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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그리스인’ 연출가 마이클 매카시
글 김선영 기자 5/1/2015 |   지면 발행 ( 2015년 5월호 - 전체 보기 )

오페라 ‘그리스인’ 연출가 마이클 매카시

제14회 통영국제음악제 리뷰 ③

 




믿음, 강렬한 작품을 만드는 힘

마크 앤서니 터니지의 오페라 ‘그리스인’이 통영국제음악제 폐막 주간인 4월 2일부터 4일까지 통영국제음악당 블랙박스에서 아시아 초연했다. 웨일스 뮤직 시어터 프로덕션이 선보인 ‘그리스인’은 작품 곳곳에서 관습을 거부했다.

우선 연주를 맡은 TIMF 앙상블이 자리를 잡았다. 포디엄은 그 앞에, 이보다 바깥 즉 관객을 등진 지휘자와 객석 사이에 가수들의 공간이 주어졌다. 공간 폭은 불과 2m 남짓. 꽤 경제적(?)이면서 제한된 공간에서 마련된 재기발랄함, 무엇보다 배우들의 날것 그대로가 고스란히 객석에 전해질 무대임이 틀림없어보였다.

작품의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패기 넘치는 젊은이가 뜻하지 않게 아버지를 죽이고 생모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가 훗날 모든 진실을 알게 된다…까지 나열해도 소포클래스의 ‘오이디푸스왕’이 단번에 떠오를 것이다. 이 그리스 비극을 스티븐 버코프가 ‘그리스인’으로 희곡화했고, 동명의 오페라 작품은 작곡가 마크 앤서니 터니지의 손을 통해 1988년 탄생했다.

1988년은 웨일스 뮤직 시어터가 세워진 해이기도 하다. 연출가 마이클 매카시와 지휘자 마이클 레퍼티가 공동 창립한 웨일스 뮤직 시어터는 지난 26년간 소규모 신작 오페라 공연에 집중해왔다. 공연은 살아 있는 작곡가의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거나 영국 초연작 또는 현재 새롭게 재조명할 만한 작품이 주를 이룬다. 영국에서 여러 프로덕션으로 올려진 바 있는 오페라 ‘그리스인’은 (마거릿 대처 시대 사회상이 투영된) 작품 배경과 흡사한 사회적 불안을 겪으면서, 2011년에 재조명한 경우다.

198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한 ‘그리스인’이 시작되면, 무대에는 네 명의 배우가 등장해 개인에서 군중으로 확대되는 크고 작은 소동으로 관객의 눈과 귀를 붙잡는다. 노골적이고 저속한 대사, 다채로운(?) 욕설은 기본이다(이 모든 게 그리 기분 나쁘지 않거니와 때때로 공감도 되는 게 흥미로운 지점이다). 군중 시위 장면에서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은 발을 구르고, 누군가는 방패까지 두들기며 난폭한 연기로 극의 분위기를 이끈다.

극의 마지막, 역시나 ‘운명의 장난 같은’ 사실을 모두 알게 된 주인공은 “우리 그저 사랑이었을 뿐”이라고 노래한다. 트라우마적 상황에 흐르는 색소폰 멜로디는 아름다워 더욱 역설적이다. 더 나아가, “내가 왜 그리스 비극 스타일로 눈을 뽑아야 하지?”라고 외치는 주인공의 대사는 동시대 예술을 지향하는 작품의 정체성을 더욱 선명하게 했다. 동시에 ‘극단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폭력적이면서 따뜻하고, 현실적인 동시에 비현실적이며, 고전적이면서 현대적인 비극이라는 생각과 함께.

공연 이튿날, 블랙박스에서 만난 연출가 마이클 매카시와 객석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오보에를 전공했고, 이후 드라마 연출을 하게 된 그는 음악을 그저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음악으로부터 극을 이끌어내는 연출가였다.




작품에서 오케스트라가 무대 중심에 있는 설정, 연주 외에 시위에 참여하는 군중 역할을 더하고, 지휘자 등 뒤로 가수들의 공간을 마련한 것이 신선했다.

첫 공연이 끝나고 가수들이 내게 신 난다는 말을 했다. 지휘자와 가수 사이에 사라진 장벽은 극의 성격을 바꿔놓았다. 가수들이 오케스트라에서 나오는 듯한 느낌. 그게 중요하다. 악보에는 다른 배우들이 들어와 폭동을 일으키는 걸로 쓰였지만, 그보다는 오케스트라가 발을 구르고 소리 지르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오케스트라에 큰 존재감을 부여한 것이다. 연주자들이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고스란히 지켜보는 건 관객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장치다. 오케스트라를 통과해 무대로, 무대에서 관객에게로 향하는 이 흐름은 매우 본능적이라고 생각한다.

극 중 일부 비주얼이나 인물의 몇몇 표현 방식은 상당히 만화처럼 느껴졌다.

‘그리스인’의 등장인물들은 마치 캐리커처 같다. 어떤 평론가는 마치 소프 오페라(soap opera) 같다고 말했다. 극 초반, 나는 가수들에게 매우 좁은 공간을 제시했고, 2차원적으로 보이게 했다. 모두 비정상적인, 실제와 다른 세계처럼 만들기 위해서다. 때문에 그들은 ‘캐리커처’에서 시작해 극의 막바지에 다다라 ‘진정한 감정’에 도달한다. 그야말로 오페라의 ‘여정’을 거치는 것이다.

살아 있는 작곡가의 소규모 신작 오페라를 올려왔다. 이런 방향성을 지속해온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의 예술은 살아 있는, 그리고 동시대적 예술 형식을 가져야 한다. 또 투어에 대한 근본적 믿음이 있다. 우리는 신작을 각기 다른 관객과 공유하길 좋아한다. 같은 작품도 다른 반응 속에서 새로운 방향을 발견하게 된다. 영국에서도 여러 도시를 다니며 공연하는데, 우리가 찾아가지 않으면 관객이 절대 볼 수 없을 순간이 많았다. 이것이 ‘오페라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투어는 작품을 공유하는 사회적 콘셉트인 동시에 예술적 콘셉트인 셈이다.

세상에 없는 새로운 작품을 올리는 일은 상당한 에너지와 시간, 돈, 그리고 지속성을 필요로 한다. 현실적 문제 앞에, 동일한 작업을 오랫동안 유지해온 비결이 궁금하다.

비전이 중요하다. 헌신과 에너지, 그리고 믿음도 필요하다. 웨일스 뮤직 시어터의 전체 수입을 보면 45%를 웨일스와 잉글랜드에서 지원받고, 그 외 공연 수입이 25%, 나머지는 모금으로 채운다. 이 비율은 꽤 일정하다. 나 역시 연출가로 일한 경력의 절반 이상이 돈을 구하는 것이었다. 이건 많은 회사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에겐 명성과 26년의 경험을 통한 노하우가 있지만, 돈을 구하는 건 여전히 가장 어려운 일이다.

체임버 오페라 제작을 위해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조건은 무엇일까.

우리가 믿는 작품, 관객에게 감동을 줄 만큼 강렬하고 좋은 작품이 가장 중요하다. 작품이 좋다면 관객은 얼마든지 모을 수 있다. 반면 작품이 지나치게 실험적이거나 불확실하다면 관객도 적을 수밖에 없다. 작품을 올릴 적절한 맥락도 생각해야 한다. 통영국제음악제는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페스티벌이거니와 새로운 음악이 있고, 관객 역시 모험을 할 줄 아니까.

살아 있는 작곡가의 동시대 작품이, 시대의 관객에게 존재와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예술가·제작자가 기억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관객과 소통하고 대화를 해야 한다. 무언가를 보여주기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우리가 위촉하고 공연하는 모든 작품이 스토리와 메시지를 갖기를, 음악이 그것을 관객과 연결해주길 원한다. 그래서 작품 자체는 복잡하더라도 단순한 프로덕션을 통해 작품을 선명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관객이 진짜 이해할 수 있도록. 무엇보다 작품 자체가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인터뷰를 마치고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터미널로 향하는 길, 시내엔 벚꽃이 흩날렸고, 늘 그렇듯 프린지 공연에 나선 연주자의 따뜻하고 흥겨운 음악 소리는 행인들의 발길을 붙들었다. 그러다 문득, 저들 가운데 ‘마크 앤서니 터니지’ ‘웨일스 뮤직 시어터’ ‘그리스인’을 알거나 혹은 관심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다.

오랜 숙원 사업이던 통영국제음악당이 2014년 공식 개관하면서 이와 함께 출범한 통영국제음악재단은 올해까지 두 번의 페스티벌을 치렀다. 새로운 ‘장소’로 인해, ‘사람들’은 연간 공연 운영에 따른 ‘지역 관객 개발 및 향유 계층 확대’라는 빛바랜, 하지만 속 시원히 해결된 적 없는 미션을 다시 받아들게 됐다. 그 어느 때보다 재단.예술가.지역 커뮤니티의 새로운 연결 고리가 중요해진 상황에서, 지난해 통영을 찾은 해외 연주자들의 재능 기부로 지역 학생들을 위한 ‘스쿨 콘서트’가 진행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생산자도 소비자도 언제까지 ‘예술가 모시기’에만 만족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내일의 예술가와 관객, 더 나아가 대중의 발길이 통영으로 향하는 것, 그들과 윤이상의 정신을 진정 공유하는 것, 그리하여 공간에 걸맞은 영향력을 구축하는 것. 이것이 통영국제음악재단과 첫 외국인 CEO 플로리안 림에게 주어진 새롭고도 낡은 숙제일 것이다.

사진 통영국제음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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