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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수와 정영두, 두 안무가의 ‘클래식’한 수다
글 장혜선 기자 10/1/2015 |   지면 발행 ( 2015년 10월호 - 전체 보기 )




오선지 속 음표들을 춤으로 ‘작무(作舞)’하는 두 남자의 음악 코드를 낱낱이 파헤치는 시간 

춤 짓는 남자 안성수와 정영두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다른 예술에 몸담고 있다가 뒤늦게 춤판에 들어왔다는 점. 안성수는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재학 중 영화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허리 치료차 현대무용을 배운 것이 진로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그때 나이가 스물다섯. 그는 줄리아드 대학 무용과로 학교를 옮겼고, 자신의 이름을 딴 안성수 픽업그룹을 창단했다.

정영두는 고교 졸업 후 극단 현장에서 마당극을 통해 연극 활동을 시작했다. 극단에서 민속무용을 접한 그는 ‘몸’의 움직임에 호기심을 갖는다. 제대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 99학번으로 입학했고, 2003년에 두댄스시어터를 창단했다.

다른 공통점은 둘 다 음악과 친하기로 정평이 난 안무가라는 점이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들의 애정은 10월에 선보일 공연에서도 오롯이 돋아난다. 안성수는 시벨리우스 교향시 ‘레민케이넨 모음곡’ 중 ‘투오넬라의 백조’를 토대로 프리페어드 피아노(현이나 해머에 물체를 장착하여 소리를 변질시킨 피아노)와 전자음악, 첼로, 퍼커션을 곁들인 현대음악으로 라이브 무대를 꾸민다. 정영두는 바흐의 ‘푸가의 기법’과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사용하여 푸가가 지닌 음악적 형식미를 시각적으로 재현한다.

두 안무가의 이번 신작은 우리나라 현대무용의 흐름을 여실히 보여준다. 안성수의 ‘투오넬라의 백조’는 컨템퍼러리 서커스를 주로 공연하는 WHS와 협업한 작품이다. 현대무용에 폴 댄스·저글링 등 서커스 요소를 접목하여 다양한 분야가 통섭하는 춤으로 콘텐츠 생산의 또 다른 현주소를 보여준다.

정영두의 ‘푸가’는 현대무용의 외투를 두르고 있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각 무용 장르의 스타 무용수들이 뼈와 피, 살을 이루고 있다. 한국의 양대 발레단인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김지영과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엄재용이 현대무용에 도전한다. ‘댄싱9’ 출연으로 대중의 인기를 모은 윤전일과 현대무용수 최용승·김지혜·하미라·도황주가 함께 호흡하며 분야를 넘나드는 무용수들의 절묘한 앙상블을 선보인다.

게다가 이 둘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만난 스승과 제자 관계다. 두 ‘안무가’가 가만히 앉아서 춤을 추듯 ‘음악’ 이야기를 나눈 이날의 인터뷰.

지금부터 ‘클래식’한 이들의 수다를 엿들어보자.

스승과 제자, 단단한 연결고리

안성수의 안무는 발레처럼 질서정연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평이 있고, 정영두의 안무는 철학적 요소가 강하다는 평이 있죠. 스스로 생각하는 ‘안성수표 춤’과 ‘정영두표 춤’이란 무엇일까요?

안성수 글쎄요… 음악을 시각화하는 것.

정영두 난 철학적이지 않은데.(웃음) ‘철학적’이란 말이 여기저기 잘 어울리니까 자꾸 따라오는 것 같아요. 어쨌든 춤은 시간 속에서 조형적 이미지로 느껴지는 감동이 있잖아요. 이 지점에 춤의 본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춤의 특징이라면… 춤을 늦게 시작한 몸이니까 가끔 이상한 움직임이 섞여 있다는 것?(웃음) 전달하고 싶은 주제나 메시지는 항상 바뀌니까.

사제의 인연이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지 궁금합니다.

정영두 1999년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뒤늦게 입학했어요. 안무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지던 시기였는데, 그때 안성수 선생님을 처음 만났죠. 제 졸업 작품도 선생님께서 지도하셨습니다.

안성수 창작과는 여러 분야에 몸담았던 사람들을 선호해요. 특히 자기가 가야 할 길을 확실히 찾은 사람들을 좋아하고요. 학부생들은 나이가 어린데, 연기 경험과 사회 경험이 많은 영두 씨가 학교에 들어와 동기들 사이에서 중심이 되었죠.

정영두 어릴 적부터 단계적으로 무용을 배운 것이 아니라서 움직임에 대한 열등감이 많았어요. 특히 발레가 제일 힘들었는데, 선생님께서 참느라 많이 고생하셨을 거예요.(웃음) 저뿐만 아니라 창작과 많은 학생들이 음악과의 첫 작업을 안성수 선생님과 함께했죠. 3학년 때 선생님과 바흐 음악으로 작업하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인지 요즘 ‘푸가’ 공연을 준비하면서 선생님 꿈을 자주 꿉니다. 일본에 있을 때도 이틀 연속 선생님 꿈을 꾼 적도 있고요.

안성수 (웃음)

정영두 선생님께서 안무를 작업하실 때 그 주변을 많이 기웃거렸죠. 그러면 오라고 하셔서 하고 있는 작업에 대해 세세히 설명해주셨어요. 그때 경험이 정말 잊히지가 않아요. 저도 이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새삼 깨닫거든요. 선생님은 철저하게 규칙을 지키는 분이셨죠. 그 기억들이 제가 지금 무용수들하고 작업할 때 가장 큰 기준이 돼요.

안성수 한예종은 매 학기마다 실용무용제가 있어요. 4학년까지 총 여덟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단 한 번만 패스하면 됩니다. 그런데 영두 씨는 매번 시도했죠. 정말 바람직하지 않나요? 안무는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영두 씨는 여덟 번의 경험 수치를 가지고 학교를 졸업한 겁니다. 게다가 작품이 항상 실험적이었어요. 당시 영두 씨에게 자극 받은 학생이 많았죠.

정영두 실용무용제를 할 때 제 동작 중 독특한 동작이 있었어요. 선생님께서 ‘영두 씨가 하니까 흥미롭다’고 하셨죠. 비록 내가 다른 학생들보다 늦게 시작해서 춤은 잘 못 추더라도 내 안에 ‘어떤 것’을 찾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새롭게 도전하는 큰 힘이 됐습니다.


▲ 안성수 1991년 뉴욕에서 안성수 픽업그룹 창단. 아메리칸 댄스 페스티벌 스크립스 험프리 와이드먼 리몬 안무상, 보니 버드 안무상, 2001년 ‘시점’으로 춤비평가상, 2004년 ‘선택’으로 ‘몸’지 선정 올해의 예술상 작품상,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음악을 요리하는 안무가들

‘투오넬라의 백조’(안무 안성수)와 ‘푸가’(안무 정영두) 신작 준비에 바쁜 일정을 보내는 것 같은데, 어떤 과정으로 작업이 시작됐나요?

안성수 예전에 WHS라는 핀란드 컨템퍼러리 서커스 단체와 협업한 적이 있어요. 올해 시벨리우스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여 함께 시벨리우스와 관련된 작품을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3년 전 처음 이야기를 나눴고, 2년 전부터 함께 작업하기 시작했어요. 무용만 다뤄지는 공연이 아니라 새로 작곡하고, 음악도 라이브로 진행되는 큰 프로젝트죠.

정영두 저는 라벨 ‘볼레로’로 작업을 많이 했어요. 이번에도 ‘볼레로’로 새 작품을 만들고 싶었는데, LG아트센터에서 새로운 음악으로 작업해보자며 푸가 곡들을 추천해줬어요. 푸가 형식이 익숙하단 느낌을 받았고, 도전해보고 싶어 시작했습니다.

라벨 ‘볼레로’나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같은 춤곡이 아니기에 ‘전통 클래식 음악’에 더 무게를 둔듯한 느낌입니다.

정영두 ‘작품을 공부한다’고 다들 말하잖아요. 저는 이 표현이 정말 재밌어요. 푸가에는 안무적으로 ‘공부’해도 될 만큼 많은 형식이 있는 것을 깨달았어요. 푸가의 튼튼한 형식을 어떻게 안무로 전환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형식인데 그 단순함이 어쩌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이러한 푸가 형식을 안무에 그대로 옮기면 재미없을 것 같아서 무용수들의 이미지를 끌어오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안성수 저는 시벨리우스 ‘레민케이넨 모음곡’ 중 ‘투오넬라의 백조’를 원곡 그대로 사용해요. 여기에 사물리 코스미넨과 하우슈카가 시벨리우스 작품을 주제로 새로 작곡한 음악을 곁들였어요. ‘투오넬라의 백조’는 핀란드 구전 설화라고 할 수 있는데, 시간으로 나열되는 음악이 아니라 이미지 위주로 접근해야 해요. 바흐의 음악과는 약간 다릅니다. 예를 들어 바흐의 음악이 줄쳐진 노트라면, 시벨리우스 노트에는 줄이 없어요. 시간을 활용하기 어려우니 소리에서 이미지를 연장하고 형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줄이 없으니 오히려 더 자유로울 수 있겠네요.

안성수 자유롭죠. 하지만 시간을 계산하여 추는 춤이 아니라서 무용수들은 힘들어 해요.

무용수들의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작품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습니다. 어떤 방식을 통해 무용수들과 소통하시나요?

안성수 일반적으로 무용수들에게 음악은 시간의 흐름이잖아요.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까로 많이 고민하죠. ‘투오넬라의 백조’같이 이미지를 그려야 하는 추상적인 작품은 대화를 많이 해야 합니다.

정영두 박자를 나누고 선율을 분석하면 음악에 몸이 가둬진다고 거부하는 무용수도 있어요. 하지만 리듬이 몸 안에 충분히 들어오면 음악으로부터 새로운 몸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 부분을 무용수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무용수를 선택할 때에도 독특한 기준이 있을 것 같아요.

안성수 감?(웃음) 이제는 어떤 무용수를 보면 나랑 잘 맞을지 딱 느낌이 와요.

정영두 맞아요. 저도 제 움직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을 선택하게 돼요. 이번 ‘푸가’ 공연에서는 음악을 먼저 선정했기 때문에 음악을 잘 소화할 무용수를 먼저 찾았어요.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무용수들과 함께하면 관객이 음악을 무겁게 느끼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 정영두 2003년 두댄스시어터 창단. 2004 일본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 솔로와 듀오 컴페티션 요코하마 예술문화재단상 및 젊은 안무가를 위한 프랑스 대사관상, 2005 ‘몸’지 선정 올해의 예술상 안무가상을 수상했다. 2013부터 일본 릿쿄 대학교 현대심리학부 영상신체학과 특임준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전음악을 대하는 이들의 방식

바흐나 시벨리우스 같은 ‘고전(클래식)’ 음악을 ‘현대(컨템퍼러리)’적 안무로 재해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안성수 저는 음악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을 해요. 예전에 만들어진 음악을 현재에 시각적으로 보여줘야 하니 시대성이 굉장히 중요하죠. “시벨리우스가 이 음악을 작곡할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당시에 핀란드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해봐요. 이번 시벨리우스 작업은 스토리가 정해져 있어 오히려 편했어요. 예전에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을 안무할 때는 작품에 담긴 작곡가의 이야기를 알고 싶어서 타로카드를 보곤 했어요.(웃음) 갈 순 없지만 가야 하는 과거를 생각하는 것이 고전에 대한 해석인 것 같아요.

정영두 ‘푸가의 기법’을 보면 선율이 반복되고 변주하는 과정이 있잖아요. 여러 버전과 다양한 연주자의 음반을 들으면서 똑같은 곡인데도 음악의 길이가 두 배 이상 차이 나는 것이 신기했죠. 연주자들은 이 푸가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고민했어요. “왜 이 연주자는 여기에 강약을 넣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바흐를 어떻게 느껴야 하지?” 안성수 선생님의 타로 카드 이야기가 정말 공감돼요. 저 역시 바흐가 오늘밤 꿈에 나타나서 말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견고한 형식이 있는 클래식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 현대무용에서 중요시하는 요소 중 하나인 ‘즉흥성’이 방해되진 않나요?

안성수 어떤 규정이 있어야 더 자유를 느낄 수 있잖아요. 클래식 음악처럼 구조가 확실하면 그 안에서 더 자유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정영두 맞아요. 중심이 있어야 하죠. 한국무용이나 발레는 음악과 함께 움직이니까 동작에 많은 정성을 들여요. 조화 안에서 개성을 찾아가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데, 현대무용은 그 단계에서 벗어나 나를 먼저 표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생각하는 분이 꽤 많더라고요. 구조를 충분히 습득한 뒤, 그 다음 단계로 가는 자유로움이 저에게는 더 중요해요.

앞으로 작업해보고 싶은, 안무 욕심이 생기는 음악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안성수 처음에는 한국무용에 관심 있었는데 작업하다 보니 국악의 장단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요즘 ‘전통의 재구성’이란 이름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아마도 이 작업이 몇 년 지속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영두 앙상블 시나위와 함께 작업한 적이 있어요. 국악을 토대로 작업하는 팀인데, 협업하면서 앞으로 이런 음악을 더 많이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음악을 들었을 때 무대 이미지가 딱 떠오르는 곡들이 있어요.

끝으로, 안무가로서 고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안성수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것이 항상 고민이죠. 내년 계획은 다 세웠는데, 2017년에는 어떤 작품을 만들까 고민이에요.

정영두 저는 이번 ‘푸가’ 공연요. 바흐가 관객으로 와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길 바라죠. 바흐가 ‘나는 이 의도가 아니었는데, 저것도 괜찮네?’라고 할 정도면 좋겠어요. 여러 분야의 무용수가 조화로운 앙상블을 이루는 작품이 될 거예요.

사진 박진호(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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