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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츠 월러·앤디 라재프 ‘Honeysuckle Rose’
황덕호의 스탠더드 넘버
글 황덕호(재즈평론가) 5/1/2015 |   지면 발행 ( 2015년 5월호 - 전체 보기 )



피에로가 품은 한 송이의 재즈 스탠더드

자신의 음악성을 온전히 평가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패츠 월러(1904~1943)는 재즈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인물일 것이다. 걸걸한 목소리와 유머러스한 무대 매너, 예술가인 척하지 않는 소탈한 품성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음악적 업적이 가려진 루이 암스트롱(1901~1971)은, 그래도 일흔 해를 살면서 만년에 이르러 재즈의 아버지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비슷한 캐릭터의 패츠 월러는 자신을 괴롭히던 예술가적 내면을 밖으로 표출하지도 못한 채 그의 코믹한 일면만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에 비하면 매력적인 목소리 덕분에 대중에게 잊힌 냇 킹 콜의 피아노나 조지 벤슨의 기타는 아쉬울 수는 있어도 억울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불행은 두 가지 측면에서 비롯됐다. 그중 첫 번째는 그가 천재적이라고 할 만큼 빠르게 곡을 쓰는 다작의 작곡가였다는 점이다. 피아니스트 메리 루 윌리엄스는 이제 곧 무대에 오를 쇼에서 음악이 완성돼 있지 않자 패츠가 급히 와서 가사와 안무만 보고 즉석에서 곡을 만든 기억을 회상했다. 패츠의 매니저였던 에드 커크비는 여섯 개의 곡으로 이뤄진 그의 걸작 ‘London Suite’가 실은 스튜디오에서 단 한 시간 만에 작곡, 녹음됐다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패츠는 작곡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신인 시절에 수많은 곡을 헐값에 작곡해주었는데, 의뢰자들은 전부 작곡가 아니면 밴드 리더였다. 다시 말해 그들은 패츠로부터 싼값에 곡을 사서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해 인세를 벌어들인 것이다. 패츠가 밴드 리더 플레처 헨더슨으로부터 저녁 식사로 햄버거 아홉 개를 얻어먹고 그날 밤 아홉 곡을 작곡해준 일화는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패츠의 식사량, 작곡 속도 모두에서!).

패츠 월러 밴드의 색소폰 주자였던 진 세드릭은 패츠가 단돈 25달러를 받고 어빙 베를린에게 곡을 써줬다고 밝힌 적도 있다. 전기 작가 배리 싱어는 지미 맥휴 작곡, 도로시 필즈 작사의 스탠더드 넘버 ‘I Can’t Give You Anything But Love’가 실은 패츠와 그의 콤비인 작사가 앤디 라재프의 작품임이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패츠는 훗날 자신의 이러한 거래를 후회한 것 같다. 패츠가 뉴욕 52번가에 있던 요트클럽에서 어느 날 밤 연주를 하던 중 ‘If I Had You’를 연주하다 자신의 곁을 떠나간 여러 곡이 생각나 울음을 터뜨렸다는 세드릭의 증언은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패츠의 불행을 야기한 또 다른 측면은 그의 예술성에서 비롯됐다. 뚱뚱한 몸집에 능청맞은 표정으로 노래를 부른 그는 늘 즐거운 엔터테이너로서 역할을 요구받았지만, 사실 그는 1920년대와 1930년대를 대표한 최고 재즈 건반주자였다. 그는 제임스 P. 존슨의 제자이자 카운트 베이시의 선배라는 점에서 할렘 스트라이드 피아노의 적통이었고, 동시에 명인 레오폴트 고도프스키의 제자였다. 아울러 그는 해먼드 오르간이 개발되기 전부터 오르간을 완벽하게 다룬 최초의 재즈 연주자였으며,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숭배자였다. 1938년 런던에서 여섯 곡의 흑인 영가를 바탕으로 한 패츠의 파이프오르간 즉흥연주는 아직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재즈의 숨은 걸작이다. 하지만 청중은 음악인으로서 진지했던 패츠의 일면을 외면했고, 패츠는 그래서 늘 상심했다.

‘위대한’ 패츠의 장미, 피어나다

그의 진면목을 간파한 사람들은 흥행사·출판업자·팬들이 아닌 그의 동료 음악인들이었다. 1929년 월러와 라재프의 뮤지컬 ‘핫 초콜릿’에 출연해 월러의 대표곡 ‘Ain’t Misbehavin’을 불러 전국적인 스타로 발돋움한 루이 암스트롱은 패츠가 세상을 떠난 뒤 늘 그를 부를 때마다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빼놓지 않았다. ‘핫 초콜릿’과 같은 해 발표한 또 한 편의 월러-라재프의 레뷰(풍자극) ‘석탄 꾸러미’에서 발표한 ‘Honeysuckle Rose’는 루이가 가장 좋아했던 패츠의 작품으로, 패츠가 이 곡을 1934년과 1937년에 녹음하자 루이는 1938년에 이 곡에 대한 자신의 응수를 보여줌으로써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하지만 패츠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작품만으로 이뤄진 음반에서 루이가 이 곡을 다시 녹음할 때 그의 노래에는 유쾌함 속에서도 패츠에 대한 깊은 존경과 그리움을 은연중에 드러냈다(음반①). 그것은 패츠 자신도 녹음에서 부르지 않던 서창(敍唱, verse)을 루이가 온전히 살려낸 대목에서 확연한데, 여기서 등장하는 패츠의 사랑스러운 선율은 비범한 작곡가로서 그의 솜씨를 새삼 증명한다.

동시에 ‘Honeysuckle Rose’가 1940년대 이후 모던재즈 연주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 몇몇 1920년대 작품 중 하나였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 재즈 연주자의 작품은 조지 거슈윈이나 콜 포터의 작품만큼이나 화성적으로 세련됐다. ‘Honeysuckle Rose’를 주제로 여러 즉흥연주를 발전시킨 찰리 파커는 ‘Ah-Leu-Cha’ ‘Marmaduke’ ‘Scrapple from the Apple’ 같은 자신의 대표곡을 만들었고, 소니 롤린스도 그의 작품 ‘Plain Jane’을 만드는 데 ‘Honeysuckle Rose’의 화성 진행을 사용했다. 마찬가지로 피아니스트 에럴 가너의 1951년 녹음(음반②)은 원곡의 제목을 그대로 썼지만 파커나 롤린스와 마찬가지로 다른 제목을 붙여 가너 자신의 작품으로 발표해도 무방할 만큼 신선하고 독창적이다. 리듬은 활력으로 가득하고 에럴 가너의 장미꽃같이 화사한 블록 코드 보이싱은 싱싱하기 그지없다.

‘Honeysuckle Rose’는 한편으로 밴드 앙상블 편곡에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 플레처 헨더슨은 1932년에 이 곡을 빅밴드 편성으로 녹음했다. 카운트 베이시는 패츠로부터 피아노를 배운 후배답게 1937년 자신의 첫 녹음으로 이 곡을 택했다. 그는 1963년에도 엘라 피츠제럴드의 노래와 퀸시 존스의 편곡에 힘입어 ‘Honeysuckle Rose’를 새롭게 해석했다. 하지만 베니 카터의 녹음(음반③)은 모던재즈와 빅밴드 편곡, 양 갈래로 발전했던 이 곡의 흐름을 한자리에 통합시켰다. 마치 베이시가 사용했던 리프를 좀 더 발전시킨 것 같은 마지막 부분의 코다가 등장하기 전까지 라우스-우즈-호킨스-카터로 이어지는 네 색소폰 명인의 솔로는 숨 쉴 틈도 없이 긴박하게 돌아간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해석은 작곡가 자신에게서 나왔다. 그는 1941년 그의 이 곡에 대한 세 번째이자 마지막 녹음이던 피아노 독주(음반④)에서 그는 아름다운 서창 부분을 포함해 이후에 전개되는 각 코러스를 마치 잘 짜인 변주곡처럼 연주했다. 동시대의 아트 테이텀을 제외하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이러한 연주는 이후에 등장한 냇 킹 콜·얼 하인스·텔로니어스 멍크·빌 에번스·밥 브룩메이어·테디 윌슨·오스카 피터슨·키스 재럿의 뛰어난 연주도 범접할 수 없는 탁월한 시상(詩想)을 구축한 것이다.

<추천 음반>


1 Satch Plays Fats

Columbia-Legacy CK 64927|연주 시간 2분 53초|1955년 녹음|루이 암스트롱(트럼펫·보컬)+트루미 영(트롬본)/배니 비가드(클라리넷)/빌리 카일(피아노)/아벨 쇼(베이스)/배럿 딤스(드럼)/벨마 미들턴(보컬)


2 Body & Soul

Columbia CK 47035|연주 시간 3분 24초|1951년 녹음|에럴 가너(피아노)+존 시몬스(베이스)/셰도 윌슨(드럼)


3 Further Definition

Impulse IMPD 229|연주 시간 3분 50초|1961년 녹음|1961년 녹음|베니 카터(알토 색소폰)+필 우즈(알토 색소폰)/콜먼 호킨스·찰리 라우즈(테너 색소폰)/딕 캐츠(피아노)/존 콜린스(기타)/지미 개리슨(베이스)/조 존스(드럼)


4 The Complete Victor Piano Solos

Definitive Records DRCD11297|연주 시간 3분 24초|1941년 녹음|패츠 월러(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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