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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 프레슬리❷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로큰롤의 황제
글 하종욱(음악 칼럼니스트) 6/1/2015 |   지면 발행 ( 2015년 6월호 - 전체 보기 )



20세기 대중음악사의 가장 극적이고 뜨거웠던 그 이름!

할리우드에서 길을 잃다

엘비스 프레슬리에게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던 군 입대, 그리고 2년의 공백은 데뷔 이래 정상으로만 향하던 그래프의 멈춤이었다. 멤피스의 촌뜨기에서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으로 성장한 엘비스의 1950년대 영광은 벌써 과거의 이야기로 버려지고 있었다. 1960년대는 그가 맹렬히 질주했던 1950년대와 사뭇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제대 후 팝의 황제로 복귀한 엘비스의 나이는 고작 스물다섯. 그럼에도 그의 이름은 ‘구시대의 산물’로 치부되었다. 1960년대의 개막에 즈음해 미국은 전 세계 대중음악과 대중문화의 판도가 일제히 바뀌는 변혁의 시공간이었다. 엘비스는 로큰롤 리듬을 댄스음악으로 변주시킨 종래의 이미지에서 탈피해 성숙한 팝 아티스트의 모양새로 변화를 모색했다.

제대 후에도 엘비스 프레슬리는 변함없는 최고의 아이돌 스타였다. 1960년 3월 5일, 제대한 지 불과 보름 만에 내슈빌의 RCA 스튜디오 B에서 뽑아낸 싱글 ‘Stuck on You’는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가장 상위권을 점령했다. 곧이어 ‘It’s Now or Never’ ‘Are You Lonesome Tonight’ 같은 발라드곡이 포함된 ‘Elvis is Back!’도 음반 차트 2위에 등극하면서 성공을 거뒀다. ‘It’s Now or Never’ ‘Are You Lonesome Tonight’은 차례대로 미국 빌보드 차트의 넘버원 싱글로 자리했다. ‘엘비스는 섹시하게 노래하지 않았다. 외설적으로 노래했다’라는 평과 함께했다.

1960년대 초중반 엘비스 프레슬리는 가수로서의 활동보다는 영화배우로서 브랜딩에 치중하고 있었다. 그의 복귀 후 첫 번째 영화는 미국 군인으로서의 공익적 이미지를 옮겨온 ‘G.I. Blues’였다. 1960년 8월에 개봉한 영화의 흥행 성공과 함께 사운드트랙도 음반 차트 1위를 회복했다. 1961년은, 1960년대에 발표한 영화 사운드트랙 중 ‘West Side Story’와 함께 가장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영화 ‘Blue Hawaii’의 열기로 가득한 한 해였다. 1961년 6월에 발표한 또 하나의 히트 음반 ‘Something for Everybody’로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그해 10월에 발표한 동명 영화의 사운드트랙 ‘Blue Hawaii’는 빌보드 차트에서 20주간 1위, TOP 10 차트에서 39주간 머무는 매머드급 흥행 성공을 자랑했다. 음반에 수록된 솜사탕처럼 달콤한 목소리로 부른 발라드 넘버 ‘Can’t Help Falling in Love’도 큰 인기를 누렸다.


▲ 1968년 컴백 스페셜 무대에서 노래하는 엘비스 ©Ullstein archive

엘비스 프레슬리의 건재를 확인시킨 것은 무대에서의 모습이 아닌 은막에 투영된 허상이었다. 엘비스의 진로를 조율한 매니저 톰 파커는 엘비스가 더 많은 출연료를 받고 영화에 출연할 수 있도록 전력투구했다. 덕분에 엘비스는 1960년부터 1967년까지 단 한 차례의 콘서트만 치른 채 뮤지션이 아닌 배우로서의 활동에 갇혀 있었다. 1956년부터 1969년까지 총 31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동안 그가 주연한 영화는 섹시한 외적 매력을 앞세운 청춘물, 혹은 기타를 들고 여심을 사로잡는 뮤지컬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영화의 흥행 성공과 별개로 작품성에 대한 고려는 없어 보였다. 팝 스타 앤 마거릿과 함께 출연한 흥행작 ‘비바 라스베가스’(1964)를 비롯해 ‘걸스! 걸스! 걸스!’(1962), ‘아카풀코의 추억’(1963), ‘카니발’(1964), ‘키싱 커즌스’(1964), ‘걸 해피’(1965), ‘파라다이스’(1966), ‘프랭키와 자니’(1966), ‘클램베이크’(1967) 등의 영화는 무늬만 조금 다를 뿐 엘비스의 외적 이미지에만 초점을 맞춘, 비슷한 배경과 주제를 지닌 식상한 엘비스의 영화일 뿐이었다.

로큰롤 황제의 복귀

할리우드 배우로서의 활동에 집중한 1960~1967년은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음악적으로 심각한 슬럼프 시기였다. 특히 1962년부터 1967년까지는 대중에게 ‘한물간 스타’라는 인식과 함께 음악적으로는 퇴물 취급을 받았다. 이 시기에 그가 획득한 빌보드 넘버원 싱글은 1962년 작 ‘Anything That’s Part of You’에 수록된 ‘Good Luck Charm’이 유일했다. 세상도, 청중도 바뀌고 있었다. 격변의 시대인 1960년대, 대중은 보다 과격하고 신선한 충격을 주는 음악을 원했다. 미국에서는 밥 딜런을 중심으로 발화된 포크 록이 부상했고, 영국에서는 비틀스의 음악이 전 세계 젊은이들의 감성을 폭격하고 있었다. 음악뿐 아니라 영화·미술·문학 등에서 일제히 발생한 신문명의 조류에서 엘비스 프레슬리는 ‘낡은 이미지’의 상징으로 공격 대상이 됐다. 엘비스는 새로운 시대가 요청하는 변화에 응답하지 못한 채 침묵했다. 1965년 비틀스가 엘비스의 캘리포니아 자택을 방문해 잼 세션을 나눴다는 것이 호사거리가 됐을 뿐, 영화 출연 외에는 은둔과 칩거 생활이 계속되었다.

1967년 5월 1일, 엘비스 프레슬리는 1959년 독일에서의 파병 기간 중 만난 프리실라 보리외와 결혼했다. 첫 만남 당시 14세 소녀였던 프리실라는 22세의 숙녀가 되어 엘비스의 부인이 되었다. 1968년에는 둘 사이에 훗날 마이클 잭슨의 아내가 되는 외동딸 리사 프레슬리가 태어났다. 엘비스가 단란한 신혼의 단꿈을 누리는 동안에도 세상은 거침없이 변해갔다. 팝 음악 시장에서도 비틀스뿐 아니라 롤링 스톤스·더 후·크림·애니멀스·레드 제플린·밥 딜런·지미 헨드릭스·제니스 조플린·도어스 등의 신문명이 엘비스의 공백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 앤 마거릿과 함께 출현한 영화 ‘비바 라스베가스’ 포스터

엘비스 프레슬리는 드디어 가수로서 복귀를 선언했다. 1968년 12월 3일, 미국의 NBC 방송국은 엘비스의 복귀 프로그램을 특집 방송으로 편성했다. 미국 전역에 방영되어 42%의 시청률을 기록한 이 방송으로 엘비스는 건재함을 과시했다. 오랜 침잠 끝에 무대 위로 복귀한 엘비스에게는 다소 변화가 있었다. 불어난 몸집이 그랬고, 곱슬곱슬한 특유의 헤어스타일과 구레나룻은 야성미를 느끼게 했다. 너풀거리는 통바지와 깃을 세우고 단추를 풀어헤친 하얀색 카우보이 무대의상은 그의 복귀에 맞춘 콘셉트였다. 로큰롤과 함께 무대에서 복음성가를 부르는 모습도 주요한 음악적 변화 중 하나였다.

황제의 귀환은 성공적이었다. 1969년 7월에는 라스베이거스에서 4주간 총 57회의 공연을 강행하는 동안 13만 명의 관객이 동원됐다. 그해 8월에 발매한 싱글 ‘Suspicious Minds’는 엘비스의 18번째 넘버원 싱글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이 곡은 엘비스가 기록한 마지막 빌보드 넘버원 싱글곡이다. 그는 1969년에 연속 출연한 ‘차로’ ‘습관의 변화’를 끝으로 더 이상 영화 출연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970년 6회에 걸친 투어 중 총 2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고, 존 레넌·밥 딜런·조지 해리슨·데이비드 보위·아트 가펑클 등이 함께 출연한 1972년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의 4회 공연도 완전 매진을 기록했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넘버원 히트곡만으로도 세트 리스트를 다 채울 만큼 풍부한 레퍼토리를 지닌 그의 공연은 언제나 성공적이었지만, 그에게 새로운 음악은 없었다. 그의 뮤지션으로서 의욕적인 복귀 효과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1973년 1월 14일, 인공위성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한 TV 쇼 ‘Aloha from Hawaii’는 공연과 방송의 역사에서 길이 남을 사건이었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 30개국을 비롯해 일본·한국·필리핀·홍콩·베트남 등에서 위성 생중계로 전파된 이 공연은 각국에서 적게는 37%, 많게는 9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40여 개국의 15억 명이 동시 시청했다.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가 누린 가장 뜨거운 순간이었으며, 동시에 그가 마지막으로 누린 영광의 순간이었다. 두 장의 LP, 4면에 담긴 이날의 기록은 ‘Aloha from Hawaii via Satellite’이라는 타이틀로 발매했고, 음반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 40여 개국에 생중계한 ‘Aloha from Hawaii’

황제의 몰락 그리고 죽음

하와이에서의 위성 생중계 이후 엘비스 프레슬리는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했다. 그해 10월 9일에는 아내 프리실라와 합의 이혼했다. “나는 어림잡아 1000명의 여인을 만났지만, 진정한 사랑은 한 명뿐이었다”고 회고한 엘비스였기에, 프리실라와의 결별에 따른 상심은 컸다. 그는 이혼에서 오는 상실감을 이겨내고자 폭식을 했고, 한때 74kg이던 몸무게는 117kg에 이르렀다. 그는 잠들기 위해 수면제를 복용하고, 잠을 깨기 위해 각성제를 복용하며 8개월 동안 9000개의 약을 먹은 것으로 전해진다. ‘멤피스의 마피아’라 불리던 호위병 친구들은 엘비스의 추락을 부추겼다.

끝내 엘비스는 팬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1977년 8월 16일, 엘비스가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져 있는 것을 그의 여자친구가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겼지만, 병원에 도착했을 때 엘비스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사인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알려졌지만, 그의 죽음에 대한 추측은 무성했다. 훗날 직접적 사인은 만성 변비에 따른 심장마비라는 판명이 뒤따랐다. ‘엘비스 프레슬리로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고 지겹다’는 고백과 함께 그가 죽음으로 위장한 채 일반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추측과 증언도 있었다. ‘로큰롤의 황제’라 불리며 42세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엘비스의 죽음은 전 세계인의 슬픔이 됐다. 그가 사망한 후에도 멤피스에 남겨진 그의 묘지는 팬들의 헌화가 끊이지 않는 성지가 됐다. 사후에도 엘비스의 이름은 추모와 헌정, 동경과 추종의 대상으로 추억되고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1954년 데뷔 이래 총 18곡의 빌보드 넘버원 히트 싱글을 남겼으며, 비틀스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약 2억8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린 세기의 가수였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 그래미상 평생공로상에 헌액된, 팝 음악의 위대한 거인이었다. 그의 등장은 멜로디 중심의 스탠더드 팝의 유행을 허물고 격렬한 리듬감이 지배하는 로큰롤의 시대를 열었다. 그의 음악적 명성을 가로막았지만, 그는 1950~1960년대 최고의 출연료를 자랑하던 당대의 스크린 스타이기도 했다. 조각처럼 잘생긴 외모, 온기와 열기를 동시에 함유한 그의 목소리, 무대 위에서의 열정적인 퍼포먼스는 엘비스를 20세기의 섹스 심벌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했다. “엘비스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라고 말한 존 레넌, “엘비스보다 위대한 가수가 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라고 추억한 밥 딜런에 이르기까지, 엘비스는 1950년대 이후 팝 음악 변화의 기준이자 극복의 대상이 되어왔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20세기 대중문화의 가장 극적이고 뜨거운 순간의 이름이었다.

추천 앨범




King of Rock ‘N’ Roll 50s Masters

엘비스 프레슬리의 시간이 1950년대라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 1954년 데뷔 이래 그의 성공 스토리가 담긴 선 레코드와 RCA 빅터 이적 이후 1950년대의 레코딩 140곡을 다섯 장의 CD에 모아놓았다. 그의 음악적 전성기에 있었던 초기 로큰롤 스타일에서부터 스탠더드 팝으로의 이동 과정까지, 그의 변화 과정과 다양한 음악적 소화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The Perfect Elvis Presley Soundtracks

은막의 스타 엘비스 프레슬리였기에 그의 음악적 명성의 절반 정도는 영화에서 불린 노래가 적지 않았다. 그가 스크린에서 노래한 17장의 OST와 세 장의 새로운 편집 음반을 한데 모아 20장의 박스 세트에 모았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목소리에 담긴 다양한 표정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추억할 수 있다.


Aloha from Hawaii via Satellite

1973년 1월, 40여 개국에 위성 생중계한 엘비스 프레슬리 생애의 가장 뜨거운 순간, 그리고 마지막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세기의 음반. 달에 착륙하는 순간보다 많은 15억의 인구가 동시 시청한 엘비스의 불타는 시간의 연대기가 하나의 무대에서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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