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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스키 발레 수석 무용수 김기민
발레의 역사에 ‘김기민’이 더해질 때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6/1/2015 |   지면 발행 ( 2015년 6월호 - 전체 보기 )




마린스키 발레의 수석 무용수로 우뚝 선 김기민. 단단한 ‘암석’ 같은 의지와 ‘보석’같이 빛나는 땀방울로 그는 러시아와 한국의 발레 역사를 다시 쓰는 ‘수석’ 무용수가 되었다. 5월, ‘지젤’의 알브레히트 역으로 마린스키 극장을 수놓았고, 6월에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와 ‘라 바야데르’에 객원으로 출연하여 새로운 호흡을 맞춘다


지난 4월 14일, 마린스키 발레의 김기민은 10분 동안 행복감에 젖었다. 수석 무용수로의 승격. 2011년 6월 동양인 남성 무용수 최초로 입단 후 4년여 만의 일이었다. 자국의 문화적 자존심과 유럽의 피와 살로 쌓아올린 232년 ‘전통’과 ‘뿌리’가 ‘김기민’에게 문을 활짝 열어준 것이다. 부모님께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10분 후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무용수이자 러시아 정통 발레를 대표하는 무용수라고 생각하니 덜컥 긴장이 되었다.” 그러면서 다시금 마음먹었다. 지금보다 더 발전하고 더 멋져지겠노라고.

1992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기민은 2009년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의 ‘최연소’ 객원 주역을 시작으로 2010년 유니버설발레단 ‘라 바야데르’ 객원 주역을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그 이후는 예원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의 수학 경력이 전부인 ‘토종’의 세계를 향한 진격 승부였다. 그는 2011년 불가리아 바르나 콩쿠르 1위, 2012년 러시아 페름 아라베스크 콩쿠르 최우수상·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 대상을 석권한다.

2011년 6월 김기민이 마린스키 발레에 입단했을 때, 국내외 무용계는 그의 소식을 전하느라 분주했다. 같은 발레단에 1995년 입단 후 2010년 솔리스트로 은퇴한 유지연(1976~)의 전례도 있지만 15세부터 바가노바 아카데미에서 유학한 그녀와 달리 김기민은 말 그대로 ‘토종’이었고, 동양인 최초의 남성 무용수 입단이었기 때문이다.

2011년 6월, 마린스키 발레에 동양인 남성 무용수로는 최초로 입단했고, 2015년 6월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에 객원 무용수로 출연한다. ‘6월’은 늘 특별한 달로 다가올 텐데.

“생각해보니 6월마다 좋은 소식이 있었던 것 같다. 6월의 백야축제를 준비해야 하기에 마린스키 발레의 무용수에게 6월은 정말 바쁜 달이다.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의 데뷔 작품인 ‘라 바야데르’와 함께 네 개의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6월에 대한 의미를 멋지게 부여하고 싶지만, 내겐 그냥 ‘너무너무 바쁜 김기민의 6월’이다.”

단원들은 뭐라고 부르는가?

“‘기미냐’. ‘냐’를 우리말로 하면 ‘기민아’다. 러시아어로도 이름을 지어볼까 생각했는데, 한국 이름으로 많은 사람한테 알려지고 싶었다.”

단원들이 지어준 별명이나 애칭은 없나?

“공연이 끝나면 간혹 ‘가가린’이라 부르더라. 높이 뛴다고.(웃음)”

마린스키 발레의 수석 무용수+김기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마린스키 극장 소속의 마린스키 발레는 1783년에 창단했다. 러시아 혁명 이후 ‘철의 장막’이 된 뒤에는 혁명가 키로프를 기리기 위해 키로프 발레로 개칭해 소련의 문화를 대변했고, 사회주의 붕괴로 ‘장막’이 해체되면서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의 이름을 본떠 마린스키라 불리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1860년에 지은 이곳 마린스키 극장에는 전설적인 무용수들의 숨결이 배어 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아그리피나 바가노바(1879~1951)는 물론이고 마리우스 프티파(1822~1910), 미하일 포킨(1880~1942), 바츨라프 니진스키(1890~1950) 등의 땀이 배어 있는 곳. 그 전설의 시공간은 김기민에게 자리를 하나씩 내주었다. 그가 ‘라 바야데르’ ‘해적’ 등의 주역을 맡아 새로운 역사를 쓸 때마다 국내의 언론도 부지런히 그 소식을 전했다.

이번에 수석 무용수로 승급될 거라고 예상했나?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다. 마린스키 발레는 수석 승급이 까다롭기로 소문나 있다. 주역으로만 150회의 무대에 출연했지만, 난 입단 4년 차에 불과하다. 러시아 무용수들도 이 나이에 수석으로 승진하는 건 못 봤다고 하더라.”

같이 승급한 티무르 아스케로프는 어떤 동료인가?

“키가 크고 멋진 무용수다. 보통 키가 크면 움직임이 흐릿해지기 마련인데, 그는 움직임도 훌륭하다.”

마린스키 발레에는 예브게니 이반첸코·이고리 콜브·다닐라 코르순체프·블라디미르 시클라로프 등 여섯 명의 남성 수석 무용수와 일곱 명의 여성 수석 무용수가 있다. 그들이 지금 춤추는 무대는 ‘전설’이 될 준비를 하고 있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 그래서일까. 발레단 생활을 소재로 한 ‘더 컴퍼니’나 ‘블랙스완’ 같은 영화들은 ‘춤’만큼 치열한 그들만의 경쟁과 ‘몸부림’을 다룬다. 실제로 2013년 1월에 볼쇼이 발레의 예술감독 세르게이 필린은 주연급 무용수 파벨 드미트리첸코에게 염산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발레단 내에서 남성 무용수들과 경쟁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경쟁을 신경 써본 적은 없다. 각자 연습하기에 바쁘다. 연습 시간도 달라서 연습실에서 마주칠 일도 드물다. 오히려 그들과 카페나 탈의실에서 마주친다. 그럴 때마다 종종 얘기를 나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그들은 무용수로는 참으로 멋있고, 인간적으로는 친절하기까지 하다. 그중 나와 아스케로프를 제외하면 모두 30대다. 나는 경쟁보다는 그들의 장점을 찾아 배우려고 한다.”

승급 후 발레단의 예우가 달라졌나?

“수석들은 공연을 많이 하기에 리허설 시간과 공연 일자 등의 변경 요구를 들어주는 경우가 있을 뿐, 특별한 예우는 없다. 마린스키 발레는 코르드발레(군무)도 중요시하다 보니 모든 단원에게 예우를 갖추는 것 같다.”


상트페테르부르크+김기민

1712년부터 제정러시아의 수도로, 1918년 모스크바로 수도가 이전되기 전까지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이곳은 도스토옙스키가 대하드라마를, 푸시킨이 시를 빚던 곳이다. 김기민의 꿈이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이제 그의 일상이자 예술의 텃밭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어떤 동작을 취하는가?

“그 자리에서 10분 정도 몸을 조금씩 움직인다. 전날 연습량이 많거나 공연이 끝난 다음 날에는 일어나지를 못한다. 그래서 ‘조금씩 움직여보려고 한다’는 말이 더 맞을 거다. 그러고는 일어나서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평소 여유가 생기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무엇을 즐기나?

“날씨가 좋은 날 러시아의 거리는 마치 사진 같다. 러시아의 유명 무용수나 다른 나라에 망명한 무용수들도 러시아의 거리를 정말 사랑한다. 이 거리에서 그들이 걷던 모습이 눈앞에 지나간다. 그렇게 15분 정도만 걷다 보면 그들의 춤에서 깊은 감정이 왜 나오는지 알게 된다. 5월부터 9월 사이에는 시간이 나면 외출을 자주 하려 하고, 가끔은 에르미타주 박물관에도 간다.”

한국에서부터 러시아로 쭉 이어진 취미 같은 것이 있나?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 걸 좋아한다. 서늘한 바람과 그림 같은 거리. 이러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면 연습 때 쌓인 피로가 풀린다. 다른 사람들처럼 음악과 영화를 감상하고, 쇼핑과 게임도 한다. 다만 그런 시간이 아주 짧을 뿐이다. 발레단에서는 30분에서 1시간 정도 휴식이 있을 때 단원들과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똑같은 커피인데, 발레단에서 마시는 차와 커피는 더 맛있다. 유달리 설탕을 듬뿍 넣어서 그런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나는 러시아 사람들은 어떤가?

“외국인들이 놀러 오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차갑기도 하면서 따뜻한, 이상한 감정을 느낀다고. 멜랑콜리하다고나 할까.”

러시아의 명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러시아에서는 발레의 동작을 설명할 때 의미를 쉽게 이해시키고, 더 강하게 표현하도록 하기 위해서인지 ‘이모션’이 강한 단어들을 자주 사용한다. 역시 문학의 나라답다. 그래서 러시아 사람들이 춤을 감정 있게 잘 출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리허설 도중 정말 멋있는 말들이 많이 나온다. 지금은 며칠 전에 타계한 전설적인 프리마 발레리나 마이야 플리세츠카야(1925~2015)의 주옥같은 명언이 떠오른다(한국의 후배들이 이분이 돌아가신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게 좀 안타깝다). ‘무대에서 움직일 때 음악과 함께하라. 음악을 들어라. 음악은 무용수에게 정말 많은 것을 준다’. 무용수라면 이 말에 정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스승과 가족+김기민

외국인(이방인)의 시선으로 본 ‘마린스키 스타일’이란 무엇인가?

“페티파는 프랑스인이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레 안무가로 활동했다. 마린스키 발레는 페티파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처음 그대로의 ‘전통’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마린스키 발레는 바가노바 메소드에 전통을 두고 있다.

“바가노바 메소드와 다른 나라 발레의 확연한 차이는 상체의 움직임이다. 상체로 연출하는 아름다운 동작이 많고, 솔직하면서도 프로페셔널한 움직임과 표현을 요구한다. 이런 러시아 발레는 역시 세계 제일인 것 같다.”

러시아에서 인터뷰를 많이 할 텐데, 기자들과 평론가들은 어떤 질문을 많이 하는가.

“작품에 대한 해석, 좋아하는 춤 스타일과 좋아하는 파트너, 그와의 호흡, 코치나 스승이 작품에서 강조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등. 무엇보다도 바가노바 아카데미 출신도 아닌데 러시아 스타일의 춤을 잘 구사한다며, 어디서 배웠는지 가장 많이 묻는다.”

아그리피나 바가노바(1879~1951)는 마린스키 발레의 전신인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궁전 소속의 무용학교를 졸업하고, 1897년 마린스키 극장에서 데뷔한 무용수다. 그녀는 1917년 은퇴 후 무용수 양성에 매진했다. 러시아 발레를 바가노바파 또는 바가노바 메소드라 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김기민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수학한 ‘토종’.

그럴 때마다 뭐라고 답하는가?

“블라디미르 킴과 마르가리타 쿨릭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어머니와 아버지 같은 러시아의 스승에게 10년 가까이 배웠고, 지금도 가르침을 받고 있다. 재능을 아무리 타고났다고 해도 그것을 키워줄 사람이 없다면 ‘무’가 된다. 나는 주역이 되기까지 정말 많은 노력을 했고, 하루하루 연습하면서 나 자신이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이 노력은 선생님들의 가르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질문은 ‘존경하는 선생님들에 대해서’라는 질문으로 이해하고 싶다. 그리고 한국에 계신 이원국 선생님, 김선희 교수님께도 늘 감사드린다. 내게는 모두 잊지 못할 스승이다.”

그리고 김기민 옆에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온 형 김기완이 있었다. 1989년생인 김기완은 클래식 음악이 집 안을 가득 채우면 같이 뛰면서 춤추고 놀던 벗이자 핏줄이다.

2009년 뉴욕발레콩쿠르 특별상을 수상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수학한 김기완은 2011년부터 국립발레단 솔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외롭고 힘들 때마다 주로 누구와 연락을 주고받는가? 형이 제일 먼저 떠오를 것 같은데.

“형은 3년 전 큰 수술을 받았는데, 부상으로 이번에 또 수술을 받았다. 응원의 메시지라도 많이 보내야 하는데, 반대로 내게 많은 응원과 힘을 보내준다. 발레뿐 아니라 우리가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도 한다. 가족이 제일 보고 싶다. 마린스키 발레에 입단하고 주역이 되기까지의 98%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노력이었다. 이 글을 가족이 보고 있을 텐데, ‘정말 사랑합니다’.”


캐릭터+김기민

러시아 현지 시간으로 5월 11일의 마린스키 극장. 무대에는 순박한 처녀 지젤과 귀족 청년 알브레히트의 사랑이 오갔다. 하지만 지젤은 배신당한 충격으로 죽고 알브레히트는, 아니 김기민은 망령이 된 지젤을 찾아 윌리의 왕국으로 떠난다. 6월 27일에는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안무한 ‘사랑의 전설’에 페르하드 역으로 출연해 쉬린과 사랑을 나눈다.

마린스키 발레와 내한한 그가 ‘백조의 호수’ 지그프리트 왕자 역으로 서울의 겨울밤을 낭만으로 적신 2012년 11월. 김기민의 춤은 뼈를 울렸고, 피를 끓게 했다. 눈동자가 아닌 가슴과 심장을 향했던 춤으로 기억된다.

어떤 기분과 생각으로 알브레히트 역에 임했는가?

“책 보고, 컴퓨터도 하고, 전화하는 일상은 공연 전에도 늘 똑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며칠 전부터 알브레히트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계속 그려보았다. 그 캐릭터를 ‘쉽게’ 연기해내고, 잘 ‘전달’한다는 건 정말 어렵다. 다행히 너무 좋아하는 예카테리나 오스몰키나와 함께하게 되어 편안한 기분을 보장받았다. 솔직히 공연 전날까지 무대에 빨리 올라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캐릭터에 대한 연구는 어떻게 하는가? 캐릭터의 성격과 기분을 완전히 공감하지 못한 채 무대에 선 적은 없었나?

“공연 후에 고쳐야 할 점이 있을지언정 캐릭터에 십분 공감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러시아 관객은 무용수의 실수보다는 캐릭터를 얼마나 잘 소화하고 표현하는지를 중요시한다. 안무가와 작곡가의 삶은 물론, 캐릭터의 배경을 많이 연구한다. 이에 대해 모르고 캐릭터를 표현한다는 건 겉모습만 흉내 낼 뿐이다. 연구가 잘되었을 때는 일부러 꾸미지 않아도 이미 작품의 주인공이 되어 있는 것 같다.”

공연이 있는 날의 특별한 버릇이 있다면?

“잠에서 깨어나도 계속 자려고 노력한다. 공연이 있는 날만의 버릇이다. 공연이 7시라면 오후 3시까지 자는 거다. 그러면서 에너지를 모은다고나 할까. 되도록이면 사람들과 말도 잘 안 하고, 한 번이라도 더 캐릭터의 이미지를 그려본다.”

지금까지 맡아본 역할과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입단 후 정말 많은 작품을 경험할 수 있었다. 동료들과 해외에서 활동하는 무용수들은 내가 보유한 레퍼토리 수를 부러워한다. 그중 ‘라 바야데르’를 꼽고 싶다.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작품이다. 마린스키 발레 오디션 레퍼토리였고,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데뷔도 이 작품으로 한다. 강렬하고 아름다우며, 슬프기까지 한 이 작품에는 여러 감정이 어우러져 있다. 그런 작품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그 외에 ‘사랑의 전설’ ‘로미오와 줄리엣’을 좋아한다.”

앞으로 출연하고 싶은 작품은 무엇인가?

“입단 후 ‘사랑의 전설’을 가장 해보고 싶었는데, 출연하게 되었다. 기회가 이토록 빨리 올 줄 몰랐다. 감정과 호흡, 테크닉이 어렵고 무거운 작품이다. 지난 갈라 공연 때 2막에만 출연했는데, 유리 파테예프 단장님이 그 모습을 보고 이번 전막 공연의 기회를 주신 것 같다. 마음은 벌써 리허설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전에 중요한 공연들이 있기에 하나씩 마쳐가면서 준비하려 한다.”

한국에 해외 유명 발레단이 오면 클래식 레퍼토리를 주로 선보인다. 그래서인지 해외 발레단은 클래식 발레만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마린스키 발레도 최근 윌리엄 포사이드·알렉세이 라트만스키·한스 반 마넨·웨인 맥그레거의 모던 발레 작품들을 올리고 있다. 나도 이 작품들에 주연으로 캐스팅되어 여러 번 출연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모던 발레 작품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맡아 변신을 꾀하며 안무가·작품·무용수가 동시에 화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본인의 캐릭터와 모던 발레와는 어떤 것 같나?

“아직까지 나는 클래식 발레를 더 사랑하는 것 같다. 기교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힘든 클래식 발레 작품은 지금 할 수 있을 때 많이 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모던 발레 바람이 불고 있다지만, 외국은 클래식 발레를 다시 찾고 그리워한다. 한국의 후배들이 클래식 발레 공부와 연습을 열심히 했으면 한다. 그러면 춤의 질은 물론, 모던 발레를 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마린스키의 보석+김기민

제1·2솔리스트들과 함께 호흡을 맞춰온 김기민은 국내 발레 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알리나 소모바를 비롯해 빅토리아 테레시키나 등 여성 수석 무용수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남성 ‘수석’들이 단단한 ‘암석’이 되어 작품에 힘을 불어넣는다면, 일곱 명의 여성 ‘수석’들은 ‘보석’이 되어 무대에 빛을 더한다. 하지만 파트너는 부상으로 교체되기 일쑤고, 심지어 공연 시작 전에 부상을 입어 연습 한번 못해보고 무대에 함께 오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여기서는 자주 있는 일이라서 그렇게 놀랄 것도 아니다”라며.

정말이지 ‘보석’ 같은 ‘수석’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이런 발레리나들과 함께하고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이곳의 발레리나들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겸손하기까지 하다.”

여성 무용수들과 호흡을 맞출 때 무엇을 가장 중요시하나?

“그들의 눈을 많이 본다. 아이 컨택은 관객에게 많은 에너지를 준다.”

지금까지 최고의 호흡을 자랑한 파트너와 작품을 꼽는다면?

“‘라 바야데르’ ‘백조의 호수’ ‘사랑의 전설’ ‘실비아’ ‘지젤’ ‘돈키호테’ ‘인프라’ 등의 많은 작품을 알리나 소모바·빅토리아 테레시키나와 함께했다. 발레단 측에서도 두 무용수가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해서인지 같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제공하는 게 아닌가 싶다. 두 사람은 상대방을 많이 존중하고, 많은 것을 알려준다. 정말 고마운 무용수들이다.”

러시아의 관객은 어떤가.

“러시아에 와서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마린스키 발레보다도 이곳의 관객과 팬들이었다. 이들은 무용수의 의상과 디자인, 팔과 발의 정확도, 표현과 해석력 등을 잘 알고 있다. 갈리나 울라노바·나탈리야 두딘스카야·콘스탄틴 세르게예프 등 전설적인 무용수들의 춤을 본 사람들이니까.”

무대에서 그 기운이 느껴지는가?

“나라마다 관객의 박수 소리가 다르다. 이곳의 박수 소리는 한마디로 ‘웅장하다’. 그 소리가 춤을 추고 싶게 한다. 만약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러시아 시절의 가장 그리운 것 중 하나는 관객의 박수 소리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예술+김기민

‘라 바야데르’의 솔로르 역으로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데뷔를 앞두고 있다(6월 1·6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이번 공연의 캐스팅 과정이 궁금하다.

“파테예프 단장님이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케빈 매켄지 예술감독에게 추천해서 이뤄졌다. 케빈 감독과 작품을 재구성한 나탈리야 마카로바가 회의를 한 결과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나탈리야는 내가 제일 존경하는 전설적인 무용수 중 한 명이다.”

무용수들을 이야기할 때 ‘전설’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 것 같다. 좋아하는 무용수나 롤모델이 있다면?

“예전에는 롤모델이 많았고, 흉내도 많이 내보려고 했다. 지금은 내 색깔을 찾는 중이기에 ‘존경’하는 마음만 갖고 있다. 한국에는 이원국 선생님, 러시아의 두진스카야·세르게예프·블라디미르 바실리예프·마리우스 리예파 등이다. 역시 ‘전설’의 무용수들이다. 유럽 무용수 중에는 안토니 도웰.”

자신의 경험에 비춰볼 때 천재는 ‘노력의 산물’인가, 아니면 말 그대로 ‘천재’인가?

“어쨌든 ‘단 1%’의 재능은 필요하다. 그것이 있다면, 그다음부터는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8월이면 마린스키 발레의 232번째 시즌이 끝난다. 다음 시즌과 공연은 무엇이 있는가?

“다음 시즌 스케줄이 아직 나오지 않아 얘기하기 힘들다. 일단 새로운 작품, 해보지 못한 작품을 많이 만나보고 싶다. 2016년 중반까지 마린스키 외의 많은 갈라 무대가 잡혀 있다.”

고국의 무대가 그립지는 않은가?

“한국의 무대에 서보려고 늘 노력 중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시아 투어가 있는데, 한국에는 못 가서 정말 아쉽다. 일본은 어마어마한 스케일로 초대해 전막으로 3~4개의 작품을 올린다. 일본 관객은 마린스키 발레의 역사와 위상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마린스키의 동료들 중에는 일본보다 한국에 가고 싶어 하는 이가 많다. 한국의 음식과 문화, 사람들한테 반했나 보다. 내가 더 분발해 한국의 관객에게 마린스키 발레를 더 널리 알려 만남을 갖도록 하겠다. 재미있는 작품이 많은데, 한국 관객이 ‘백조의 호수’를 많이 찾는다고 하더라. 만약 또다시 내한 기회가 온다면 ‘백조의 호수’와는 또 다른 재미와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

그렇게 우리는 김기민을 기다린다. 마린스키 극장 무대에서 춤추는 그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2013년 5월에 있었던 마린스키 극장 개관 기념 갈라에서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지휘에 맞춰 ‘사랑의 전설’ 중 2막의 페르하드 역을 맡은 김기민을, 그리고 ‘라 바야데르’에서 황금신상 역을 맡은 김기민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오늘도 마린스키 발레에는 유리 파테예프 단장과 200여 명의 무용수가 무대에서 피워낼 춤을 가꾸고 있다. “예술가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 내가 나를 싫어하면 관객도 나를 싫어하게 된다”고 말하는, 사랑하고 사랑받기 바쁜 무용수 김기민. 인터뷰를 나눈 시간이 감사의 달인 5월 때문이었을까. 그의 감사와 사랑, 그에게 걸게 되는 기대가 팽팽한 만남이었다.

사진 박진호(studio Bob)·Svetlana Avvakum/Mariinsky Bal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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