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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마미아!’
원곡을 뛰어넘는 뮤지컬 넘버
글 원종원 11/1/2013 |   지면 발행 ( 2013년 11월호 - 전체 보기 )




주크박스 뮤지컬이 대단한 인기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동전을 넣으면 흘러간 옛 인기 대중음악을 들려주는 음악상자처럼 무대가 왕년의 히트곡을 빌려와 극적 구조에 얽어 이야기를 꾸몄다는 의미로 쓰이는 용어다. 이미 생명력이 한풀 꺾인, 그러나 아직 대중적 인지도가 남아있는 음원을 가져다 다시 극으로 활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소위 ‘꿩 먹고 알 먹는’ 현대 뮤지컬 문화산업의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 공식인 셈이다.
영미권의 대표 시장인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극장가에는 요즘 새 작품의 삼분의 일이 주크박스 뮤지컬일 정도로 인기 열풍이 거세다. 퀸의 음악으로 만든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 ‘캔트 테이크 마이 아이스 오프 유(Can′t Take My Eyes Off You)’로 잘 알려진 포 시즌스의 음악으로 만든 ‘저지 보이스(Jersey Boys)’, 빌리 조엘의 음악이 담긴 ‘무빙 아웃(Movin′ Out)’, 스파이스 걸스의 히트곡들이 등장하는 ‘비바 포에버(Viva Forever)’ 등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은 작품들이 앞 다퉈 막을 올리고 있다. 이 같은 유행은 국내로도 전이되고 있는 추세인데,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으로 꾸민 ‘올 슉 업(All Shook Up)’과 같은 수입 라이선스 작품은 물론 창작 뮤지컬로 공전의 흥행을 기록했던 ‘광화문 연가’를 위시로 김광석의 노래가 등장했던 ‘그날들’, DJ DOC의 노래가 등장하는 ‘스트릿 라이프’, 동물원의 음악들로 꾸민 ‘동물원’, 1980~1990년대 흥행곡이 대거 등장하는 ‘달고나’ ‘젊음의 행진’ 등이 관객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온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대중음악 작곡자 겸 프로듀서인 김창환, ‘록의 대부’로 불리는 신중현, 트로트의 전설인 심수봉 등도 자신의 노래를 활용한 주크박스 무대를 기획 중이거나 제작 예정이어서 당분간 주크박스 뮤지컬의 인기는 식지 않을 전망이다.

‘맘마미아!’ 주크박스의 신화를 낳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신화를 탄생시킨 단 한 작품만을 꼽으라면 대답은 뮤지컬 ‘맘마미아!’일 수밖에 없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형식이 처음 등장한 것은 이미 1960년대의 일이지만, 세계적인 흥행과 고수익의 부가가치를 이뤄내며 글로벌한 흥행 트렌드를 낳은 것은 ‘맘마미아!’로 흥행 성적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맘마미아!’는 스웨덴 태생의 혼성 밴드였던 아바(ABBA)의 음악으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1974년 영국의 남부 해변도시인 브라이턴에서 열렸던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워털루(Waterloo)’라는 노래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던 이들은 비틀스·비지스와 더불어 30여 년에 걸친 세월 동안 인기 차트 1위곡을 계속 발표한, 말 그대로 흥행 대중음악 제조기로 통한다. 이름으로 쓰인 영어 철자 네 단어는 멤버였던 앙네타 펠트스콕·벤니 안데르손·비에른 울바에우스·안니 프리드의 머리글자를 모아 만든 이름이다.
뮤지컬 ‘맘마미아!’의 제작자도 아바의 남자 멤버였던 비에른과 벤니였다. 우연히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를 관람하게 된 두 사람은 이 작품이 비지스의 음악들로 꾸며진 것처럼 아바의 노래들로 무대를 꾸밀 수 없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됐다. 여러 수소문 끝에 영국 방송가의 드라마 작가인 캐서린 존슨을 만나게 됐고, 아바의 음악이 주로 사랑·이별·가족 등의 소재로 이뤄져 있다는 점에 착안해 스무 살 딸을 키우는 마흔 살 미혼모와 아빠일지 모를 세 남자의 해프닝으로 만들어졌다. 결국 좌충우돌의 코미디로 꾸며진 이 작품은 아바의 음악을 비틀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원래 노래의 의미와 전혀 다른 해석을 가미한 줄거리로 공전의 흥행을 기록했고, 결국 뮤지컬 영화로까지 제작돼 영국 일반 가정 네 집의 한 곳에서는 이 뮤지컬 영화의 DVD를 소장하고 있게 되는 대박 흥행을 실현해냈다. ‘맘마미아!’의 엄청난 성공은 세계 각국어로 꾸며지는 로컬 프로덕션의 등장도 가져왔으며, 우리나라에서의 인기는 신시뮤지컬컴퍼니의 번안 무대가 시발점이 됐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재미를 찾아서

히트 음악이 많은 만큼 아바의 노래들은 다양한 음반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한 장의 음반에서 다섯 곡이 유럽 팝 차트 10위권에 오르는 등 그야말로 신화 그 자체다. 현역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음반 판매고도 엄청난 기록을 세웠지만, 멤버 간의 불화와 이혼 등으로 팀이 해체된 이후 제작된 그레이티스트 히트 앨범이나 골드 앨범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갈 정도로 이들의 인기는 시간적 제약을 받지 않았다. 흥행 요인을 분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아바의 오랜 인기는 역시 귀에 쉽게 감기는 아름다운 선율과 일상생활에서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노랫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는 누구도 이견을 달기 힘들 것이다.
공연이 큰 흥행을 이루면서 뮤지컬 수록곡을 담은 오리지널 캐스트 음반도 덩달아 높은 판매고를 달성했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초연이 됐던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제작된 1999년 오리지널 런던 캐스트 앨범이다. 엄마 도나 역으로는 시오반 매카시, 딸 소피 역으로는 리사 스토케, 아빠일지 모를 세 남자로는 힐턴 맥레이(샘)·니컬러스 콜리코스(빌)·폴 클락슨(해리)이 참여했다. 흥겨운 템포와 맛깔스런 선율의 음악은 공연 흥행과 더불어 음반의 인기로 이어지는 흥행의 완성을 불러왔다.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린 것은 영국 초연 2년 뒤인 2001년의 일이다. 브로드웨이와 캐나다 등지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루이즈 피트르가 도나 역을, 그리고 신예인 티나 매디건이 소피 역을 맡아 무대에 등장했다. 급작스레 불거진 9.11 테러라는 악재가 초반 흥행에 대한 우려를 불러오기도 했지만, 결국 끈끈한 생명력을 이어가며 성공적인 흥행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런던 캐스트 음반이 있어도 뉴욕에선 또 다른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 음반을 제작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 탓인지 ‘맘마미아!’는 이런 전철을 밟지 않았고, 덕분에 오리지널 런던 캐스트 음반은 영국과 미국 모두에서 인기를 누린 별난 명성을 얻게 됐다.
공연을 보고 아바의 원래 노래가 다시 듣고 싶어서 공연 음반이 아닌 히트곡 모음집을 사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대부분 다시 공연 관련 음반을 사는 경험들을 하게 되곤 한다. 노래도 같고 제작자도 동일하지만 극을 위해 활용한 음원은 원래의 노래가 아닌 극적으로 변주되고 편곡된 음원이라, 원곡은 무대에서 본 감흥을 되살리는 데에 큰 감흥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원 소스를 가져다 다양한 멀티 유즈를 시도하는 현대 문화산업의 생산물들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유명한 원작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어떻게 비틀고 변화시켜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가에 달려 있다는 간단한 명제를 다시금 되새기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장르를 넘어 다시 태어나는 문화상품

최근 무대용 뮤지컬을 가져다 영상용 기록으로 다시 만드는 유행도 각광을 누리고 있다. 사실 서양에서는 1950~1960년대에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중장년층 중에는 뮤지컬 하면 뮤지컬 영화를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이 시기에 등장했던 뮤지컬 영화 제작 붐을 통해 처음 뮤지컬을 접했기 때문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마이 페어 레이디’ ‘사운드 오브 뮤직’ 등은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글로벌 문화시장에서 인기를 누렸던 사례들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뮤지컬 영화들은 그러나 느린 극적 전개와 템포, 장르의 다변화가 가져온 문화산업의 경쟁 시대가 도래하며 쇠퇴기를 맞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들어 다시 뮤지컬 영화의 인기가 부활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반에 등장했던 ‘시카고’를 위시로 ‘나인’ ‘오페라의 유령’ ‘헤어스프레이’ 등이 스크린에 선보이며 흥행을 기록했다. 과거 1세대 뮤지컬 영화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요즘 제작되는 뮤지컬 영화들은 단순한 무대의 재연이 아닌 영화만의 재미를 다시 추가하거나 무대와의 일정한 거리 두기를 통해 무대는 무대대로, 영상은 영상대로 매출과 수익을 극대화한다는 점이다.
뮤지컬 ‘맘마미아!’의 행보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근간은 무대용 뮤지컬이 맞지만, 세세한 구조나 극의 전개, 노래 순서 등은 엄연히 다른 길을 선택했다. 덕분에 영화가 만들어져도 여전히 공연장에는 관객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고, 무대용 뮤지컬이 글로벌 마켓으로 소개되며 유포되고 있지만 영화의 흥행과는 별개로 전개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음반도 마찬가지다. 뮤지컬 영화가 등장하면서 무대와는 또 다른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앨범이 2008년 제작됐다. 영화에서 메인 롤을 맡았던 관록의 배우들 - 메릴 스트리프(다나)·피어스 브로스넌(샘)·콜린 퍼스(해리)에 당시까지만 해도 신예로 통하던 어맨다 시프리드(소피)가 참여해 외모나 연기 못지않은 노래 솜씨를 선보였다. 무대 버전의 음반에서는 만날 수 없던 영화 음악 버전만의 재미도 있다. 공연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영화에서만 나오는 노래가 음반에 소개됐기 때문이다. 바로 아바가 1981년 발표했던 싱글곡 ‘모든 것이 말해지고 이뤄졌을 때(When All is Said and Done)’가 그렇다. 피어스 브로스넌의 노래는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의 자베르 역으로 나왔던 러셀 크로우의 가창력만큼이나 참아주기 힘들지만, 그래도 이 작품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에겐 별난 재미이자 소중한 감상을 남겨주는 영화음악 앨범만의 추억이 됐다.
‘맘마미아!’의 묘미는 중의법적인 해석에 기인한다. 연인들의 사랑 다툼 노래가 뮤지컬에선 아빠일지 모를 남성에 대한 소피의 노래로 바뀌고, 실연의 아픔을 그린 노래가 구체적인 캐릭터의 사연으로 등장한다. ‘쌩큐 포 더 뮤직(Thank You for The Music)’을 통해 교감을 이루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이나 ‘테이크 어 챈스 온 미(Take a Chance on Me)’를 익살스레 활용하는 로지의 모습은 절로 웃음을 자아낸다. 영미권에서는 무릎을 탁 치며 “어찌 이 장면에서 저 노래를 쓸 생각을 했나?” 하고 감탄하며 보게 되는 작품이 바로 이 뮤지컬이다.
한글로 번안되면서 우리나라 무대에서는 이 독특한 재미가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음반을 감상하며 원래의 묘미를 발견할 수 있다면 무엇에도 비할 바 없는 즐거움이 될 것이다. 가사를 읽으며 음반만이 줄 수 있는 이 뮤지컬의 ‘진짜’ 재미를 만끽해보길 바란다.

글 원종원(뮤지컬 평론가·순천향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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