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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이용훈
어느 스페셜리스트의 선택
글 한정호(런던 통신원) 1/1/2016 |   지면 발행 ( 2016년 1월호 - 전체 보기 )


 
2010년대에 들어 테너 이용훈이 선보이는 오페라 전막 활동의 궤적이 눈부시다. 메트로폴리탄오페라(2010·2011·2012·2014·2015), 바이에른 슈타츠오퍼(2012·2014·2015), 빈 슈타츠오퍼(2010·2013), 베를린 도이치오퍼(2011·2012), 영국 로열 오페라(2013·2015), 취리히 오페라(2013·2014), 로마 국립 오페라(2011·2015), 시드니 오페라(2013·2015)가 그를 재초청했다. 함부르크 오퍼는 2013년 한 해에만 세 번 불렀고, 요즘 밀라노 스칼라(2011)와 드레스덴 젬퍼오퍼(2011)가 오히려 이용훈 캐스팅 경쟁에서 후위로 밀려났다.

해외에서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그를 알아보는 국내 반응은 미지근하다. 주류 미디어의 관심도 드문드문했다. 종교 매체에선 음악 선교 이야기를 주로 담았고, 모교인 서울대 성악과에 채용된 소식은 일간지 문화면에 실렸지만, 음악 담론은 빠졌다. 오히려 시카고 리릭 오페라와 호주 시드니 오페라 공연 때 현지의 한인 방송국이 그의 음악 이야기를 풍부하게 풀어냈다. 뉴욕에 정주하고 2007년 현지의 성악 매니지먼트 젬스키 그린과 계약하면서, 한국에서 그를 오페라나 콘서트 무대에서 만나기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이용훈뿐 아니라 향후 5년 스케줄을 확정하는 세계 톱 레벨의 가수를 유인할 매력을 한국 시장이 어떻게 제공할지, 해결책을 내놓을 때다. 1973년생, 마흔 넷에 접어든 테너의 황금기를 우리는 눈앞에서 볼 수 있을까.

이용훈은 2015년 11월과 12월 영국에 머물렀다. 로열 오페라 ‘카르멘’(돈 호세),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투리두) 출연차 런던을 찾은 그를, 12월 13일 코번트 가든 대기실에서 만났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팔리아치’의 동시 공연 가운데 전반부에서 투리두를 소화한 후 화장을 고치며 인터뷰를 준비하는데, 캐스팅 디렉터가 들어와 “이렇게 작은 몸에서 그렇게 큰 소리가 나오냐”며 그를 격려했다. 무대 뒤는 온통 쇼 비즈니스의 현장이었다.

극장에서 공연할 때 보통 ‘일한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곳 분위기는 어떤가?

친절하다. 극장이 아주 잘 관리되고 있음을 느낀다.

메트 오페라와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나?

가수 입장에서 메트 오페라가 좋은 이유는, 개런티도 있지만 성악진에게 충분한 리허설 시간을 주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연습에 참여하면 비용이 드니 특히 독일에서는 오케스트라 리허설을 생략하기도 하는데, 메트 오페라는 그렇지 않다. 초연이든 재상연이든 3~4주 동안 악단과 최소 서너 차례 리허설을 하면 가수들은 무대를 친숙하게 느끼게 된다.

활동 중인 일류 극장들과 비교해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명성 면에서 높지 않지만 자주 방문하는 편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다음 시즌에도 ‘카르멘’ 신작에 참가한다. 사실 뉴욕과 거리가 너무 멀고 내 경력을 기준으로 꼭 가야 하는 오페라극장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스태프의 수준이 다르다. 변방에서 나와 같은 가수를 초청할 때 어떻게 해야 마음을 얻는지 그들은 잘 안다. 내 매니저는 “금전 제안도 좋고, 날씨도 좋으니 즐거운 경험하고 오라”고 말한다. 나는 작은 극장에선 살살하고 큰 극장에 가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아니다. 극장이 잘 조직되고 관리되고 있는지가 중요한데, 시드니가 거기에 속했다. 직접 가보니 정말 일류 극장처럼 운영되고 있었다.

위치로 따지면 일본 역시 변방인데, 이미 2011년에 나고야·도쿄 투어를 다녀왔다.

일본에서 오페라 전막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건 돈벌이가 아니다. 이미 50년 전 델 모나코·코렐리·도밍고를 데리고 전막을 올렸지만 돈을 번 건 아니었다. 지난 60~70년간 자본을 부었고 이제는 정상의 가수라면 일본이 최고 오페라 시장이라는 걸 인정하기에 그들의 초청을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내겐 메트 오페라의 운영이 최고였는데 일본은 그 이상이라 놀랐다. 시간 약속 하나하나부터 모든 가수에 대한 편의까지, 외국인이면 당연히 일본에 반할 수밖에 없다. 그 좋은 기억 때문에 아무리 멀어도 가는 것이다. 일본과 시드니의 오페라 시장이 살 수 있는 건 지리적인 핸디캡을 상쇄할 대우를 지녔기 때문이다.

당신의 공연을 한국에서 전막 오페라로 보려면 메이저 오페라가 투어를 하거나, 가수·지휘자·제작진 라인업과 프로덕션이 출중하면 가능한가?

한국이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해외에선 5년 스케줄이 이미 나와 있는데 한국에선 1년 앞 스케줄을 문의한다. 심지어 12월 초, 한 달도 남지 않은 송년 공연에 이런저런 곡이 가능한지 물어온다. 2019년 메트 오페라에서 새로운 버전의 ‘일 트리티코’ HD 공연이 확정됐는데, “한국에 안 오니 교만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저 상황이 이렇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메트 오페라를 취소하고 갈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마린스키 오페라와는 2016년 가을 ‘돈 카를로’ 일본 투어가 있다.

게르기예프의 마린스키 오페라와 바덴바덴 페스티벌에 참가한 적이 있다. 가수들 중에서 헤비급 슈퍼스타들만 초청됐는데, 개런티도 믿지 못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최고급 호텔에 머물렀다. 나만 빼고 모두 러시아인이었는데 인터미션 때 게르기예프가 내 방으로 16절지를 들고 오더니 “용훈이 할 수 있는 배역을 전부 적으라”고 했다. “너랑 앞으로 계속 하고 싶다”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토스카’로 초청받았는데 서울대 임용 심사와 겹쳐 취소했다. 그런데도 다시 불러줬고 그래서 일본에 가는 것이다.

라 스칼라 오페라 출연은 요즘 뜸한 편인데.

라 스칼라에서 ‘일 트로바토레’ 캐스팅에 내 이름을 올렸다가 내리기도 했다. 지금의 라 스칼라가 음악을 잘 만드는 곳인지에 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오페라 제작 과정이 인텐시브하게 진행되지만 거만하고 존중이 없는 스태프를 만나면 머무는 기간은 끔찍해진다. 한 달을 머물러도 10년 같은 느낌이다. 이탈리아인이 아니면 무시하는 분위기에는 동양인은 물론 독일 출신 가수도 예외가 아니다. 나는 그걸 참고 버텨야 하는 단계는 지났다. 이제 선택할 수 있는 위치다.

메트 오페라에서 2015년 가을, 함께한 안나 네트렙코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게오르규도 그렇고 카우프만도 그렇고, 너무 많이 하면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 안나도 목에 문제가 생겨 예전에 같이 못했다가 이번에 만났다. 안나 같은 수준을 갖춘 가수는 언제 노래를 하든 어지간해선 일류 레벨 밑으로는 안 떨어진다. 그저 개인이 갖춘 레벨 이상의 기량을 선보여,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놀라게 만드는 날이 있을 뿐이다, 그보다 덜한 소리가 나온다 싶으면 공연을 취소하는 것이 맞다. 가수들 중에 자신을 ‘디보’ ‘디바’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안나는 상대를 정말 편안하게 해주고 까다롭지 않았다. 착하고 노래 잘하고, 사람 자체가 아름답다. 최고라 인정할 수밖에 없다.


▲ 2015/2016 메트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의 이용훈과 안나 네트렙코


“무엇보다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한다”

이번에 로열 오페라에서 함께한 지휘자 안토니오 파파노는 어떤가?

예전부터 같이 일하자고 의견을 나누던 좋은 관계였는데, 번번이 스케줄이 어긋났다. 뉴욕 스케줄 상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안 하는 게 맞는데, 파파노가 “이번에 한 번은 같이 해야 하지 않냐”고 해서 기회를 만들었다. 로열 오페라 음악감독인 파파노가 지휘하는 작품은 무조건 흥행과 비평이 모두 성공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 보통 그가 지휘하면 극장이 무너지는 것 같은 박수가 나오는 걸 자주 봤다. 공연이 끝나고 다들 너무 좋아한다. 앞으로 파파노와 좋은 기회가 더 있으면 좋겠다.

‘카르멘’의 돈 호세는 스핀토 테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투리두는 드라마틱 테너로 분류할 수 있는데, 짧은 시간에 소리를 자연스럽게 바꾸기 어렵지 않나?

투리두는 진짜 무거운 소리다. 돈 호세는 3·4막은 무겁지만 1막은 가볍고 아리아는 리릭 성향이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오케스트라도 엄청 크다. 그래서 시간상 짧은 오페라지만 자칫하다간 목이 확 상할 수 있다.

소리를 질러내거나 여리게 담아내는 것에 대한 예술적 판단은 어떻게 이뤄지나?

일류 테너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고난도 테크닉이 파사지오이다. 파사지오가 잘되면 그 가수는 롱런할 수 있다. D음 하나 둘 위에 E·F음에서 긴장이 일어나는 곳에서 딱 몸으로 기대어 테크닉을 뽑느냐 여부가 배역마다 다르다.

현재 이용훈이 소화하는 범위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

풀 리릭에서 드라마틱까지 커버한다. 무거운 것만 하면 사람도 점점 무거워진다. 그런데 벨칸토의 방법으로 무거워지면 안전하다. 베르디는 도약하면서 올라가는 멜로디 라인이 있다. 반면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라인이 아니다. 멜로디와 호흡을 서로 응용하고 병행해야 한다. 한 작품에 한 방법만 고집하다 보면 거기에서 가수는 정체가 시작된다.

같은 드라마틱 테너지만 ‘아이다’의 라다메스는 아직 하지 않았는데?

바르셀로나 리세우 오페라·워싱턴 내셔널 오페라·메트 오페라에서 ‘아이다’를 할 예정이다.

현재의 소리 상태에서 달콤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나?

소리에 쿠션이 있으면 무겁게 부르지 않아도 소리가 작지 않다. 내가 이 소리를 뚫어내어 어느 극장의 배역을 따내겠다고 접근해선 안 된다. 또 목을 아끼겠다고 하면 라 스칼라에선 그건 베르디가 아니라며 야유한다. 한 작곡가를 두고 다른 방법으로 소리를 찾는 게 숙제다.

서구 관객이 왜 이용훈을 좋아한다고 보는가?

프랑코 코렐리가 생애 동안 ‘오텔로’를 안 했다. 충분히 잘할 사람이었다. 델 모나코보다 잘 했을 거다. 그런데 자기 캐릭터에 안 맞으니까 안 했던 거다. 성품에 맞게 멋있는 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 충분히 배어들어 나오는 그 역할을 찾아내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 배역 서너 개만 있으면 전 세계를 다니는 거다. 무엇보다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한다. 전 세계 극장장 입장에서 보자. 단체의 사활이 걸린 작품에 고려하는 캐스트는 톱 3이지, 톱 5가 아니다. 그렇게 스페셜리스트로 몇 시즌을 보내고 인정받으면 그때 다음 배역으로 간다. 나는 이전부터 ‘아이다’의 라다메스가 맞았지만 베스트를 보이기 위해 기다렸다. ‘투란도트’도 예전부터 제안이 왔지만 훨씬 나중에 받아들였다. 잘할 걸 알았지만 다른 부분에서도 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투란도트’를 잘하는 것과, ‘투란도트’만 계속하는 게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고 싶었다.

사진 Zemsky Green Artist Man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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