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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틴 리프시츠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20년의 기다림, 바흐를 확신하다
글 김주영(피아니스트) 4/1/2015 |   지면 발행 ( 2015년 4월호 - 전체 보기 )



콘스탄틴 리프시츠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20년의 기다림, 바흐를 확신하다

오래 연구한 작품을 새로 만난 신작처럼 연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 ⓒSona Andreayan

하고 있는 일이 워낙 오랜 기간 노력해도 그 발전이 눈에 띄지 않는 종류의 것이라 자랑할 거리도 별로 없는데, 그나마 경험이 쌓여 요즘 들어 다소 쉬워진 일이 있다면 바로 학생들의 연주 프로그램 추천이다. 각자 악보를 받아들이는 속도나 능력 향상, 집중도를 고려하면 어느 정도 계산이 잡힌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는데, 정작 나의 연주 레퍼토리를 생각하면 점점 아득해진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악보를 꺼내들고 스스로에게 변덕을 부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한숨짓곤 하는데, 문제의 핵심은 과거의 기억과 새로운 의욕의 갈등이다. 즉 새로운 레퍼토리를 무대에 올릴 것이냐, 아니면 아쉬움이 남은 과거의 작품 또는 호평을 받은 프로그램을 ‘앙코르’로 연주할 것이냐의 문제. 분명한 것은 예전 무대에서 내가 보여준 기억은 모두 씻어버리듯 잊어야 한다는 철칙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10대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경이적 기량으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며 데뷔한 콘스탄틴 리프시츠에게도 바흐의 이 걸작은 끊임없는 고민거리였을 것이라 짐작한다. 1994년 그가 그네신 음악학교를 졸업하는 무대에서 선보인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이 작품에 꽤 많이 익숙해진 애호가들의 귀도 충격에 휩싸이게 할 만큼 신선하고 완성도 높은 해석이었다. 가히 1955년 CBS 레이블의 글렌 굴드에게 받은 생경함에 맞먹는 놀라움을 제공했던 리프시츠는 단숨에 화제의 피아니스트가 되었고, 그 이후 자신의 활동 반경을 세심하고 의미 있는 행보로 넓히는 중이다. 

1976년에 태어나 타티야나 젤리크만을 사사하면서 그네신 음악학교를 다닌 ‘코스차’(콘스탄틴의 애칭)의 이름은, 사실 센세이셔널했던 졸업 연주회 이전에 이미 많은 주목을 받고 있었다. 러시아 후원재단 뉴 네임스의 장학금을 받아 해외 연주를 떠난 것이 1990년, 그의 나이 열네 살 때의 일이다. 블라디미르 스피바코프의 눈에 띄어 모스크바 비르투오시와 일본에서 협연한 것은 그 이듬해인데, 바흐와 모차르트 연주로 주목을 끌게 된다. 리프시츠를 ‘제2의 키신’으로 판단한 데논 레이블은 계약을 맺어 그의 성장을 지켜보는데, 여기서 일련의 음반이 그의 이름을 폭넓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주지한 ‘골드베르크 변주곡’ 녹음과, 이에 앞서 1993년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에서 열린 모차르트·쇼팽·라벨의 연주를 담은 실황이 발매됐다.
필자가 처음 접한 그의 연주 역시 바흐가 아닌 쇼팽과 그 외의 작품들이었고, 1998년 내한 공연 당시의 연주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마지막으로 연주한 쇼팽의 소나타 3번이다. 최근의 연주 활동 중에서는 가시모토 다이신·예브게니 우고르스키와의 실내악 연주가 두드러지는데, 역으로 생각하면 바흐 해석에 천부적 유전자를 타고난 자신의 정체성을 이와 상관없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조심스레 관리하고 아끼면서 다시 본령으로 돌아올 ‘적절한 시기’를 엿보고 있었다고도 생각된다. 물론 바흐를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다. 30대에 들어서면서 오르페오 레이블과 협력해 발표한 ‘음악의 헌정’(2005), ‘푸가의 기법’(2010) 그리고 슈투트가르트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건반 악기 협주곡집(2010)이 잇따라 호평을 받았다. 이윽고 2012년 11월 뷔르츠부르크에서 라이브로 연주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20년간의 기다림 끝에 빛을 보게 된다.


▲ 콘스탄틴 리프시츠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Orfeo C86414A

넉넉한 템포 설정과 함께 자연스레 이루어진 음악적 공간감, 즉흥적이나 연주자의 깊은 내공에서 비롯된 논리 정연한 루바토와 과도하지 않은 비르투오시티 등에서 새로운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탁월하다. 무엇보다 한층 넓어진 시각이 두드러진다. 본래 어린 시절부터 리프시츠의 개성 중 가장 특별한 부분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혜안과 성숙한 관조 느낌을 해석에 녹여내는 능력인데, 그 시각이 한층 멀어지고 멀티플해진 느낌이다. 건반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집중력은 여전하지만 성부 간 대화와 거기서 나타나는 아고기크의 미세한 조절, 음상의 밀도에 차등을 두어 전체적으로 입체적 음의 조형을 꾸미는 솜씨 등은 젊은 대가의 완숙함을 맛보게 되는 대목이다.

예상을 깨는 도입과 악상이 이루어지는 변주들도 놀라움보다는 당당함이 느껴진다. 10변주의 푸게타에서 나타나는 부드러운 낙천성은 듣는 이를 편안한 음악적 확신으로 이끌고, 단조인 15변주의 카논은 의외의 공격적 성향으로 서정적 분위기에 무게를 더한다. 느린 변주로 전곡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한 25변주의 표정을 담백하게 조정해 단아함을 강조한 것도 흥미롭다. 과격한 흥분에 다다르기 쉬운 쿠오들리베트 부분 역시 다이내믹의 절제가 뛰어나다.
자신이 다루는 음악 중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이번 실황 음반은 리프시츠가 자신의 음악적 서명과도 같은 이 작품을 얼마나 보석처럼 여기는지 보여준다. 전곡의 유기적인 통일성 속에 자리 잡은 꼼꼼한 마무리는 오히려 각 변주의 신선함에서 느껴지는데, 오랫동안 연구한 작품을 바로 어제 새로 만난 신작처럼 들리도록 연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바흐의 건반 악기 작품을 두루 섭렵하며 준비한 동시에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변주곡의 즐거움과 바흐의 유희성마저 절묘하게 포착하려 애쓴 리프시츠의 노력이 멋지게 빛을 발한 호연이다.
글 김주영(피아니스트) 사진 신나라 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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