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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뮤직마켓, 체코 크로스로드스 & 컬러스 오브 오스트라바 페스티벌
굴뚝 사이로 비친 음악의 교차로
글 이정헌(전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에이팜 총감독) 10/1/2015 |   지면 발행 ( 2015년 9월호 - 전체 보기 )




나이를 막론하고 한국 여성들에게 체코 프라하는 오래전 방영된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으로 강하게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개인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포스팅된 실제 풍경 역시 비할 데 없이 아름답기도 하여 지금까지도 계속 체코와 프라하에 대한 여행 판타지는 확대 재생산되는 중이다. 물론 거기엔 체코의 저렴한 물가와 친절한 사람들도 한몫하겠지만 말이다.

지난 7월 14~15일 양일간 열린 동유럽 뮤직마켓인 크로스로드스(Crossroads)와 14~17일에 열린 컬러스 오브 오스트라바(Colours of Ostrava)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 곳은 체코의 대표적인 산업도시이자 현대자동차 공장이 있는 도시, 오스트라바였다.

오스트라바 중심가에서 트램으로 5분 정도 이동하자, 크로스로드스와 컬러스 오브 오스트라바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초입에 들어선 순간, 눈앞에 펼쳐진 놀라운 광경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얼핏 폐허같아 보이는 이곳은 높은 굴뚝과 튼튼한 강철로 된 낡은 공장 건물들이 시커먼 석탄을 뒤집어쓴 채 우뚝 서 있었다. 석탄 공장과 철강 공장으로 쓰이던 과거의 역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듯했다. 트램 정거장 맞은편에는 새로 지은, 현재 진행형의 철강 공장이 자리하고 있어서 이 폐 공장 지역이 더욱 신선해 보였다.

그 풍경을 바라보면서, 도시 재생과 지역 재개발을 목표로 문화적 숨결을 불어넣은 지역들, 이미 잘 알려진 베이징의 798 예술특구, 요코하마의 뱅크아트 1929, 런던의 사우스뱅크 등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껏 필자가 본 지역 가운데, 오스트라바는 단언컨대 엄지를 절로 치켜들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오스트라바는 매년 필요에 따라 조금씩 단계적으로 리뉴얼을 진행하고 있고, 콘서트뿐 아니라 연극, 무용 같은 공연예술과 영화 상영 및 컨퍼런스를 아우르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하고 있어 지역 시민들뿐 아니라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에게도 큰 놀라움과 즐거움을 주고 있었다. 개인적으론 완전히 새로운 느낌의 놀라운 체험이었다.

 
 


체코·폴란드·슬로바키아 음악의 교차로


동유럽 뮤직마켓인 ‘크로스로드스’는 ‘교차로’라는 의미 그대로 체코와 국경을 마주한 폴란드와 슬로바키아 음악을, 체코가 중심이 되어 해외에 소개하고 네트워킹을 맺기 위한 자리다. 올해 두 번째 열린 이 행사에는 이 세 나라에서 온 많은 뮤지션과 에이전트, 미디어가 모였다. 또한 이들 세 나라 외에도 이곳의 음악을 만나고 자신의 페스티벌과 공연장을 소개하기 위해 필자를 포함해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초청됐다. 특히 체코 출신의 많은 유대인은 (이스라엘 건국에 참여한 덕에) 역사적으로 이스라엘과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이번 마켓에도 세 명의 이스라엘 디렉터와 에이전트가 참여한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이것은 크로스로드스 종료 후 이어진 컬러드 오브 오스트라바 페스티벌(Colours of Ostrava Festival) 무대에 선 이스라엘 출신 재즈 베이스 연주자 아비샤이 코헨(Avishai Cohen)에게서도 느낄 수 있었다, 유럽 투어를 위해 특별 구성한 밴드와 무대에 오른 그는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체코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체코와의 특별한 인연을 전하기도 했다.

한편, 13개에 이르는 크로스로드스의 쇼케이스는 전통음악, 월드뮤직, 재즈, 인디 록과 일렉트로닉까지 다양한 장르로 구성되었다. 수년 전 워멕스(WOMEX) 쇼케이스에 소개된 체코 출신 첼로 듀오 타라 푸키는 의심의 여지없이 좋았고 무지카 포크로리카, 반다 등은 충분히 주목받을 만했다. 다만 최근 음악 트렌드에 발맞춘 록과 일렉트로닉 밴드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음악이었기에 아쉬움이 남았다.

다른 뮤직 마켓과 비교했을 때, 이번 크로스로드스에서 느낀 장점이자 차별성은 크게 3가지다. 첫째, 체코·폴란드·슬로바키아 지역 음악에 대한 해외 초청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마련한 프레젠테이션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대개의 마켓에서 진행되는 컨퍼런스의 주제는 서로 중복되는 경우가 많은데, 지역 음악에 대한 개괄적 설명은 각각의 음악을 더 잘 이해하고 쇼케이스를 감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둘째는 워맥스 총감독을 역임한 제럴드 셀리그만이 앨범 디자인과 내용 구성에 관해 이야기한 부분이었다. 뮤지션과 매니저가 그들의 음악을 가장 효과적으로 규정짓고 홍보하기 위한 부분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마지막으로 모든 쇼케이스가 종료되는 동시에 공식 참가자들의 투표로 진행된 크로스로드스 어워즈 수상이었다(1위는 타라 푸키에게 돌아갔다). 이외에도 크로스도르스는 누구 하나 허둥대는 법 없는 스태프들로 잘 조직되어 있고, 각 베뉴에서 열리는 모든 쇼케이스를 편하게 관람할 수 있는 효율적인 동선을 갖추고 있었다. 참가자들을 위한 컨퍼런스 장소와 기타 부대시설 또한 흠잡을 데 없이 마련되어 있었다.

 


 


공동체 정신을 일깨워준, 컬러스 오브 오스트라바 페스티벌

인디아나 존스처럼 국내외 페스티벌을 탐색하며 재즈 및 월드뮤직 페스티벌, 뮤직 마켓을 만들고 운영해온 지난 10년간, 내·외부자의 시선을 모두 동원해 세상의 참 많은 페스티벌을 보았다. 거기엔 때로 부럽고 질투 가득한 마음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부족한 준비, 특징 없는 프로그램, 세심하지 못한 운영에 혀를 차기도 했다. 이번 컬러스 오브 오스트라바 페스티벌을 지켜보면서 질투와 부러움이 뒤섞인 복잡한 심사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그 심정을 짧게나마 전해본다.

엄밀히 말해 현재 우리나라 음악 페스티벌은 페스티벌이 아니다. 누구나 알 만큼 유명한 뮤지션을 헤드라이너로 초청해 홍보와 매표에 열을 올리고, 관객들은 이들의 공연을 중심으로 보고 싶은 뮤지션을 따라 무대를 옮겨 다니는, 그야말로 ‘콘서트 순례’를 한다(게다가 헤드라이너는 일본의 대표적인 음악 페스티벌인 후지 록 페스티벌, 서머소닉 페스티벌과 매년 공유되고 있다).

물론 콘서트 순례는 국내외 어느 음악 페스티벌에서든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페스티벌 스피릿’이라 일컫는 페스티벌 고유의 철학과 정신, 관객과 깊이 공유하는 공동체 의식이다.

컬러스 오브 오스트라바는 17개의 무대에서 비요크·카사비안·아비사이 코헨같이 소위 ‘헤드라이너’로 통하는 유명 뮤지션의 콘서트뿐 아니라 마니아들의 커뮤니티가 강하게 응집된 컬트적 공연 무대, 영화 상영, 글로벌한 시사성이 담긴 토크쇼와 시 낭송, 설치미술, 음반과 책 가게, 각종 NGO의 캠페인 등이 100여 개에 달하는 각각 다른 식음료 부스 사이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실제로 페스티벌을 찾는 이들이 주로 하는 일은 먹고 마시는 것인데, 한국의 메이저 음악 페스티벌 대다수는 식음료까지 트렌드와 후원금을 좇아가는 바람에 다양성을 잃어버렸다. 물론 해당 업체의 스폰서 정신도 중요하지만 좀 더 다양한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것이 관객을 배려하는 첫걸음일 것이다.


▲ 2만여 명이 운집한 비요크의 공연 ©Angela Sterling

메인 무대에선 비요크가 공연을 하고, 같은 시간 다른 무대에서 또 다른 공연이 열리고 이 모든 공연을 동일하게 즐기는 풍경, 각각의 개성에 따른 공동체 커뮤니티가 살아 움직이는 모습 등이 진정한 페스티벌 아닐까. 이이야말로 음악이 중심인, 페스티벌이라는 혹성에서 잠시 며칠이나마 해방감을 즐기고 돌아가는 풍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페스티벌에 올인하기 위한 캠핑은 부차적인 것이다. 오로지 헤드라이너와 티켓 판매에 목숨 거는 일이 계속 반복된다면 ‘페스티벌 문화’, 혹은 페스티벌을 통해 사회 문화적으로 긍정적 가치를 생산하기란 어렵다.

컬러스 오브 오스트라바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시게트 페스티벌(Sziget Festival)과 더불어 관객을 위한 편리한 동선과 무대 배치, 다양한 음악 취향을 배려한 프로그램, 뮤지션의 좋은 컨디션 유지를 위한 설비를 갖춘 백스테이지 운영, 메인 무대 및 다른 장소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VIP 존의 편의성 등은 너무나 당연해 보이지만 국내 음악 페스티벌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것들을 갖추고 있었다. 돈만 있다면 어디서든 부를 수 있는 헤드라이너에게 쏟는 정성의 절반이라도, 관객 편의와 페스티벌의 공동체 정신을 위한 투자와 노력을 기울이는 한국 음악 페스티벌을 앞으로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사진 Crossroads·Colours of Ostra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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