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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백석우화’
글 김옥란(연극평론가) 11/1/2015 |   지면 발행 ( 2015년 11월호 - 전체 보기 )




10월 12일~11월 1일
게릴라극장

흰 돌과 검은 돌, 백석우화와 윤택우화

이윤택의 신작이 올라갔다. ‘북한에선 쓰기를 거부당하고, 남한에선 읽기를 거부당한 천재 시인 백석’에 관한 공연이다. 예술의 정치적 검열에 대한 연극인들의 우려와 비판이 높아지고 있는 때다. 검열 의혹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되는 박근형과 이윤택의 신작이 나란히 올라갔다. 박근형의 ‘엄사장은 살아있다’와 이윤택의 ‘백석우화’가 그것이다. 두 작가는 지금 현재 자신들만의 이야기로 시대를 정면 돌파하고 있다.

‘백석우화’의 부제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이다. 백석의 시 제목이다. 1939년 친일단체인 조선문인협회가 결성되자 백석은 재직하던 조선일보사에 사직서를 던지고 만주로 떠났다. 1940년대의 많은 문인이 창씨개명을 하고 활동을 계속하던 시절, 백석은 만주로 떠나 창씨개명도 하지 않았고 시도 쓰지 않았다. 백석은 차츰 잊힌 작가가 되었다. 해방 이후 고향인 평안도로 돌아왔으나 김일성을 찬양하는 북한 사회에 또다시 절망한다. 이윤택은 이 장면을, 백석의 세 번째 부인인 피아니스트 문경옥이 김일성을 찬양하는 의미에서 쇼팽의 ‘혁명’을 연주하고 그 옆에서 대파를 다듬고 있는 백석의 장면으로 연출하고 있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은 해방 후 백석의 신작으로, 대파를 들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시인의 근황 사진과 함께 남한의 잡지에 실렸다. 유머와 페이소스가 담긴 인상 깊은 장면이다.

백석은 단지 고향에 머물렀을 뿐인데 남한에서는 좌익 작가로, 북한에서는 사상성이 부족한 작가로 탄압을 당했다. 공연은 이 모든 과정을 요란하지도 소란스럽지도 않게 절제된 시선으로 보여준다. 이미 그 모든 것에 초탈한 듯 시 한 편, 한 편을 두고 백석과 이윤택이 주거니 받거니 나누는 한 잔 술 같다. 주거니 받거니 흰 돌, 검은 돌 놓는 바둑판처럼 하나씩 또 다른 세계들이 열린다. 놀라운 광경이다. 백석의 시를 읊는 순간순간 지금 현재의 상황들이 생생하게 겹쳐 보인다.

월북 소설가 한설야와의 문학 논쟁, 사회주의 검열, 삼수갑산 협동농장으로의 유배, 북한의 선전목적에 동원되어 남한 문인들에게 보내는 선동적인 글을 발표하면서 백석은 점차 창작 의지를 버린다. 이때 백석은 자신의 얼굴에 흰 분칠을 하고 새빨간 입술을 그려 넣고 광대가 된다. 배우 오동식의 얼굴을 지우고 광대 백석이 되었다가, 다시 분칠을 씻어내고 어둠 속에서 백석은 한 줄기 제문처럼 시를 태운다.

시대는 바뀌고 1995년 삼수갑산 협동농장을 찾아온 친구 문인의 아들에 의해 백석의 생존 사실이 알려지기까지 백석은 남과 북 모두에서 철저히 지워진 작가였다. 매일 시를 쓰지만 모든 시를 불쏘시개로 태워버렸다는 백석의 말, 제문을 태우듯 시를 태우는 마지막 장면은 묵직한 여운을 준다.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의 마지막 구절이다. 공연을 보고 난 후 갈매나무를 생각하며, 머리가 말개진다. 박근형의 ‘경숙이 경숙아버지’에서 말했던 배롱나무도 생각난다. 백석과 이윤택, 시인과 시인, 예술가와 예술가의 대화의 결이 곱다. 굳고 정하다. 백석의 고향인 평안도 서도소리에 맞춰 부르는 시들, 정가의 단아한 노래에 얹힌 백석의 시들이 가슴을 단단하게 여며준다. 한여름 오랜 풀무질에 흐트러진 마음들을 단단하게 모아 뭉쳐준다. 이자람의 작창, 연희단거리패 배우장 김미숙의 시창과 판소리, 연희단거리패 신구 세대 배우들의 앙상블도 감동적이다. 이윤택의 모든 것을 보여주면서 이윤택을 뛰어넘는 공연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연희단거리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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