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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드 파리’
거부할 수 없는 언어의 매력
글 원종원 10/1/2013 |   지면 발행 ( 2013년 10월호 - 전체 보기 )




▲ ⓒTeatro Arcimboldi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Notre Dame de Paris)’는 프랑스 뮤지컬이 아니다. 실없는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이 뮤지컬의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이 프랑스어권 태생은 맞아도 프랑스 출신은 아니라서 생긴 말이다.
영어를 쓰는 국가가 영국과 미국만이 아닌 것처럼, 프랑스어를 쓰는 나라 역시 프랑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벨기에, 캐나다 몬트리올과 퀘벡,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국경 지방 일부분, 프랑스령이었던 아프리카 등지에선 프랑스어가 모국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 뮤지컬은 ‘프렌치 캐네디언 뮤지컬’이라 불리는 것이 맞다. 뮤지컬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이 프랑스와 캐나다의 이른바 ‘프랑코폰’ 예술가들이라서 붙은 별칭이다. ‘프랑코폰’이란 프랑스어를 쓰는 형제 국가라는 의미로, 이들이 느끼는 유대감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다 보니 서로에게 느끼는 친밀감이나 언어의 동질성에서 이어지는 유무형의 교류는 이질적인 언어권이나 문화권의 국가들에 비해서 한층 두터울 수밖에 없다. 해마다 열리는 유럽 국가들의 노래자랑 대회인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를 봐도 노래 실력과 상관없이 매해 프랑스 전화투표는 벨기에가 1위이고, 벨기에 전화투표는 1위가 늘 프랑스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가 뮤지컬의 불모지에 가까웠던 프랑스어권에서 만들어졌지만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세계적인 흥행작으로 등극하게 된 배경도 역시 프랑코폰 문화권을 효과적으로 파고든 배경도 큰 몫을 했다.

콘셉트 앨범으로 뮤지컬을 즐기다

뮤지컬을 감상하기에 좋은 방법은 한둘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항상 추천하는 방법은 음악을 통해 즐기라는 조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연극인들이 이 장르를 처음 소개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다 보니 뮤지컬을 연극의 한 지류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뮤지컬의 할아버지는 연극이라기보다 오페라라는 것이 적합하다. 음악적 틀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음악이 주제를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의 역할을 하며, 음악적 관습이 여전히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쇼스토퍼(showstopper)의 존재가 대표적이다. 말 그대로 ‘쇼’를 ‘멈추게 하는’ 뮤지컬 넘버를 일컫는 표현이다. 노래가 감동적이면 객석의 청중은 박수를 치게 마련이고, 쏟아지는 박수 때문에 극이 잠시 멈추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럴 때면 배우들은 마치 어린아이들의 ‘얼음 땡’ 놀이처럼 제자리에 서서 박수가 잦아질 때까지 부동자세로 기다리게 된다. 마치 얼어붙은 얼음처럼 기다린다 해서 영어 표현으로는 ‘프리즈 모먼트(freeze moment)’라 부르기도 한다. 1980년대 큰 인기를 누렸던 발라드 가수 배리 매닐로우는 뮤지컬 명곡들을 모아 음반을 발표했는데, 이 앨범의 제목으로 쓰인 단어가 바로 쇼스토퍼스(showstoppers)였다. 뮤지컬에서 소위 명곡들의 인기가 얼마나 치명적이고 결정적인가를 알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이들이다.
음악의 중요성을 아는 것은 관객들만이 아니다. 제작자도 분명히 뮤지컬에서 음악적 역할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등장하게 된 것이 바로 콘셉트 앨범(concept album)이다. 공연의 막이 오르기 전에 음반을 먼저 발매해 대중에게 뮤지컬의 노래들을 소개하고 익숙하게 만드는 공격적인 홍보 마케팅 전략이다. 아무래도 선율이 익숙하면 극을 즐기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적극 활용한 것이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역시 공연보다 콘셉트 앨범이 먼저 만들어졌다. 프랑스어로 녹음된 이 앨범에서는 훗날 오리지널 캐스트로 참여했던 대부분의 배우들을 만날 수 있다. 오리지널 캐스트 앨범과의 유일한 차이점은 여주인공인 에스메랄다 역으로 등장하는 목소리가 엘렌 세가라가 아닌 이스라엘의 인기 여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 노아였다는 점이다. 원래 이스라엘식 이름이 우리에겐 다소 낯선 아히노암 니니인 가수 노아는 타고난 미성에 고음 처리가 매끄러워 아름다운 집시 처녀 에스메랄다의 모습을 훌륭히 구현해냈다.
콘셉트 앨범의 대중적 흥행은 오래지 않아 그녀의 무대 위 모습에 대한 큰 기대를 불러왔다. 하지만 아쉽게도 정식 뮤지컬 공연을 얼마 남기지 않고 그녀는 무대에서의 연기에 대한 부담감 탓에 뮤지컬 출연을 고사하게 됐고, 결국 노아가 노래하는 에스메랄다의 뮤지컬 넘버들은 오직 콘셉트 앨범에서만 만날 수 있는 희소 가치를 지닌 음원이 됐다.

‘노트르담 드 파리’, 프랑스 뮤지컬 산업의 전환점

1998년은 프랑스의 뮤지컬 산업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기록한 해로 손꼽힐 만하다. ‘노트르담 드 파리’가 막을 올리면서 뮤지컬이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 이전까지만 해도 프랑스에서 가장 큰 인기를 누렸던 대중적 공연 양식은 리도 쇼 같은 성인용 스펙터클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었다. 킬러 콘텐츠의 등장이 급격한 시장의 변화와 진화를 가져온 사례라 부를 만하다.
뮤지컬의 흥행은 수많은 관련 음반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1998년 등장한 오리지널 파리 캐스트 앨범(배리 매닐로우가 에스메랄다 역을 맡은 파리 팔레 데 콩그레 공연 실황 앨범)을 필두로 2000년 런던 스튜디오 앨범과 이듬해 등장한 프랑스어 스튜디오 앨범 그리고 파리 모가도르 극장 실황 앨범이 잇따라 발매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공연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면서 세계 각국어로 제작된 음원도 우후죽순처럼 급격히 늘어났다. 2001년에는 에스파냐어 음반이 프랑스어가 아닌 최초의 외국어로 녹음된 ‘노트르담 드 파리’ 음반으로 세상에 첫 선을 보였고, 같은 해 연말과 이듬해에는 이탈리아어 버전과 베로나 아레나에서 녹음된 실황 음반이 등장했다. 이어 2002년에는 러시아어 음반이 등장했으며, 가장 최근인 2010년에는 벨기에 북부 지역의 네덜란드어 음반이 제작되기도 했다.
아시아 지역에서 최초로 녹음된 음원은 우리나라 캐스트의 한국어 음반이다. 프랑스 뮤지컬의 인기가 여타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빠르게 유입된 배경 탓에 음반도 가장 먼저 제작됐다. 가수 윤상의 노랫말을 만들어 대중적으로도 인기를 누렸던 작사가 박창학이 개사에 참여한 탓에 라이선스 뮤지컬임에도 시적인 느낌이 잘 살아난, 그래서 웬만한 가요만큼 듣기 좋고 흥미로운 느낌을 담아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부분 우리말 공연의 캐스트들이 대거 참여했는데, 특히 신예였지만 중저음의 매력적인 콰지모도의 노래를 잘 소화해낸 윤형렬의 노래는 뮤지컬 애호가 사이에서도 꽤나 인기를 끌었을 만큼 널리 사랑을 받았다.
뮤지컬의 인기는 비디오의 등장으로도 이어졌다. 국내에서도 꽤나 높은 판매고를 기록한 것은 프랑스 팔레 데 콩그레의 공연 실황 비디오인데, 팝 록 블록버스터 뮤지컬이라는 별칭에 어울리는 프랑스 뮤지컬 특유의 대형 무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전체 공연을 효과적으로 담아낸 것으로 손꼽힌다. 후에 등장하게 된 ‘로미오와 줄리엣’ ‘십계’ 등 이른바 3대 프랑스 뮤지컬의 비디오 영상물 제작에 물고를 튼 것이 바로 ‘노트르담 드 파리’의 흥행이었다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흥미로운 시도 중에는 영어 콘셉트 음반도 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30주년 기념 공연에서 미성에 호흡이 긴 창법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던 스티브 밸새모, 오스트레일리아의 여성 싱어송라이터이자 뮤지컬 배우인 티나 아레나, 그리고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를 부른 셀린 디옹이 참여했다. 훗날 영어 공연의 초석이 된 음반이지만, 프랑스어로 제작된 음원이 익숙한 사람들에겐 다소 낯선 인상을 피할 수 없었고 시원찮은 판매고를 기록하는 데 멈추고 말았다. 실제로 영어 버전의 공연은 런던에서도 막을 올린 바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영어 버전임에도 단지 외국어로 불린다는 이유만으로 ‘오리지널’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채 세종문화회관에서 막을 올린 바 있지만 아쉽게도 프랑스어 버전의 흥행에는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프랑스어 버전의 위력과 생명력을 역으로 방증해주는 사례가 된 셈이다.


▲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아직 끝나지 않은 전설

‘노트르담 드 파리’가 전대미문의 흥행을 기록한 작품이고, 국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뮤지컬이지만 아직 이 작품의 행보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한 인터내셔널 투어 팀이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미완의 영어 버전을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도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인기도 여전해 우리말 버전과 해외 투어 프로덕션의 내한 공연이 잇따라 전개될 예정이어서 2010년대의 한국 공연시장 흥행 성적에 세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기도 하다.
이제는 전설이 된 오리지널 배우들의 목소리는 무대에서 다시 만날 수 없지만, 음반을 잘 검색하다 보면 뜻하지 않은 대면으로 색다른 즐거움을 찾을 수도 있다. 특히 올해 우리나라에서의 앙코르 공연을 즈음해 1998년 제작된 두 장짜리 전곡 수록 프랑스어 실황 공연 앨범의 국내 발매가 조만간 시도될 예정이라는 소식이 있어 귀를 솔깃하게 한다. 1·2막을 한 장씩 담아내 모두 53곡의 방대한 분량으로 제작되어 무대의 감동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마치 하나의 곡처럼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반갑다. 물론 아직 공연도 음반도 제대로 접해보지 못한 이들에겐 프랑스 뮤지컬의 매력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평론가로서뿐 아니라 뮤지컬을 좋아하는 일반 관객의 마음으로도 꼭 추천하고픈 멋진 작품이자 음반이다.

글 원종원(뮤지컬 평론가·순천향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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