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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필 예술단장 성시연
지휘자의 필요충분조건
글 김선영 기자 10/1/2015 |   지면 발행 ( 2015년 10월호 - 전체 보기 )


지난해 어수선하던 경기필의 수장으로 성시연이 낙점됐을 때, 새롭게 펼쳐질 항해에 시선이 모아졌다. 이후 그녀는 단원들의 마음을 다독이며 기초 체력에 힘을 쏟아왔다. 성시연과 경기필이 출항한지 1년 9개월, 이들은 음악의 바다에서 기초를 다지고 서로를 길들이는 중이다.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지휘자가 살아야 오케스트라가 사는 게 아니라, 오케스트라가 살아야 지휘자가 산다고.

성시연과 인터뷰를 앞두고 경기필의 공연을 본 ‘클래식 음악 마니아’를 수소문했다. 그동안 성시연에 대한 ‘팩트’는 있었지만, ‘그녀의 취향’ 또는 ‘그녀에 대한 취향’이 어떠한지 사람들의 시선이 궁금했다. 그런데 이들의 행보를 꾸준히 지켜본 마니아 중 서울 관객은 거의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유는 일단 서울에서의 기획 공연이 많지 않고, 경기도에서 하더라도 찾아갈 만큼 레퍼토리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거였다. 그나마 공연을 봤다는 사람들 사이에선 취향적 호불호가 갈렸다. 다만 성시연이든, 경기필이든 그 가능성을 계속 지켜보고 싶다는 것이 공통된 목소리였다. ‘호불호’의 갈림길과 그 가운데로 나 있는, ‘가능성’이라는 길 앞에서 지난해 성시연과 가진 짧은 만남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2014년 ‘객석’ 4월호엔 국내 오케스트라 행정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다룬 특집 기사가 실렸다. 당시 나는 경기필 취임 3개월 차인 성시연을 인터뷰하기 위해 경기도문화예술의전당에 자리한 경기필 연습실을 찾았다. 취임 2주 만에 프리뷰 콘서트를 연 성시연은 말러 교향곡 2번 ‘부활’로 취임 연주회를 일주일가량 앞둔 터였다. 당시 경기필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그녀는 “마음·레퍼토리·볼륨 면에서 모두 열린 오케스트라”라고 답했다. 이후 1년하고도 절반을 넘긴 올해 9월, 동일한 물음을 다시 꺼냈을 때, 성시연은 객관적이고도 주관적인 답을 내놓았다.

“경기필은 순수한 열정을 지닌 오케스트라입니다”

해외 유수의 오케스트라, 멀리 가지 않더라도 국내 국·공립, 지자체 산하 교향악단과 비교했을 때 경기필의 평균연령은 낮다. 20여 년 전 단원 70명의 경기 팝스 오케스트라로 시작한 이래 재단법인화를 거쳐 지자체 오케스트라로 개편된 경기필은 2012년 106명의 4관 편성으로 증대되면서 젊은 단원들도 늘어났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청소년 정도 나이. 전통이나 습관, 고유 정체성이 짙어지려면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포디엄의 새로운 주인

예부터 지휘자들은 음악의 생산자인 동시에 음악의 매개자였고, 행정적인 능력까지 십분 발휘해야 했다. 폭넓은 레퍼토리, 신선한 해석, 행정 능력, 카리스마, 그리고 여기에 음반사와의 긴밀함까지 갖추면 금상첨화라는 것은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지휘자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시대가 흐르고, 이러한 조건에도 상대적인 변화가 생겼지만, 그럼에도 30, 40대의 소위 ‘신예 지휘자’들이 다른 장르에 비해 훨씬 적다는 인상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은 ‘지휘의 예술’이 경험과 연륜에 기초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오늘날 포디엄에 서는 지휘자가 헤아려야 할 범주가 그리 간단치 않은 것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오랜 세월 포디엄의 주인은 남성이었다. 그 위로 여성이 오른 지는 80년 남짓, 불과 50년 전만 해도 여성 지휘자는 여성 단원으로 구성된 여성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오케스트라 단원뿐 아니라 포디엄 위에도 금녀의 벽이 상당히 무너졌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다만 오늘날 해외에서 여성 지휘자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이들 중 부지휘자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건, ‘생물학적 여성’이 포디엄에 서기까지 과정이 상대적으로 수월하지 않음을 의미할 것이다.

엄마 같은 지휘자가 되어주세요?

생물학적 성별이 무엇이든, 결국 지휘자가 서는 포디엄은 균형의 공간이다. 가로세로 1m 남짓한 지휘대에서 마에스트로는 오선지 위에 음표로 직조된 이성과 감성을 소리로 그려내고, 각기 다르게 내재된 남성성과 여성성을 골고루 내세우며, 공과 사를 함께 끌어안은 채 오케스트라와 함께 음악 속으로 돌진한다.

많은 이가 경기필의 3년 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상임지휘자였던 구자범과 일부 단원 사이에서 벌어진 마찰은 클래식 음악계에 몸담은 이들에게 놀람과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폭풍 같은 시간 속에 단원들 역시 지치고 마음은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런 상황에서 취임한 ‘여성’ ‘지휘자’에겐 재능 외에 다른 조건들이 요구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공명정대한 조율자, 또 다른 단원은 모든 것을 감싸주는 엄마 같은 역할을 기대했다.

“해외 오케스트라에서도 단원을 감싸주고, 배려하는 지휘자를 본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경기필에 취임한 제가 가져가야 할 역할이 그렇다는 걸 느꼈죠. 구자범 선생님은 훌륭한 분이고 단원들과 친밀하게 지내는 가운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지라, 상대적으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어요. 실력과 상관없이 인간적으로 존중하는 것, 항상 공정성을 유지하는 것… 동시에 단원들이 요구하는 따뜻한 면모를 발휘하는 게 필요했죠.”

사회적으로 단체의 수장이 되면 눈에 띄는, 소위 업적(?)을 남기려는 계획을 세우고 불철주야 실행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성시연의 상황은 좀 특수했다. 경기필이라는 배를 다시 출항시키기 전,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모으는 것이 급선무였다.

“우유부단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을 결정하든지, 주변에 먼저 물어봤어요. 중요한 만큼 단원들 생각을 적극 들으려고 노력했죠. 사안에 따라 설문지를 돌리기도 하고, 물어보고, 절충하고…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든 없든, 지금도 중요한 건 단원들의 의견이에요. 프로젝트를 직접 수행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보람도 커지잖아요.”

행정적인 공정함과 음악적 내실을 동시에 다지는 것은 펜과 지휘봉을 함께 쥔 리더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성시연은 취임 직후, 고전 레퍼토리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말에 4관 편성 오케스트라를 그렇게 ‘못’ 활용해서 되겠냐는 질문을 누군가는 던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과거 4관 편성으로 오케스트라가 확대되면서 그에 걸맞은 레퍼토리에 집중해왔어요. 관객의 눈과 귀를 크게 뜨게 하는 대규모 편성도 좋지만, 그것만 오래하면 부실해질 수 있죠. 영양소가 부족해 피부가 나빠지는데 화장만 덧칠하는 느낌이랄까요. 오케스트라에 새로 들어와 돌아가는 사정을 모르는 단원이 많은 상황에서 바그너나 말러같이 큰 편성의 화려한 것만 계속하면 다른 단원들이 무엇을, 어떻게 연주하는지 구조적인 걸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채 흘러가죠. 그래서 우리는 모차르트·베토벤·브람스로 돌아가야 한다고 얘기했어요.”

그 말에 구자범 지휘자가 2012년 말, ‘객석’과의 인터뷰에서 꺼내든 이야기가 떠올랐다. 경기필 취임 후 당시 도내 지역 순회 연주회를 쌓아온 그는 “인지도가 정말 낮았는데 경기필이란 이름이 그나마 회자되기 시작했어요. 이제 내실을 다질 때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자신이 생각하는 균형과 내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처럼 공시적 관점에서 각자가 그리는 균형의 방법과 의미는 다를지라도, 통시적 관점에서 경기필은 각각의 지휘자들에 의해 정반합의 원리로 전진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텃밭에 씨를 뿌린 사람, 그 후에 물을 주고 거름 뿌린 사람이 각기 다를지라도 그들 모두 반드시 꽃이 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오케스트라가 살아야 지휘자가 산다

예나 지금이나 방법은 다르지만 경기필에 연습이 많다는 소리는 여전하다. 구자범 체제 당시 긴 리허설 기간이 눈에 띄었다면, 성시연은 프로 오케스트라에선 흔치 않은 ‘파트 연습’을 새롭게 시도했다. 파트 내 격차를 줄이자는 취지로 시작해 서로의 소리를 듣고, 교감하고, 눈빛 교환을 하는 과정을 통해 각 파트별 안정 수준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전체 합주 전에 이틀 정도 파트 연습을 하여 1차로 소리를 만들고, 합주를 하면서 그것을 믹스하는 것으로 지휘자는 관객이 요구하는 ‘취향’ 이면의 ‘수준’을 다듬는 중이다.

“과거 전임 지휘자들의 이름으로 경기필이 조명됐다면, 저는 경기필 그 자체로서 이름이 알려지길 바라요. ‘사람들이 경기필을 모른다’고 했던 구자범 선생님 말에 정확히 공감합니다. 제게 수원에 왜 오케스트라가 두 개나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거든요. 수원시향, 경기필 둘 다 필요하냐는 질문이 아예 나오지 않게 하는 게 지휘자의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시연이 아닌 경기필만의 무언가가 만들어져 ‘경기필 잘한다’ ‘경기필 음악 들으러 간다’는 이야기가 나오도록 제가 노력해야죠.”

이 말이 누군가에겐 정치적으로, 다른 한편으론 프로모션에 둔한 사람의 변명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경기필은 금난새라는 스타성에 기댄 시절, 구자범과 함께 파격으로 회자되고 세일즈한 이력이 있지 않던가. 청중과 단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초 다지기보다 반짝하고 사라질지언정 강렬한 그 무엇을 기대하고 필요로 할지도 모를 일이다.

“유럽의 오케스트라는 각 단체의 탄탄함과 정체성이 있고, 지휘자와 서로 색깔을 맞춰갑니다. 물론 한국의 실정에 맞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오케스트라의 자생력이 있어야 실력과 정체성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자극적인 걸 바란다면 제 이야기가 밋밋하게 들리겠죠. 지휘자가 살아야 오케스트라가 살 것 같지만, 오늘날엔 오케스트라가 살아야 지휘자가 삽니다. 수장이 바뀔 때마다 오케스트라가 휘청거리는 것이 옳은 그림이라 보기는 어렵죠. 유럽의 오케스트라가 오랜 세월 건재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고요. 해외도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연주 단체들이 먼저 타격을 받는데, 그럴수록 오케스트라가 탄탄해야 그런 역경도 견딜 수 있어요.”

‘맨 땅에 헤딩’이 즐거운 이유

아무리 좋은 바이올린을 갖춘 명연주자라 할지라도 단번에 탁월한 연주를 해낼 수는 없다. 한 사람과 한 악기가 그러한데, 한 사람과 백 명의 관계는 오죽할까. 오케스트라가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하면서도 경쟁 논리 안에서 인정받을 반한 특유의 사운드까지 만들어내려면 상당한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오케스트라가 악기인 지휘자는 여느 기악 연주자처럼 언제든 마음대로 연습하기도 어렵다. 머릿속으로 그리던 음악이 손에 착 붙는 음악으로 실체화되려면 ‘자신의 악기’와 주고받는 절대 시간이 요구된다.

“과거 서울시향 부지휘자 시절엔 제게 할당된 것들, 주어진 역할만 감당하면 됐지만 경기필을 맡으면서 생각과 고민이 많아졌어요. 방향성과 무게감이 달라졌죠. 음악적으로는 서울시향이나 객원지휘를 하러 다니던 다른 오케스트라에서 느끼지 못한 편안함과 익숙함도 생겼어요. 객원만 하다 보면 빈껍데기에 갇힐 수 있거든요. 지휘자로서 자신의 개성을 찾고, 아이디어가 실현될 수 있는 건 결국 자신의 오케스트라가 있어야 가능한 것 같아요.”

경기필과의 동행은 그녀의 성향에도 영향을 끼쳤다. ‘샤이한’ 성격 때문에 해외 활동 때도 매니저에게 뭘 해달라는 요구를 해본 적이 없던 그녀는 경기필에 필요한 재원조성을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도와달라”는 말을 서슴없이 꺼내게 됐다. 한국에서 지휘를 배우지 않아 ‘인맥’조차 없는 사람에게 이런 상황이 ‘맨땅에 헤딩’ 같을 텐데, 자신은 오히려 재미를 느끼는 중이란다.

‘고통의 터널을 지난 뒤의 환희’. 짧게나마 그녀를 지켜보며 든 생각이다. 스물다섯에 뒤늦게 지휘를 시작했다는 이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러 해 전 대관령에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보고 난 후 짧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베토벤을 좋아한다는 대답에서, 파리 살 플레옐 데뷔 때 “남들이 쉽게 갈 수 있던 영역을 나는 늘 전력투구해야 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성시연이 살아온 삶의 무게를 간간이 느낄 수 있었다.

“세상 모든 것에 야누스적 성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선과 악, 고통과 환희 같은 양면성이 공존하죠. 말러의 음악을 듣다 보면 왈츠를 추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뒤틀린 감성을 발견할 때, 상당한 쾌감을 느껴요. 제 인생도 마찬가지예요. 유학 시절 집안이 힘들었는데, 그때 관점이 많이 바뀌었어요. 인생이 불행이나 기쁨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다른 방향성으로 이어진다는 걸 체험했죠. 덕분에 실패나 어려운 상황에 처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어요.”


써온 이력서, 다시 쓸 이력서

다섯 살에 처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성시연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유학길에 올랐다. 가족 중 음악을 전공한 사람은 그녀가 유일했다. 어린 시절부터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던 그녀에게 스승은 피아노를 너무 외곬으로 대한다는 말과 함께 다른 것을 병행해보라 조언했고, 그때부터 지휘에 관심을 갖게 시작했다. 지휘를 따로 배우는 대신 관현악 레퍼토리를 듣고 오케스트라 공연장을 찾거나, 명지휘자들의 영상을 보았는데, 그러던 중 푸르트뱅글러가 지휘하는 영상을 우연찮게 보고 ‘한판 뒤집기’처럼 지휘의 마력에 빠져들었다.

스물다섯, 남들보다 뒤늦게 빠져든 지휘. 배경 지식 없이 무작정 시작했기에 그녀는 스스로 실력을 검증할 계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시작된 콩쿠르 참가는 게오르그 숄티 콩쿠르 우승(2006), 구스타프 말러 지휘 콩쿠르 최고상(2007) 등을 기록해나갔다. 콩쿠르를 통해 이름을 알리면서 매니지먼트와 계약 기회를 얻어나갔는데, 숄티 콩쿠르 후 뉴욕의 작은 개인 매니지먼트와 계약을 시작한 것이 보스턴 심포니 오디션으로 이어졌고, 이후 굴지의 매니지먼트사인 IMG 아티스츠와 인연을 맺게 됐다. 순전히 음악으로 전력투구했기에 쌓을 수 있는 경험이고 기회였다.

“뭐든 직접 부딪히면서 알아가야 했어요.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죠. 그래도 아시아인으로, 여성 지휘자로서 세계 시장에 접근하는 방법을 조언해줄 수 있거나, 지휘계 또는 클래식 음악 산업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매니지먼트의 속성 등 디테일한 것들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요.”

아무런 주변 도움 없이 척박한 땅을 손수 일궈내며 생긴 굳은살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지금 넘어지더라도 나중엔 넘어지지 않는 방법을 배울 테고, 그 경험들이 언젠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할 노하우가 될 테니… 그렇게 굳은살이 생기는 게 인생이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넘어지고, 구르고, 차여도 결국 자신은 꿈이 있으니 전력질주해야 하는 사람이라 다독이면서 말이다. 하지만 차돌처럼 단단해 보이는 그녀도 3~4년 전엔 음악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보스턴 심포니에 있는 동안 매주 큰 작품들을 소화했어요. 현대음악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레퍼토리도 많았죠. 늦은 나이에 지휘를 시작한지라 레퍼토리가 넓지 않았고, 예정된 지휘자가 취소될 경우 바로 투입돼야 했기에 늘 대기와 긴장의 연속이었어요. 그 와중에 경력을 쌓기 위해 따로 개인 연주를 하러 다녔고요. 하루 서너 시간밖에 못 자는 생활을 3년 동안 하다가 베를린으로 돌아오니 지난 시간이 허무하게 느껴졌어요. 극도로 소진됐던 거죠.”

스무 살 무렵부터 20년 가까이 외국 생활을 하는 사이, 그녀의 정체성은 한국과 독일 어느 쪽에도 확실히 속하지 못한 채 그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다. 그 상태로 서울시향에서 커리어를 쌓으면서 느낀 문화 차이는 상당했다. 외국에선 아무렇지 않던 일이 한국에선 뜻대로 되지 않는 것 투성이었다. 그녀에게 영감을 주고, 호흡을 불어넣어주던 음악이 이젠 갈기갈기 찢어놓고 병들게 하는 것만 같았다.

“보스턴 심포니에 있으면서 많이 깨졌어요. 음악이란 무엇인지,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이후 서울시향에서 찾아가는 음악회,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처럼 소통을 위한 다양한 채널을 보면서 클래식 음악이 고여 있는 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함께 한국 실정에 맞는 오케스트라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어요.”

어느 오케스트라나 새 지휘자가 오면 환영한다. 그러나 1년이 지나면 절반의 갈림길이, 2~3년이 지나면 또 다른 갈림길과 마주하게 마련이다. 물론 이 기준은 3~5년 정도 계약 기간을 두는 해외 오케스트라의 경우다. 계약기간 3년인 서울시향, 코리안심포니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내 오케스트라는 2년 단위 계약이다.

해외 유수 오케스트라에게 포디엄의 ‘손님’이던 성시연이 경기필과 동거를 시작한 지는 이제 1년 9개월. 현재 이들은 서로를 알아가며, ‘밀당’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확실한 동거를 위해 성시연은 거처를 독일에서 한국으로 옮겼다. 계약서상 일 년에 120일 출근이지만, 실제 그녀가 얼굴을 비친 날수는 그 이상이다. 한 오케스트라의 생사를 쥐고 있다는 책임감은, 얼마나 많이 경기필과 시간을 공유할 것이냐의 마음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그사이 일본과 독일 투어를 다녀왔고, 찾아가는 음악회와 더불어 2012년에 ‘지휘자 꿈나누기’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를 이어갔다. 경기필 단원들의 재능 기부로 지휘 학도들이 프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이 프로그램은 현재 국내 유일의 지휘자 양성 프로그램이다. 대개 수장이 바뀌면 사업들도 자취를 감추게 되는 걸 감안하면, 이례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성시연과 경기필은 여러 일을 함께 겪으면서 상대의 취향과 습관을 기억하고, 긴장과 이완을 말없이 주고받으며 서로 길들이는 중이다. 이제 막 신혼 생활을 시작한 풋풋한 아내와 남편처럼.

균형 속에 진화하는 예술가들

10월, 성시연과 경기필은 정기연주회 프로그램으로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을 내세웠다. 어느 작품보다도 오케스트라의 실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동시에, 개인과 단체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한 ‘봄의 제전’은 몇 해 전 사이먼 래틀/베를린 필 내한 공연 프로그램이었고, 올해 국내에서는 알렉상드르/서울시향, 리신차오/부산시향 정도가 연주했다. 굳이 다른 오케스트라의 레퍼런스를 올리지 않더라도, 경기필이 짧은 시간 안에 더욱 진화한 테크니컬을 보여줄 수 있는 과감한 레퍼토리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시간을 거슬러 2년 전, 경기필이 새로운 상임지휘자로 성시연을 내세웠다는 소식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슈가 됐다.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진 한국에서, 보수적인 예술 장르인 클래식 음악 오케스트라, 그것도 국공립 단체에서 여성 상임지휘자가 나왔다는 건 여러 모로 이례적인 일로 여겨졌다. 그럼에도 지휘자의 기능과 역할을 떠올릴 때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다. 오늘날 포디엄에 오르는 지휘자는 한 손에 지휘봉, 다른 손에 펜을 든 채 음악과 사람을 조율하고, 정확하고도 현실 가능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예술가라는 점이다. 그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무엇이든 말이다.

사진 박용빈

의상협찬

바톤 바이 권오수 클래식·Lorena Antoniazzi

헤어·메이크업

권득영·서영화(CARA’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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