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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태평소·생황 연주자 가민 & 대금 연주자 유홍
한국 밖에서 ‘국악하기’, 국악 아닌 음악과 ‘국악하기’를 일삼는 두 음악가의 이야기. 그들의 길이 주는 궁금증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12/1/2015 |   지면 발행 ( 2015년 12월호 - 전체 보기 )




오늘날 국악의 ‘현주소’가 바뀌는 것은 국악을 일삼은 음악가들의 생각과 발걸음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과 서울을 잇는 유홍을 만난 10월, 서울시향과 함께한 가민을 만난 11월, 그리고 유홍을 다시 만날 12월을 생각하며 그들만의 ‘노하우’를 묻고 싶었다. ‘knowhow’가 아니라 ‘no’ ‘how’다. 평범해지기를 거부하는 ‘no’, 그리고 그 단련 방법으로서 ‘how’를.




▲ 볼코프/서울시향과 박정규의 ‘Into…’ 협연 중인 가민

피리·태평소·생황 연주자 가민
만나고, 또 만나고, 다시 만난다

‘강효선’이 본명이고, ‘가민’이 예명이다.

아름다울 ‘가(佳)’, 옥돌 ‘민(珉)’이다. 옥돌을 조탁하는 장인처럼 내 음악을 갈고 다듬자는 뜻을 담았다. 본명보다 발음하기 쉽고, 기억하기도 좋은 이름이다. 2009년부터 사용했다. 당시 전환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2010년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단원 생활을 정리했는데, 자유로운 음악인이 되기 위한 일종의 준비 기간이었다고나 할까.

일란 볼코프/서울시향과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Ⅳ’에서 박정규가 작곡한 생황(37관)과 앙상블을 위한 ‘Into…’를 협연했다(11월 5일, 세종체임버홀). 연주를 들으며 연주자가 생각하는 생황과 작곡가가 생각하는 생황이 달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전통적 소리에 뿌리를 두고 그것을 탐색하고 현대화하려고 했다면, 박정규 씨는 생황을 현대적 악기로 바라보며 새로운 기법과 사운드를 제안했다. 정확함을 요구하는 실내 오케스트라와, 그것도 현대음악을 함께한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협연자의 특권인 카덴차는 음악적 자유로움을 주고 상당한 기교를 요구한다. 작곡가·지휘자의 해석과 지시에서 벗어나 나만의 독자적 해석을 표현할 수 있었던 카덴차는 짜릿한 쾌감을 주더라.

동·서양악기가 지닌 특색 있는 음향의 공방전으로 기억되는 연주였다. 아찔한 생황의 고음이 바이올린의 고음 하모닉스와 만나면서 음향의 묘한 조각보를 짜나갔다. 사실 국악계에 생황이 아직 ‘안착’하지 않은 이 상황이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답이 없는 상태에서 작곡가와 연주자들이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기 때문이다. 평론가로서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일도 흥미롭고.

몇 안 되는 생황 연주자 중 한 사람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크나큰 기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혼돈스럽기도 하다. 뭔가 부족한 부분도 많고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번에 발매한 앨범 ‘하늘 바람 별 그리고 시’에 수록된 생황 독주곡 ‘The Stars’를 작곡·연주했다. 들으면서 ‘생황만으로도 오케스트라가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The Stars’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있고, 어렵게 느끼는 사람도 있다.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곡이다. 하지만 17관 생황으로 현대적 사운드를 개발했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연주자로서 테크닉 개발과 소리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도 악기 개량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해외 연주자는 물론 마림바·피아노 등과 함께하는 작업을 통해 전통음악 ‘너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피리·생황·태평소와 그 레퍼토리가 갖는 한계를 넘기 위한 대의(大義)를 띤 행보인지, 아니면 연주자로서 갖는 한계를 넘기 위한 개인적 행보인지 궁금하다.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현대’인으로 지금을 살고 있다. 대의(大義)든 개인적 행보든 ‘국악’에 국한되지 않는 ‘음악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장르와 음악가를 통해 전통음악과 내 자신을 이해하는 건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는 것과 유사하다. 전통음악에 담긴 즉흥성과 실험적 요소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찾아낸 것들이다. 지금은 해외 음악가들을 통해 더 많은 영감과 용기를 얻는다. 그들로부터 ‘선구자’라는 말도 듣고, ‘진정 전통이 무엇인지 아는 현대음악가’라고 말해주는 이도 있다. 그들의 열린 자세와 풍토가 한국에도 정착되기를 바랄 뿐이다.

가민 씨가 작곡한 악보집, 여러 장의 앨범, 색다른 기획 아래 올리는 공연 중 가장 ‘남는 것’은 무엇인가?

한순간에 생겼다가 사라지는 음악을 남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게 음악가의 삶일지도 모른다. 음반, 공연 사진, 비디오 등은 증거품일 뿐, 진정으로 ‘남는 것’은 가슴에 각인되고 자라나는 ‘열정’과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피리 전공생이 가민 씨를 찾아와 ‘언니(누나)처럼 살고 싶어요!’라고 했다고 치자. 그들은 어떤 점에 매료된 것이고 무슨 충고를 해주고 싶나?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먼저 간 것. 레퍼토리를 확장하는 것. 국내만이 아니라 세계로 무대의 폭을 넓힌 것. 이러한 것들이 후배들이 따라 하고 싶어 하는 것일 거다. ‘중요한 건 표면적으로 경계를 넘는 것이 아니라 음악가로서 음악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끝으로 어떤 재밌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려달라.

한국 굿과 아프리카 굿을 접목한 새로운 작품을 2016년 4월 캘리포니아에서 초연한다. 요요마가 이끄는 실크로드 앙상블의 워크숍 강사로 참여하기도 하고. KBS교향악단과 함께하는 피리협주곡 초연도 예정하고 있다. 새롭고 수많은 프로젝트가 기다리는 삶은 늘 즐겁다(www.gamin-music.com).


▲ 10월 ‘MOTION’에서 정일련(기타)과 함께

대금 연주자 유홍
낯선 소리와 반응한다. 고로 존재한다

영국으로 유학 간 이유로 인터뷰를 시작하고 싶다. 유홍 씨를 바라보는 후배들이 부러워하고 궁금해하는 지점이다.

대학교 다닐 때나 정가악회에서 활동할 때, 연주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늘 고민했다. 고민은 세 가지였다. 새로운 일, 재밌는 일, 나와 국악계에 도움 되는 일을 하자는 것. 결론은 ‘국악이 없는 외국에서 국악연주자로 살아보자!’였다. 롤 모델도 없이 28세 때 영국 리버풀로 갔다. 한국음악을 전공한 키스 하워드 교수가 런던대에 재직 중인데, 만나보라고 하더라. 그래서 만났는데, 학교에 적을 두면 인맥도 생기지 않느냐며 민족음악학과 연주자 과정에 입학하기를 권했다. 사실 학과 공부는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달랐다.

각국에서 전통음악을 공부한 이들이 모인 학과 아닌가. 그들은 대금의 어떤 점에 가장 호기심을 보였나?

청(淸) 소리를 신기해했다(청은 청공淸孔에 붙은 얇은 막으로, 이것을 떨어 대금만의 독특한 음색을 낸다). 결국 하나의 악기에서 두 가지 소리가 연출되는 것이니까.


▲ 10월 ‘MOTION’에서 정일련(기타)과 함께

10월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선보인 공연 ‘MOTION’ 중 정일련 작곡가의 기타와 함께한 ‘Shinawi of Berlin’을 인상 깊게 들었다. 서구 현대음악에는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표현이 강한데, 시나위에서 그러한 효과들을 다 끄집어내더라. 날선 대금 소리에 한 치의 양보도 없으면서 또 그 소리를 다 품는 정일련 작곡가의 음악성과 호흡도 놀라웠다.

날이 서 있다…? 내 성향이 그래서 그런가? 한국에서 2013년에 ‘Momentum’를 선보인 후 한국음악만이 지닌 강한 에너지를 세련되게 표현하는 데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정일련 작곡가는 대금 곡을 쓸 때 나의 소리를 생각하며 쓴다. 그런데 정 선생과는 이야기를 거의 안 한다. 그때의 상황을 어떻게 가져갈지, 어떻게 유도할지 최소한의 약속만 할 뿐이다. ‘Shinawi of Berlin’도 ‘시작은 점을 찍듯이 하자’ ‘다음은 선으로 가자’라는 최소한의 약속으로 만들었다.

그럼 음악을 할 때 무엇을 가장 중요시 하나?

‘반응’이다. 타인의 섬세한 ‘반응’과 그것을 대하는 나의 섬세한 ‘반응’.

정일련 작곡가는 어떻게 만났나?

런던대 졸업 전에 고민이 커졌다. 그때 현대음악앙상블 CMEK의 김우재를 통해 소개받았다. 대금을 한다니 관심을 보였고, 정 선생이 이끄는 아시안아트 앙상블(www.asianart-ensemble.com)을 같이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아카데믹한 성격의 현대음악 앙상블이었다(바이올린·비올라·첼로와 대금·고토·생황·장구·가야금으로 구성. 생황을 우웨이가 맡고 있다).

유럽의 여러 작곡가·음악가들과 활동하면서 무엇이 제일 좋았나?

즉흥 음악이다. 이것에 관심 있는 연주자가 많고, 자신의 악기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많이 지니고 있다. 그런 그들과 만나며 소리의 에너지를 어떻게 표현하고, 다른 이의 음악(이야기)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순간이 좋다. 자연스레 내 소리가 지닌 스펙트럼을 어떻게 늘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되었고. 아시안아트 앙상블과 같은 악기 조합은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현대음악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자존심이 높은 독일 관객도 신기한 눈빛으로 보더라.

진은숙이 작곡한 생황 협주곡 ‘슈’를 초연한 우웨이를 볼 때 유홍 씨 생각이 난다. 상하이음악원과 한스 아이슬러 음대로 이어진 우웨이의 학습 과정과 서울대와 런던대로 이어진 유홍 씨의 학습 과정, 그리고 아시안아트 앙상블로 대표되는 공통의 활동 반경 때문인지. 그래서 12월에 갖는 우웨이와의 듀오 콘서트(10일, 세종체임버홀)가 더욱 기대된다.

총 6곡을 선보인다. 초연곡 2곡, 아시안아트 앙상블에서 연주한 1곡, 그리고 나와 우웨이가 각각 솔로 곡을 1곡씩 선보이고 나머지 1곡은 그날의 상황 따라 만들 즉흥곡이다. 대금 레퍼토리를 확장하는 데에 집중하고 몰두하고 있다. 솔리스트와 앙상블 활동을 병행하기에 솔로 곡과 앙상블 곡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모두 나의 ‘즉흥성’을 응용하여 쌓은 레퍼토리다. 한편, 대금과 오케스트라가 함께할 수 있는 3~4곡 확보도 단기목표이다. 중국과 일본은 이러한 작업이 활발하다. 쫙 펼쳐놓고 고를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없다. 그런 점에서 우웨이가 부러울 뿐이다. 사실 연주자가 떠야 음악도 뜨고 레퍼토리도 많이 나온다. 우웨이라는 연주자 덕에 생황 협주곡이 많이 나오는 것 아닌가. 한국 악기와 다른 나라의 전통악기가 만나는 시리즈를 계획 중인데, 이번 연주회가 그 시작이 될 것이다. 어느 나라든 상관없다. 국경을 넘고, 음악가들의 네트워크를 단단히 하고, 레퍼토리를 늘리고, 파이를 크게 만드는 것. 단, ‘현대음악’이라는 조건 아래서 만들어나가고자 한다.

사진 이강령·나승렬·서울시향·국립국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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