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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별의 해금 특강
자연을 담은 신비한 소리
글 김호경 기자 4/1/2015 |   지면 발행 ( 2015년 4월호 - 전체 보기 )



기러기가 잔소리하듯, 새가 조잘대듯. 팔방미인 해금의 매력

봄바람에 흔들리는 건 여자의 마음뿐이 아니다. 해금의 소리도 그렇다. 지판이 따로 없기에 두 개의 현은 허공에 떠 있으며, 탄성을 지닌 명주실로 되어 있기에 음정을 잡는 손의 위치와 힘의 안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야 정확한 음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연주자가 훈련을 통해 분명한 음을 낸다 하더라도 연주자의 미세한 떨림에 따라 음은 다채로운 울림을 갖는다. 활 또한 마찬가지. 팽팽하게 고정된 서양의 현악기와 달리 느슨하게 연결된 해금의 활은 연주자가 어떻게 현과 마찰시키느냐에 따라 음악에 다른 표정을 입힌다. 이러한 이유로 해금 연주자 꽃별은 해금을 “흔들리는 악기”라 말한다.

오래전, 꽃별의 연주를 보고 ‘어떤 악기가 이보다 여성스러울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아담한 크기의 악기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시선을 아래로 고정한 채 온전히 악기에 집중해 현의 미묘한 울림을 전하는 그녀의 모습은 우아했다. 그녀가 내는 소리는 부드럽고 사랑스러웠지만, 어쩐지 슬프게 들리기도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일 때 일본 음악 관계자의 눈에 띄어 포니캐년 레이블과 계약하고 첫 번째 음반 ‘Small Flowers’를 발매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꽃별은 ‘Star Garden’(2집) ‘Fly Fly Fly’(3집) ‘Yellow Butterfly’(4집) ‘숲의 시간’(5집) 등을 차근차근 기록하며 해금의 매력을 알려왔다. 단독 콘서트 외 여러 차례 해외 공연과, 국악방송 ‘맛있는 라디오, 꽃별입니다’를 진행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증명해온 그녀는 현재 남편인 작곡가 조용욱과 이건민(피아노)·유웅렬(기타)과 함께 6집 음반을 준비하고 있다.

“해금이 저를 대신해 많이 울어줬어요. 저는 가슴속에 슬픔이 많은 사람인데, 해금을 만나 우울하고 뾰족한 생각을 잘 다스릴 수 있었죠. 도전하던 시기(1~3집)와 대단한 것을 보여주겠다는 욕심으로 가득했던 때(4집)를 지나 해금이 지닌 순수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기(5집)까지 많은 변화와 고통을 겪었어요. 4년 만에 발매하는 새 음반은 ‘자연스러움’ 그 자체가 될 것 같아요. 해금이 꼭 주인공일 필요도 없고, 어떤 음악적 형식을 갖출 필요도 없이 자유롭고 편안한 음악을 담으려고 해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을까. 예쁜 외모와 대중적 인기로 국악계 ‘스타’로 불리던 소녀는 한층 성숙한 음악으로 자신의 영역을 자연스레 물들이고 있다. 살랑살랑 봄바람 같은 그녀에게 해금의 구석구석에 대해 들어봤다.

악기의 구조

속이 빈 공명통에 입죽을 꽂고 주철로 고정한다. 입죽에는 현을 감을 수 있도록 두 개의 주아(중현·유현)를 꽂는다. 명주실을 꼬아 만든 두 줄을 중현과 유현에 각각 감은 후 공명통 아래에 연결해 고정한다. 주아의 조금 아래에 두 현을 손으로 감싸기 쉽도록 끈으로 모아 입죽에 건다. 공명통의 복판 위에는 원산이 현을 받치고 있는데, 이는 서양 현악기처럼 브리지 역할을 한다. 활은 둥글고 긴 대나무 가지에 말총(말 꼬리의 털)을 느슨하게 달아 만든다. 털은, 활의 왼쪽 끝은 대나무 가지에, 오른쪽 끝은 가죽 손잡이에 연결한다. 활을 현 사이에 끼우고 마찰시키면 복판이 울리며 소리를 낸다.


진정한 ‘팔방미인’ 악기

‘증보문헌비고’에 따르면 국악기는 재료에 따라 ‘팔음(八音)’으로 구분한다. 금(金)·석(石)·사(絲)·죽(竹)·포(匏)·토(土)·혁(革)·목(木)을 기준으로 분류하는데, 해금은 국악기 중 유일하게 여덟 개의 재료가 모두 사용된다. 주철은 쇠(金), 공명통 안쪽에 바르는 가루는 돌(石), 두 개의 현은 실(絲), 공명통·입죽·활은 대나무(竹), 원산은 박(匏), 활의 털에 바르는 송진은 흙(土), 활대의 손잡이는 가죽(革), 복판은 나무(木)로 만드니 해금의 소리가 다채롭고 신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해금은 당연히 현악기! 아니, 관악기?

해금은 두 개의 현을 가진 찰현악기로, 모습은 현악기지만 음악적 기능에 따라 관악기로 분류되기도 한다. 가야금·거문고처럼 현을 사용하지만 현을 뜯어 짧게 울리는 발현악기와 달리 대금·피리처럼 주선율을 길게 연주할 수 있다. 따라서 재질상으로는 현악기로 분류하지만, 연주하는 성격상 관악기로 분류하기도 한다.


기러기가 잔소리하듯, 새가 조잘대듯


예부터 해금은 다양한 음악에 널리 쓰였다. 조선 중기까지는 궁중의 연례악이나 종묘제례악 등에 주로 편성되었지만 조선 말기부터는 민속악에서도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지영구의 시나위 가락을 바탕으로 지영희가 가락을 다듬은 지영희류 산조를 시작으로 한범수류 산조, 서용석류 산조, 김영재류 산조가 널리 연주되고 있다. 지영희는 생전에 직접 쓴 곡 해설과 채보한 악보를 많이 남겼는데, ‘지영희 민속악 연주 자료집’에 수록된 그의 해금 산조 육필 해설을 보면 ‘기러기가 잔소리하는 것 같고 새가 조잘대던 소리같이 들리니 조용히 감상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작은 고추가 맵다! 소리를 결정하는 원산

이 작은 것이 무슨 역할을 할까 싶지만 악기 소리를 결정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한다. 해금의 음량과 음색을 조절하는 이것의 이름은 원산. 보통 복판의 가장 윗부분에서 2cm 정도 내려온 부분에 고정해 현을 연결한다. 원산의 위치가 복판의 가장자리로 갈수록 음량은 작아지고 날카로운 소리가 나며, 가운데로 갈수록 음량은 커지고 부드러운 소리가 난다. “해금의 매력은 ‘카랑카랑함’이거든요. 저는 약간 날이 선 소리를 좋아해요. 한없이 부드러우면 재미없죠.” 연주자마다 취향에 따라 원산의 위치가 미세하게 다르지만, 중간의 아래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외모에 따라 목소리도 다르다!

공명통은, 한쪽 면은 얇은 오동나무판(복판)으로 덮여 있고 반대쪽 면은 뚫려 있어 소리의 울림을 만든다. 브랜드마다, 제작자마다 공명통의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제 악기처럼 항아리 모양이면 울림이 모이고, 납작한 모양이면 아기자기하면서도 재미있는 소리가 나요. 말로 표현하려니 힘드네요. 직접 들어보면 다르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는데 말이에요.” 여러 개의 악기를 소유하고, 정악·민속악·창작곡마다 악기를 바꿔 사용하는 연주자도 있다. “저는 악기를 네 대 갖고 있는데, 다른 악기도 사용하기는 하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리를 가진 한 대의 악기에 손이 많이 가더라고요. 지금 이 악기도 여기저기 고쳐가며 15년째 사용하고 있어요.”

중현과 유현 사이의 거리

두 개의 주아 중 아래에 위치한 주아에 얇은 줄을 감고, 위에 위치한 주아에 그보다 굵은 줄을 감는다. 얇은 줄은 유현(음이 높은 줄), 굵은 줄은 중현(음이 낮은 줄)이라 부른다. 줄을 감을 때 유현은 밑에서 위로, 즉 몸의 안쪽에서 바깥쪽 방향으로 감고 중현은 위에서 아래로, 즉 몸의 바깥쪽에서 안쪽 방향으로 감는다. 보통 유현과 중현은 약 5도 관계로 조율한다. 유현의 주아를 몸 쪽 방향으로 돌리거나 중현의 주아를 몸 바깥쪽 방향으로 돌리면 음이 올라간다.


잉어를 낚아채듯!

해금의 주법 중 ‘잉어질’은 한 음을 소리 내는 마지막 순간에 한 음 위의 음을 짧게 끊듯이 소리 낸 후 다음 음으로 넘어가는 주법을 말한다. 잉어를 낚아채는 듯한 효과를 낸다고 하여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주아에 현 저장하기

해금의 현은 명주실로 만들어 늘어나는 성질이 있다. 주아에 현을 감을 때 팽팽하게 잡아당기면서 감고, 연주하기 전 현을 충분히 늘려놓아야 연주 중 음정이 불안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주아의 홈에 가득 찰 정도로 감아두고, 현을 교체할 때는 주아에 감겨 있는 여분의 현을 사용한다. “보통 주아에 가득 차도록 감으면 네 번 정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공연 중간에도 현이 풀리거나 늘어나면 갈아줘야 해요. 아예 끊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저는 두 번 있었어요. 무척 당황해서 황급히 무대 밖으로 빠져나와 다시 끼웠죠. 줄이 두 개뿐이라 하나라도 끊어지면 연주가 불가능해요.”


연주법

해금은 지판이 없기 때문에 기준음(1지음)을 잡은 후 그 음에 맞춰 조율한다. 곡마다 음역에 따라 기준음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곡의 1지음이 황종(E♭)이라면 대금이 불어주는 황종에 맞추어 조율을 해요. 일단 1지음을 정하고 나면 그 이후에는 연습을 통해 숙달하죠.” 손가락이 하나씩 현에 더해질 때마다 약 2도씩 음정이 올라간다. 해금은 손가락의 위치 외에 줄 당김의 정도에 따라서도 음정을 바꿀 수 있다. 많은 힘(力)을 들여 눌러(按)서 연주하기에 이를 ‘역안법(力按法)’이라 하며 입죽에 가깝게 누를수록 음정이 높아진다. “해금 연주자는 절대음악보다 상대음감이 유리해요. 해금은 세상의 모든 음을 낼 수 있다고 말할 만큼 음의 단위가 세밀하게 나뉘거든요. 여러 악기와 함께 연주를 할 때는 주변의 소리를 잘 들으며 음정을 맞추는 게 중요해요.”

정간보와 오선보

궁중음악과 정악은 정간보를 사용하고, 민속악은 오선보에 기록된 것이 많다. 조선시대에 개발한 정간보는 ‘정간(井間)’이라 불리는 네모진 칸에 음정과 기법이 적혀 있으며, 세로로 읽으며 연주한다. 민속악은 대부분 구전으로 전해오다 서양의 오선보가 도입되면서 민속악의 다양한 기교와 선율 변화의 표기가 용이한 오선보에 기록되기 시작했다. 현대 작곡가들의 창작 음악은 대부분 오선보에 기록되고 있다.


‘음’을 만드는 왼손, ‘소리’를 만드는 오른손

음을 짚는 건 현 위의 왼손이 하지만, 음악적 뉘앙스를 표현하는 건 활을 쥔 오른손이 한다. 해금의 활은, 활대에 말총이 헐렁하게 연결되어 있어 사용이 매우 까다롭다. 엄지를 뺀 네 손가락을 아래에서 위로 끼운 후 활대를 엄지손가락과 둘째손가락으로 잡는다.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누르듯 앞쪽으로 힘을 줘서 활대를 밀며 연주한다. 둘째손가락은 엄지손가락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나머지 세 손가락은 가죽을 당겨 활이 현에 적절히 마찰되도록 한다. “예전에는 왼손 연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음악을 완성하는 건 오른손이더라고요. 손과 심장의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지니까요. 해금을 연주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오른손에 쥔 활을 다루는 일이라고 대답할 거예요.”

해금을 연주할 때 다리의 역할

해금은 바닥이나 의자에 앉아서 연주한다. 바닥에 앉을 때는 반가부좌를 틀고 앉는데, 오른발을 왼쪽 다리 무릎 안쪽 부분과 무릎에 걸쳐지도록 얹은 후 그 위에 해금을 올려놓고 연주한다. 의자에 앉을 때는 두 다리를 붙이고 가운데에 해금을 올려놓고 연주한다. 첼로처럼 고정 장치 없이 몸으로만 지탱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을까? “고정 장치가 있다면 더 불편할 것 같아요. 사실 연주할 때 다리의 역할도 중요하거든요. 공명통에 얼마나 닿느냐, 양쪽 면을 얼마나 가리느냐에 따라 음량이나 음색이 달라져요. 음악을 느끼면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게 되는데, 다리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죠.”


추천 음반

인터뷰에 앞서 추천할 만한 음반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하니, 그녀는 스승인 강은일의 1집 ‘오래된 미래’(2003)를 들고 나타났다. 이유를 묻자 어떤 평가보다 애정이 듬뿍 느껴지는 “아름다워서요”라는 짧은 코멘트를 남겼다. 음반 커버에는 강은일의 사인과 함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다.


꽃별이 말하는 해금의 가능성

“자연의 소리를 표현한다는 것, 그로 인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다는 것” 해외 공연의 경험이 많은 꽃별에게 해금의 가능성에 대해 묻자 이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해금의 소리는 마치 바다와 하늘이 있는 곳에 짙게 낀 안개 같아요. 저 너머에 뭔가 있는 것은 확실한데 잘 보이지는 않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물소리, 바람소리 다 담고 있는 것 같아요. 한없이 한국적이지만 다른 악기와 어울릴 때 이질감이 없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겠죠.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나 해금의 여러 면모를 발견하는 단계에 있다고 생각해요.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다는 게 해금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예요.”

사진 심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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