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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폰, 소리를 실어 나르는 핏줄
지금 당신의 귀에 꽂힌 이어폰이 일궈온 문화사를 살펴본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3/1/2015 |   지면 발행 ( 2015년 3월호 - 전체 보기 )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 안. 모두 공동 의식이라도 치르듯 귓속에 이어폰을 꽂은 채 스마트폰을 응시하거나 눈을 감고 있다. 이어폰이 없다면 이 외로운 시간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어폰은 이동하면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신체 밀착형 포터블 스피커로 ‘1인 감상’에 최적화된 도구다. 전문적 음악 감상을 위한 ‘마니아층’이 있는가 하면, 모바일의 한 부속으로 ‘누구나’ 편리하게 사용하는 용품이기도 하다.

이런 이어폰의 역사를 단지 소리 전달 도구의 역사로만 국한할 수는 없다. 그 안에는 음향과 음악 문화를 변화시킨 요인은 물론 소리를 둘러싼 테크놀로지의 변천사가 흐르기 때문이다. 그럼 이어폰이 오늘날 일상용품이 되기까지, 다소 특별한 역사를 살펴보자.

과학의 산물, 통역과 도청의 중요 물품

이어폰이 국내에 도입되던 초기에는 누구나 귀에 꽂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1960년대에 이어폰은 흔치 않은 물건이었다. ‘전자시대의 교육 전망’이라는 기사에선 공상영화에서 볼 법한 물건으로 그려진다.

“기계교사로부터 맑은 목소리가 다음과 같이 전해져왔다. (···) 내가 전기력과 중력이라는 첫 번째 란에 표시를 하자 책상 위의 기계장치에 적색등이 켜지고 이어서 부드럽게 이런 말이 이어폰으로 전달되어왔다. ‘답이 틀렸습니다. 다시 공부해서 재시험을 보도록 하십시오’”(‘경향신문’ 1960년 7월 27일자).

음을 증폭해 하나의 소리가 그 장(場)과 공간을 지배하는 스피커와 달리 이어폰은 ‘1인 청취’를 가능케 한다. 그래서 다양한 이국의 언어가 공존하는 국제회의장에서 요긴하게 쓰인다.

“바티칸 교황청 내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는 (···) 카톨릭 공의회가 엄숙하게 개막되었다. (···) 회장 안에는 3백년 묵은 두꺼운 대리석 바닥에 구멍이 뚫리고 전선이 가설되었다. 이 전선에는 라틴어로 진행될 회의의 토의내용을 현대어로 들을 수 있도록 수천 개의 마이크로폰과 이어폰이 연결되었다. 중세기적 신비에 싸인 공의회는 아직도 신문기자들에 대해선 장막이 내리어져 있다”(‘경향신문’ 1962년 10월 12일자). ‘통역’이 있는 곳에는 늘 이어폰이 있었다. 또 다른 예로 1930년대 중국 상하이에 위치한 최첨단 오데온 극장은 2000석과 에어컨, 그리고 동시통역용 이어폰을 구비한 것으로 유명했다.

1966년 한국이 아시아·태평양지역 각료회의를 준비하면서 “국내 조달이 가능한 책상과 의자 실내장식품 등은 국산품을 썼지만 이어폰, 회의용 마이크, 카페트 같은 것은 일본 등지에서 사들”여 왔다. 이 내용을 담은 기사는 제목부터가 ‘이어폰은 일본서 사와’였고, 회의가 끝난 뒤 “회의용 책상과 의자, 이어폰 등 비품들은 박대통령지시로 다음 회의를 위해 보관하기로” 했다고 하니 이어폰이 당시 지녔던 희소성이 느껴진다.(‘동아일보’ 1966년 6월 11일자)

이어폰은 ‘1인 청취’ 외에도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도청 도구로 활용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영화 ‘타인의 삶’(도너스마르크 감독, 2006)에서 도청 전문가인 주인공은 이어폰을 통해 상대방의 방에서 벌어지는 일을 ‘감청’하고, 오직 자신만이 그 모든 사건을 기억한다.

공통의 소리와 음악을 수용하게 해 음향 공동체를 형성하는 스피커와 달리 이어폰은 음향 공동체에서 개인을 분리하는 역할을 했다. 따라서 모두가 듣고 수용해야 할 권력의 소리를 ‘차단’하는 물품이기도 했다.

“저는 비행훈련 중에 잠깐씩 남한방송을 듣곤 했습니다. 이어폰을 끼고 볼륨을 낮추면 누구도 모르게 남한 방송을 들을 수가 있지요. (···) 남한이 이북보다 자유롭고 잘 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남한방송에 귀를 기울이면서 북한을 탈출할 생각을 굳혔지요”(‘동아일보’ 1983년 4월 12일자).

외로운 도시인의 동반자

비교적 근대화·산업화된 대도시의 모습을 갖춘 1970년대의 서울, 서양음악의 감수성이 일상화되는 경로 또한 다양해졌다. 특히 음악회 역할보다 개인화된 감상 도구인 라디오와 FM 방송의 비중이 높아진 시기였다. 이어폰은 통역이 행해지는 국제회의장 등을 넘어 음악을 즐기기 위한 일상의 도구로 서서히 자리 잡았다. 그리고 헤드폰과 함께 ‘청음기’라고도 불리던 이어폰은 수요가 급격히 늘면서 일반인들에게 인기 상품으로 자리 잡아갔다.

“인기품목으로 카세트, 레코드, 카스테레오 등 그리고 인기부품으로 레지스터, 캐퍼시터, 라디오, 이어폰 등을 꼽았다”(‘매일경제’ 1971년 12월 10일자).

소설가 최인호가 당시 아파트 같은 현대문명의 모습을 담아 1971년에 발표한 ‘타인의 방’에도 이어폰이 등장하는데, 이어폰은 고독이 극도로 엄습한 도시인과 교감하는 사물로 그려진다.

“잘 들어요. 소켓이 속삭인다. 마치 트랜지스터 이어폰을 꽂은 것처럼 그의 목소리는 귓가에만 사근거린다. 오늘밤 중대한 쿠데타가 있을 거예요. 겁나지 않으세요.”

이어폰이 음악을 귓속으로 실어 나르며 고독하고 삭막한 현대인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물품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장이다. 아무튼 1973년 중소기업중앙회는 우선 육성 품목 100개를 선정했고 그 안에는 도량기, 톱날 등 산업역군의 필수품과 함께 스피커 그리고 이어폰이 포함되었다.

‘하면서족(族)’의 무기, 이어폰

1980년대에 이르자 국내에 이어폰의 생태계는 한층 넓어지고 다양해졌다. 무엇보다 이어폰이 큰 역할을 한 건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다. 조직위위회는 개·폐회식에 입장하는 7만여 관중에게 올림픽 사상 최초로 7개국의 언어 청취가 가능한 라디오 수신기와 이어폰을 무료로 제공했다.(‘경향신문’ 1988년 2월 29일자)

그런데 만약 이어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언어가 통하지 않는 ‘바벨탑’은 금세 무너질 것이다. ‘개·폐회식 이어폰 채널 안 맞는 등 문제점’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개·폐회식 때 관중에게 나누어줄 해설용 이어폰이 채널마다 소리의 크기가 다르고 일부 언어권은 채널이 제대로 맞지 않는 것”을 지적했다. 그래서 올림픽 선수단 모의 입장식이 있는 잠실주경기장에는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동대문상고생 5백여 명이 이어폰 점검요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동아일보’ 1988년 7월 21일자)


▲ ‘동아일보’ 1988년 7월 21일

1960~1970년대와 달리 “아침산책이나 출·퇴근길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즐기거나 영어회화 등을 익히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문명의 이기(利器)가 신체 깊숙이 들어올수록 단점도 생겼다. “높은 음향을 한꺼번에 줄곧 귓속에 쏟아 넣으면 청각장애를 일으키기” 쉬우며, “이런 상태로 1주일에 24시간 정도 이어폰을 사용하면 귀가 멀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또 “이어폰의 지나친 소음은 스트레스를 높여 고혈압과 종기 등을 가져오고 집중력을 해치며 심지어는 불면증과 신경쇠약 등의 요인도 될 수 있다”고 밝혔다.(‘경향신문’ 1983년 10월 19일자)

하지만 1980년대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끈 워크맨은 이어폰과 단짝을 이루고 청각의 문화를 완전히 바꾼다. 태고에 소리 전달 도구로 태어난 이어폰은 이제 외부 소리를 차단하는 개인의 ‘방음벽’이자 ‘혼자만의 세계와 왕국’을 세우는 데 요긴한 물건으로 쓰인다.

“이어폰은 어느 때 어떤 곳에서나 손쉽게 혼자만의 세계와 왕국을 세울 수 있는 기계여서 특히 젊은이들이 애용하고 있는 게 최근의 풍조다”(‘경향신문’ 1983년 10월 19일자).

이어폰의 물결은 점점 더 거세졌다. 이 힘은 1990년대에 이르자 더 커졌고, 청소년 사이에 ‘필수품’으로 자리를 잡는다. 1992년 뉴키즈 온 더 블록의 내한, 서태지, 김건모, 신승훈 등 음악을 소비하는 10대의 힘은 무서웠다. “음반판매도 이들이 70% 이상을 좌우함으로써 대중문화, 특히 가요분야는 10대들에 의해 ‘장악되는 사태’에 이르렀”고,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며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동아일보’ 1992년 12월 23일자) ‘폐쇄회로에 갇힌 감성’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는 “10대 남녀학생들의 귀에는 항상 소형 카셋(마이마이)의 리시버가 꽂혀져 있게 마련”이라며, “수업시간에도 종종 교사들의 눈을 피해가면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학생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경향신문’ 1992년 2월 21일자)

한쪽에서는 “이어폰을 꽂고 공부를 하는 건지 마는 건지 산만한 아이”(‘동아일보’ 1998년 5월 26일자)라며 혀를 차는 어른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이어폰을 낀 채 수학문제를 풀고 있는 (···) 아이들은 ‘즐겁게’ 공부하고 있다”며 달라진 세대, 시대상을 변호하기도 했다.(‘경향신문’ 1996년 6월 8일자)

이어폰은 교실과 책상의 풍경만 바꾼 게 아니었다. 길거리 문화의 대대적인 변화와 시·청각 감수성에 일대 변혁을 일으킨다. 연주회장은 주위로부터 분리·격리된 특권화된 공간으로, 약속된 시간 동안 주어진 음악에 대한 집중적 청취를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이어폰은 대중이 일상 공간에서 음악을 ‘산만하게’ 즐길 수 있게 했다. 길거리든 책상 앞이든 한 장소에 뿌리를 두는 음악 감상이 아닌 무한한 이동과 새롭게 마주치는 풍경 속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어폰을 끼고 길을 걸으며 마주하는 풍경은 새롭게 다가왔고, 보여지는 풍경 또한 지금 귓가에 들리는 음악을 다른 감수성으로 느끼게 했다. 예를 들어, 디스코 음악을 들으며 초상집을 지나가는 이의 감수성을 생각해보자.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이 다르지만, 한 영상에 포개지는 묘한 뮤직비디오와 ‘MTV’의 감수성도 여기서 나왔으리라 짐작된다.

‘이어폰족(族)’은 새로운 문화 부족으로 급부상했다. 더불어 ‘하면서족(族)’도 등장한다. 이들은 일단 조용하면 불안함을 느끼는 세대였다. 교실에선 “필기하는 잠깐 동안의 고요함을 못 참아 긴 머리로 감추고 이어폰을 꽂은 여고생”도 있었다. 단일 감각보다는 오감(五感)을 충족시켜야 했고, 시각적·본능적·즉각적 감성적인 우뇌가 커져버린 인류였다. 이러한 신인류를 위한 정보 전달 프로그램도 ‘정보’ 외에 “이야기도 하면서 웃기기도 하면서 노래와 연예 정보도 전하는 ‘하면서 프로그램’”이 많아졌다.(‘동아일보’ 1993년 6월 13일)


▲ ‘동아일보’ 1993년 6월 13일

이어폰이 신세대에게 재미와 유흥을 제공하는 ‘미용’의 용품이었다면, 기성세대와 직장인에게는 ‘실용’의 용품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1980년대 무역자유화에서 이어진 “수입 자유화로 국내외를 막론한 모든 기업 활동이 국제경쟁시대에 들어서”면서 통근 버스와 지하철에는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영어를 중얼거리는 ‘양복쟁이’가 많아졌다. 40대 부장급도 영어 회화가 승진 필수과목이라 ‘늦깎이 이어폰’을 끼게 되었다.(‘한겨레신문’ 1993년 8월 24일자)

한편 이어폰의 과한 사용으로 청력 손실에 대한 해외 연구 결과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기사화되었다. ‘거리의 이어폰족(族), 음악 즐기다 난청 된다’ 등의 기사가 보도되며 이어폰 사용을 줄이든지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아졌다.(‘동아일보’ 1997년 9월 9일자)

두 손을 해방시키다

1990년대에 이어폰은 또 다르게 진화한다. 전화기와 연결되며 수화기를 든 손을 해방시킨 것이다. 물론 그전에도 이에 대한 청사진은 충분히 그려왔다.

“길가면서 혼자 지껄이는 젊은 여성. 머리가 돌았거나 몽유병자가 되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워크폰(Walk Phone)의 애호가인 것이다. (···) 그것은 길을 걸어가면서 걸 수 있는 전화를 말한다. (···)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목에는 송화기를 겸한 마이크로폰을 매달고 있다”(‘동아일보’ 1984년 11월 15일자).

1990년대 무선전화가 유행하면서 생활 속 ‘유선(有線)’의 불편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발명 동아리에서는 “이어폰 엉김방지장치”(‘동아일보’ 1995년 11월 20일자)를 발명하는가 하면, ‘무선’이어폰이 나오기도 했다. 1995년에는 ‘이어폰 달린 전화기’가 아이디어 상품으로 떠올라 시판되면서 두 손과 행동은 자유를 얻는다.

1997년 국내 기업들이 PCS 사업을 실시했다. 어떤 전화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구세대와 신세대가 나뉘었다. 구세대는 ‘집’에서 수화기를 ‘들고’ 통화를 했다. 반면 신세대는 ‘길거리’에서 휴대폰에 이어진 이어폰과 마이크, 즉 ‘핸즈프리’ 키트를 사용해 휴대폰을 ‘휴대’하지 않은 채 통화했다.

“거리에는 난데족이 넘쳐난다. “응, 난데, 뭐해?” (···) 최근에는 전화기를 귀에 대지 않고도 통화할 수 있는 이어폰까지 나왔다. 혼자 시시덕대거나 중얼거리면서 걸어가는 젊은 사람이라면 ‘통화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기사 제목이 ‘젊은이여, 휴대폰을 내던져라’라는 건 지금 생각해보아도 재밌는 일이다.(‘한겨레신문’ 1999년 5월 12일)

이어폰은 이제 일상용품이 되었다. 그리고 워크맨보다 부피가 큰 CD 재생기가 1990년대 중·후반에 유행했다. 그것을 넣고 보관할 수 있는 기능이 가방의 디자인과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좌우하는가 하면, 이어폰을 가방 바깥으로 내주는 구멍은 가방 디자이너가 반드시 챙겨야 할 디자인 요소였다.

이어폰은 진화 중

2000년대가 되면서 휴대폰에 다양한 기능이 ‘동거’하기 시작했다. MP3 혁명과 더불어 음악 재생 기능이 휴대폰으로 들어가자 사용자들이 이어폰을 착용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음악을 듣다 전화가 오면 재생이 멈추고 자동으로 통화 상태로 전환된다. 이어폰은 탈착하는 물건이 아닌 신체의 일부가 되어갔다. 또 스마트폰이 도래하면서 이어폰의 전선은 DMB방송 수신을 위한 별도의 안테나 역할을 했다.

2013년 10월, 구글은 스마트폰에 있는 기술의 총체를 안경으로 구현해 발표했고, 같은 달 삼성전자는 스마트 안경 디자인 특허를 국내에서 취득했다. 구글과 달리 스포츠 활동에 중점을 둔 삼성전자는 “외부에서 활동하면서 음악을 듣거나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도록 이어폰이 내장된 안경”이라며 ‘구별 짓기’를 선언했다.


이제 이어폰은 필수이자 옷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안경잡이가 기상하면 가장 먼저 찾는 것이 안경이듯, 길을 나설 때 혹은 스마트폰을 휴대함과 동시에 착용하는 것이 이어폰이다. 또 이어폰은 외부 소음 차단 기능을 강화하고 소리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귓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여러 크기의 팁을 교체하면서 착용감을 편하게 하는 커널형 이어폰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래서 이어폰 개발자의 꿈은 ‘착용했지만 착용하지 않은 듯한 이어폰을 만드는 일’일 것이다. 이어폰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문화적 풍경을 연출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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