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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과 동성애
우리 사랑 이대로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6/1/2015 |   지면 발행 ( 2015년 6월호 - 전체 보기 )



‘그 소년’을 생각하며 곡을 썼던 남성 작곡가들을 빼놓고 20세기 음악사를 말할 수 없다

동성애 | 동성의 상대에게 감정적·사회적·성적인 이끌림을 느끼는 것

20세기를 거점으로 활동했던 미국 작곡가 중 절반가량이 동성애자거나 최소한 양성애자였다. 애런 코플랜드, 레너드 번스타인, 새무얼 바버, 마크 블리츠스타인, 존 케이지, 해리 패치, 헨리 코웰, 루 해리슨, 잔 카를로 메노티, 데이비드 다이아몬드, 네드 로렘(1923~) 등이 그러했다. 영국에서도 작곡이라는 예술은 동성애자들 사이에 깊이 침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은 젊은 벤저민 브리튼과 마이클 티펫 모두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20세기 초반의 작곡가들, 예를 들어 프랑시스 풀랑크, 앙리 소게, 그 밖에 발레 뤼스와 관련된 작곡가들은 동성애의 하위문화를 영위했다. 하지만 작품 속에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암시나 대외적인 표현은 거의 하지 않았다.

클래식 음악과 동성애 문화의 관계는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월이 흐르면서 음악원과 연주회장에는 동료들과 어울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 내향적인 소년이 많아졌다. 특히 클래식 음악은 감정을 자유롭게 흘러가게 하는 힘이 있다 보니 젊은 동성애자들에게 호소력이 있었다. 소년·소녀 사이의 사랑과 섹스에 대해 입을 연 팝송과 달리 오페라는 로맨스를 더 고색창연하고 양식화된 방식으로 표현했고, 추상성 짙은 기악 작품은 말로 하기 힘든 감정을 표현하는 데 긴요한 양식이었다.

창작을 통한 성적 해방

폴란드 작곡가 카롤 시마노프스키(1882~1937)는 커밍아웃의 경계에서 동요한 경우다. 그의 작품 중 ‘에페보스(Ephebos)’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 이는 고대 그리스에서 사춘기에 도달한 남자를 뜻한다. 포르노그래피적 성향을 띠는 이 작품은 발표되지 않아 이제는 거의 망각되었다. 1908년과 1914년 이탈리아 남부와 아프리카 북부를 여행하면서 성적 해방을 경험한 시마노프스키는 가장 격동적인 시절의 드뷔시와 신비주의 사상에 깊이 빠진 스크랴빈을 연상시키는 관능적 스타일을 치열하게 개발했다. 1914년에 작곡한 연가곡 ‘하피즈의 사랑 노래’는 14세기 페르시아 시인 하피즈의 들뜬 세계를 탐구한 곡이다. 하피즈는 종교적 황홀경을 접하기 위해 젊은 남성의 신체가 지닌 매력을 활용했다고 한다. 오케스트라 외에 합창과 오르간이 함께하는 교향곡 3번 ‘밤의 노래’(1916)도 페르시아 시인 잘랄 알딘 루미의 성적 긴장감이 팽팽한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 곡의 가사에는 “아, 잠들지 말아요, 친구여. 밤이 새도록···”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오페라 ‘로저 왕’에는 아름다운 목동이 뿜어내는 디오니소스적 매력에 저항하기 위해 애쓰는 영웅의 모습이 나온다. 그런 그를 두고 목동은 “나의 신은 나만큼 아름답다”라고 말한다. 이 작품의 결말은 애매모호하다. 청중은 로저가 그 목동에게 ‘굴복’했는지, 아니면 ‘극복’했는지 명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목동과 난교적 제례가 끝난 뒤 로저는 아폴로의 태양을 향해 팔을 높이 들고, C장조의 화성이 그를 둘러싼 채 홀로 남겨질 뿐이다(유튜브에서 검색해본 이 오페라는 특정한 노출과 폭력 장면이 없음에도 ‘12금’이라고 적혀 있었다).

영국 작곡가 브리튼(1913~1976)은 시마노프스키처럼 ‘금기’와 ‘위반’의 경계를 오락가락하지 않았다. 1937년, 그가 스무네 살이 되던 해 어머니가 사망하자 브리튼은 우울해했다. 하지만 사랑받는 아들의 역할에서 이제는 뜻 모를 해방감을 느꼈고, 애인이 된 세 살 연상의 테너 피터 피어스를 만난 것도 이때였다. 그러면서 브리튼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어린 소년들과의 사랑 속에서 자신만의 낭만을 길어 올렸다. 지휘자 헤르만 셰르헨의 아들 울프 셰르헨과의 우정은 거의 동성애의 관계로 선을 넘기도 했다.

미소년, 영감의 꽃

5월 1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요엘 레비 지휘·KBS교향악단의 연주로 말러 교향곡 5번을 오랜만에 실연으로 접했다. 아다지에토 악장이 콘서트홀을 울렸을 때,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이 떠올랐다. 루키노 비스콘티(1906~1976) 감독의 1971년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디오니소스와 아폴로는 해변에서 우연히 만난 미소년을 바라보는 중년 작곡가의 애지고 막막한 영혼을 놓고 싸움을 벌이는데, 이 곡은 그럴 때마다 울려 퍼져 보는 이의 가슴을 두드렸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기수이자 엄청난 자산가였던 비스콘티 감독 역시 동성애자였다. 그래서 ‘베니스에서의 죽음’에는 그의 동성애 취향이 노골적으로 담겨 있다.

이 영화는 토마스 만(1875~1955)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1911년 5월, 말러가 빈에서 사망하고 며칠 뒤 토마스 만은 가족과 함께 베니스로 향했다. 그는 베니스에서 요양하며 그곳에서 30여 년 전 죽은 리하르트 바그너에 관한 에세이를 써야 했다. 만이 묵은 호텔에는 블라디슬라프 모에스라는 폴란드의 미소년이 머물고 있었다. 소년의 친구들은 그를 아치오라고 불렀다. 만은 자신의 눈길이 원고지를 떠나 소년으로 향하는 것을 느꼈고, 어느 순간 집착에 사로잡혔다. 그런 만은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등장하는 구스타프 폰 아셴바흐를 유명 작곡가로 그렸고, 베니스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타치오라는 소년을 향한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로 내용의 골격을 잡았다. 하지만 현실의 만과 달리 소설 속 아셴바흐는 집착을 넘어 자기 비하적 수준으로까지 끌고 간다. 결국 아셴바흐는 타치오를 따라 도시 주위를 돌아다니며 더 젊게 보이려고 화장하는가 하면, 당시 베니스에 유행하던 콜레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소년을 며칠 더 보기 위해 머무르다 결국 타치오를 지켜보면서 해변에서 죽음을 맞는다.

동성애와 심미주의로 극단의 예술을 추구했던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1854~1900)가 펜을 들어 서판에 소설을 내리 썼다면 토마스 만이 되었을 것이고, 카메라를 들었다면 비스콘티가 되었을 것이고, 작곡을 했다면 브리튼이 되었을 것이다.


▲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한 장면. 타치오 역은 비에른 안드레센(1955~)이 맡았다

미소년을 사랑한 이유

비스콘티는 영상에 말러 교향곡 5번 아다지에토 악장의 황홀한 음향을 수혈해 작품 속 주제인 동성애와 심미주의의 살을 찌웠다면, 브리튼은 소설의 텍스트에 음표를 그려 넣어 1973년 동명의 오페라를 완성했다.

사실 브리튼의 인생을 난감하게 만든 것 중 하나가 그의 성적 정체성, 아니 더 정확히는 어린 남자들에 대한 농밀한 애정과 그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갈망이었다. 그가 추앙한 시인 위스턴 휴 오든(1907~1973)은 브리튼과 예술에서는 잘 통했으나 이 점에서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오든은 섹스를 하지 않으며 소년들에게 환상을 갖고 매혹적으로 빠져드는 브리튼의 실상을 정면으로 지적했다.

사실 브리튼을 향한 오든의 비난을 살펴보면 (미소년을 향한) 동성애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는 내용처럼 느껴진다. 오든은 브리튼에게 뭐라고 했던가. 먼저, 오든은 그것이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회피하는 방도이며, 소년 시절 기억으로의 거짓 도피라고 비난했다. 브리튼은 자신을 보살펴주는 사람과 찬미자에 둘러싸여 사랑스럽고 재능 있는 어린 소년 노릇을 함으로써 안온한 둥지를 짓고 번데기처럼 아늑하게 지내려는 성향이라고도 했다. 어쨌든 브리튼은 이 충고를 무시했다. 미소년을 향한, 섹스가 전제되지 않은 애정은 끝까지 그를 매혹시켰다고 한다.

남성 동성애자들은 애초부터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주장이 있다. 19세기 말 상징주의와 데카당스의 영향도 예술과 동성애에 대한 관점을 획기적으로 바꾸어놓기도 했다. 그런데, 사랑은 죄가 아니라지만 ‘남다른’ 사랑은 죄가 되나 보다. 이 어려움으로 인해 브리튼은 물론 앞서 말한 많은 작곡가들은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세계를 지었고, 질서를 파괴하는 욕망의 힘으로 불타는 듯한 삶의 일기와 작품을 써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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