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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슈트라우스 ‘알프스 교향곡’ 초연 100주년 기념 릴레이 연주회
베를린에서 알프스의 장엄함을 경험하다
글 유정우(음악 칼럼니스트·흉부외과 전문의) 12/1/2015 |   지면 발행 ( 2015년 12월호 - 전체 보기 )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베를린 필하모닉의 같은 곡, 다른 해석

늦가을 정취가 더욱 깊어지던 10월의 마지막 주,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흥미로운 연주회가 연속으로 펼쳐졌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장장 닷새 동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이 연주되었던 것. ‘알프스 교향곡’의 초연 100주년을 기념하는 릴레이 연주회였다. 10월 26일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하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가 첫 시동을 걸었고, 27일에는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이끄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초연 100주년 기념 당일인 28일부터 3일 동안은 안드리스 넬손스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이 정기 연주회를 가지며 대미를 장식했다. (두다멜/베를린 슈타츠카펠레는 같은 프로그램으로 10월 27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에서 연주회를 가졌고, 틸레만/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은 10월 21일 드레스덴 젬퍼오퍼에서 한 차례 기념 연주회를 가졌다.)

‘알프스 교향곡’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10월 28일, 베를린의 구필하모니에서 슈트라우스 자신의 지휘로 드레스덴 궁정 오케스트라에 의해 초연되었다. 초연 오케스트라의 정통성을 지닌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초연 장소를 제공한 베를린 필하모닉이 이번 연주회를 함께 기획한 이유다. 그렇다면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는 어떤 인연일까? 초연 당시 슈트라우스는 1898년부터 20년 가까이 베를린 궁정 오페라의 음악감독으로 재직하고 있었고, 바로 그 인연으로 베를린 궁정 오케스트라의 후신인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도 이번 프로젝트의 한 축을 담당한 것이다.


▲ 크리스티안 틸레만/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두다멜 vs 틸레만 vs 넬손스

‘알프스 교향곡’ Op.64는 슈트라우스의 마지막 관현악 대곡으로서 교향곡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고는 있지만 한 편의 장대한 교향시다. 이 작품은 어두운 새벽의 출발부터 해돋이와 입산, 정상 등정과 하산할 때의 폭풍우를 거쳐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과정을 22개의 소제목들 아래 사실적으로 묘사한 표제 음악이다. 슈트라우스는 14세 때인 1879년에 바이에른 남부 하임가르텐 산(해발 1790m)에서 등산을 하던 중 폭풍우를 만나 거의 12시간 만에 등산을 마치는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때의 강렬한 인상을 피아노로 연주하기도 했다고 한다. 훗날 오페라 ‘살로메’를 통해 오페라 작곡가로도 큰 성공을 거둔 슈트라우스는 1908년 바이에른 알프스의 아름다운 마을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에 정착하는데, 독일 최고봉 추크슈피체(해발 2962m)가 있는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야말로 ‘알프스 교향곡’을 탄생시킨 산실이라고 하겠다. 이 작품은 4관 편성의 대규모 관현악곡인 데다 헤켈폰 등 특수 악기들이 곳곳에 자리하기 때문에 연주회장에서는 무대 위를 가득 채운 130명 가까운 오케스트라의 위용만으로도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지휘자에게는 하나의 도전일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이번 연주회들에 참여한 세 지휘자는 요즘 어디서나 가장 큰 화제를 모으는 지휘자들이었기에 은연중에 각각의 연주회가 선의의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평소 가장 좋아하는 관현악곡으로 ‘알프스 교향곡’을 꼽는 필자에게 있어 결코 놓쳐선 안 되는 연주회들이었기에 세 연주회의 티켓을 일찌감치 모두 구해두었으나 스케줄상의 문제가 생겨 첫날 두다멜/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연주회는 아쉽게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이번 연주회들의 메인타이틀 매치는 역시 틸레만과 넬손스의 경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난 5월 베를린 필하모닉의 차기 상임 지휘자 선출을 위한 1차 투표에서도 접전을 펼쳤던 두 사람이었기에 더욱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는데, 역시나 틸레만과 넬손스의 해석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밤, 그리고 해돋이

틸레만은 명실상부 바그너와 슈트라우스 음악에 관한 한 현존하는 최고 지휘자다. 게다가 ‘알프스 교향곡’은 그가 장기로 삼는 대표 레퍼토리다. 대관절 ‘알프스 교향곡’을 암보로 이토록 자주 지휘하는 지휘자가 지구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필자가 이번 연주회를 들으며 느낀 점은 틸레만의 ‘알프스 교향곡’ 해석이 진화를 거듭한 끝에 이제는 완성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첫 머리 ‘밤’에서 약음기를 낀 바이올린이 그토록 섬세한 음향을 들려주는 것을 필자는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다. 극도로 절제된 바이올린의 음향 위에 어느 틈엔가 더블베이스가 가세하여 동트기 전 어둠을 묘사하는 가운데 금관이 장엄하게 들려주는 산이 스며들어온다. 이런 세밀한 음향의 직조는 절대 음반으로는 느낄 수 없는 현장 음향만의 묘미일 것이다. 아직 시작에 지나지 않은 이 몇 분 간 틸레만이 오케스트라를 다루는 솜씨는 그야말로 천의무봉의 경지였다. 각 악기군 사이의 연결은 이음매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유기적이며 음량은 지휘자에 의해 완벽히 통제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이어서 터져 나오는 ‘해돋이’에서 과도하게 음량을 키우지 않아도 극적 대비가 뚜렷했다.

그렇다면 이 첫머리에서 넬손스는 어땠을까? 틸레만이 구조 감각을 가지고 슈트라우스가 짜 놓은 프로그램에 자신이 구상한 드라마를 완벽하게 투영하고 있었다면 넬손스의 해석은 지나치게 찰나적 음향 효과에만 치중하고 있어 실망스러웠다. 게다가 일관된 느린 템포는 지나치게 작위적이었던 까닭에 지루함과 피로감을 느끼게 했고, 악기군 간 주제의 연결도 매끄럽지 못하여 매우 분절적이었다.


▲ 뛰어난 연주로 주목받은 베를린 필의 오보에 수석 알브레히트 마이어

정상에서 대자연의 위대함을 보다

본격적으로 입산이 시작되면 ‘등반’이 활기차게 제시된다. 틸레만의 발걸음은 거칠 것이 없었다. 4년 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빈 필과의 연주에 비해 템포는 훨씬 빨라져 더욱 경쾌하긴 하지만 조급하진 않고 여유가 느껴졌다. 이어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정상 등정 부분에서 틸레만이 보여주는 완벽한 고양감과 긴장의 완급 조절은 절묘했다. 한마디로 틸레만은 슈트라우스 음악을 해석하는 열쇠를 찾은 느낌이다. 한 발 물러나 관망하는 여유를 가져야 할 부분과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고 몰아쳐야 할 부분을 완벽하게 꿰뚫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음향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넬손스의 경우 급기야 총주에서 음향이 과포화 상태에 다다르고 말았다. 세상에! 필자가 ‘알프스 교향곡’을 들으면서 ‘시끄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다니! 다만 그 순간을 구원한 것은 비르투오소 집단인 베를린 필하모닉의 뛰어난 연주력이었다. 가장 훌륭했던 것은 필자가 정상 등정 부분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오보에 솔로였다. 정상에 올랐을 때 먼저 느끼게 되는 것은 정복의 쾌감 따위의 교만함이 결코 아니라 절대고독과 더불어 대자연의 위대함 앞에서 저절로 샘솟는 겸허함 아닐까? 알브레히트 마이어의 명불허전 오보에 솔로는 슈트라우스가 이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핵심을 스치는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과도 같은 아름다운 음색으로 구체화했다. 의심할 바 없이 필자가 지금까지 들었던 것 중 단연 최고였다.

 

▲ 안드리스 넬손스/베를린 필하모닉

하산, 그리고 다시 밤

하산 부분에서의 폭풍우 장면은 두 오케스트라 모두 훌륭했으나 해석의 방향은 정반대였다. 4박자와 3박자가 교차하는 리듬의 혼돈과 음향의 홍수 속에서도 틸레만은 유려하게 정돈되고 일관된 흐름을 보여주었다면 넬손스의 해석은 좀 더 즉물적이었다. 조금 억지스런 비유라고 생각되긴 하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틸레만이 슈트라우스적으로 세련되게 다듬어지고 계산된 혼돈을 보여주었다면 넬손스가 펼쳐 보인 혼돈은 좀 더 말러적인, 날것 그대로의 혼돈이라고나 할까?

전체를 조망하며 작품의 구조에 강박적일 정도로 신경을 쓰는 틸레만의 해석은 마지막 도착 부분에서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오르간이 바그너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구원의 동기’에서 차용해온 선율을 연주한 뒤 호른과 목관이 정상 등정 때 오케스트라 총주로 등장하던 ‘목가’를 회상하면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1악장의 2주제에서 차용된 하강 음형의 ‘일몰’이 마지막으로 저물어가듯 떠오른다. 이윽고 다시 찾아온 ‘밤’이 재현될 즈음 청중은 그제야 작품 첫머리에도 나왔던 이 선율이 ‘일몰’의 단조 선율임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하루의 시간은 다시 반복되는 것이고 또 그렇게 세상과 자연은 순환하는 것이다.

필자의 취향에 비추어볼 때에는 틸레만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연주가 좀 더 감동적으로 와 닿았다. 화려한 베를린 필하모닉에 비해 상대적으로 담백하고 소박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음향이 슈트라우스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남김없이 보여줌으로써 왜 이 오케스트라가 ‘슈트라우스의 악단’이라고 불리는지 다시 한 번 그 정당성을 부여받았다고나 할까? 특히 악장 카이 포글러의 투명한 음향과 호른 수석 로베르트 랑바인의 유려한 솔로 연주는 필자의 기억에 오래 남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결국 틸레만이 과거 인터뷰에서 “드레스덴의 기질과 음향은 슈트라우스를 표현함에 가장 적합하다”고 했던 상찬이 그저 수사적 표현만은 아니었음을 스스로 증명해낸 셈이다.

한편 초연 100주년 기념 당일이던 10월 28일에는 연주회가 끝난 후 인상적인 퍼포먼스도 있었다. 관객들의 갈채에 화답하던 넬손스가 보면대 위 ‘알프스 교향곡’의 총보를 번쩍 들어 올리더니 엄지를 치켜세우며 천국의 슈트라우스에게 헌정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대선배 지휘자이자 작곡가에게 경의를 표하여 청중을 흐뭇하게 하기도 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회가 끝나고 무대 뒤 연주자 대기실에서 필자는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을 만났다. 이틀 간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와의 연주회를 모두 마친 후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하는 ‘알프스 교향곡’을 들으러 온 것이었다. 필자가 두다멜의 첫날 연주회를 못 본 아쉬움을 전하며 소감을 묻자 두다멜은 이러한 뜻깊은 행사에 참여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면서 지휘자로서도 소중한 체험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그것은 두다멜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었다. 필자와 같은 열렬한 슈트라우스 애호가에게도 이번 릴레이 연주회는 더할 나위 없는 소중한 경험이자 황홀한 축복이었다.

사진 유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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