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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이수빈과 발레리나 이수빈의 평행론
같은 이름, 다른 길
글 장혜선 기자 9/1/2015 |   지면 발행 ( 2015년 9월호 - 전체 보기 )



반짝반짝 빛나는 두 개의 원석에는 똑같이 ‘이수빈’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그들이 겪은 남모를 성장통과 도약, 미래에 관한 대화


나에게 두 ‘이수빈의 기억’은 온통 빨간빛이다. 본지 창간 31주년 기념식에서 빨간 드레스를 입고 담담하게 무대에 오른 15세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빈. 사라사테 ‘치고이너바이젠’을 애잔하고 정열적이게 연주하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5개월 뒤, ‘한국을 빛내는 해외 무용스타 초청공연’의 영스타로 초청돼 무대에 오른 17세 발레리나 이수빈. 빨간색 인도 무희 의상을 입고, ‘라 바야데르’의 니키아를 성공적으로 연기했다. 연분홍빛을 띠어야 할 십대 소녀들이 붉게 각인된 이유가 단지 의상 때문만은 아니다. 작품에 대한 강한 통찰력,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감수성, 그리고 터져 나오는 열정!

아니나 다를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해 발레리나 이수빈은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불가리아 바르나 콩쿠르에서 주니어 부문 그랑프리와 젊은 예술가를 위한 특별상을 수상했다. 부상으로 소피아 내셔널 발레의 공연 기회가 주어졌고, 지난 3월 22일 ‘백조의 호수’ 전막 공연을 했다. 공연 후 소피아 내셔널 발레에서 재초청을 제안했고, 내년 1월 ‘라 바야데르’ 주역으로 다시 한 번 무대에 서기로 한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빈 역시 해외 연주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지난해 뉴욕 영 콘서트 아티스트 오디션에서 최연소 우승하여 케네디 센터, 뉴저지 선데이 뮤지컬 시리즈, 플로리다 대학교에서 연주가 예정됐으며, 올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미국 데뷔를 앞두고 있다.

예술은 인생의 깊이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두 이수빈이 참 대단했다. ‘어린 나이여서 잘한다’가 아니라, 성인 예술가와 비교해서도 좋은 무대였으니까. 인터뷰를 위해 촬영장에서 만난 두 소녀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제가 이수빈인데요!”

지킬 ‘수(守)’, 빛날 ‘빈(彬)’ 뜻도 똑같다며 신기해하는 소녀들. 한국예술종합학교 게시판에 콩쿠르 수상 소식이 올라올 때마다, 이름이 똑같아 서로 눈여겨봤다고 한다. 사랑스러운 두 예술가의 대화 속으로 들어가보자.

전혀 다른 두 이수빈의 시작

언제, 어떻게, 지금의 이수빈을 결심하게 됐나요?

이수빈(발레) 초등학교 3학년 때 동네 문화센터에서 취미로 발레를 시작했어요. 숫기가 없는 편이라 말보다는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부모님에게 전공을 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반대가 심했어요. 집안에 예술가가 없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시죠.

이수빈(바이올린) 다섯 살 때 수빈 언니랑 똑같이 문화센터에서 악기를 처음 시작했어요. 제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엄마가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셨습니다. 사남매 중 막내인데 악기를 배우는 언니·오빠들 덕에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어요. 문화센터에서 일 년 정도 배우다가 선생님께서 서울에서 레슨을 받으라고 추천해주셨죠.

이수빈(발레) 예술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한 친구들을 보면 부러워요. 발레는 체격부터 유전적인 영향이 강해요. 겉으로 보이는 선이 굉장히 중요한데, 근육의 미세한 차이로 선이 달라지거든요.

가족을 제외하고 영향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이수빈(발레) 가장 큰 행운은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어요. 선생님마다 가르치는 스타일이 다 달라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다양했죠.

인생의 스승을 꼽는다면 누구인가요?

이수빈(발레) 정말 많아서… 다 말하기 쑥스럽네요. 현재는 김선희 교수님, 조주현 교수님, 김용걸 교수님에게 배우고 있어요.

이수빈(바이올린) 저는 김남윤 선생님을 일찍 만난 편입니다. 일곱 살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 오디션에서 선생님을 처음 뵈었어요. 김남윤 선생님의 따뜻한 지지가 저에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선생님께 정말 감사해요.

두 이수빈의 성장통

발레리나 이수빈은 올해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입학했고,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빈은 내년에 음악원 입학을 앞두고 있어요. 또래보다 ‘일찍’ 대학생이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요?

이수빈(발레) 선화예고 1학년까지 다니다가 한예종에 입학했어요. 청춘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고교 시절 친구들이랑 누릴 수 있던 청춘이 그립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자주 만나요.

이수빈(바이올린) 저는 중학교 때부터 홈스쿨링을 했는데, 갑자기 학교를 안 가니까 친구들을 만날 시간이 없는 거예요. 스스로 외로움과 싸웠지만 지금은 극복했어요.

분명 장점도 있을 거예요.

이수빈(발레) 맞아요. 고등학교 다닐 때는 학과 수업이랑 실기를 함께 하는데, 대학에서는 이론 수업도 무용과 관련된 수업만 들으니까 실기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실기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이수빈(바이올린) 그게 제일 큰 장점이죠! 시간이 많이 절약 돼요.

요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요?

이수빈(발레) 대학생이 되면서 자유로워졌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 부분에서 인간관계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예술가들은 주관이 뚜렷해서 가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부분을 보일 때가 있는데, 그런 모습이 많이 고민됩니다.

이수빈(바이올린) 저도 내년에 음악원에 입학하잖아요. 바이올린 입학생 중 제가 가장 어려요. 정시를 치르고 들어오는 언니·오빠들도 있을 텐데, 인간관계 부분이 가장 고민이죠.

이수빈(발레) 서로간의 소통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소통을 통해 주고받는 도움이 정말 큽니다.

예술계는 보이지 않는 경쟁이 심하잖아요. 어리다는 이유로 눈치를 본 적이 있을 것 같아요.

이수빈(발레) 말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중하게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것 말고는… 주어진 것을 그냥 묵묵히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이수빈(바이올린) 눈치보고 기죽고 그러면 오히려 방해되고 안 좋은 것 같아서, 연주만 열심히 해요. 언니처럼 말조심도 중요하고! 하하.

이수빈(발레) 하하하.

주변에 예술을 하지 않는 친구들이 있나요?

이수빈(발레) 초등학교 친구 말고는 없는 것 같아요.

이수빈(바이올린) 저도요.


▲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빈. 2000년 인천 생.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 입학해 현재까지 김남윤 교수를 사사하고 있다. 2012년 예후디 메뉴인 콩쿠르에서 주니어 부문 2위, 2013년에는 모스크바 오이스트라흐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1위 및 EMCY 특별상을 수상했다. 뉴욕 영 콘서트 아티스트 오디션에서 최연소 우승했으며, 영국 베어스 국제 바이올린 협회에서 후원하는 1706년 산 지오반니 그란치노를 사용하고 있다. 2016년 한국예술종학학교 입학 예정이다.

두 이수빈의 도약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빈은 2012년 예후디 메뉴인 콩쿠르에서 주니어 부문 2위를 하며 이목을 끌었고, 발레리나 이수빈은 지난해 불가리아 바르나 콩쿠르에서 주니어 부문 그랑프리를 받으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수빈(발레) 바르나 콩쿠르는 발레 콩쿠르 중 역사가 깊죠. 현역 무용수들이 많이 거쳐가는 관문이란 생각이 들어 꼭 참가하고 싶었어요.

이수빈(바이올린) 예후디 메뉴인 콩쿠르는 어린 학생들이 많이 참여하고 싶어 하는 콩쿠르예요. 주변 언니·오빠들이 참여하는 것을 보고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김남윤 선생님께서 나가보라고 하셔서 정말 좋았습니다.

해외 콩쿠르에서 더욱 신경 써야 하는 것이 있나요?

이수빈(발레) 외국 아이들은 신체 비율과 체격, 체력이 훨씬 뛰어나요. 그래서 나만 보여줄 수 있는 개성을 확실히 표현해야 하는 것 같아요.

이수빈(바이올린) 바이올린도 비슷해요. 모든 연주에는 특유의 개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야 대중성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국내 콩쿠르는 누가 참여하는지 정보를 쉽게 얻는데, 해외 콩쿠르는 연주자끼리 서로 잘 몰라요. 발레랑 똑같이 외국 사람들의 신체 조건이 커서 악기도 시원시원하게 잘해요.

이수빈(발레) 음악도 그런 게 있구나!

이수빈(바이올린) 덩치가 크면 악기 소리가 시원시원하고 좋거든요. 언니가 말한 대로 개성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무대에 오르기 전 컨디션 조절은 어떻게 하나요?

이수빈(발레) 매일매일 리허설 할 때마다 같은 모습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기복이 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리허설 때 많이 긴장하고, 무대에 올라가면 마음이 편해져요.

이수빈(바이올린) 스스로 무대 체질이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어요.(웃음) 무대에서 연주하는 것이 정말 재밌어요! 짜릿한 긴장? 그런 게 느껴져요.

이수빈(발레) 무대에 서면 많은 관중이 나를 보고 있는 게 느껴지죠. 그러면 몰입도가 높아지고 감정이입이 잘돼요. 공연이 끝났고 청중의 환호가 터질 때 느껴지는 희열. 그때 그 느낌 때문에 다 이겨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수빈(바이올린) 많은 게 섞인 기분이에요. 기쁘기도 하고, 찡하기도 하고.

이수빈(발레) 아쉽기도 해요! 가슴이 막 벅차죠. 그런 느낌에 중독되는 것 같아요.

스스로 장점과 단점을 잘 알고 있어야 진짜 ‘프로’라고 하던데요. 본인의 장단점을 알고 있나요?

이수빈(발레) 하나에 몰입하는 성격이 장점인데, 남의 시선에 대한 생각이 많아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특히 큰 공연을 앞두고 있을 때 더욱 그래요. 극복하려고 노력 중이죠.

이수빈(바이올린) 음악을 들을 때도 그렇고 할 때도 그렇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왼손이 좋다’ ‘테크닉이 좋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느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것 같아요. 요즘은 느리고 차분한 곡을 잘하려고 공부 중입니다. 느린 곡에서 하는 테크닉이 따로 있어요. 예를 들면… 음이 끊기면 안 되고, 오른손과 왼손이 함께 노래해야 하고 그런 거죠. 차라리 감정 표현만 하면 괜찮은데, 느린 테크닉이 정말 어려워요.

이수빈(발레) 어떤 느낌인지 공감돼요. 발레에서도 느리게 할 때와 빠르게 할 때 힘든 점이 각각 있거든요. 느린 부분은 근육을 길게 쓰고, 빠른 부분은 역동적이죠.

두 이수빈 모두 감정 표현이 남다르던데요.

이수빈(발레)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맡은 역할을 제가 가진 것만으로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아요.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 다른 무용가들의 영상을 자주 봅니다. 평소에는 오히려 무뚝뚝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

이수빈(바이올린) 작곡가의 시대 배경을 찾아보고 좋아하는 연주자들의 영상을 많이 봐요.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머릿속으로 무대에 들어가서 나올 때까지의 과정을 상상하는 편이에요.

이수빈(발레) 저도요. 이미지 트레이닝이라고 하죠. 그러면 무대에 섰을 때 훨씬 효과가 좋습니다.


▲ 발레리나 이수빈. 1998년 경기도 안양 생. 2011년 선화예술학교와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서 수학했다. 선화예고 1학년 재학 중 한국예술종학학교에 입학했다. 2011년 시칠리아 바로카 무용 콩쿠르 2위, 2012년 서울국제무용콩쿠르 프리주니어 부문 1위, 2013년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 주니어 부문 3위를 했으며, 2014년 불가리아 바르나 콩쿠르에서 주니어 부문 그랑프리와 젊은 예술가를 위한 특별상을 수상했다.

두 이수빈의 미래

평단과 대중에게 듣고 싶은 말과 듣고 싶지 않은 말이 있다면?

이수빈(바이올린) ‘보고 또 봐도 계속 보고 싶은 연주자’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이수빈의 연주를 들으면 힐링이 된다’는 말요. ‘어리니까 그 정도면 잘하는 거지’ 이런 말은 듣고 싶지 않아요. ‘어린데도 잘한다’는 말은 별로 안 좋은 것 같아서요.

이수빈(발레)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좋거나 싫은 말을 들었을 때 저의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듣기 싫은 말을 들어도 하나의 관심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프로’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수빈(바이올린) 우와. 어렵다. 음… 내가 하고 있는 것에 전심전력을 다해 멈추지 않고 계속 끝까지 하는 것.

이수빈(발레) 나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스스로 아껴줄 수 있는 마음. 스스로 아마추어라고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아직도 저를 잘 모르겠다는 거예요. 무용은 자기 관리가 굉장히 중요하니까요. 자기 관리를 잘해야 프로 무용수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 짤막한 일문일답.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이수빈(발레) ‘지젤’. 테크닉보다 감정 표현을 더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요즘 ‘지젤’ 2막 파드되를 연습하고 있어요!

이수빈(바이올린)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시벨리우스는 악보에 원하는 성격이랑 소리를 뚜렷하게 기보했어요.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것 같아서 재밌어요.

잘 이해되지 않은 작품이 있다면?

이수빈(발레) ‘백조의 호수’. 백조와 흑조의 상반된 성격을 집어내는 것이 어려웠어요. 지난 3월에 생애 첫 전막 공연을 ‘백조의 호수’로 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하긴 했는데…(웃음) 잘 모르겠어요.

이수빈(바이올린) 바로크 음악. 딱딱하면서도 그 속에 무언가 섞여 있는 게 있다고 해야 할까. 감정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언제였나요?

이수빈(발레) 역시 ‘백조의 호수’ 전막 공연. 제 나이에는 행운 같은 기회여서 정말 소중했어요.

이수빈(바이올린) 예후디 메뉴인 콩쿠르 파이널 무대. 끝나자마자 청중의 기립을 보고, 처음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앞으로 10년 뒤에 이수빈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수빈(발레) 유명한 발레단에서 춤추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제가 좋아하는 춤을 계속 추면서 살고 싶어요.

이수빈(바이올린) 해외에서 활동하고 싶어요! 좋은 매니지먼트 소속이 되어, 연주도 많이 하고 관객들과도 소통하면서 지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진 이은비(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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