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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보 예르비/파리 오케스트라 마지막 시즌 첫 연주회
예르비가 남긴 빛과 그림자
글 김동준(재불음악평론가) 10/1/2015 |   지면 발행 ( 2015년 10월호 - 전체 보기 )


9월 9일, 파리 필하모니의 상주 오케스트라인 파리 오케스트라의 이번 시즌 첫 번째 연주회가 열렸다. 프로그램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과 시벨리우스 교향곡 5번. 본래는 엘렌 그리모가 브람스 협주곡을 협연하기로 돼 있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그리모 대신 라르스 포그트가 연주했다.

2015/2016 시즌은 파보 예르비가 파리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는 마지막 시즌이다. 예르비는 자신의 SNS를 통해 이번 시즌 후에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발표하여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직에 충실하겠다는 의사 표현으로 잡음을 없애려고 했지만, 사실 예르비와 파리 오케스트라 운영진 간의 갈등은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예르비는 2004년에 처음으로 파리 오케스트라를 지휘했고, 2010/2011 시즌부터 파리 오케스트라의 일곱 번째 음악감독으로 임명됐다. 크리스토프 에셴바흐의 뒤를 이어 파리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이 된 예르비는 파리 오케스트라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1975~1989년 사이에 파리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은 다니엘 바렌보임이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단원들을 향해 “당신들 개개인은 모두 일류일지 모르지만, 불행하게도 오케스트라는 일류가 못 된다”는 뼈 있는 말을 던지기도 했는데, 예르비는 이러한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파리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을 향상시켰다. 그러나 한편으로 프랑스의 음악평론가들은 예르비의 지휘에 완전히 만족하지는 못했다. 예르비가 오케스트라를 능수능란하게 이끌어가는 역량은 최고 수준이지만 깊은 감동을 주는 연주회는 드물었다. 종종 지나치게 빠른 템포 설정으로 평론가들에게 반론의 여지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예르비는 파리 오케스트라의 시즌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만들었다. 그중 주목할 만 한 점은 시벨리우스 등 핀란드 계통 작곡가들의 작품을 파리 청중에게 집중적으로 소개했다는 점이다. 예르비와 파리 오케스트라는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을 녹음했고, 음반은 내년 초에 발매할 예정이다. 프랑스의 오케스트라가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을 녹음하는 것은 파리 오케스트라가 처음이다.

파보 예르비는 마지막 시즌의 첫 번째 연주회 날인 9월 9일,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협회에서 예르비에게 시벨리우스 메달을 수여했기 때문이다. 이 메달은 핀란드 정부가 음악가들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시벨리우스 탄생 100주년인 1965년에 만들어진 이 상은 그동안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샤를 뮌슈·사이먼 래틀 등 소수의 지휘자에게만 수여됐다. 연주회 후반, 시벨리우스 교향곡 5번을 지휘하기 직전에 예르비는 시벨리우스 메달을 수여받았다. 그는 메달을 보면대 위에 올려놓고, 암보로 지휘했다.

교향곡 5번에서 파보 예르비와 파리 오케스트라 단원들 사이의 교감은 좋았다. 하지만 프레이즈의 탄탄한 구축을 통해 커다란 자유와 환희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한 과제인 이 교향곡의 진면목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특히 3악장의 경우, 연주 자체는 뛰어났지만 현악 파트의 질주 뒤에 등장하는 호른의 주제는 실패에 가까웠다. 16분음표의 현악 파트가 2분음표로 바뀌는 동시에 호른에서 2분음표로 연주되는 이 동기는 시간과 공간이 사라진 듯 무한한 자유를 느끼게 하는 특별한 순간인데, 파리 오케스트라와 예르비는 이를 표현하지 못했다. 또한 작품의 심리적인 분위기가 음색으로 표현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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