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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공일차원’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6/1/2015 |   지면 발행 ( 2015년 6월호 - 전체 보기 )


예술감독·안무가 안애순, 뮤지션 장영규, 의상디자이너 임선열, 영화감독 박찬경

춤으로 묻는다. 우리에게 영웅이란 무엇인가?

국립현대무용단 신작 ‘공일차원’에는 그들이 만든 좀 남다른 영웅이 나온다는데, 그 존재의 의미가 궁금하다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일차원(Zero One Dimension)’은 2014년에 초연한 ‘이미아직’에 이은 안애순(예술감독)의 두 번째 신작입니다. 안애순은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영웅’이라는 두 글자”였다고 합니다.

“이 시대에 우리들은 왜 영웅을 호출하려 하며, 왜 영웅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영웅…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떠오르나요. 아마도 작년에 화제가 된 영화 ‘명량’이나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스크린을 달구고 있는 ‘어벤져스’를 떠올릴 것입니다.

영웅|英雄|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

하지만 ‘공일차원’ 속 영웅은 좀 남다릅니다. 사실 우리는 영웅의 이미지를 영화나 게임 같은 스펙터클-미디어로부터 영향을 받아 떠올리고는 하죠. 강하고, 위대한… 이번 작품에서 시각연출을 맡은 박찬경은 “오늘날 영웅이라는 소재가 코드화되어 있다”면서 ‘공일차원’의 영웅은 “영웅이기는 하되, 영웅이 아닐 수도 있는 존재” 혹은 “가짜 영웅”이라고 설명합니다. 그 영웅은 “이 작품을 끌어가는 역할을 하며, 동시에 그를 필요로 하는 경쟁 사회를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공일차원’이라는 제목에 담긴 뜻이 궁금할 것입니다. ‘공(0)’과 ‘일(1)’은 디지털 시대를 이루고 있는 주요한 언어입니다. 한편, 0은 ‘없다’와 1은 ‘있다’를 상징하기도 하죠. ‘공일차원’에서 0과 1은 가상 세계를 상징하며, 우리는 현실과 뒤바뀐 그 세계에서 게임과 우화(알레고리)를 통해 개인의 욕망과 억압을 분출합니다. ‘공일차원’은 세속화된 자본주의의 현실에서 지친 사람들이 자기가 만든 가상 세계를 통해 영웅을 찾는다는 얼개를 지녔습니다. 그래서 영웅이라는 존재는 위기의 징조이자, 한편으로는 구원의 가능성이기도 한 것이죠. ‘공일차원’은 이러한 영웅의 존재를 통해 ‘난세’를 돌아보게 합니다.

이 작품을 위해 네 명의 예술가가 모였습니다. 안애순(안무)·박찬경(시각연출)·장영규(음악)·임선열(의상)입니다. 작품의 닻을 올리기 전, 물밑 작업을 해온 안애순은 이들에 대해 “각 장르의 예술적 업적을 갖고 있으며, 첫 만남이기도 했지만 이미 검증된 예술가들”이라고 합니다. 미술, 이미지 비평, 영화 등에서 활약해온 박찬경은 무용은 처음이라며, 이번 제작 과정에 대해 “무용수들과 안무가들이 제가 모르는 언어로 소통하는 과정이 재미있는 세계”라고 합니다.


▲ 박찬경 미술작가이자 미술평론가이며, 영화감독이다. 미디어시티서울 2014의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박찬경의 상|像|형상

2014년 3월에 박찬경의 영화 ‘만신’이 개봉했고, 4월에 세월호 참사가, 5월에 국립현대무용단의 ‘이미아직’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미아직’이 한국인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그려서일까요. 산 자와 죽은 자를 잇는 무당 김금화(중요무형문화재 제82-2호)의 일대기를 그린 ‘만신’은 ‘이미아직’과 그렇게 내통하고 있었습니다. 안애순은 박찬경이 가진 “샤먼과 전통에 대한 기운”이 “현대무용과 만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박찬경이 말합니다. 가상 세계를 다루는 “‘공일차원’의 시각적 콘셉트는 첨단과 미래입니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사람들이 상상했던 미래를 재밌게 연출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박찬경은 “그 당시에 유행했던 영화와 음악 등의 팝 문화를 참조”해 “우주적인 분위기를 인공적으로 연출합니다.” 한마디로 ‘과거의 미래’ 즉 과거가 꿈꾸던 미래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작품의 후반부에는 그래픽으로 된 애니메이션 영상이 영웅을 고대하게 하는 자본주의의 병폐를 재인식시킬 예정입니다. 자본주의의 특징 중 하나는 통계인데, 이러한 통계화를 거친 정보들은 자본으로 환원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버스 타고 어디를 가는 것, 양치질을 하는 등 일상의 단순한 행위도 숫자로 환산되고 자본을 위한 정보로 통계화됩니다. 이에 대해 비판하는 영상을 인포그래픽으로 처리한 것이죠.”


▲ 장영규 비빙의 음악감독, 어어부 프로젝트의 멤버이다. 무용·영화·연극·국악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장영규의 음|音|소리

“무용계에서 오래전부터 작업을 해왔는데, 인연이 닿지 않았다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안애순은 장영규에게 음악을 맡겼습니다.

지난 5월 13일, 약 40분 동안 ‘공일차원’ 시연회가 있었습니다. 무용수 14명의 춤을 이끈 장영규의 음악(녹음)에는 트럼펫 등의 금관악기가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그것은 음악이라기보다는 춤의 문장을 새로운 행으로 이끄는 음향과 신호처럼 작동하는 것 같았죠. 금관악기의 팡파르는 영웅을 암시·상징하는 것 같았는데, 중간에 전자음과 잡음이 외삽(外揷)될 때는 (박찬경이 말한 대로) “영웅이기는 하지만 영웅이 아닐 수 있는 존재” 혹은 “가짜 영웅”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장영규의 음악은 ‘현실’과 ‘가상’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집니다.

“‘현실’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무용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가상’의 춤과 시공간은 좀 다릅니다. 가상의 춤은 마임처럼 분절된 동작으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음악이 없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음악이 없을 수는 없죠. 구형 라디오에서 주파수를 돌리면 노래도 나왔다가 목소리도 나왔다가 하는데요. 소리를 동작과 상관없이 그렇게 흘려보내면 가상 세계를 표현하는 데 더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 임선열 안양공공 예술프로젝트를 비롯하여 미술·다원예술·현대무용 등에서 활동 중이다.

임선열의 색|色|빛깔

임선열이 디자인한 의상은 움직임과 함께 중요한 오브제로 ‘작동’합니다. 그녀는 2014년 안무가 장수미와 ‘아이의 아이(I of Eye)’를 함께했고, 국립현대무용단이 올해 3월에 선보인 ‘끝_레지던시:안무가 초청 프로젝트’ 중 임지애가 안무한 ‘어제 보자’를 계기로 이번 작품과 인연을 맺었습니다(임지애는 본지가 선정한 2015년 유망주이기도 합니다).

미술과 디자인을 전공한 임선열에게 “현대무용이 갖는 추상성”이 곧 “매력이자 어려움”입니다. 하지만 그 추상성 안에는 협업을 위해 고민하고,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의상의 디자인이 안무가가 만든 움직임에 방해가 되면 안 됩니다. 작품의 전체 내용을 달라지게 하거나,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르게 바꿀 수도 있으니까요.”

시연회에서는 한때 유행했던 ‘스트리트 파이터’의 한 장면이 패러디되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혹시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의상을 입나요?”라고 물어보니 그렇지는 않다고 합니다. 의상의 콘셉트에 대해선 단 두 가지로 말합니다. “너무 튀지 않으면서(안애순)”, “‘스포티’하고, ‘다이내믹’한 디자인입니다.(임선열)”

 

▲ 안애순 1985년에 안애순무용단을 창단했고, 2013년 6월부터 국립현대무용단 제2대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안애순의 평|平|다스리다·평평하다

장영규·박찬경·임선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공일차원’이 갖는 정보량은 굉장히 많을 것 같습니다. 안애순은 이들의 힘과 정보를 모으고 터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들에게 “특정 장면에 대해 디테일하게 말하지 않으며, 구체적인 컬러와 디자인을 거의 요구하지 않습니다. 장영규가 “무용수의 움직임과 춤을 먼저 보고 음악을 제안하는 때”도 있으며(장영규), “음악이 나오면 무용수들은 본능적으로 맞추거나 맞춰질 때까지 반복해서 듣고” 때로는 “숨은 박자가 춤으로 인해 발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안애순)”

‘공일차원’에 출연하는 14명의 무용수에게 안무된 ‘춤’이 아니라, 춤을 길어 올리는 ‘상상력’을 제공하는 것 또한 안애순의 몫입니다. “몸을 고무줄에 묶었다고 생각하고, 고무줄을 당기고 튕겨서 나간다든지, 상상력으로 넓어진 움직임에 제한을 주면서 동시에 또 다른 움직임을 끄집어냅니다.”

이처럼 음악과 움직임, 청각과 시각, 확장과 제한 등 각기 다른 장르와 요소들이 공존하되 동시에 독립적으로 연동하는 방식으로, 안애순은 ‘공일차원’의 무대를 빚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현대무용 특유의 구상과 추상의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녀는 이 작품에서 “특정 캐릭터를 부각시킨다든지, 특정 장면을 설명조로 가서도 안 된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공간과 시간을 넘나드는 관계들이 구상적인 생각에 갇히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현대무용은 열린 구조와 열린 결말을 지향합니다. 발레 같은 드라마-무용에는 ‘이야기’가 있는 반면, 현대무용은 이 ‘열림의 구조’를 어떻게 관객에게 전달할지가 고민입니다.

‘이미아직’의 난해한 춤의 기호는 세월호 참사와 우연히 맞물려 작품이 지닌 삶과 죽음의 무게를 더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실을 돌아보게 했죠. ‘공일차원’도 그렇습니다. 이 작품은 ‘영웅’이 아니라, 우리가 왜 그 존재를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게끔 하는 작품입니다. ‘어벤져스’에 왜 열광하는지, 그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공일차원’에서 가져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립현대무용단 ‘공일차원(Zero One Dimension)’

6월 5~7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안무 안애순, 시각연출 박찬경, 음악 장영규, 의상 임선열 조명 후지모토 다카유키, 애니메이션 구인회


사진 박진호·이은비(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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