지연 기자 1/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1월호 - 전체 보기 )




2013년 대한민국연극대상을 수상한 ‘여기가 집이다’, 2013년 창작산실 대본공모 최우수작에 선정된 ‘미국아버지’, 2014년 예술의전당 제작 연극으로 화제를 모았던 ‘환도열차’, 그리고 최근 남산예술센터와 함께 무대에 오른 ‘햇빛샤워’까지 연출가 장우재의 행보가 연극계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15년 7월 9일부터 26일까지 무대에 올린 연극 ‘햇빛샤워’는 2013년 남산예술센터가 주최한 제4회 남산희곡페스티벌에서 낭독 공연으로 첫선을 보인 작품으로 그 이후 공동 제작 공모 과정을 거쳐 2015년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선보였다. 이 작품은 20세의 순진한 청년 동교와 그의 집 반지하 셋방에 사는 백화점 직원 광자를 통해 비틀린 삶의 양상과 가난한 자들의 모습을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요즘 무대에 오르는 연극들의 반응이 좋습니다.

최근 들어 제가 한 일보다 과대평가를 받고 주목받는 것 같습니다. 작품을 많이 봐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시니 감사할 뿐이죠.

‘햇빛샤워’와 ‘여기가 집이다’ 등 작품 속 소외된 계층에 대한 시선이 돋보이는데요.

생각해볼 거리들을 던지려고 노력했지요. 제가 작업하는 주제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가난’입니다. 그런데 이 ‘가난’이라는 것이 예전에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많이 달라요. 예전엔 ‘가난’이 작고 하찮은 것이었다면 지금의 ‘가난’은 나비처럼 화려하고 치밀한 모습이에요. 그리고 가난을 표현하는 전통적인 방식이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면이 많았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관계학 속에서 가난이 실제로 어떻게 변형되고 삶을 파괴하는 지 보여주려고 했어요.

가난을 근거 없는 희망과 감동으로 포장하지 않았다는 거군요.

본질적으로 사람의 기본 성향이 있기 때문에 바라보는 태도가 갑자기 바뀌긴 어렵겠지만 ‘가난’과 ‘부조리함’이 인정주의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복잡한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잡아내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 문제와 현상을 지금 함께 연극을 보고 있는 관객들도 같이 생각하게 하고 싶었고요.

‘햇빛샤워’를 보고 저 역시 누군가에게서 질문을 받은 느낌이었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게 바로 질문을 던지는 거였어요. 정해진 답을 구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 같이 공감해주고 생각해보자는 거죠.

사회성 있는 소재가 너무 어렵게 다뤄질 경우 젊은 사람들은 연극을 어려워하고 멀게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점에서 ‘햇빛샤워’는 굉장히 반가운 연극이었어요.

주제가 세상과 너무 동떨어져 있거나 어렵게 표현되는 것을 저는 가장 경계하고 있어요. 작품의 소재는 어쨌든 세상에서 끄집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우리의 가슴과 머리에서 뒷전이 될 수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영원히 버릴 수 없지요.

그동안 무대에 오른 작품들은 가치 있는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던 것 같아요.

인문학적 사유는 깊게, 연극의 표현은 새롭게 하려고 노력했지요. 저는 새로운 표현을 하는 사람들을 무척 좋아해요. 얼마 전 시상식장에서 만난 고선웅 형하고 서로 입고 온 옷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눴는데, 형을 보면서 ‘야생적인 타짜 같다’고 했더니 형이 바로 ‘넌 소장수 같은 옷차림이네’라며 웃더군요.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재미있는 표현들을 하는데, 전 왠지 그 대화가 즐겁고 좋더라고요.

요즘 우리 사회가 인문학적인 성찰에 대해 관심이 많기는 한데요.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평생 우리가 생각해야 할 숙제이지요. 그런 면에서 인문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아요. 사람이 단순히 먹고사는 것만으론 한계가 있죠. 채워지지 않는 허기, 구멍 난 삶의 의미를 채우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인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어떤지, 사회의 구조는 어떤지 돌아보고 생각해보는 태도가 필요해요. 세상을 바라보는 눈, 넓은 세계를 조망하려는 마음이 사람을 더 살게 하고 지금보다 나은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준다고 믿어요. 그걸 보여주는 것이 연극이고요.

상업연극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데 연극이 지닌 고유의 힘을 다시 끌어낼 때가 아닌가 싶네요.

연극은 다양한 현상을 캐치해 극 안으로 끌어오는 과정에서 철학적 사유와 미학적 사유가 필요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탄생하기 때문에 울림이 크지요. 이제 연극은 점점 더 대중매체에서 벗어나고 있어요. 대중매체로서 연극을 길들인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에요. 그래서 연극은 더 연극만의 독자적 예술성을 단단하게 가져가야 할 것 같아요. 인문학적인 깊은 성찰이 연극에서 절실한 이유도 이 때문이지요.

한동안 영화계도 있었는데, 어떤 경험을 하신 건가요?

2007년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갔고 이후 영화 쪽에서 일을 좀 했어요. 그런데 당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한 모든 작업과 삶이 실패했지요. 실패를 겪고 나니 이제 그 답을 가까이에서 찾자는 마음이 들더군요. ‘내 생각을 그대로 정리해보자’, 그리고는 실패를 기록하기 시작했죠. 시선을 낮추고 세밀한 곳에서 작업의 의미를 찾았어요. 나의 실패를 공유하고 다시 들여다본다는 느낌, 그런데 그 실패의 자리는 은근히 따뜻하고 위안이 됐어요. 사람들이 그때부터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 같아요.

실패를 공유한다는 말이 의미 있게 다가오네요.

실패라는 시선으로 어떤 소재나 상황을 사유하고 바라보면 역사도 달리 보이기 시작하죠. 단순히 직접적인 사실과 결과로 인한 선악의 구분이 아닌 색다른 시선, 입체적인 분석, 다양한 관계 속에서 사건과 사람들을 들여다보게 되는 거죠. 시간의 유한성과 공간의 역사성을 알고 그 안에서 자유로울 때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시간의 유한성과 공간의 역사성은 극단의 이름인 ‘이와삼’에도 내포되어 있죠.

이와삼은 반복되는 원적 사유, 우리의 삶이 결국 원으로 돈다는, 끝이 시작이라는, 결국은 유한성이 무한성과 만나는 것이라는 대주제가 전제가 되어 만들어진 이름이죠. ‘햇빛샤워’를 보면 그 역시 이야기 안에서 어떤 사람은 광자가 순수한 여인이었다고 보고, 어떤 사람은 광자를 극 중에서 말하듯 ‘썅년’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사유가 회전하고 있는 거죠. 저는 요즘 작업을 할 때 특히 연극이 연극임을 감추지 않아요. 그걸 열고 있을 때 오히려 관객도, 배우도 생각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질 수 있어요.

문화의 특성을 한마디로 단정 짓기 어려운 시기가 요즘인데요. 지금 시대 우리나라 문화의 특징을 뭐라고 생각하세요?

우리나라 문화를 생각할 때 전 보편적인 교양인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편적인 교양인이란, 오랜 시간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지혜를 쌓은 사람을 말하죠. 그런 중간 계층의 사람이 많아지고 자기 삶과 사회에 대해 그들만의 윤리로 두터운 지성을 쌓아갈 때 우리 사회도 건강한 문화를 갖게 되지 않을까요.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겠다는 태도, 저는 보편적인 삶을 움직이는 윤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윤리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전체 이데올로기로서 도덕과는 다른, 개별적이고 자기 삶에 근거한 삶의 기준이지요. 그래서 전체 이념과 맞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세상의 기준이 아닌 자신이 직접 경험하며 쌓은 지혜가 담긴 윤리는 내 편, 네 편이 아닌 나만의 윤리로서 각자의 삶과 우리의 삶을 더 든든히 지탱해줄 수 있어요. 그리고 그것이 예술 장르에 구체적으로 적용되어 서사윤리학이라는 하나의 키워드가 되는 것이지요.

좀 전에 말씀하셨던 사건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떨어져서 보는 시선 말이지요?

기존의 이데올로기와 철학에 대해 다시 질문하는 방식으로 저는 아포리아와 패러독스에 주목하고 있어요. 아포리아는 끝, 즉 결말이 막혀 있는 상태를 만들어 내는 것이고, 패러독스는 서로 충돌하는 관념이 나란히 가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기 생각이 작동하게 하는 거죠. 얻은 답이 작가의 답과 달라도 상관없어요. 작품을 만든 작가와 연출한 연출가의 의도보다 관계의 사유가 더 중요하니까요. 그리고 그런 것들이 쌓여 보편적인 교양을 지닌 사람들이 생겨나고, 보편적인 교양을 공감하는 ‘공존의 장’으로서 연극이 존재하는 거지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어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말인데 그렇게 관객에게 사유를 깊고 넓게 할 수 있도록 연극은 모두가 공감하고 생각할 수 있는 장을 열어줘야 해요.

작가이고 또 연출가인데, 서로 초점을 맞추는 중요한 포인트가 다르겠죠?

작가와 연출가는 명백히 다른 분야라는 것. 각각의 다른 두 가지 일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연출가로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말하려는 것이 새로운가, 효과적인가 하는 것이예요. 연출가는 연극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고 그걸 책임져야 하는 만큼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하죠. 작가 역시 모든 소재와 사건, 관계들을 현재의 관점에서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바라봐야해요. 하지만 그 균형감은 한번 터득했다고 해서 계속되는 것이 아니에요. 시간의 유한성 속에 있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출발하면 모든 것이 오염되고 굴절될 수 있어요.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떠세요?

작품을 하면 할수록 배우들에게 더 많이 의존하게 되는 것 같아요. 과거엔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고 싶었는데, 이젠 그냥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작업이 안 풀려도 왜 그냥 좋은 사람들 있잖아요. 작품 얘기뿐 아니라 삶의 다른 이야기들도 잘 통하고 서로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배우들이 이젠 더 소중하게 느껴져요.

좋아하는 연출가는요?

아까 말한 선웅이 형. 그리고 이경성·윤한솔·전인철·김은성 등 제게 스승인 선후배가 무척 많아요. 그들의 작품과 작업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죠. 연극이라는 무대에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든든하고 감사해요.

어떤 꿈을 갖고 계세요?

더 좋은 작품으로 관객들을 찾아가고 싶어요. 그리고 또 하나 다른 꿈이 있다면 언젠간 예술가 자체의 뉘앙스를 보여줄 수 있는 배우를 캐스팅해서 그 배우만을 위한 작품을 써서 무대에 올려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들을 향한 관심을 버리지 않고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도록 많은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그 작업을 할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끼고 그것이 우리의 가장 의미 있는 보상이죠.

질문을 받아본 적이 언제였던가?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이미 정해진 답변을 찾느라 허송세월하는 동안 우리 주위의 가난한 이들이 더 야위어버렸다. 우리 안의 끝없는 갈망이 세상을 전쟁터로 만든 지금, 연극은 끊임없이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사진 강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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