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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신동일 교수의 파이프오르간 특강
한 몸에 품은 거대한 오케스트라
글 장혜선 기자 7/1/2015 |   지면 발행 ( 2015년 7월호 - 전체 보기 )


우아함+민첩함, 파이프오르간의 두 가지 코드!

백조적수상고아(白鳥的水上高雅) 물위의 백조는 고상하고 우아하다

연타적수중지족(然他的水中之足) 하지만 물 안의 백조의 발은

무휴항시망중야(無休恒時忙中也) 쉼 없이 항상 바쁘다네

오르가니스트는 중국 고사성어에서 말하는 백조와 잇닿아 있다. 고고한 자태로 웅장하고 경이로운 음색을 뽐내지만, 관객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서 발을 분주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파이프오르간은 거대한 크기만큼이나 기나긴 역사를 자랑하는지라, 베를리오즈는 ‘악기의 교황’이라 불렀다. 유동성이 없어서 한번 지어지면 부숴지기 전까지 한 곳에 존재하는 악기. 덕분에 지어진 나라의 문화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운반할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우리나라 양악사에서 파이프오르간의 역사는 매우 짧지만, 현재 외국에서 활동하는 오르가니스트는 많은 편이다.

“쿠프랭이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할 때 연주하던 악기가 아직도 파리에 남아 있어요. 그 오르간을 쳤을 때는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쿠프랭이 연주했던 악기를 몇백 년이 흐른 뒤 제가 다룬 것이니까요. 역사를 이어가며 연주하는 것은 오르가니스트이기에 경험할 수 있는 특권이죠. 당시 건반을 누를 때마다 음들이 마치 꽃처럼 피어나는 느낌을 받았어요.”


오르가니스트 신동일은 우연히 명동성당에 갔다가 오르간 소리를 처음 듣곤 이제까지 듣던 피아노 소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새로운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그 감동이 멈추지 않아 오르간 전공을 결심했고, 열세 살에 오르간을 시작해 연세대학교 교회음악과에서 곽동순 교수를 사사했다. 이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리옹국립고등음악원, 파리국립고등음악원, 미국 보스턴음악원을 거쳤다. 제20회 그랑프리 드 샤르트르 콩쿠르 대상 수상을 비롯해 1996년 무사시노 도쿄 오르간 콩쿠르, 1999년 프라하의 봄 콩쿠르와 엠케이 추르리오니스 피아노·오르간 콩쿠르 등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그는 현재 연세대 교회음악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신동일에게 파이프오르간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오르간이 두 번째로 큰 횃불선교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100% 주문 악기

파이프오르간은 100% 주문 제작하는 악기다. 장소에 맞춰 설계하며 악기마다 규모와 스타일이 달라져 연주 방법도 조금씩 다르다. 외국에서 오르간을 제작할 때는 ‘만들다’는 의미의 ‘make’가 아닌 ‘건설하다’는 의미의 ‘build’라고 말하며, 오르간 제작가도 메이커(maker)가 아닌 오르간 건축가(builder)라고 부른다. 파이프오르간은 악기이자 하나의 건축물인 셈이다.

“오르간은 악기를 찾아가서 적응하는 시간을 가진 뒤에야 연주할 수 있어요. 악기마다 건반의 느낌과 음색이 다릅니다. 예전에는 악기를 들고 다니는 연주자들이 부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니 오르가니스트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함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매번 새 악기와 조우하고, 교제하고, 동화의 시간을 가집니다. 연인 관계처럼 말이죠.(웃음)”

보통 콘서트홀에 지어진 파이프오르간은 프랑스 낭만시대 스타일에 근거하며 다른 시대의 특성을 조금씩 수용한, 이른바 ‘절충 스타일’로 지어진 경우가 많은데,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정체성

고대의 파이프오르간은 물의 압력을 이용해 생성된 바람을 파이프로 보내 소리를 냈다. 오르간 몸체에는 수많은 ‘관’이 있다. 목관·금관악기같이 공기를 이용한 원리지만, 연주하는 형태는 피아노·하프시코드같은 건반악기다.

횃불선교센터 파이프오르간

횃불선교센터의 파이프오르간은 1992년 오스트리아의 오르간 전문 리거(rieger)사에서 제작한 오르간으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크다. 이 오르간은 4단의 손건반과 78개의 스톱, 6143개의 파이프로 구성됐다. 파이프의 길이는 최대 7.14m, 최소 9mm다. 기계식 액션과 전기 스톱 액션으로 되어 있으며, 96레벨의 12개 전체 조합 단추, 8개의 각 손건반마다 있는 개별 조합 단추와 크레셴도·투티·시퀀서 등의 편리한 현대식 기억장치 시스템을 갖춰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연주할 수 있도록 고안했다.

악기 안에 사람이? 파이프오르간의 ‘풀무’는 바람을 만들어 파이프까지 공급하는, 사람의 심장과 같은 부분이다. 파이프오르간은 ‘관’악기라 공기가 없으면 소리가 안 난다. 반도네온·아코디언과 같은 원리다. “고대에 만든 오르간은 인부들이 악기 내부에서 풀무를 손으로 작동시켰습니다. 월급도 꽤 받았다더라고요.(웃음) 초인종이 달려 있는 파이프오르간을 본 적이 있습니다. 풀무질하는 인부가 잠들면 ‘쨍’ 하고 종을 쳐서 깨웠다더군요. 현대에는 송풍기가 바람을 파이프로 공급해줍니다.”


파이프를 품은 악기

파이프는 파이프오르간의 정체성이다. 수천 개의 파이프는 길이, 크기, 파이프의 처리법에 따라 음색이 달라진다. 파이프는 소리나는 방법에 따라 ‘순관’과 ‘설관’으로 나눌 수 있다. 순관(flue pipe)은 파이프에 공기가 들어가 울리는 원리고, 설관(reed pipe)은 오보에처럼 리드의 떨림으로 음색을 만든다.

“겉으로 보이는 파이프는 ‘고작’ 수백 개 정도지만, 내부에는 그보다 더 많은 엄청난 수의 파이프가 숨어 있어요. 관리가 굉장히 중요한데, 보통 10년에 한 번씩 분해해 세척을 합니다. 습도에 민감한 악기라 파이프오르간을 구비한 홀은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야 돼요.”

낮은 곳에서 민첩하게

오르간은 발로 선율을 연주하는 유일한 악기다. 바로크 시대의 파이프오르간은 지금보다 발건반 수가 적었지만, 현재 발건반의 개수는 32개다. 양발의 앞뒤를 모두 사용하면 동시에 네 음까지 낼 수 있다. “발건반은 보통 베이스 음역을 담당합니다. 오케스트라와 비유하면 첼로나 더블베이스라고 할 수 있죠. 손발을 조화롭게 표현하는 것이 어려워서 발건반 테크닉을 익히는 데 많은 시간이 들어요.”


오르간 슈즈 대부분의 오르가니스트는 특수 제작한 전용 신발을 신고 연주한다. 건반을 정확하게 ‘밟기’ 위해서다. 볼이 좁고, 연주 시 매끄러운 움직임을 위해 밑창은 가죽으로 만든다. 굽의 높이는 연주자마다 편의에 맞게 정하지만, 어느 정도 높이는 돼야 발로 수월하게 연주할 수 있다.


닫히고, 열리고!

음의 강약을 조절하고 싶으면 연주자들은 스웰 박스를 밟는다. 스웰 박스가 닫히면 소리는 작아지고, 열리면 커진다. “큰 강약은 스톱으로 조절하고, 스웰 박스로는 섬세한 뉘앙스를 표현합니다.”


결정적 단추!

스톱은 음색과 음높이를 결정하는 단추다. 보통 건반의 옆이나 위에 위치하는데, 연주자가 밀고 당기며 범위를 조절한다.

파이프 수가 많아질수록 스톱의 수도 늘어난다. 가정용 오르간의 스톱은 3~5개 정도고, 연주용 오르간의 스톱은 60개 이상이다.


층은 높아지고, 방은 많아지고

건반은 크게 손건반과 발건반(페달)으로 나뉜다. 손건반은 일반적으로

2단이나 3단이다. 횃불선교센터 오르간의 손건반은 4단이고,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설치된 오르간은 6단이다. 이처럼 악기가 클수록 건반 수는 늘어난다.

바흐가 활동하던 시대의 오르간은 건반 수가 50개 내외였는데, 다성음악(둘 이상의 독립적 성부를 동시에 노래하는 것)을 주로 연주했기에 건반수가 적어도 음악적 표현이 가능했다. 시간이 흘러 음악적 표현이 넓고 다양해지면서 건반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현재는 미국 오르가니스트 협회가 정한 표준을 따라 61개로 통일되어 있다.

꼼꼼한 악보

파이프오르간은 3단 악보를 사용한다. 프레이징과 스타카토 같은 연주 지시어는 다른 악기의 악보에도 똑같이 기보되지만, 파이프오르간 악보의 경우 음색과 건반의 변화가 표시 되어있으며 전반적으로 더 많은 지시어가 꼼꼼하게 적혀있다.


기억장치 버튼 피스톤(piston)은 연주자의 편의를 위해 고안된 기억장치다. 연주 전에 필요한 음색을 미리 피스톤에 입력한 뒤, 연주 중에 버튼을 누르면 음색이 변한다. 시퀀서(sequencer)는 연주자가 미리 입력해 놓은 피스톤들을 순서대로 작동시키는 장치다. “시퀀서가 발명된 지는 고작 몇 십 년밖에 안 됐습니다. 매번 다른 피스톤을 누르는 것 보다 연주를 훨씬 수월하게 해주죠.”


색깔 있는 건반들

나라마다 다르게 불리지만 손건반은 각각 이름이 있다.

1 봉바르드(bombarde) 4단 이상의 큰 오르간에서만 볼 수 있다. 크고 둥근 금관 소리를 가지며, 앙상블에 색을 입히고 화려함을 더하기위해 쓰인다.

2 스웰(swell) 그레이트 보다는 소리가 작지만 체임버 전면에 세워진 스웰 셔터를 열고 닫으며 볼륨을 조절한다.

3 그레이트(great) 가장 튼실하고 뚜렷한 소리를 낸다.

4 포지티브(positive) 스웰 보다는 소리가 크나 그레이트 보다는 작다. 합창음악이 발달한 영국의 경우, 합창단과 함께 연주하기 위해 사람의 목소리처럼 작고 섬세한 소리를 내는 콰이어(choir)가 포지티브를 대체하기도 한다.

손건반은 단마다 다른 음색을 가지고 있다. 각 층의 음이 쌓이면 소리는 점점 커지고, 악기 전체는 하나의 하모니를 이룬다. 음량은 스웰, 포지티브(콰이어), 그레이트, 봉바르드 순으로 커진다. “오케스트라와 똑같습니다. 현으로 시작해 목관, 금관, 나중에는 타악기까지 더해져 하나의 튜티를 만드는 것처럼 말이죠. 고유한 성격의 건반이 모여 하나의 앙상블이 되는 겁니다.”

탁월한 음색 요리사

스톱을 조절하면 현악·목관·금관·타악기 등 다양한 악기 소리부터 트레몰로 같은 세세한 악상까지 음색을 다양하게 ‘요리’할 수 있다. 스톱 위에는 음색을 나타내는 글자와 각각의 피치가 숫자로 적혀 있다. 프린시펄(principal)은 오르간 고유의 소리고, 그 외에도 현악기·목관·금관악기를 포함한 네 개의 음색 군을 가진다.

“파이프오르간은 하나의 악기로 거대한 오케스트라 같은 연주를 만들 수 있어요.”

신동일에게 소중한 파이프

“바흐가 일생을 마칠 때까지 몸담았던 라이프치히 세인트 토마스 교회의 오르간 파이프입니다. 새 오르간 설립을 위한 기금 마련으로 허물어뜨린 오르간의 부품을 팔고 있더라고요. 자세히 보면 오랫동안 공기에 노출되어 생긴 자국이 있어요. 음악적 가치보다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물건입니다.”


글 장혜선 기자(hyesun@gaeksuk.com) 사진 심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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