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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천천히 피는 꽃, 향기를 드러내다
글 국지연 기자 7/1/2015 |   지면 발행 ( 2015년 7월호 - 전체 보기 )



2015년 인터내셔널 저먼 피아노 어워드 우승에 빛나는 그의 생동감 넘치는 음악 세계


선우예권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0년 전쯤 피아니스트 신민자 교수를 인터뷰하면서였다. 당시 그녀는 자신의 인터뷰임에도 미국에서 공부하는 어린 제자의 뛰어난 음악성에 대해 많은 자랑을 했었다. 그리고 몇 년 뒤 그녀가 아끼던 제자 선우예권은 2009년 인터라켄 클래식스, 2012년 윌리엄 카펠 피아노 콩쿠르, 2013 센다이 콩쿠르, 2014년 방돔 프라이즈, 2015년 인터내셔널 저먼 피아노 어워드에서 모두 우승하며 국내는 물론 세계 음악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선우예권의 피아노 실연은 올해 초 금호아트홀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연주는 이전에 유튜브를 통해 라흐마니노프 작품으로 들었는데, 물 흐르듯한 자연스러운 프레이징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피아노 독주자로서 실제로 만난 그의 연주는 내 예상을 깬 무대였다. 흔히 젊은 연주자가 지닌 패기나 욕심, 화려한 테크닉보다 그는 맑고 단정한 고전 작품에서 더 심오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연주자였다. 특히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연주에서 들려준 그 작품만의 감춰진 멜랑콜리는 신선한 감동이었다. 바로 얼마 전 있었던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과의 연주에서도 그의 피아노 선율은 바이올린의 음색 속에서 조용하고 섬세하게 빛났다. 그는 현재 해외 연주 무대뿐 아니라 올해부터 더욱 본격화된 한국 연주 무대에서 자신의 음악 세계를 천천히, 그리고 묵직한 감동으로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얼마 전 재영이 형과 연주가 끝나고 바로 더하우스콘서트에서 또 연주가 있었어요. 한국에서 이렇게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무대가 많아져 기쁘고 감사합니다. 특히 지난 듀오 무대는 개인적으로 머리와 가슴으로 음악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재영이 형에게 음악적인 면뿐 아니라 무대에서의 매너, 리더십 같은 것도 배울 수 있었고요. 무엇보다 좋은 음악 친구를 만나게 되어 무척 행복합니다.”

올해들어 한국에서 그는 다양한 레퍼토리들을 선보였는데 개인적으로는 슈베르트의 연주가 좋았다. 그동안 천천히 다듬고 깊이 우려낸 내면의 향기가 단정한 슈베르트 연주 속에 잘 드러난 느낌이었다.

“슈베르트의 곡을 정말 좋아하고 아끼지만 잘한다는 생각은 눈꼽만큼도 한 적이 없어요. 다만 슈베르트를 연주할 때 제 스스로 위안이 되고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은 맞는 것 같아요. 정말 잘 치고 싶은 작곡가 중 하나죠.”

귀여운 외모 때문에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그는 몇 년 뒤면 서른을 코 앞에 둔 청년이다. 커티스 음악원과 줄리어드 음악원을 거쳐 현재는 매네스 음대에서 리처드 구드를 사사하고 있다. 어쩌면 뛰어난 실력에 비해 선우예권은 한국 무대에 늦게 알려진 경우다. 그의 연주를 들어보면, 굵직한 국제 콩쿠르에서 수상을 했음에도 왜 좀 더 일찍 알려지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다. 하지만 그에게는 기다림이었을 그때의 시간들이 지금의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을 있게 했을지 모른다. 일찍부터 영재 대열에 합류했다가 사라지는 연주자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영재, 콩쿠르 수상, 갑작스런 연주 무대들, 그러고는 그다음이 없던 천재들은 모두 짧은 시간 안에 깊고 넒은 음악을 표현하려다 무너져내린 슬픈 주인공들이다. 선우예권 역시 지금 이 시간에 자신을 인정해주고 기다려주는 무대가 생긴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한다.

“사람에게는 때가 있다고 하잖아요. 저는 항상 지금 그 순간의 무대를 감사하고 사랑해요. 요즘은 좋은 무대가 많아 감사하기도 하지만, 감사한 마음과 함께 ‘더 좋은 연주를 들려줘야 하는데’ 하는 걱정도 있어요. 항상 준비된 연주를 해야 하지만 너무 바쁜 스케줄 때문에 컨디션을 조절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앞으로 그런 부분들을 잘 조절해나가려고 합니다.”

평범을 비범으로 만든 ‘기다림’

어린 시절, 그는 흔히 말하는 ‘영재’가 아니었다. 두 누나의 피아노 치는 모습이 부러워 어머니를 졸라, 그것도 초등학교 2학년 때 피아노 학원을 찾았던 평범한 초등학생이었다.

“피아니스트가 될 거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면 할수록 피아노 치는 게 흥미로운 거예요. 재미있고, 더 잘치고 싶고. 하여간 왠지 좋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연습하고 다양한 곡을 배워나갔죠. 그러다가 저를 가르쳐주시던 동네 학원 선생님이 독일로 떠나게 되었는데, 어머니에게 제가 음악을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나 봐요. 저를 ‘원석’ 같은 아이라고 표현하셨다고.(웃음) 잘 다듬으면 좋은 연주자가 될 거라는 의미였겠죠.”

그 후로 그는 김선화, 신민자 교수를 사사하며 예원학교에서 피아노를 본격적으로 배웠다. 그리고 열여섯 살이 되던 해, 미국 커티스 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한 마음에 울었던 기억도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언어도 늘고 친구도 생기다 보니 미국에서의 생활이 적응되더군요. 무엇보다 음악공부가 더 재미있어졌고요. 특히 음악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혼자 공부할 수 있는 힘을 그때 얻을 수 있었어요. 커티스 음악원의 세이무어 립킨 교수님 덕분인데, 그분은 다른 사람의 음악이 아닌 ‘나의 음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이세요. 그리고 나의 음악이 커지기 위해서는 피아노뿐 아니라 책, 오페라, 교향곡, 영화, 미술 같은 예술을 많이 접하라고 늘 말씀하셨죠.”

콩쿠르에 처음 도전한 것도 음악을 공부한 지 한참이 지난 뒤였다.

“처음에는 유명한 콩쿠르에 빨리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이 계속 기다리라고 하시더군요. 그 시간을 음악적으로 완벽히 준비하고 예술을 공부하는 데 잘 사용하라고요. 그땐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의 말씀이 맞았어요. 그래서 제 또래 친구들이 국제 콩쿠르를 준비하는 시간에 저는 학교에서 하는 다양한 연주 무대에 서고, 레퍼토리를 넓혀가면서 음악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것이 그 뒤 콩쿠르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해주었고요.”

요리와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랑스러운 청년

그에게 가장 좋아하는 것을 묻자, 대뜸 귀여운 강아지라고 말한다. 그는 사랑스러운 강아지 사진 보는 것을 좋아하고 파스타와 찌개도 수준급으로 만들 줄 아는 남자다. 젊은 연주자들과도 친분이 두텁다. 특히 미국에서는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함께 음악 얘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나눠 먹으면서 지낸다고 한다.

“동혁이 형이 친구를 좋아해요.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공부할 때 삼계죽도 끓여 먹고 음악 이야기도 하면서 같이 보낼 때가 많았어요. 연주를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감정 기복이 있거든요. 외국에 있으면 때론 정말 외롭기도 하고요. 그럴 때 서로 위로해주고 격려도 하면 많은 힘이 되죠.”

하지만 그에게 진짜 힘을 주는 건 역시 ‘음악’이다. 그는 힘들 때마다 ‘음악’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여기까지 오게 해준 건 ‘음악’이었어요. 음악이 너무 좋고 훌륭하기 때문에 제가 가야 할 길이 험해도 늘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 인생의 길 위에서 함께 동행해준 분들 덕택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요. 한국에서부터 저를 자식처럼 아껴주신 선생님들, 그리고 미국에서 더 깊은 음악 세계를 알게 해주신 선생님들, 제게는 늘 훌륭한 스승들과 함께하는 행운이 따랐던것 같아요.”

특히 2010년, 필라델피아에서 스승 리처드 구드의 연주를 듣고 다시 한 번 자신이 가야 할 연주자의 길에 대한 명확한 목표를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선생님은 그때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를 연주하셨는데 그분의 음악을 듣고 정말 따뜻한 연주가 무엇인지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음악에 대해서는 결코 게으르지 말자고 그날 제 자신과 약속했습니다. 사실 연주를 자주, 그것도 비슷한 레퍼토리로 계속 하다 보면 음악적 표현이 어느 순간 멈춰 있을 때가 있거든요. 그것을 당연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스스로와의 다짐이죠.”

훌륭한 스승이 있었기에 지금의 무대에 서게 되었지만, 그 뒤에는 더 큰 가족의 사랑도 있었다.

“누나가 둘인데 집에서는 참 무뚝뚝한 편이에요. 특히 어머니가 저를 많이 믿어주시고 지켜봐주셨어요.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어머니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드리지 못했죠. 2년 전 일본에서 센다이 콩쿠르가 있었을 때, 사실 많이 긴장을 했거든요. 부담도 컸고요. 그런데 콩쿠르장에 일본에 사시던 이모님의 모습이 보이는 거예요. 이모가 제게 다가와 ‘이 곳에 어머니도 와 있다’고 하시더군요. 순간 눈물이 왈칵 나올 뻔했어요. 그동안 무뚝뚝하게 대한 어머니에게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요. 제가 철이 좀 늦게 드는 것 같아요.(웃음)”

선우예권은 한국 공연을 마치고 7월,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 리사이틀 데뷔를 앞두고 있다. 진지함과 도전정신을 잃고 싶지 않다는 그는 포틀랜드 체임버 뮤직 노스웨스트 페스티벌에서 쇼팽 전주곡 전곡을 무용수와 함께 컬래버레이션한 무대로 선보인다.

“예술이라는 공통 언어가 있기에 하나에 매몰되지 않는 여러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이런 시도들 역시 음악을 보다 넓고 깊게 이해하기 위해 걸어가는 또 다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지긋이 든 연주자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거의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음악이 자신의 인생을 닮아간다는 것.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음악이 삶과 닮아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바다보다 넓은 음악 앞에 선 작은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고 한다. 선우예권은 그런 진리를 지금 깨달아가고 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주위를 봐도 그 말이 맞는 것 같고요. 음악이 그 사람의 인생을 닮아간다면 저는 행복을 전하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음악이 줄 수 있는 수많은 기쁨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나눌 수 있다면 그게 가장 큰 행복이겠죠.”

천천히 걸어온 길, 평범하게 시작된 길이었지만 그가 가는 길 위에는 소중한 동반자가 많았다. 그를 아껴준 가족, 선생님, 친구들. 그는 느린 발걸음 속에서 이들을 통해 느낀 감동들을 음악이라는 풍경 속에 차곡차곡 담아냈다. 그래서인지 그의 음악에서는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 갖고 있는 건강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그동안 그래온 것처럼 앞으로도 천천히 제 길을 가고 싶어요. 그렇게 길을 가다 보면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만나겠죠. 맑은 눈으로 제 삶을 보듬고 음악으로 표현하겠습니다. 앞으로 그 길에서 만나게 될 소중한 사람과 음악, 새로운 시간을 기대하면서요.”

글 국지연 기자(ji@gaeksuk.com) 사진 강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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