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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열 번의 봄, 실내악을 꽃피우다
글 국지연 기자 5/1/2015 |   지면 발행 ( 2015년 5월호 - 전체 보기 )



향기로운 꽃향기와 함께 공연계에도 봄소식이 날아들었다. 2015년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가 실내악 선율로 희망의 봄을 선사하고 있다. 특히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는 올해 10년을 맞는 해로 다양한 음악 장르의 풍성한 레퍼토리가 청중을 기다리고 있다. 10년 전 서울의 봄을 기획한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연세대 교수)이 2015년을 맞는 봄의 특별한 의미


천재라 불린, 현의 마술사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그를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단어는 ‘음악 시인’이다. 그의 친구들은 그를 한국의 음악 시인이라 부를 만큼, 그의 음악은 시적이고 순수하며 때로는 삶을 아우르는 위로의 메시지를 품고 있다.

우리에게 강동석은 소년의 얼굴을 한 전형적인 음악 천재로 기억된다. 그의 젊은 시절이 너무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1980년대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책받침에 피비 캐츠나 소피 마르소·톰 크루즈 같은 영화배우 사진이 도배된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책받침에 등장한 음악가였다. 오늘날에도 콩쿠르 수상 소식에 온 나라가 들썩일 정도인데, 30여 년 전 강동석의 연이은 국제 콩쿠르 수상 수식은 우리 국민의 자부심을 고취시키기에 충분했다. 한마디로, 당시 강동석은 피아니스트 서혜경과 함께 음악계의 양대 슈퍼스타였다.

7세에 연주회를 갖기 시작해 12세에 동아음악콩쿠르에 최연소 우승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이후 줄리아드 음악원을 거쳐 커티스 음악원에서 이반 갈라미언을 사사하며 넓은 음악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17세에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재단 콩쿠르와 워싱턴의 메리웨더 포스트 콩쿠르에서 연달아 우승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또 세계 3대 바이올린 콩쿠르로 알려진 몬트리올 콩쿠르, 런던 카를 플레슈 콩쿠르,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차례로 석권하면서 솔리스트로서 놀라운 성공을 거둔다. 당시 클래식 음악에 겨우 눈뜬 우리나라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소식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음악을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집 안에 늘 음악이 흘렀으니까요. 피아노도 어릴 때부터 배웠는데, 그중에서도 바이올린 소리가 가장 좋고 마음에 와 닿아 악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가족 곁을 떠나 유학을 간다는 것이 당시는 흔한 일이 아니었기에 그의 유학 결정은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겁이 없었는지, 미국에 가고 싶은 열망이 너무 컸는지 결국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갈라미언 교수님께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한 부부의 집에 머무르며 학교에 다녔는데, 새로운 환경이 재미있는 데다 음악 공부도 흥미로워 별로 향수병을 앓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집에서 부모님은 걱정이 많으셨겠지만요.(웃음) 그 후 음악적으로 수많은 결정을 했지만, 그때 선택한 유학만큼은 지금도 후회가 없습니다.”

그는 세계적인 교육자인 갈라미언 교수를 만나 바이올린을 배우며 본격적인 음악 수업에 들어간다. 갈라미언 교수는 내로라는 연주자들을 길러낸 명교수로 알려져 있다.

“제가 교수님을 만났을 때 그분이 60세가 넘었으니,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으셨죠. 그런데 열정만큼은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그분의 음악 교육법 역시 굉장히 과학적이었습니다. 체계적이고 합리적이었죠. 그래서 학생들이 더 재미있게 음악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양심적이고 강직한 분이셨죠. 아버지처럼 제게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다른 학생들보다 레슨도 많이 해주셨고요.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그분께 가장 신세를 많이 진 셈이죠. 그분은 악기 다루는 법에 대해서도 연구를 많이 하셔서 기술적인 면에서도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연세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그이기에 그때의 배움은 지금도 학생들을 가르칠 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강동석은 결국 제자들이 갈 길을 제시하고 인도해주는 것이 선생으로서의 진짜 역할인 것 같다고 말한다.

“당연히 유학시절 갈라미언 교수님에게 받은 가르침은 제 학생들에게도 적용되지요. 그분의 가르침은 음악뿐 아니라 제 인생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니까요.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사실 보통 일이 아니지요. 연주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가르침에는 ‘책임’이 따르고 젊은이들의 장래가 달려 있기 때문에 어떨 땐 가르치면서 겁이 나기도 합니다. 학생들은 저마다 개성과 실력, 성품이 다르기 때문에 개인의 특성을 섬세하게 파악하고 고려해 가르쳐야죠. 학생이 그렇듯, 가르치는 사람도 많은 경험과 새로운 배움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는 예전 학생들에 비해 요즘 학생들은 기술적으로 뛰어난 학생이 많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콩쿠르나 입시를 위한 공부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막상 그 안에 들어가보면 의외로 기초가 약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보면 세계적인 대가들도 아침마다 스케일 연습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은 콩쿠르나 입시에서 연주할 유명한 작품 위주로 필요한 기술과 스케일만 반복적으로 연습합니다. 그러니 진짜 실력이 향상되기 어렵지요. 음악은 차근차근 고민하고 작은 것부터 노력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것인데, 그런 기회를 모두 놓치는 것입니다. 음악 공부에서 중요한 것은 음악을 대하는 자세와 음악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지, 콩쿠르나 입시를 위한 일시적인 연습이 아닌데 말이에요.”

그렇다면 그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중요시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음악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을 바라보는 눈과 기초 연습이라고 강조한다. 집을 지을 때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 있어도 기본 재료가 좋지 않으면 좋은 집을 지을 수 없듯이, 음악도 기술적인 면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표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경쟁 때문인지 요즘 학생들은 큰 작품만 연주하려 하고 기본적인 기초 연습은 소홀한 경우가 많습니다. 모두 빨리 가려다 보니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하지만 모든 길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길게 인생을 바라봐야 하지요. 그러니 그저 천천히 묵묵하게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하며 나아가는 수밖에요.”

솔리스트로 명성을 날린 그지만 음악 활동을 하면서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어린 시절 유학을 갔고, 워낙 젊은 나이에 주목을 받았기에 거기서 오는 부담과 고민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제가 롱 티보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갔을 때 참가자 중 제 나이와 비슷한 연주자가 있을 만큼 최연소였지요. 하지만 모든 삶이 그렇듯 음악은 특히 끝이 없는 분야라 누구나 부단히 성장해야만 합니다. 지금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중요하지요. 저 역시 여러 과정에서 어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항상 그런 어려움 조차 음악인으로서 성장하는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늘 숙고하는 삶, 그리고 문제가 있을 때마다 스스로 해결하려는 자세, 너무 흑백논리에 빠지지 않는 것. 이런 것들이 제 삶을 이끌어온 철학들이지요.”

수줍은 듯 조용한 성품을 지녔지만, 실제로 그는 친구도 많고 여행도 좋아한다. 연주 여행을 갈 때면 항상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점에 들르고 와인도 마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한다. 오죽하면 ‘강동석과 친구들’이라는 제목으로 된 연주회를 펼쳤을까. 그의 오랜 음악 동료들 역시 음악가 강동석의 순수한 열정과 예술감독 강동석의 철저함에 존경을 표할 정도다.

“사람들은 제가 무대에서 카리스마 있게 연주하면 굉장히 놀라곤 합니다. 평소 모습과 너무 다르다고 말이죠. 하지만 저는 연주자를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연극이나 뮤지컬, 드라마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그 작품에 빠지게 되죠. 연주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연주하는 작품의 작곡가가 되어 그 작곡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들을 최대한 살려 표현해야 하죠. 그러니 연주자는 무대에서 천의 배우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사실 배우들이 좋은 연기를 위해 휴식의 시간을 갖듯이, 연주자도 새로운 창조를 위해서는 반드시 휴식과 일탈이 필요하지요. 그런데 저 역시 여러 연주 활동을 하다 보니, 대부분의 시간이 연주와 관련돼 있어 음악을 벗어나는 일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연주가 없는 날에는 박물관, 미술관에 들르거나 골동품을 구경하며 머리를 식히기도 하고, 가끔은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구상하기도 합니다. 음악 외 이런 활동이 연주를 하고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좋은 영감을 주니까요.”


실내악은 작은 우주, 인생 그 자체

솔리스트로 명성을 날리던 그가 실내악에 빠지게 된 것은 미국에서 귀국한 후 여러 국내 연주자들과 앙상블 무대를 갖고 음악 캠프나 각 대학에 초청되어 동료 연주자들과 실내악 연주를 하면서부터다. 워낙 실내악에 관심이 많았지만, 인연으로 맺어진 연주자들과 함께하는 무대는 솔리스트 연주와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는 각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맡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실내악의 길로 빠져들었다.

“실내악은 다른 사람의 개성을 파악하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합니다. 다른 파트의 선율도 들어보고 서로 의견도 교환하면서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지요. 그래서 완벽한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는 실내악 공부가 필수입니다. 학생들에게 많은 실내악을 접하고 직접 참여해보라고 조언하는 것도 모두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강동석이 실내악을 처음 접한 것은 열네 살 때였다. 유학 1년이 되던 해 그는 갈라미언 교수가 하는 캠프에서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작품을 연주하면서 외국 친구들과 실내악을 처음 연주했다.

“당시 저를 제외한 모든 멤버가 실내악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어린 나이부터 실내악을 했기 때문에 듣는 귀도 훨씬 좋았고, 확실히 음악을 대하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정말 실내악을 너무 늦게 접하는 것이었죠. 당시 제겐 솔리스트란 개념이 음악의 전부였는데, 실내악의 세계를 알게 된 것은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가끔 ‘내가 실내악을 좀 더 일찍 접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볼 정도로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실내악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제 음악의 방향성이 달라졌다 해야 겠지요. 어떻게 보면 인생의 철학이 달라졌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에게 실내악은 작은 우주이자 인생 그 자체다. 실내악 안에 인생의 모습이 그려져 있기도 하지만 강동석의 음악이 그만큼 넓고 깊어졌다는 의미이다. ‘실내악 전도사’라 불릴 만큼 그는 이제 뛰어난 앙상블리스트로 우리 기억 속으로 들어와 있다.

“솔리스트로서 큰 성공을 거뒀고 음악계에서 주목을 받았지만, 저를 음악적으로 깊이 성장시킨 것은 다른 연주자들과 함께한 실내악 무대였습니다. 좋은 연주자들을 만나서 함께 무대에 서고 음악을 만들어가면서 진정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요.”


결국은, ‘사람’이다

그의 실내악 사랑은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를 통해 더욱 깊어졌다. 그가 예술감독으로 있는 이 축제는 올해로 10주년을 맞았기에 이번 봄을 맞는 그의 감회가 더욱 새롭다.

‘음악을 통한 우정’이라는 주제로 2006년 첫 회를 시작한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는 매년 서울의 봄을 클래식 음악으로 물들이고 있다. 서울 시민에게 다양한 실내악 무대를 통해 음악이 주는 행복과 기쁨을 나눈다는 취지로 시작된 이 축제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탱글우드 페스티벌 같은 세계적인 음악 축제로의 성장을 꿈꾸며 매년 새로운 레퍼토리와 기획으로 음악계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동안의 축제에 대한 음악계의 평가는 매우 긍정적이다. 열악한 국내 실내악 분야를 활성화하고 클래식 음악의 균형 잡힌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게 전체적인 평이다.

매년 새로운 주제로 청중과 만나온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의 올해 주제는 ‘10(ten)’. 이번 무대는 그동안 이뤄낸 축제의 여정을 돌아보고 새로운 10년을 계획하고 내다볼 수 있는 시간이다. 예술감독 강동석과 첼리스트 조영창, 피아니스트 김영호, 비올리니스트 김상진, 첼리스트 양성원 등 그동안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에 함께한 아티스트와 피아니스트 제러미 메뉴인·리카코 무라타·파스칼 드부용·피에르 랜·송영훈·유영욱·최희연·조재혁·신수정·권혁주·이경선·김소옥·노부스 콰르텟 등 국내외 유명 연주자들이 대거 참여할 예정이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가 시작된 2006년에 강동석을 취재하면서 놀란 것은, 그의 대단한 스태미너였다. 그는 10여 일 동안 대부분의 행사에 참여했고, 하루에도 두세 번씩 실내악을 연주했다. 그러면서도 어느 한 곡 그냥 넘기지 않는 진지함과 열정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예술감독으로서 축제를 책임지는 입장이기에 레퍼토리와 연주자 섭외, 또 연주자로서 수많은 레퍼토리를 연습해야 하는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난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가 어느덧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실내악 축제로 자리 잡았고, 10주년을 축하하는 이번 무대는 그래서 모두에게 더욱 특별하다.

“2006년 처음 실내악축제를 연 것이 엊그제 같네요. 제게 지난 10년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보람도 무척 큰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 이렇다 할 실내악축제가 없었는데, 어려운 환경에서도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죠.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가 서울 시민의 사랑을 받고, 누구에게나 기다려지는 축제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주위에서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자원봉사자부터 서울시 관계자, 애호가, 음악가, 청중까지 모두가 서울의 봄을 있게 한 주인공입니다.”

하지만 봄과 실내악이 어우러진 이 아름다운 무대 뒤에는 어려운 사정도 꽤 많았다. 우선 뛰어난 연주자들을 섭외해 적절한 개런티를 주고 개성이 강한 연주자들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것 자체가 연주만큼 힘든 일이었다.

“모든 연주자들은 자신만의 음악 세계가 있기 때문에 서로 모여 연주할 때 음악적으로 부딪히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음악 세계를 인정하는 것이죠. 그것이 바탕이 된다면 서로의 음악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멋지고 행복한 과정일 것입니다. 축제를 이끌어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무래도 재정 문제였습니다. 이런 축제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꾸준한 재정 지원이 필요한데, 경제가 힘들어지다 보니 점점 지원도 줄어들어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가 계속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음악 축제로 성장하려면 시민의 관심뿐 아니라 국가와 기업 차원의 사회적인 지원과 지속적인 도움이 절실합니다.”

실내악은 음악의 꽃이지만 그 꽃이 피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 그는 실내악을 중심으로 한 축제가 청중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청중과 연주자, 정책하고 지원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실내악처럼 발전이 늦은 장르가 없다고들 하는데, 그래도 저는 음악이 영혼을 움직이는 힘을 가졌다는 것을 믿기에 앞으로도 열정을 다할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예전에 비해 젊은 연주자들이 실내악에 관심을 갖고 좋은 연주를 많이 해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내악 연주자로서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국내 단체가 많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제 우리의 음악계도 균형 잡힌 발전을 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10년의 여정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를 오랫동안 다녀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축제를 빛내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배경이 있다. 김영호·양성원·김상진·조영창은 처음 축제가 시작될 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함께해온 음악가들이다. 모두 내로라하는 솔리스트지만, 함께하면 또 다른 음악을 만들어내는 화음의 마술사들이다.

“모두 뛰어난 연주자이면서 인생에서 소중한 제 음악 친구들이기도 하지요. 함께 나눈 추억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제가 실내악을 좋아하는 이유도 이렇게 같은 무대에 서는 사람들이 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소리를 하나로 모아 가장 아름다운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그 과정은 사람과 사람이 친해지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좋은 사람들이 모이면 그래서 좋은 음악이 나오는 것이죠.”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는 선후배 음악인이 만나는 자리가 되기도 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손열음,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등 현재 활약하는 젊은 연주자들이 모두 이 축제를 빛내준 이름이다. 이번 무대 역시 비올리스트 이한나, 바이올리니스트 김현아·권혁주, 노부스 콰르텟 등 뛰어난 젊은 연주자들이 많이 참여한다.

“그동안 축제를 통해 500여 곡의 실내악 작품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중에는 알려진 곡도 있고 다소 어려운 곡도 있지요. 한국 초연인 곡도 많았습니다. 올해는 10주년을 기념해 큰 ‘회고전’을 준비했는데요. 실내악축제에서 들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노력을 기울였으니, 많은 분들이 공연장을 찾아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그동안 서울스프링실내악 축제는 해마다 다른 주제로 진행한 만큼 당시 연주한 작품을 이번 무대에서 듣고싶다면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음악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결국 ‘회상’이지요. 음악을 듣다 감동받는 것도 마음속에 저장된 어떤 기억 때문일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런 기억을 늘 마음에 품고 삽니다. 이번 무대가 지난 축제 때의 행복했던 순간을 되돌아보고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특히 마지막 날 무대는 2008년의 주제였던 ‘삶의 이야기’를 테마로 했습니다. 당시 이 기획은 실내악이 어렵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대중’을 위한 콘셉트로 기획된 것이었죠. ‘젊음’ ‘매혹’ ‘여명’ ‘음악의 희롱’ ‘믿음’ ‘사랑과 열정’ ‘유머’ ‘사랑과 죽음’과 같은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삶의 소소함부터 지고지순한 정신세계까지, 삶의 세계를 총망라해 실내악 음악 안에 담고있습니다. 우리네 인생의 한 장면처럼요.”


돌이켜 보면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의 모태가 된 것은 2003년 호암아트홀과 함께 주최한 ‘뮤직알프페스티벌’이였다. 강동석이 예술감독이었던 뮤직알프페스티벌은 여러 문제 때문에 2년 만에 중단되었다가 2006년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새롭게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로 재탄생했다.

“유럽 순회 연주 때나 해마다 각 도시에서 펼쳐지는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연주할 때면 늘 부러움이 있었습니다. 이 기획을 통해 음악인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보다 넓고 깊은 실내악이라는 음악 장르를 소개하고 그 안에서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어떻게 한무대, 한자리에 뛰어난 연주자들을 모을 수 있을지’ 걱정하는 사람도 꽤 있었는데요. 그런데 막상 축제를 기획하고 진행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연주자들이 축제에 참여해주고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그런 마음들이 모두 이 축제가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지요.”

10년 전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가 시작될 때 그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시민들에게 실내악이 어떤 음악인지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느덧 ‘실내악 전도사’가 된 그는 성공적인 10년의 시간을 쌓고 다시 새로운 도전과 과제 앞에 서 있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가 10년 동안 많은 발전을 했지만 앞으로의 10년은 이 축제가 깊이와 넓이를 더 보강할 수 있는 중요한 기틀이 마련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내악의 매력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다양한 레퍼토리와 기획으로 청중의 즐거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만족시켜야겠지요. 또 세계인이 서울이라는 도시를 찾을 수 있도록 음악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도 밀접하게 연결해 다각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서로에게 비밀을 털어놓고 소통하며 함께 승화할 수 있는 미덕이 있어야 하는 장르가 음악이라면, ‘조화’의 속성과 가장 어울리고 구체화된 것이 바로 ‘실내악’이다. 그래서 예술 분야에서 음악만큼은 인격적인 성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축제의 10주년을 기념하는 기자회견장에서 본 강동석은 여전히 미소년 같은 순수한 미소를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화려한 솔리스트 시절보다 그는 훨씬 더 강해 보였다. 강동석이 갖고 있던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천재 이미지가 따뜻한 앙상블 주자의 부드러운 카리스마속에 스며든 듯했다. 어느덧 그의 음악이 깊은 아름다움을 품고 넓은 바다로 흘러가고 있었다.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고 했던가. 몇 년 전 윤보선 고택에서 있었던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에 간 적이 있었다. 마감을 끝내고 여유와 행복에 젖어 있던 그날, 공연이 펼쳐진 고택은 아카시아 향기로 가득했다. 우아한 선율이 흐르자 사람들은 실내악이 만들어 내는 순한 감동 속으로 빠졌다. 맑고 순수한 음악이 살아 숨 쉬는 것 같던 슈베르트의 ‘송어’가 앙코르곡으로 연주된 후 강동석과 친구들은 서로를 안으며 즐겁게 인사를 나눴다. 고택 정원의 나무 의자에 앉은 청중도 서로의 눈을 맞추며 행복해 했다. 음악이 흘렀던 그 곳에서 어쩐지 올해는 더 특별한 행복이 찾아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진 심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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