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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피터 클라크 테리&음반 제작자 오린 키프뉴스 재즈계의 전설이 사라지다
재즈계에 풍성한 과실을 제공한 두 거장이 2월과 3월, 일주일 간격으로 눈을 감았다
글 황덕호(재즈평론가) 4/1/2015 |   지면 발행 ( 2015년 4월호 - 전체 보기 )



트럼피터 클라크 테리&음반 제작자 오린 키프뉴스
재즈계의 전설이 사라지다

재즈계에 풍성한 과실을 제공한 두 거장이 2월과 3월, 일주일 간격으로 눈을 감았다



1956년 12월, 재즈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텔로니어스 멍크의 음반 ‘Brilliant Corners’를 제작하던 신참 프로듀서 오린 키프뉴스는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멍크의 기이한 작품으로 연주자들은 쩔쩔맸고, 심지어 마지막 녹음 날 멍크는 기존의 멤버를 빼고 새로운 연주자를 데려왔다. 한 명은 당시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의 베이시스트 폴 체임버스, 다른 한 명은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의 트럼피터 클라크 테리였다. 하지만 뜻밖에도 멍크와의 첫 녹음인데도 그들은 멍크의 작품 ‘Bemsha Swing’을 깔끔하게 녹음했고, 특히 키프뉴스는 클라크 테리의 솜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키프뉴스가 반한 것은 그의 연주 실력뿐이 아니다. 그는 넉넉한 인품에 끊이지 않는 유머감까지 갖추고 있었다. 클라크는 오린에게 재능 있는 뮤지션 캐넌볼·냇 애덜리 형제를 소개했다. 이는 리버사이드 레코드를 발족한 오린에게 큰 힘이 되었다.
이렇게 만난 두 사람. 반세기 넘는 동안 재즈계에 풍성한 과실을 제공한 두 인물 클라크 테리와 오린 키프뉴스가 지난 2월 21일과 3월 1일, 약 일주일의 간격으로 눈을 감았다. 클라크 테리는 95세, 오린 키프뉴스는 92세. 두 사람 모두 천수를 누렸다.

테리와 키프뉴스의 운명은 재즈였다
클라크 테리는 1920년 12월 14일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의 가난한 아프리카계 가정에서 11남매 중 일곱 번째로 태어났다. 열 살 때 매형이 부는 튜바 소리에 반해 동네 폐기물 더미에서 주워온 호스에 깔때기를 꽂아 분 것이 그의 첫 악기였다. 그의 실력은 빠르게 발전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부터 지역 밴드에서 직업 연주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1942년 징집되어 해군 군악대에서 연주했으며, 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온 뒤에는 조지 허드슨 빅밴드에서 연주했다. 이때 허드슨은 클라크 테리에게 모든 것을 의존했다. 리드 트럼펫은 물론 모든 솔로를 클라크에게 맡긴 것이다.
이 무렵 비교적 가까운 도시인 이스트 세인트루이스에 살던 소년 마일스 데이비스는 클라크 테리의 연주를 듣고 완전히 반해버렸다. 그는 틈만 나면 친구들에게 “(미시시피) 강 건너 세인트루이스에 가서 클라크 테리의 연주를 꼭 들어보라”고 말할 정도였다. 클라크와 마일스는 친구가 되었다(나이는 클라크가 여섯 살 위다). 무엇보다 클라크는 마일스에게 플뤼겔호른의 매력을 알려주었다. 마일스가 1957년 플뤼겔호른으로 ‘Miles Ahead’(Columbia)의 전곡을 녹음한 것은 분명히 클라크 테리의 영향이었다. 훗날 마일스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클라크는 내게 영향을 미친 최초의 인물이다.”
미래에 미국 음악계의 거물이 되는 프로듀서 퀸시 존스도 열세 살이던 이 무렵 클라크에게 트럼펫 레슨을 받았고, 퀸시는 클라크의 첫 제자가 되었다.

오린 키프뉴스는 클라크 테리가 태어난 지 3년 뒤인 1923년 3월 2일, 뉴욕 브롱크스의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1943년 태평양 전쟁에 참가했고, 전쟁이 끝나고 다시 동대학원에 입학했다. 하지만 10대 때부터 그의 마음을 진정으로 사로잡은 것은 재즈였다. 1948년 오린은 대학 시절 친구였던 빌 그라워와 함께 재즈 음반 전문지 ‘레코드 체인저(The Record Changer)’를 발간했다. 이때 블루노트 레코드의 앨프리드 라이언의 주선으로 텔로니어스 멍크와의 인터뷰 기사를 게재했다. 이는 멍크에 관한 최초의 문헌 중 하나로 남아 있다.
1951년 오린과 빌은 나란히 RCA-빅터에 입사해 이 회사의 옛 재즈 녹음을 LP로 재발매하는 일을 맡았다. 2년 뒤 그들은 독립 레이블 리버사이드를 설립하고 1920년대 킹 올리버·빅스 바이더벡 등 저넷 레코드의 역사적 음반을 재발매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오린이 ‘레코드 체인저’를 발간할 무렵 드디어 실력을 인정받은 클라크는 카운트 베이시 셉텟의 멤버가 되었다. 3년 후 오린이 RCA-빅터에 입사했을 때, 클라크는 최고의 밴드,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에 가입했다.

열정이 안내한 곳, 리버사이드
하지만 엘링턴 밴드 시절 클라크는 고민에 빠졌다. 그는 빅밴드 안에서 더 많은 솔로를 연주하고 싶었지만, 자신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극히 적었기 때문이다. 당시 엘링턴 오케스트라는 트럼피터만 해도 레이 낸스·쇼티 베이커 등 1940년대부터 활동하던 인물이 즐비했다. 솔로 연주의 우선권은 늘 그들에게 주어졌다. 클라크의 실력을 아는 사람들은 그에게 밴드 리더로 독립할 것을 권했지만, 결혼해 가정을 꾸린 클라크는 안정된 직장인 엘링턴 오케스트라를 쉽게 떠날 수 없었다. 대신 그는 이미 편곡자로서 실력을 인정받은 퀸시 존스의 도움으로 머큐리 레코드에서 한 장의 리더 음반을 녹음했고(이때 같은 음반사에 소속된 애덜리 형제를 알게 되었다), 곧이어 재즈 연주자를 보다 존중해주는 리버사이드의 오린 키프뉴스를 만났다.
음반 재발매 작업에서 벗어나 1955년부터 새로운 녹음을 시작한 오린은 1957년부터 1959년까지 클라크의 음반 넉 장을 지속적으로 녹음했고, 이 뛰어난 녹음은 당시까지 트럼펫의 숨은 실력자였던 클라크의 면모를 재즈 팬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테리의 거침없는 변모와 질주
클라크 테리는 실로 다재다능한 연주자였다. 베이시 밴드, 엘링턴 밴드에서의 연주와 달리 리버사이드에서의 첫 음반 ‘Serenade to Bus Seat’에서는 재즈 메신저스의 조니 그리핀(테너 색소폰), 디지 빅밴드의 윈턴 켈리(피아노),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의 리듬 섹션을 맡은 폴 체임버스·필리 조 존스(드럼)와 더불어 강렬한 비밥·하드밥을 구사했다. 하지만 다음 음반인 ‘Duke with a Difference’에서 그는 엘링턴 오케스트라의 멤버를 추려 9중주로 엘링턴의 레퍼토리를 ‘색다르게’ 구사했다. 어찌 보면 이 음반은 클라크에게 솔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엘링턴 작품을 자신이 얼마나 잘 연주할 수 있는지 보여준, 엘링턴을 향한 무언의 시위였다.
클라크의 변모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세 번째 음반 ‘In Orbit’은 피아노 자리에 텔로니어스 멍크를 앉힌 4중주 음반으로, 이 음반에서 멍크는 주변의 의심에 찬 시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작품이 아닌 클라크의 작품을 얼마나 훌륭히 반주할 수 있는지 증명했다. 하지만 더 인상적인 것은, 클라크가 모든 곡을 플뤼겔호른으로 연주했다는 점이다. 특히 느린 블루스에서 이 둥근 음색의 악기는 트럼펫으로서는 도무지 표현할 수 없는 파스텔 톤 푸른빛 선율을 은은하게 들려주었다. 트럼펫과 플뤼겔호른의 채도는 다음 음반에서 더욱 선명해졌다. 리버사이드에서의 마지막 음반 ‘Top&Bottom Brass’에서 클라크는 트럼펫과 플뤼겔호른을 둘 다 연주한 데다 튜바니스트 돈 버터필드를 사이드맨으로 기용해 음반 제목 그대로 금관 음색의 다양한 높낮이와 다채로운 색감을 펼쳐 보였다. 재즈에서 이러한 아이디어는 또다시 재현되지 않을 만큼 이 음반은 지금도 독창적이다.
리버사이드에서의 마지막 음반을 녹음할 무렵 클라크는 결국 9년간 몸담아온 엘링턴 오케스트라를 떠나 젊은 퀸시 존스가 새롭게 만든 빅밴드로 자리를 옮겼다. 이 밴드에서 클라크는 트럼펫 파트 수석주자가 되었다. 이들의 뛰어난 음악은 재즈사에서 여전히 기억되고 있지만, 유럽 투어의 흥행 실패로 결국 퀸시 존스 오케스트라는 2년 만에 해산했다. 그럼에도 클라크의 명성은 이미 음악계에 널리 알려져, 그는 곧 NBC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스카우트되었다. 그는 이 방송국이 영입한 최초의 아프리카계 연주자다.

키프뉴스의 혜안과 소박한 걸작
클라크가 우여곡절 끝에 NBC 오케스트라에 몸담고 있을 때, 오린 키프뉴스는 쓰디쓴 고배를 마셔야 했다. 리버사이드가 문을 연 지 10년 만인 1963년에 결국 문을 닫은 것이다. 그럼에도 프로듀서 오린 키프뉴스의 뛰어난 음악적 혜안 덕분에, 그 시절 그가 녹음한 연주자들은 모두 재즈계의 거목이 되었다. 멍크·클라크·애덜리 형제는 물론 빌 에번스·웨스 몽고메리·소니 롤린스·조니 그리핀·맥스 로치·지미 히스·블루 미첼 등이 바로 그들이다. 그중 몇몇은 대형 음반사와 계약을 맺었다. 멍크는 컬럼비아, 롤린스는 RCA, 애덜리 형제는 캐피틀과 계약을 맺었고(이 음반사들은 소위 4대 메이저 음반사라 불리는 곳이다) 에번스와 몽고메리는 MGM사가 인수해 대형 음반사로 변모한 버브 레코드의 계약서에 사인했다. 이들은 보다 많은 예산을 투여한 화려한 음반을 대형 음반사에서 녹음했지만, 그럼에도 많은 재즈 팬은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 키프뉴스가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제작한 소박한 걸작을 결코 잊지 못한다.

진기가 된 트럼펫, 명기가 된 음반
클라크 테리가 NBC 오케스트라에 가입했을 때 이 방송국은 그들의 간판 프로그램 ‘투나잇 쇼’ 진행자로 자니 카슨을 지목해 이 프로그램을 미국의 대표적인 토크쇼로 만들었다. 이때 독 세버린슨이 지휘하던 NBC 오케스트라는 매일 밤 ‘투나잇 쇼’에 출연했는데, 이때 트럼펫 파트 수석 자리에 앉아 있던 클라크 테리의 모습이 미국 전역에 방송되었다. 그럼에도 클라크는 결코 재즈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 1963년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의 객원 연주자로 참여한 그는 양손에 트럼펫과 플뤼겔호른을 들고 번갈아 연주하는 진기를 보여주었고, 독특한 스캣창법의 곡 ‘Mumbles’는 그의 테마곡이 되었다. 아울러 트롬보니스트 밥 브룩마이어와 5중주단을 결성해 독특한 금관 앙상블을 들려주던 시기도 바로 이때였다. 클라크는 1972년까지 10년간 NBC에 몸담았다.
리버사이드의 문을 닫은 오린 키프뉴스는 3년 뒤인 1966년 피아니스트 딕 캐츠와 손잡고 새로운 음반사인 마일스톤을 시작했다. 이 시기 매코이 타이너·존 헨더슨이 마일스톤에서 녹음한 음반은 그들의 최고 작품으로 손꼽힌다. 1972년 마일스톤과 리버사이드를 모두 인수한 판타지 레코드는 부사장 겸 재즈 A&R 감독으로 오린 키프뉴스를 영입했다. 오린은 이 회사에서 8년간 근무하며 소니 롤린스를 비롯한 명인들의 음반을 다수 제작했다.
오린이 판타지 레코드에서 근무하던 1970년대, 클라크는 미국 국무부의 후원 아래 클라크 테리 빅 ‘배드’ 밴드를 결성해 전 세계를 순회했다. 아울러 프로듀서 노먼 그랜즈가 조직한 재즈 앳 더 필하모닉에 참여해 동시대의 여러 명인과 잼 세션을 벌였다. 1970년대부터 재즈 교육에 힘쓰던 클라크는 윌리엄 피터슨 대학을 비롯한 여러 음악원에서 젊은 연주자들을 육성했다. 그러면서도 1980년대부터 그는 더 많은 음반을 녹음했다.
한편 1985년 자신이 설립한 세 번째 음반사 랜드마크를 시작한 오린은 8년간 이 레이블을 경영하다 1993년 뮤즈 레코드에 매각했다. 그 뒤로는 해박한 지식을 갖춘 프리랜서 제작자로 역사 속 재즈 명반을 CD로 재발매하는 일에 전념했다. 그는 음반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라이너 노트를 직접 쓴다고 말했지만, 그의 글 솜씨는 단연 뛰어났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재발매한 ‘오린 키프뉴스 컬렉션 시리즈’에 담긴 그의 회고록은 재즈의 소중한 기록이다.

계속, 계속해(Keep on Keepin’ on)
클라크와 오린은 모두 국립 예술 기금 재단(NEA)이 선정한 ‘재즈 마스터’에 이름을 올렸다(클라크는 1991년, 오린은 2011년). 아울러 클라크는 2010년 그래미 평생 공로상을 받았다. 클라크가 세상을 떠나자 재즈평론가이자 오린의 아들인 피터 키프뉴스는 ‘뉴욕 타임스’지에 쓴 부고에서 “재즈에서 플뤼겔호른을 인기 악기로 만드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연주자”라고 클라크를 평가했다. 반면, 명피아니스트 고(故) 빌 에번스의 ‘Re: Person I Knew(내가 아는 사람에게)’는 오린 키프뉴스(Orrin Keepnews)의 철자를 재배치해 만든 제목으로 키프뉴스에게 바친 에번스의 걸작으로 남아 있다.
퀸시 존스는 만년의 클라크가 당뇨와 싸우면서 병상에서 젊은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저스틴 코플린을 지도하며 그와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했다. 올해 제천음악영화제에서도 소개될 이 영화의 제목은 연주자의 끊임없는 정진을 뜻하는 ‘계속, 계속해(Keep on Keepin’ on)’다. 아울러 클라크와 오린의 연이은 타계를 접한 재즈 팬들은 이 영화의 제목에서 또 다른 문구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키프 온 키프뉴스 (Keep on, Keepnews)’. 재즈는 계속될 것이다.
글 황덕호(재즈평론가)

클라크 테리의 리버사이드 발매 음반

▲ Serenade To A Bus Seat Riverside RLP 12-237

▲ Duke with a Difference Riverside RLP 12-246

▲ In Orbit Riverside RLP 12-271

▲ Top & Bottom Brass Riverside RLP 12-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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